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11월에 창간된 『소년』의 권두시로 발표)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서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 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짝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1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소.
칼이나 육혈포(六穴砲)나
그러나 무서움 없네.
철장(鐵杖)같은 형세라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짐을 지고
큰 길을 걸어가는 자(者)임일세.
2
우리는 아무 것도 지닌 것 없소
비수나 화약이나
그러나 두려움 없네.
면류관의 힘이라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광이(廣耳) 삼아
큰 길을 다사리는 자임일세.
3
우리는 아무 것도 든 물건 없소.
돌이나 몽둥이나
그러나 겁 아니나네.
세사(細砂) 같은 제물로도
우리는 어찌 못하네
우리는 옳은 것 칼에 잡고
큰 길을 지켜보는 자임일세.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 없는 살기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 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어
그의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 탐하여
주책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 오직 혼자 특별히
약간 영화 구안치도 아니고, 허다 마장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억만 목숨을 만들고 늘어 내어 길이 전할 바
씨 열매를 보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버들잎에 구는 구슬 알알이 짙은 봄빛,
찬 비라 할지라도 임의 사랑 담아 옴을
적시어 뼈에 스민다 마달 수가 있으랴.
볼 부은 저 개구리 그 무엇에 쫓겼관대
조르르 젖은 몸이 논귀에서 헐떡이나.
떼봄이 쳐들어 와요, 더위 함께 옵데다.
저 강상 작은 돌에 더북할쏜 푸른 풀을
다 살라 욱대길 제 그누구가 봄을 외리
줌만한 저 흙일망정 놓쳐 아니 주도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공작이나 부엉이나 참새나
새 생명 가진 것은 같은 줄
아느냐 네가
쇠 끝으로 부싯돌을 탁 치면
그새어미 불이 나서 날림을
아느냐 네가
미난 물이 조금조금 밀어도
나중에는 원물만큼 느는 줄
아느냐 네가
건장한 이들이 가는 먼 길을
다리 성치 못하여도 가는 줄
아느냐 네가
만물은 빛으로 이어서 하나.
중생은 마음으로 붙어서 하나.
마음 없는 중생 있던가?
빛 없는 만물 있던가?
흙에서도 물에서도 빛은 난다.
만일에 탈 때에는 온 몸이 모두 빛.
해와 나,
모든 별과 나
빛으로 얽히어 한 몸이 아니냐?
소와 나, 개와 나,
마음으로 붙어서 한 몸이로구나.
마음이 엉키어서 몸, 몸이 타며는 마음의 빛
항성들의 빛도 걸리는 데가 있고
적외선 엑스선도 막히는 데가 있건마는
원 없는 마음의 빛은 시방(十方)을 두루 비쳐라.
붓 한 자루
나와 일생을 같이 하련다.
무거운 은혜
인생에서 받은 갖가지 은혜,
어찌나 갚을지
무엇해서 갚을지 망연해도
쓰린 가슴을
부둠고 가는 나그네 무리
쉬어나 가게
내 하는 이야기를 듣고나 가게
붓 한자루여
우리는 이야기나 써볼까이나.
오오 봄 아침에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
죽은 그 애가 퍽으나도 섧게 듣던 비둘기
그 애가 가는 날 아침에도 꼭 저렇게 울더니,
그 애, 그 착한 딸이 죽은 지도 벌써 일년
“나도 죽어서 비둘기가 되고 싶어
산으로 돌아다니며 울고 싶어” 하더니.
꺾인 나뭇가지
병에 꽂혀서
꽃 피고 잎 피네
뿌리 끊인 줄을
잊음 아니나
맺힌 맘 못 풀어서라
맺힌 봉우리는
피고야 마네
꺾은 맘이길래
산 넘어 또 산 넘어 임을 꼭 뵈옵고
저넘은 산이 백이언만 넘을 산이 천(千)가 만(萬)가
두어라 억이요 조(兆)라도 넘어 볼까 하노라.
나는 노래를 부르네.
끝없는 슬픈 노래를 부르네.
천지가 모두 고요한
한밤중에 내 홀로 깨어 있어
목을 놓아 끝없는 노래를 부르네.
노래는 떠 흩어지네.
흐르는 바람결을 타고 흩어지네.
새는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고
길어다 붓고 또 길어다 붓는
여인 모양으로 나는 노래를 부르네.
나는 귀를 기울이네.
한 노래가 끝날 때마다 귀를 기울이네.
산에서나, 들에서나, 어느 바다에서나
행여나 화답이 오나 하고 귀를 기울이네.
그리고는 또 끝없는 내 노래를 부르네.
보리밭 가에
찌그러진 무덤
그는 저 찌그러진 집에
살던 이의 무덤인가.
할미꽃 한 송이
고개를 숙였고나.
아아 그가 살던 밭에
아아 그가 사랑하던 보리,
푸르고 누르고
끝없는 봄이 다녀 갔고나
이 봄에도
보리는 푸르고 할미꽃이 피니
그의 손자 손녀의 손에
나물 캐는 흙 묻은 식칼이 들렸고나.
그 변함없는 농촌의 봄이여
끝없는, 흐르는 인생이여.
하루 살다 죽는다는 하루살이도
그 하루 무사히 살기 어려워
무엇이 애타노 무엇을 구하노
쉴 새 없이 헤매다 거미줄에 걸려
불빛에 모여드는 여름 밤 나비들
광명이 그리워선가 따슨 거 찾아선가
기뻐선가 괴로워선가 싸고싸고 돌다가
불 속에 몸 던져 타 버리는 그들.
형제여 자매여
무너지는 돌탑 밑에 꿇어앉아
읊조리는 나의 노랫소리를
듣는가 듣는가.
형제여 자매여
깨어진 질향로에 떨리는 손이
피우는 자단향의 향내를 맡는가 맡는가.
형제여 자매여
임네가 그리워, 그 가슴 속이 그리워
성문 밖에 서서 울고 기다리는 나를
보는가 보는가.
그대들은
산으로 가는구나.
시끄러운 세상을 버리고 깊이 깊이
산으로 가는구나!
산중에 새벽 종 울 때에
부엉새 황혼에 슬피 울 때에
그대인들 날 그려 어찌 하리, 낸들 어찌 하리
가라! 산길이 저물리! 어서 가소.
산에서 편지 왔네.
“외롭다” 하였네.
벗아 외롭기야 산이나 들이나 다르랴.
솜옷 보내니 입으라! 날 본 듯이 입으소.
깎아 세운 듯한 삼방 고개로
누런 소들이 몰리어 오른다.
구부러진 두 뿔을 들먹이고
가는 꼬리를 두르면서 간다.
움머 움머 하고 연해 고개를
뒤로 돌릴 때에 발을 헛짚어
무릎을 꿇었다가 무거운 몸을
한 걸음 올리곤 또 돌려 움머.
갈모 쓰고 채찍 든 소장사야
산길이 험하여 운다고 마라.
떼어 두고 온 젖먹이 송아지
눈에 아른거려 우는 줄 알라.
삼방 고개 넘어 세포 검불령
길은 끝없이 서울에 닿았네.
사람은 이 길로 다시 올망정
새끼 둔 고산 땅, 소는 못 오네.
안변 고산의 넓은 저 벌은
대대로 네 갈던 옛 터로구나.
멍에에 벗겨진 등의 쓰림은
지고 갈 마지막 값이로구나.
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물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충성스러운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니, 물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물은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으며,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위에 내어던지나 무정한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 아아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 이 물 속에…… 그런데,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한 정열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달 따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위에 허어옇게 흐느끼는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 치는 뱃속에서 졸음오는 '리듬' 의 형상이 오락가락 - 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 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목청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인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인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 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 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 깃 위에 조을 때, 뜻 있는듯이 찌걱거리는 배전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컴컴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까지, 물살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저기 너의 애인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한 웃음 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잃은 청년의 가슴 속에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 도 있을 수 없거늘 오오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리운다.
뒷동산에 꽃 캐러
언니 따라 갔더니
솔가지에 걸리어
다홍치마 찢었습네.
누가 행여 볼까 하여
지름길로 왔더니 오늘따라 새 베는 임이
지름길에 나왔습네.
뽕밭 옆에 김 안 매고
새 베러 나왔습네.
벌써 어디서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별이 아직 하나밖에 아니 뵈는데,
달빛에 노니는 강물에 목욕하러
색시들이 강으로 간다.
바람이 간다, 아기의 졸리운 머리 속으로.
수수밭에 속삭이는 소리를
아기는 알아 듣고 웃는다.
아기는 곡조 모를 노래로 대답한다.
어머님이 아기 잠을 재우러 할 적에.
어머님의 사랑하는 아기는
이제 곧 잠들겠습니다.
잠들어서 이불에 가만히 누인 뒤에,
몰래 일어나 아기는 나가겠습니다.
나가서 저기 꿈 같은 흰 들길에서
그이를 만나 어머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머님은 아기가 잘도 잔다 하시고,
다듬질한 옷을 풀밭에 널러
아기의 웃는 얼굴에 입맞추고 나가시겠지요.
그럴 적에 아기는 앞 강을 날아 건너,
그이 계신 곳에 가 보겠습니다.
가서 그이에게 어머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민물이 땅의 벗은 가슴을 씻는 큰 강가에
달빛이 물과 흙에 단꿈을 부어 줄 적에
그 언덕에 수없는 흰 꽃이 피어납니다.
달빛에 피는 꽃이매 그 입술은 눈같이 흽니다.
사람 몰래 피는 향기 없는 흰 꽃……
무한한 물결 노니는 강가에 피는 꽃……
아침이 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꽃……
어린아이들같이 머리를 모으고 조는 꽃……
달빛만 그 입을 맞추어 주는 적적한 꽃……
달 밝고 물소리 끊임없는 무한한 강가에
수없이 흰 꽃이 밤을 숨어 피어납니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이즈러진 달이 실낱 같고
별에서도 봄이 흐를 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 어둔 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 위에 창 밖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 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사랑이 오라 하면
불로라도 물로라도 아니 가오리까?
사랑이 손짓하여 부르면 험한 것을 사양하오리까?
사랑이 오오 사랑이 나를 찾는다면
마중하여 먼 길을 아니 가오리까?
만나거든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사랑이여 나더러 오라 하소서.
발 벗은 채로 뛰어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더러 빨리 오라 하소서.
모든 것 버리고 달려 가오리다.
사랑이여 나를 따라오라 하소서
땅 끝까지 가오리다.
그 명령이 그런 힘을 나에게 줍니다.
복사꽃이 피면
가슴 아프다.
속생각 너무나
한없으므로
강남 제비 오는 날
새 옷 입고 꽃 꽂고
처녀 색시 앞뒤 서서
우리 누님 뒷산에 갔네.
가서 올 줄 알았더니
흙 덮고 금잔디 덮어
병풍 속에 그린 닭이
울더라도 못 온다네.
섬돌 위에 봉사꽃이
피더라도 못 온다네.
봄날에 달을 잡으러
푸른 그림자를 밟으며 갔더니
바람만 언덕에 풀을 스치고
달은 물을 건너 가고요……
봄날에 달을 잡으러
금물결 헤치고 저어 갔더니
돌 씻는 물소리만 적적하고
달은 들 넘어 재 넘어 기울고요 -
봄날에 달을 잡으러
'밤' 을 기어 하늘에 올랐더니
반쯤만 얼굴을 내다보면서
“꿈이 아니었더면 어떻게 왔으랴.”
전원으로 오게, 전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오나니
익은 열매와 붉은 잎사귀
가을 풍성은 지금이 한창일세.
아아 도회의 핏줄 선 눈을 버리고
수그러진 어깨와 가쁜 호흡과
아우성치는 고독의 거리를 버리고
푸른 봉우리 솟아오른 전원으로 오게 오게..
달이 서러운 밭도랑을 희게 비치고
얼어붙은 강물과 다리와 어선 위에
눈은 내려서 녹고 또 꽃필 적이
우리들이 깊이 또 고요히 묵상할 때일세.
전원으로 오게, 건강의 전원으로,
인공과 암흑과 시기와 잔혹의 도회
잠잘 줄 모르는 도회 달과 별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항을 하는 도회를 떠나.
노래는 들에 가득히 산에 울려 나오고
향기와 빛깔은 산에서 들로 퍼져 간다.
아름다운 봄! 양지에 보드랍게 풀린
흙덩이를 껴안고 입맞추고 싶은 봄.
그러나, 보라 도회는 피 빠는 박쥐가 깃들인 곳
흉한 강철의 신 앞에 사람 사람이
피와 살과 자녀까지 바쳐야 하는
도회는 문명의 막다른 골 무덤.
전원으로! 여기 끊임없는 샘물이 솟네.
여기 영원한 새로움이 흘러나네.
더운 태양과 강건한 대지의
자라나는 여름의 전원으로!
아아 그때 새 예언자의 외치는 소리가
봉우리와 골짜기를 크게 울리더니
반역자가 인류의 유업을 차지하리니
위대한 리듬의 전원으로 오게 오게.
지금에도 못 잊는 것은
안개 속에 돛 달고 가던 배
바람도 없는 아침 물결에
소리도 없이 가 버린 배
배도 가고 세월도 갔건마는
안개 속 같은 어릴 적 꿈은
옛날의 돛 달고 가던 배같이
안개 속에 가고 오지 않는 배같이
아침 황포강 가에서 기선이 웁디다 웁디다.
삼판은 보채고 기선이 웁디다 설운 소리로…
아침 황포강 가에서 물결이 웃습디다 웃습디다.
춤을 추면서 금비단 치마 입고 춤을 춥디다.
아침 황포강에서 안개가 거칩디다 거칩디다.
인사하면서 눈웃음 웃으며 인사하면서
아침 황포강 가에서 기선이 떠납디다 떠납디다.
눈이 부어서 물에 빠져 죽으려는 새악세럼…
아침 황포강에서 희극이 생깁디다 생깁디다.
세관의 자명종이 열 시를 칠 적에
아침 황포강에서 기선이 웁디다 웁디다.
설운 소리로 샛노란 소리로 기선이 웁디다.
푸른 나뭇잎에 내려 쌓이는
남국의 눈이 옵니다.
오늘 밤을 못 다 가서 사라질 것을…
설운 꿈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푸른 가지 위에 피는 흰 꽃을
설운 꿈 같은 남국의 눈입니다.
젊은 가슴에 당치도 않은
남국의 때아닌 흰 눈입니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 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비낀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한 생(生)은 시름에 돈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외마디 겹마리 실마리 풀려도
꿈 같은 세상은 가두새 얽힌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언제는 실마리 잠자던 도련님
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실이 시르렁
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
못 풀 걸 왜 감고 날다려 풀리나.
모래밭 스며드는 하얀 이 물은
넓은 바다 동해를 모두 휘돈 물.
저편은 원산 항구 이편은 장전(長節)
고기잡이 가장님 들고나는 길.
모래밭 사록사록 스며드는 물
몇 번이나 내 손을 씻고 스친고,
몇 번이나 이 물에 어리었을가?
들고나며 우리 님 검은 그 얼굴,
오다 가다 길에서
만난 이라고 그저 보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뒷산은 청청(靑靑)
풀 잎사귀 푸르고
앞바단 중중(重重)
흰 거품 밀려든다.
산새는 죄죄
제 흥을 노래하고
바다엔 흰 돛
옛 길을 찾노란다.
자다 깨다 꿈에서
만난 이라고
그만 잊고 그대로
갈 줄 아는가.
십리 포구 산 너먼
그대 사는 곳
송이송이 살구꽃
바람과 논다.
수로(水路) 천리 먼먼 길
왜 온 줄 아나.
예전 놀던 그대를
못 잊어 왔네.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맞춥니다.
하늘하늘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들이외다
포구 십리에 보슬보슬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의 한나절을
모래알만 울려 놓았소.
기다려선 안 오다가도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만나도 못코 떠나 버린
그 사람의 눈물이던가.
설운 날이면 보슬보슬
어영도(魚泳島)라 갈매기 떼도
지차귀가 축축히 젖어
너흘너흘 날아를 들고,
자취 없는 물길 삼백 리
배를 타면 어디를 가노
남포 사공 이내 낭군님
어느 곳을 지금 헤매노.
봄철의 방향(芳香)에 취한
웃으며 뛰노는 바다 위를
하얗게도 떠도는 갈매기.
이즈러지는 저녁 해가
고요히 남은 별을 거둘 때
어두워 가는 바다 위를
하얗게도 떠도는 갈매기.
소리도 없이 잠자코 넘어가는
저녁 바다 위에 혼자서 스러지는
어린 날의 황금의 꿈은
하얗게도 떠도는 갈매기와도 같이…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달빛을 타고 눈이 옵니다
소리도 없이 잠든 거리로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밤새도록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햇볕에 녹을 몸이 섧다고
달빛을 타고 밤에 옵니다.
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 밤새도록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외로운 심사 풀 길 없다고
달빛을 찾아 잠든 거리로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밤새도록
무심타 바람에 꽃이 폈다가
헛되이 그 바람에 지고 맙니다.
서럽지 않을까요.
서관 아가씨.
오늘도 능라도라 버들개지는
물 위를 돌다 돌다 흘러갑니다.
애닮지 않을까요.
서관 아가씨.
떨리기 쉬운 것은 꽃뿐이리까
새파란 이 청춘도 잠깐이외다.
가엽지 않을까요.
서관 아가씨.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못내 반가와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나부낍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울며 돌아섭니다.
삼수갑산 가고지고
삼수갑산 어디메냐
아하 산 첩첩에 흰구름만 쌓이고 쌓였네.
삼수갑산 보고지고
삼수갑산 아득코나
아하 촉도난(蜀道難)이 이보다야 더할소다.
삼수갑산 어디메냐
삼수갑산 내 못 가네
아하 새더라면 날아날아 가련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