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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국문학:현대시:근현대시:양여천 [2022/04/11 12:57]
clayeryan@gmail.com [봄이라는 힘없는 무력함 앞에 앉아]
문학:국문학:현대시:근현대시:양여천 [2023/11/26 22:51] (현재)
clayeryan@gmail.com [달맞이꽃]
줄 1: 줄 1:
 ======양여천 시 묶음 (天餘之詩)====== ======양여천 시 묶음 (天餘之詩)======
 +
 +{{ :문학:국문학:현대시:근현대시:mockup_png2_sm2.png?direct&400 |}}
 +
 +<WRAP centeralign>
 +<fs x-large>**양여천 개인시집 "성냥개비" 출간**</fs>
 +</WRAP>
 +
 +[[https://2da.kr|책정보]]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432828|도서 구매 링크]]
 +
  
 =====홍차 한 잔 속에서===== =====홍차 한 잔 속에서=====
줄 34: 줄 45:
  
 <poem> <poem>
-한 번 쯤은 +한 번쯤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로+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까? 돌아갈 수 없을까?
  
 어딘가엔 어딘가엔
-그 때, 그 시간들이+그때, 그 시간들이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아 아직 남아 있을 것만 같아
  
줄 50: 줄 61:
 꽃이 다시 피어나겠어 꽃이 다시 피어나겠어
  
-끝이 아닐거야+끝이 아닐 거야
 어딘가에 저 먼 별에 가면 어딘가에 저 먼 별에 가면
 우리가 다시 만나고 우리가 다시 만나고
줄 882: 줄 893: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손톱끝에 파고드는 가시같은 손톱끝에 파고드는 가시같은
-아픔을 느낄라도+아픔을 느낄라도
 그 느끼는 것을 그 느끼는 것을
 그 느끼는 자리에서 그 느끼는 자리에서
줄 1682: 줄 1693:
 자신만의 꿈의 어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자신만의 꿈의 어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
  
-총총히 성근 별들이 밤하늘의 계절들 사이를+총총히 성근 별들이 밤하늘의 계절 사이를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맘껏 유영하고 있을 때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맘껏 유영하고 있을 때
 스르르 팔베개 하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 밤바다를 올려다보면 스르르 팔베개 하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 밤바다를 올려다보면
줄 1714: 줄 1725:
 흔들리며 흘러가는 별들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흔들리며 흘러가는 별들의 이야기를 그려본다.
 </poem> </poem>
 +
 +===== 이사가는 노인 =====
 +
 +<poem>
 +낡은 처마가 비바람에 허옇게 들떠 울었다. 아무래도 이제 낡은 집을 버려야 할 때인가보다, 노인은 정들었던 집을 떠나기가 쉽지 않고,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
 +봄이면 제비가 찾아들고, 여름 내내 땡볕에 호박 넝쿨이 오르던 지붕이, 마른 볏짚으로 엮었어도 가을의 거친 태풍도 용케 견뎌 주었지.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울타리 건너 두 집은 화재에 스러져 지난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집주인은 정든 동네를 등져야 했지. 강이 넘치고, 산이 무너질 때에도 다 쓰러질 것 같은 몰골로도 용케 살아남았구먼, 세월 바뀌어도 예순 넘는 이 세월에 남아 있으리라고는 처음 지을 때도 몰랐어...
 +
 +"예,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혼이 사는게지, 그라게 버텼지."
 +
 +노인은 입버릇처럼 벌레 먹은 기둥에 기대어 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떠나면 여기도 곧 무너질 게야....
 +
 +뒷마당이 쓸쓸해 보이는 가을 저녁, 들에서 돌아온 노인이 조촐한 짐을 싸고 있었다. 이젠, 내가 만든 집을 떠나 남이 지어준 집으로 들어가야만 되네. 새집으로 집을 옮기면서도 노인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흙에 짚을 썰어 벽을 쳤던 주홍의 낡은 집에는 거미줄 하나 있지 않았고, 아직 아궁이에는 전날 불을 넣었던 장작의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차츰 주인 없이 아무도 들어 살지 않을 빈집은, 정말 숨을 거두어 가는 낡은 육체처럼 스러져 가고 식어져 가고 있었다.
 +</poem>
 +
 +===== 그리움만큼 발톱도 빨리 자란다 =====
 +
 +<poem>
 +그리움만큼 발톱도 빨리 자란다고
 +
 +가을날 마당 곁의 봉숭아를 따서
 +발톱 끝에 곱게 물들이고서
 +아랫목에 앉은 당신은 그렇게 말했을 거다
 +
 +겨우내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북풍이 할퀴고 가는 창밖의 동짓날
 +외로움도 이젠 사뭇 한 곁에 다가온 것처럼 느껴지는데
 +
 +슬픔도 그냥 통째로 씻어서
 +화로에 노오란 고구마 구워 껍질 벗기고 집어 삼키면
 +콱 맥히던 목마름을
 +투명한 눈물, 동치미 국물과 함께 훌쩍 삼켜 버리고
 +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창밖에 이제 겨울은 그저 허허벌판인데
 +
 +아직 여리던 흙 가슴에 구멍을 뚫고
 +당신의 매운 손, 배추 잎사귀 속에 저며가며
 +담가두었던 김장독만 겨우내 가문 살림살이 안에 남아 있으니
 +
 +겨울이 아무리 하세월이라도
 +무성하게 자라난 발톱을 조금 잘라내어
 +겨울 눈무덤 위에 뿌려놓으면
 +
 +죽지 않는다고서야
 +다시 만날 그 날에는, 언 땅 녹아
 +봉숭아 새순이 거기서 돋아나고 있으리외다
 +</poem>
 +
 +===== 역사의 강물이 내게로 온다 =====
 +
 +<poem>
 +강물이 서로 몸을 섞으며
 +강이 되지 못한 시간을 타고
 +모든 것이 회유된 바다로 간다
 +
 +발을 두었던 그 산에서는
 +저녁도 저물어 이제 밤은
 +조용한 산하인데
 +
 +흘러가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비틀거리며 상처입은 야수처럼
 +온 몸에 거친 숨을 두르며
 +
 +내게로 온다
 +
 +강물은 흘러 넘쳐 눈물이 가득 고였던
 +그 잔을 다 마시지 못한 채로
 +손을 내려 놓는다
 +
 +눈물이 그친 얼굴에서
 +목마른 흐느낌이 목을 타고 넘어 나온다
 +
 +그 이름이 새겨져 있던
 +이름표가 있었던 교복을 벗고
 +너는 다른 옷을 입는다
 +나라고 생각했던 모두가 불러주었던
 +
 +그 친근했던 이름을 벗어놓고
 +이제 다른 사람의 옷을 빌려 입었다
 +</poem>
 +
 +===== 사랑노래 1 =====
 + 
 +<poem>
 +
 +사랑은 내게 당신을 노래하게 하더니
 +이내 앵 토라져서 돌아앉아 있는
 +이슬앉은 제비꽃처럼 푸르게 푸르고
 +그래서 사랑은, 내게 당신을 애타게 부르게 하고
 +어깨너머로 비치는 창가에 앉아
 +그대 하얀 목덜미에 입맞추고 싶다
 +사랑이 그대를 노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봄바다 위를 달리는 거친 밤바람보다
 +걷잡을 수 없는 격정에 시달리며 베게를 적시는
 +숱한 불면의 밤을 손꼽아야 한다 할찌라도
 +나 그대 사랑을 노래하련다
 +
 +이렇게 아침이면 서리가 내린 마당에
 +온 세상이 그대 사랑함으로 아름답고
 +잠이 덜 깨어 내 목소리만을 기다리며
 +실눈을 뜨는 헝크러진 그대 머리맡에
 +나의 아직은 덜 씌여진 이 노래의 덜 다듬어진 숨결이
 +꿈에서 꿈으로 영혼이 아직 투명하게 깃드는
 +이 아침안개 젖어드는 호수같은 그대의 얼굴에
 +입맞춤하며 사랑한다 말하리니
 +내 사랑은 시온의 꽃보다 더 아름다워라
 +꾸밈없는 그대의 잠든 눈에
 +하나님 지으신 영혼이 슬기롭게 배이리니
 +나 그대 사랑함을 노래하리라
 +
 +</poem>
 +
 +===== 바이올린 레슨 =====
 +
 +<poem>
 +팔을 쭈욱 뻗어서 스크롤을 감싸 쥐어보렴. 옳지. 거기까지가 네가 펼쳐내어 보일 수 있는 목소리의 한계야. 그것에 곧 익숙해지고 많이 좌절해야 할 거야. 왼손은 늘 그렇게 한계 속에서 정확한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겠지. 근데 너의 오른손에는 다른 무기가 하나 있어. 그건 기회야.
 +
 +오른손에 쥔 활은 때론 네 팔보다 길고, 때론 네 팔보다 짧지. 인생도 그래. 끝과 끝이 정해져 있어. 언제까지 살 수 있게 될지 인간은 알지 못해. 가야할 곳도 무척이나 한정적이야.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의 재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네 앞에 네 갈래의 길로 놓여 있어.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
 +은빛과 금빛 색색의 실로 끝을 묶어 잡아당겨놓은 그 길은, 마치 인생의 네 번 사계절과 같지. 봄날의 참새들이 우는 것처럼 재재거리는 여자들의 목소리로 노래하다가, 여름날의 빗방울 소리처럼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가을날에 색종이를 접어 날리는 높은 가을 하늘처럼 청량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겨울 할아버지의 목쉰 기침소리를 낼 수도 있단다.
 +
 +너의 날개는 나방처럼 아프게 가루로 부서지는 그런 것이어도 좋아. 그래 이제 한 번 퍼덕여봐. 네게는 크기 따위는 상관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어. 아직 하늘을 날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 부족할 뿐이야. 그렇게 수 만 시간의 수 천 번의 활질들이, 찌르고 갈라낸 그 허공 속에 활을 들고 있는 너의 파편들이 묻어 있어. 하늘을 도저히 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던 도전 속에, 겨우 허공의 그 끝 모를 어둠을 처음 더듬었던 순간 속에, 개똥벌레의 날개처럼 짧은 활을 들고 있었던 네가 있었어. 
 +
 +두려워? 갈 곳이 없을 때가 두려운 거야. 하늘에 갈 수 없는 곳은 없어. 다만 네가 날개를 펴고 뛰어보지 못했을 뿐이지. 현 끝에서 현 끝까지. 다시 한 번 그 기억들을 더듬어 음계를 긁어볼까?
 +
 +옳지. 그렇게 따스하게 한 번. 다시 한 번 바이올린의 그 가는 팔목을 쥐고, 그 어깨를 한 번 감싸 안아봐. 네가 껴안고 좌절했던 그렇게도 흐느꼈던 밤과 그 시간들이, 그 열정과 희열과 흥분들이 다시 네게로 한 조각씩 돌아오면, 그것들이 가라앉은 그 곳에 송진들이 가라앉은 그곳에 네가 다시 서 있어.
 +
 +은빛의 수많은 활들이 항해자의 깃발처럼, 항구에 기대어선 배들처럼, 음악의 항로에 나설 준비를 갖추고 수많은 악보의 기호들이 반짝거리는 오케스트라의 그 무리 속에서. 침묵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무대 위의 새벽, 이제 막 번데기의 고치를 벗어나 드넓은 우주의 별빛 아래 젖은 날개를 말리며, 풀잎에 앉은 네가 나비처럼 이제 막 솟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어. 
 +
 +자, 그 손을 다시 한 번 잡아볼까?
 +
 +</poem>
 +===== 달맞이꽃 =====
 +
 +;;#
 +- 가곡 “Mom” (작사 : 양여천, 작곡 : Jon Healer)
 +;;#
 +
 +<poem>
 +
 +은구슬이 흘러간 머리 위 하늘
 +별빛은 다 지워놓고
 +달빛 보며 서 있고 싶어
 +
 +별도 없이 늦은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환하게 웃음 지으며
 +마중 나온 달 같은 엄마
 +
 +별처럼 아름다운 날들을
 +달처럼 나만 보고 산 엄마
 +달이 지는 엄마 얼굴
 +얼마나 볼 수 있나
 +
 +엄마 얼굴 초승달처럼
 +항상 기억이 안 나
 +엄마 얼굴 초승달처럼
 +항상 기억이 안 나
 +
 +별처럼 아름다운 날들을
 +달처럼 나만 보고 산 엄마
 +달이 지는 엄마 얼굴
 +얼마나 볼 수 있나
 +
 +이젠 그만 아픔 없이
 +나와 함께 웃어요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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