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exmenu_n>2}} ====== 신춘문예 당선 시 목록 ====== {{https://nme.kr/hanpoem/|텍스트 시 낭독}} =====신춘문예 제도의 의미와 한계===== ++++신춘문예 제도의 의미와 한계| 동아일보는 1925년에 신춘문예 제도를 처음 시작했다. 1월말까지 원고를 모집하여 3월초에 당선작을 발표했는데 그래서 명칭이 '신춘문예'가 되었다. 장르는 소설, 시, 동요, 동화극, 가정소설의 5개 분야였다. 1회 때에 상금은 각 분야 1등 1인 50원, 2등 2인 25원, 3등 5인 10원으로 총 750원이었다. 그러나 이 해에는 부문별로 1등과 2등의 당선작을 거의 뽑지 않았다. 시 분야에 3등만 2편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창술의 시 '봄'이었다. 그 다음해는 시행되지 않았고, 27년에 4명의 시인이 등단했다. 김해강, 정태연, 박아지, 김시용이 그들이다. 조선일보는 이보다 좀 늦은 28년에 이 제도를 시행했다. 첫 해에 '시가'분야를 모집하여 7명의 입선작과 8명의 가작을 뽑았다. 20년대에 시행된 이 제도는 30년대에 유능한 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황순원('우리의 새날은 피바다에 떠서' - 동아, 33년도), 조명암('동방의 태양을 쏘라" - 동아, 34년도), 서정주 ('벽' - 동아, 36년도), 김광균 ('설야' - 조선, 38년도), 함형수 ('마음' - 동아, 39) 등이다. 신춘문예는 일제 말기 동아,조선의 폐간으로 시행이 중단되었다가 55년부터 다시 이어졌다. 두 신문사와 함께 50년대에 한국, 서울, 경향 신문사가 가담했다. 이어 60년대에 중앙과 대한이 합세했고, 뒤에 세계와 문화 그리고 지방신문의 확대로 이 제도는 20세기 한국 문인 등단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역사가 길다는 것, 배출한 문인이 많다는 것, 가장 화려한 등단 코스라는 점, 그래서 문학 지망생의 대부분이 당선을 노린다는 점 등, 이 제도가 지니는 현재적 의미는 크다. 그런 의미를 지니게 된 배경에는 분명 이 제도의 장점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신문이 지니는 대량전달 효과에서 비롯된다. 현대는 대중매체의 시대요, 특히 정초 휴일이라는 시기의 매체 효과는 아주 크다. 전국에 배달되는 신년 특집호에 실리는 작품, 더구나 치열한 공개 경쟁에서 당선된 작품, 이는 그 자체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둘째**는 공모 제도로 경쟁과 심사의 공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추천제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추천제는 그 위원이 사전에 알려져, 그의 문학적 경향을 따르는 아류나 종속관계가 형성되기 쉽고, 그것이 문단 파벌의 근원이 된다는 결점이 있다. 이에 비해 신춘문예는 선자를 알 수 없으니 인맥관계에 따르는 부작용이 없다. 따라서 참신하고 우수한 작품이 뽑힐 수 있으며, 당선자는 오직 작품 자체로 공인을 받았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다. 화려함과 공정함이라는 장점을 지닌 이 제도는 과연 완벽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신문사가 주도하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결점 또한 크다. 신문사에는 여러 부서가 있다. 문화부는 그 중의 하나요, 문학은 문화부의 일부일 뿐이다. 그 비중 또한 사내 사정이나 시대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이다. 한겨레나 국민일보처럼 신문사 중에는 이를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전문 문예지나 출판사도 많은데, 굳이 비전문 기관이 작가 배출의 공식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전문 기관의 운영에 따르는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결점이 되는 것은. **첫째**로 심사 기관이 촉박하다는 것. 한정된 기간에 이제는 많을 경우에 1~2만에 이르는 응모작들을 2~3명의 위촉된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을 가려낸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심과 본심으로 나누어져서 골라내고 선별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일부분만 읽고 시 50여편, 소설 30여편 정도만 본심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그러다보니 신춘문예 당선작에는 일련의 유행처럼 비슷비슷한 경향의 작품들이 많아지게 되었고. 신춘문예 당선만을 노리고 맞춰서 쓴 시들도 생산되게 되었다. 하나의 신춘문예 양식의 시가 생성되게 된 것이었다. 짧게 쓰면 예선에서 탈락하기 쉽고, 제출해야 하는 편수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시의 길이가 길어지게 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가장 길었던 작품은 신동엽의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로, 서화, 본화, 후화 3부로 짜여져 있고, 본화는 다시 6화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시행이 무려 277행으로 분량으로 쳐도 단편소설에 해당되는 작품이었다. **셋째,**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인들의 수명이 짧다는 점도 문제였다. 당선자 중에는 젊고 혈기 왕성한 학생 시절에 당선이 되는 작가의 비중이 꽤 많은 편인데,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로 창작활동의 자극제가 고갈되어 딜레마에 빠진 채 절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반면에 추천제를 통해서 등단하게 되는 경우, 기성 시인에게서 자질을 인정받는 만큼 문학적인 수업도 착실하게 쌓아 나가고, 등단 이후에도 활발한 교류를 계속하면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신춘문예는 분명, 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하나의 등용문이요, 문학 일반에는 신선한 원천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제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문학이 가지고 있는 위치가 근원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신춘문예라고 하는 제도가 '문학인만의 잔치'에 머물게 되고. 작가라는 명함을 얻기 위한 시험 관문 수준에 머물게 된다면. 그것은 한국 문학 전체가 떠안고 가야할 어려운 과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신춘문예당선 우수시 100선, 문예마당 민병기 엮음** 발췌 및 요약 정리함. ++++ =====당선 시인과 작품 리스트===== **(1955~1997)**년도 작품 업데이트 ====1955년도==== ◈동아일보 ++++분수<황 명>| 그것은 오늘을 넘어서 눈물과 한숨을 거부하는 의욕의 효시. 싱싱한 심장으로 하여 목숨의 기꺼운 보람을 겨누고 뒤미치는 핏발 아니면 불결이었다. 도시 기막힌 이야기나 미칠 듯 그리운 이름을랑 저마다의 가슴 속에 -먼 훗날의 아름다운 기억을 위하여- 한개 비석을 아로사겨 두자. 지금 여기 살륙의 휴식시간 같은 더 없이 불안한 지역에서도 비둘기는 방향을 찾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지표가 시색한 이렇듯 황량한 뜰에서도 무궁화는 다시금 피어야한다. 그것은 눈물이나 한숨만으로 이루어질 보람은 아니었기에... 내일에로 향을 하여 뜨거운 입김과 새로운 믿음을 뿜는 우리들의 무한한 가슴이었다. ++++ ◈조선일보 ++++선사시대<전영경>| 느티나무 위에 금속분처럼 쏟아지는 하늘이 있었 고 깨어진 석기와 더불어, 그 어느 옛날 옛날이 있었 고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햇볕 속에서 무던하게도 학살을 당한 것은 당신과 같은 흡사 당신과도 같은 포승 그대로의 주검이 있었 고 느티나무와 더불어, 그 어느 옛날이 있었 고 지도자가 있었 고 깨어진 석기, 석기속에 말없이 흐ㅌ어진 이야기와 그 어느 걸문과 그 누구의 남루한 직인과 때 묻은 족보가 있었 고 꿈이 있었다 몇 포기의 화초를 가꾸다가 느티나무와 더불어 그 어느 예ㅅ날에 서서 세상을 버린 것은 금속분처럼 파아랗게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황소가 음메........., 하고 울었기 때문이다. ++++ ◈한국일보 ++++우리는 사리라<김 윤>| -조국에의 헌사 부서진 벽돌 조각 이즈러진 가로수 사이 포탄 자욱 뚜렷한 회색 가로를 헤쳐 안개처럼 덮혀오는 어둠을 밀고 여기 평화의 아침으로 가는 병사들의 대열이 있다. 끄스른 얼골 시달린 육체 허나, 가슴 마다 서로 빛나는 빛을 지니며 닥아올 내일의 희망을 믿는 자유의 인민, 오 ! 사랑하는 형제의 대열이 가고 있다. 비길데 없이 화려한 노래 떠오르는 태양의 지평을 조망하며 쓰러지고 거꾸러지고 백번 다시 일어나 더듬어온 고난의 역정. 전쟁에 받쳐진 우리들의 피와 넋....... 민주정신은 하늘과 태양, 바다와 육지, 그 모든 세계의 변두리에서 다사로운 생명을 뿌리는 믿어운 원정이리라. 침략과 기만 앞에 파도처럼 또는 의무처럼 막아서는 형제들의 얼골을 보라. 우리는 사리라. 오 ! 검은 가로를 뚫고 평화의 아침으로 내닫는 겨레의 대열이 여기 있다. ++++ ====1956년==== ◈동아일보 ++++정의와 미소<이영숙>|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하늘이 있고. 자유가 있고. 조국이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그 곳에 우리들의 삼월이 있고. 님이 있고. 봉우리, 봉우리 마다 피어 오르는 꽃 봉우리 마다 꽃이 있고. 기우러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종 소리를 따라 정의와 미소가 있다.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숙아 창을 열어라. 그 곳에 파아란 바다를 생각하는 사나이가 있고.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고. ………………………. 대추 나무와 뽀오얀 집과 교회당의 둥그런 집웅을 따라 비둘기가 있고. 모두 다 모두가 다아, 멍이 든 가슴들 끼리 울린 만세를 따라 멍멍 개가 짖고. 창을 열어라, 그렇다. 창을 열어라 기울어진 바다 빛 짙은 싱싱한 하늘을 따라 구구구 구구구......, 비둘기 날르는 그 곳에 우리, 우리들의 팔월이 있고. 어진 백성이 있고. 정의와 미소가 있다. ++++ ◈서울신문 ++++해동기<김*국>| 1 앙상한 나무가지에나 한 포기 풀에나 깨어진 기왓장에도 파 아란 입김은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바람 속에도 이미 파아란 입김은 있었다 2 균열된 땅틈으로 나지막하게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3 간해 나의 누추한 방안에서 선인장이 얼어서 시들어 버렸다 머리위에 커다란 혹처럼 달린 것이 축 늘어지고 그 몸둥아리 되는 놈이 노인의 피부처럼 쭈그러지고 이것을 아침이 와서 머 문 나의 정원으로 옮기어봤다. 서글픈 위치를 정하고 내가 바 라다 봤다 4 땅에서 부끄럼 같은 것이 솟아 나왔다. 폐허가 된 시가지나 평토가 된 무덤이나 나둘할 것 없이 부끄럼 같은 것은 송이 송 이 솟아 나왔다. 내 남루한 옷틈으로도 파아랗게 솟아 나왔다 5 아 여게 십자가처럼 이름없는 비목을 짊어지고 수집은 사나 이가 있었다 ++++ ++++별<김남정>| 마주보며 제각기 깜박거리는 것. 그득히 눈물 괸 채 덤덤 말이 없는 것 화살 그으며 어디론가 다라나는 것 또한 무엔가 바스락거리며 앉아 있기도 한 그 숱한 가운데서 어찌 네 모습 찾겠나. 달무리 같은 커다란 원을 거기 그릴 수는 없는가. 태양만큼 이글이글 타올라 보일 수는 없는가. 내가 처음 보았을 때의 빛나던 장미빛 네 얼굴 그보다 환하 게 웃을 수는 없는가. 너는 별이여 어디 나서 발돋음하고 지꿎이 내 목마른 얼굴 지켜보며 드러난 눈짓하나 없이 그러면서도 언제고 한번은 끓는 불덩이를 던져 줄 너는 별이여 ++++ ++++꽃 주전자와 꿈<이제하>| 무엇이 나를 이리 괴롭히노 새벽마다 찾아와서 나를 울리고 마는 지난날의 사소한 많은 상채기와 앞으로 남아 있을 너무 너른 하늘 너무 많은 별 몇 억겁을 다시 타 들어가야 하는 해 얼마나 아파해야 하노 이것은 언제 끝나노, 새벽이 올 때마다 아파오는 꿈을 몸 뒤책여 아파하고 나는 그만 꽃주전자를 만들고 싶다 아픔 뒤에 오는 서럽고 글썽이고 기뻐지는 것 그만 핏빛으로 곱게 얼룽진 꽃주전자를 만들고 싶다. 가슴 저 아래서 천년을 고여 오는 맑디 맑은 샘물의 그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부피 끝간 데 없이 짙푸른 멋을 담아보고 싶다 내가 죽는 날 하루 새벽만 조용히 누운채, 천지간에 차고 넘치는 그 고요 속에서 이 이쁘디 이쁜 것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다 ++++ ◈조선일보 ++++휴전선<추봉령 *박봉자>|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 한 항시 어두움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파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 려 같은 정신도 신라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 늘은 끝 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 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자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 기 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 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 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 한 항시 어두움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파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 ◈한국일보 ++++수확의노래<김종주>| 들마다 동그마한 마당 위에 그 마당보다 더 큰 그리움을 돌려 누른 볏단 흐뭇이 도급기를 메기면 낱낱이 솟는 오아시스의 분수! 서로의 가을들을 두고 임자들도 돌려가며 일꾼들이 되고 땀으로도 후련들한 또하루 여기 황량한 기류의 지역 위에 아슴한 순의 새 동화가 울린다. 땀으로만 의지하는 세월 그 세월 겨를 없이 훑으며 잠기우면 녹음된 피땀은 나비처럼 열려 빚도 가난도 지운 듯한 손짓이 있고 눈에 스미고 눈이 또 감기도록 짙어 모두를 잊어 몰래 투명한것 몸도 맘도 도급기를 돌아 물레도는 새 해바퀴의 모습...... 여기 정지된 어두운 지역위에 새하늘이 속살 돋는 순간이 깃든다. 지구의 비탈을 타는 오밤 길에 품앗이는 진한 모습을 닮아 하나의 꽃등을 불밝히고 풀뿌리로 봄을 채울 가장도 식구도 진종일 금빛 음향의 굽이굽이 저마다 우렁찬 해바퀴를 돌려... 여기 기울어진 무거운 지역에서도 우리 다시 살아나얄 자세를 모둔다. ++++ ====1957년==== ◈동아일보 ++++역사괘도<박영오>| 순이가 서 있는 오솔길 앞에도 큰 길이 있어, 눈을 감고 보아도 뻗쳐진 길이 있어 가락 가락 선율이 되고 끈기스런 풍속이랑 기름진 고구려도 된다. 명주옷 쪽머리 가시내가 부지런 했던 그 하늘밑엔 천리마가 뛰고. 박꽃이 새득 새득한 초가집에 청자윤이 담뿍 실려 강과 벌, 메숲과 순이 옷자락에 밴다. 출렁이는 동해바다를 끼고 숨가뿐 반조 봄, 또 봄, 가을이 와도 토착민의 여윈 얼굴만 남고 움집 열십자 벽창에 달구경을 하던 순이네 엄마가 쪽배처럼 둥둥 떠나려와 사기조각과 뿌우연 횟가루가 흩어진 메마른 땅에 묻히었다. 반 남아 허전한 땅 순이가 오늘따라 상달 고사가 풍기던 이름모를 고구려로 간다. ++++ ++++벽<윤삼하>| 달과 별과 그리고 하늘이 가버린 차고 거칠은 언덕에는 헐벗은 나무가지가 바람에 미친듯이 휘감기고 있었다. 저마다의 상거한 간격 속에서 저 많은 빛깔과 모습들이 한낱 추한 웃음으로 화하였던, 너와 내가 당신과 저와 인사도 없이 헤어져간 어느날의 외로운 위치. 뿌여ㅎ게 연진에 탄 매몰진 황토밭에 몸부림쳐 쓰러진 기빨들. 저만치 피를 흘리는 하얀 십자가의 의미, 보다 더 붉은 죄와 같은 것. 체온을 잃은 공허한 자세는 차라리 차거운 돌이된다. 언제부터인가 텅빈 어둠속에 내가 던져졌다. 나를 향하여 치밀해 오는 어둠의 밀도 속에 머뭇거리던 나는 잠시 그 무슨 윤곽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문득 나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여윈 손가락 끝에와 치닿는 밋밋한 감촉-거기 분명 까맣게 서서 나를 응시하는 그것은 벽. 그 크고 막막한 하나의 벽이 있었다. 어느덧 벽과의 거리는 멀리 황망한 돌이 된다. 풀 한 포기, 꽃송이 하나 피어나지 못한 들판, 매마른 바위 그늘에 버리운 가련한 *아-아이는 울음도 웃음도 아닌 다만 괴로운 육성을 지녔다. 이미 하늘에는 창이 없다. 부르는 소리 하나 없이 들이 이윽고 고요해지면서 무섭게 고요한 들판 위에 야릇한 황혼이 붉은 노을을 피우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모든 것은 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다. 울음을 그친 들의 마지막 남은 오직 하나의 커다란 비약을 위 하여- 독수리의 날개처럼 내 온 피가 왁자한 난규성을 이루면 서......종이 운다. 견디다 견디다 굳어버린 쇠ㅅ덩어리, 파열하 는 원시의 규환. 저 어느 하늘 아래 수없이 죽어간 그날의 육 신들을 그토록 소리쳐 부르는 것, 아아 너를 위하여 마지막 나 를 위하여...... 수많은 가슴과 가슴 사이 가로막힌 그 두터운 벽이 헐리듯 가슴 속에 차고 넘쳐서 미칠듯 소리치는 종, 종소 리...... ++++ ++++강변이야기<권일송> | 외치는 것도 아닌-, 그러나, 마자, 너와 나의 뼈 마디에 흐르는, 어느날 부터서인가, 선사로부터 열리는 , 긴, 긴 -어느날, 밤의 이야기. 바람도 멎어가는 사슴이 우는 모퉁이, 골짜기 침실의 밀어를 건드리고, 들뜬 마음, 외딴 길에 버선 젖은, 청상을 달래우기엔, 아직도 먼-날, 영원한, 수고. 눈을 감고, 거먹―한 *흔을 밟고 서면, (마음은 부푸는 전쟁과 평화)-예-나, 제-나, 근원을 몰으는 채, 물 흐르는 기슭에서, 사내처럼 죽어간, 고것들을 쌓고 도는, 꽃 밭으로 널려있는 그 무수한 이야기들. 흐르는 너의 곁, 바구니를 멀던져 놓고, 얼마를 엎디어, 가시내는 울어 있어도, 갈대밭은 저이끼리 정다운, 사상하는 의미들, 그것인가. 이제는 어느 노여움도 가신 따, 신라와 아사달이, 숨 쉬는 골에, 돐이 만에 돌아온 누나여...... 생활은 그렇게도 먼-디서, 더디 오는 걸음. 늬, 눈을 감고, 피곤한 온갖 얼굴들아, -오월의 윤무를 잊은채, 고달픈, 하루의 아버지. 약풀이 돋아나는, 곳이야 어디이건 물어, 시방 상관없는, 이, 흐르는 지리를, 딛고서면, 두 눈 뜨고 맞손 잡아, 다시는 에라하, 나뉘이지 않을, 기약의 강변. ++++ ◈조선일보 ++++응시자<윤삼하>| 오늘도 여전 해는 뜨고 저기 하야니 구름피어 오르는 산 너머 푸른 하늘 위로 무수히 포화와 유탄이 되어 흐르던 그 날의 처절한 벌판에서 스스로의 가슴을 찢기우고 다만 아련한 울음으로 굳어 있던 한개 피 묻은 돌이었다. 천둥같은 우람한 폭음 속에 터져 흐ㅌ어진 무수한 꽃잎들...그 자욱마다 피맺힌 이슬을 먹고 피어난 하이얀 꽃, 보다 붉은 피의 덩이- 돌 위에 박힌 탄흔처럼 영 사라지지 않을 그것은 어쩌면 전쟁이 울고간 흔적으로 하여 더욱 까마ㅎ게 빛나는 눈망울과 까마ㅎ게 타는 입, 그의 입술은 차라리 쓰러져가는 「라자루스」의 그 마지막 침묵하는 표정. 아직도 그의 상한 육신에선 피가 흐르고 그의 팔로부터 많은 팔들이 떨어져 간다. 그의 다리로 더불어 더욱 많은 다리들이 절룸 거리며 간다. 빗발이 쏘ㄷ아지기 전 가자던 제이의 행렬들이 뿌여ㅎ게 거리모루ㅇ일 돌아 나간지도 이미 오래다. 수없이 가로 놓인 진창을 밟으며 오직 피듣는 팔과 쑤시는 다리를 이끌면서 걸어온 그 하나의 버둥거림이 여기 이렇게 서서 다시 한번 바라는 저 짙푸른 하늘과 피빛 태양과..... ++++ ◈한국일보 ++++불면의 흉장<권일송>| 그날로부터 묻어두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제 스스로의 분노에, 이빨을 물어, 불면의 밤을 지니는 것. 점성의 왕자가 잠 못 이루는 그러한 요적이, 이것인가- 산같은 해일이 밀려간 후일에 씨앗 한톨, 키우지 못한, 음락의 주변 어제는, 저쪽 담이 헐리우고, 오늘은, 이켠 돌이 밀리워. 쥐들도 다니는 외딴 역에서, 황가 박가들은, 어인염치도 없는 싸움뿐. 바람은 오히려, 제 육신에 오는 귀열을, 허허 벌판에서 울어보내고, 이윽고, 시인의 가슴에 안겨 오는, 찢기운 조국 꽃이 이운 한 낫, 벌레울음도 그친, 밋밋한 돌담 틈에서, 어느 때부터선가, 물이랑은 이는 것. 소리도 없이, 아픔을 느끼는 억울함에 산다. 울음 뿐인가-그것 뿐인가. 형들은 아우를 위해, 더욱 착한 나무로 서고, 누이는 오빠를 아껴, 더욱 깊은 지혜에 누우라. 우리와 더, 크게 이웃하는 욕정이, 찟기운 표상아래. 머-ㄹ리 기를 묻는다. 가슴팍이 채이워, 피를 토한 채로다. 의미도 없는 색상들이 퍼덕여오는, 그것은 너, 우직한손. 울리리라. 바다와 같은 바다는, 기어 열리리라. 부르며, 불리우는 형제와 같은 소리. 미쳐 돌아가는 용녀의 춤을 멎게 하는, 천동의 한바탕은 울려야 했을 게다. 그날로부터 묻어두고 생각하는 것은 ...불면은 오히려, 출발에 가까운 시간. ++++ ====1958년==== ++++산녹<강인섭>| 꽃 그늘을 돌아 뿔 없는 사슴은 산 바람을 마신다. 풀 피리 지나 착한 피가 울고 구름이 놓아가는 푸른 징검다리. 솔바람 저어 가는 귀바귀에 산 넘어 산 넘어서 출렁이는 바다가 오고 먼 신라-순살자의 피빛 속에 외로히 치뜬 눈까풀은 차라리 별과 같은 이야기. 그 인고 따스한 눈짓. 밤마다 꾸꾸기 울음 속에 넘치는 숨결이 엉켜 검은 밤을 보태어 정든 판장을 넘었다. 꽃보라 치는 골마다 포성이, 울어 진하게 진하게 붉혔다 무안해버린 아, 목이 긴 사슴이여. 두고 온 새끼들은 기름진 초원에서 연한 뿔을 짤리우고 하늘 닿게 받돋음 하여 산등에 울고 섰다. 아, 손금 같은 사랑은 개울처럼 흘러가고 증언하는 바위 틈에 차고 서러운 바람이 분다. 누구의 피 속에 피곤한 몸부림이 있어 뿔 없는 사슴은 산 속에 웅크려 두 눈을 호수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냐. 이제 긴 목에는 강물이 흐르고 가슴에 번져가는 처량한 파도 소리. 스스로의 동굴에 메아리가 울어 뻐근히 지어오는 물이랑이어. ++++ ◈조선일보 ++++불모지<안 섭>| 뜨거웠던 동맥마저 끊긴 강줄기 후미진 곳 쏘낙비처럼 무성한 탄무 속을 뚫고 오히려 살아난 사람은 천재였다. 기,기......사정없이 찢긴 기의 상채기마다 무너진 가슴팍 길길이 막히고 지옥의 어느 계절에서처럼 모-다 벽을 향해 눈을 감았다. 거기 세기의 울음 피 울음섞인 속에 인정도 간데 없는 황토. 우리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지 못한 다시 뼈만 앙상히 남은 사해...... 아아, 산도 바다도 인젠 그 호흡을 멈추고 거리마다「얼」없는 그림자와 황폐한 지역에서 모두 모두가 다 취해 자빠진 여기는 아직도 불모지! 꽃피는 신화 피비린 지도을 펴고 오늘 허망한 밤 벽 검은 연대여..... ++++ ◈한국일보 ++++제2의 휴식(포플러)<윤부현>| 화병이거나 항아리를 들고 있었다. 하늘 높이 울리는 바다의 파도 소리 같은 것을 온 몸에 일고 있었다. 그것은 무한으로 휘어 오른 계단을 밟고 바다 먼 노을 풍금소리 펴쳐 울리는 크낙한 하늘의 과일 익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눈을 떴다. 땅을 디디고 발을 돋아 또 하나의 쓸어지는 육체를 포연 속에 일으키고 있는 살 덩어리 그것은 적진앞에서 전방을 내다 보는 해바라기의 눈망울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오직 한번은 지동쳐 올 날이 사뭇 있기를 바라고 섣는 발돋음이 아니겠는가, 가슴 쭉지에서 파닥이던 날개들이 일제히 절정으로 날아 뛰고 있었다. ++++ ++++그림자<남대천>| 헛헛한 나의 변두리를 둘러 싸고 시방 고요한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고운 꽃밭 꽃밭에 눈물처럼 스며 고이는 달빛을 나는 강물이라고 불러본다. 점점 무서운것만 닮아가는 나는 차라리 짐승이여... 핏줄을 물어뜯으면 물면에 구름처럼 피어 흐르는 장미꽃더미 고운 장미 꽃이 풍겨주는 향기를 미칠 듯 호흡하는 나는 짐승. 한때 황홀한 불바다를 이루었던 나날에 어즈러진 골짝을 애끊히 울려주고 몸부림 치던 푸른 목숨들과 ...모두 이제 허전한 몸가짐으로 강물에 씻기우는 고운 흐느낌. 자꾸 내 귓전에 와서 찰싹거리는 것은 어느 화려한 지역에 삼월이 전해주는 꽃이야기도 아닌 저만큼 흘러가는 푸른 목숨들에 아우성이며 살점을 물어뜯어 토하는 피의 거품 소리여... 어두운 나의 변두리를 둘러 싸고 흐르는 강물-달빛-을 나는 꽃밭이라 우기고싶은 짐승인지도 모른다. ++++ ====1959년==== ◈경향신문 ++++고요하다 <이 열>| 포탄에 벗겨진 나무에 병사가 칼끝으로 낙서를 하였다. 〈고요하다〉 태초부터 쌓이고 쌓인 산울림속에 새가 숨차서 돌아온다. 산벼랑을 가로질러 가파르게 찢겨나간 여기, 해발 천오백미 고지 빗방울을 삼키며, 안개에 묻히누나. 감상, 흥분, 동의 언어가 날개를 접는 비탈길 초연이 스쳐간 골마다 값산 보람이 풀잎을 흔든다. 고향의 생명은 한없이 멀다. 저 녹슬은 철모는 향수를 문지른 피비린 자국인가 그리고, 줄기 줄기 뻗어간 산맥, 크고 작은 봉우리. 봉우리는 봉우리끼리, 사람은 사람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마주 선 언덕과 기슭과 들끝과 강가에서 외로운 조국은 방황하였다. 볕을 등진 수림 어둠에 차고 선혈이 임리하는 나무가지 흩어진 파편. 바우가 고함치며 죽어간 자리에 돌멩이는 다시 침묵에 잠기고 돌에 스며든 인간의 자취 그립다. 여기는 중동부 옛적 빗바람과 번갯불에 패인 계곡 잎이 다시 피지 않는 고목의 연륜이 멍이진 피부에 서툴은 한글의 상채기 떠나가선, 영 오지 않는 병사의 비명 고지와 고지로 에워싸인 해발 천오백미 고지에 창세기의 노을이 비낀 삽화가 눈부시게 퍼져온다. ++++ ◈동아일보 ++++흑의 연상<권성림>| 계절을 잃은 나비의 시체가 포도위에 무늬진 밤 어는 초점을 향하여 던져진 화살엔 피묻은 사연이 기록 되었어야 했다. 심야를 달려간 구급차의 경적과 한오리 목숨을 전율하는 육괴 오늘 아무도 그런 것들을 증언할 의연한 의기는 없는 것인가 -흔들리는 밤 서로의 심장을 헤치면 패연히 쏟아질 선지피 그러나 이미 굳어진 것과 거스러진것 뿐인 폐허에서 아 이제 인간의 존엄이란 몇 그람의 중량에 해당되어야 하는가 그리고-지금은 일체의 목격을 부인해야 하는 싸늘한 배역의 시간 매운 바람이 먼지를 휘몰아 광란하면 두발을 흩고 울부짖는 수목들 정녕 어제는 남의 운명을 웃어야했을 너! 수목이여 꿈이여 오늘은 또 누가 너를 울어줄 것이라 믿어 보는가 방금 서로의 상념은 강파른 절벽을 향하여 끝없이 곤두저 가는 것이다. ++++ ++++탑<박경려>| 탑이 달과 마주서 있는 것은 어설픈 제그림자를 등 뒤에 감추기 위해서다. 탑이 침묵하는 것은 이끼낀 세월의 바램이 안으로 굳었기 때문이다. 탑이 앞산을 보고 그래도 손짓하는 망연한 자세는 간밤의 바람에 낙엽이 이야기를 두고 갔기 때문이다. 탑이 그늘진 얼굴을 포개어 태양을 등진 것은 행여 밝은 빛에 마 음이 드러날까 싶어서다. 탑은 어두운 밤이면 소롯인 옷을 벗고 돌아서 한낮의 피로를 씹는 다. 탑은 처마끝 풍경소리에 놀라 소름이 일고 외롭다. 탑의 덩그맣게 겁 먹은 눈에 별이 숨는다. 드러난 팔굽처럼 어쩌지 못하는 게 그림자를 도는 탑은 해와 달과 별이 있어도 외로워, 오늘도 한 겹 푸른 이끼를 더 입고 먼 하늘을 머리에 인다. ++++ ◈서울신문 ++++해바라기<홍윤기>| 한동안 놀빛 성난 바다가 흠썩 떠밀려 와 꽃 한송이, 풀 한포기, 나무잎 하나없이 말끔히 씻겨내린 황토 언덕으로 이윽고 검은 사멸과도 같은 고요가 내리면 나는 원죄를 짓씹는 꽃, 아니 태초, 황량한 원시림의 수많은 짐승들이 암흑을 꿰뚫어 울부짖던 그 핏물든 포효..... 더욱 진한 오늘의 의미 그것은 당신을 향하여 아니 나를 향한 이 기나긴 어둠 속에 파묻힌 채 어쩌면 마지막 절정에로 파열하는 몸부림의 무거운 종소리..... 또 저렇게 숨막히는 캄캄한 벽 허물어진 가슴을 다시 한번 짓밟고 선 공허의 모든 흔들림이여. 해바라기..... 그것은 눈을 부릅뜬 복병의 무너진 잔등위에 올라탔던 내가 무명용사와도 같은 서러운 명예의 핏빛 태양의 아군인 까닭이냐. 사뭇 엄숙한 식민지의 하늘 아래 들끓어 간 순살자들이여. 또 그날은 낯설은 철조망 언저리에서 너희는 모두 다 황금빛 찬란한 목청의 해바라기는 아니었는가. 저마다 괴오운 가슴을 쥐어뜯으며 더 짙붉은 규환의 낱낱 버림받은 폐상으로 우리들은 포화가 딩굴어간 울안에 쓰러진 채 상채기 진 얼굴을 파묻고- 더러는 짤리운 모가지를 흔들며 죄없이 웃어야만 했거니. 지금 마악 창 밖으론 하늘을 찢어 땅을 가르던 천둥이 끊이더니 황폐의 도시 저편엔 소낙비가 퍼붓고......누굴 향해 소리 소리치는 저 겹겹 벗어날 수 없는 밤속엔 함성의 강 피눈물진 열망의 목소리가 끓는가. 새로운 아침을 말하라 분향의 해바라기. 목메인 절규여. ++++ ◈조선일보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신동엽>| <서 화>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물맛이 샘솟더군요, 잊지 못하겠어요. 몸양은 단 먹뱀처럼 애절하구 참 즐거웠어요, 여름날이었죠. 꽃이 핀 고원은 난 지나고 있었어요.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꽃으로 날 불렀죠. 바다 언덕으로 나가고 싶어요. 밤하늘은 참 좋네요. 지금 지구는 여행을 한다나요? 관좌성운 좀 보세요. 얼마나 먼 세상일까요.... 기중 넓은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럼 그의 바깥엔 다시 또 딴마당이 없는 것일까요? 자, 손을 주세요 밤이 깊었어요. 먼저 쉬세요. 못잊으려나 봐요-우리가 포옹턴 하늘에 솟은 바위, 그 밑에 깔린 구름 불 달은 바위 위에서 웃으며 잠들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던 당신의 붉은 몸. 언제든 필요되거든 조용히 시작되는 서무곡으로 그 백학의 대원 휘파람 하세요. 돌아가 묻히겠어요, 음달진 당신의 꽃 가슴으로, 아마 운명인가 봐요. 그럼 안녕히. <제일화> 그늘 밑 꽃뱀 얽혀 있는 산중에서 산삼을 찿고 있었네. 그날 삼은 보지 못했으나, 여인을 만나, 정성을 다한 씨 심거 주었네. 나락이며 보리며 목화씨며 경지에 뿌리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마다 않데. 지구는 이미 먼저 나온 사람들이 한 몫씩 나누어 갖 고 말아 버렸데. 땅 한번 디뎌도 세금이 쫓아 오데. 바람 마시는 값으론 코를 베어 주었네. 억광 하늘 아래 절름거리며 지나간 초록빛 나그네 하나 있었다니라, 하여 앞도 뒤도 없는 이야기 몇 맏, 노변에 뿌려놓고 억광하늘 아래 신명은 처음으로 그곳서 빛나, 벋은 무지개 우주를 벗어나 스러져 갔다니라. 이르노니, 지금 예까지 와 있는 역사의 중량이여. 당신의 보따리 속에 든 인구며 곤충이며 전통이며 문명이며, 모두 한떼 뭉쳐 머리에 이고 하늘 향해 앞발 한번 버팅겨 보시지. 짓궂은 이야기다. 허허 만년 초원이 있고, 냇물이 있고, 양달이 있고, 독사가 있고, 암과 숫 쌍쌍이 새끼 치곤 죽어져 갔다. <제이화> 간밤에 밟히어 간 가난한 목숨들의 명복을 위하여, 지금 어디선가 아우성치고 있을 못된 아귀들을 위하여 그리고는 내일날 태양빛 찬란히 빛나 있을 사형집행장 꽃바람부는 교외, 잔디밭 언덕으로 끌려 나갈 아름다운 인류들의 눈물을 위하여.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밥사발 안은채 죽어있던 누나의 사랑을 위하여. 감옥돌 묻으러 갈 꽃상여의 길닦이를 위하여, 아프리카 사막에서 일사병으로 눈먼 식민지병사들의 월급봉투를 위하여, 그리고는 먼 훗날, 당신이 서 있을 대지를 쪼개고 솟아나올 시생대암층 깊숙히 우리의 대서사시를 새겨 넣기 위하여. <제삼화 > 내가 온달 때 당신은 구름 덮으시더라. 나는 원시. 그래서 당신은 멀리 있어야 잘 생각난다 일렀더니, 싫어도 당신은 끄덕이시더라. 무엇을 너는 내게 요구코 있는 건가. 나의 간 말인가? 금이빨 말인가? 귀 말인가? 옛날엔 명실상부 직업전투가가 있었삽니다. 이 족 저 족 팔려다니며 성문지기 호랑이잡이-이마에 뿔돋리고 양 어금니 째 져나온 불쌍한 종족들이 살었답니다. 그뒤에 그들은 출세한 적도 있었읍니다. 내성에 들어와서 왕좌를 마련코, 부족눕혀 구중궁궐 쌓아올리고, 백성 목덜미 위 군림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나도 물론 씨족전쟁엔 나가 보았읍니다. 창 들고 도끼 들고 코거리하고 귀거리하고. 닥치는대로 대갈통을 바수어 함지박처럼 머리에 엎어 쓰고. 가슴팍을 꿰어선 나무에 매달아 두고. 못난 짓 버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린 세월 숨 쉬어간 사람들이여, 도끼는 신기해도 손재주가 만든 것이며 비행기는 날쌔도 땅에서 뜨는 것이다. 떡쇠의 입에는 쌀이 하루 세사발, 수상님의 대장에는 비게가 하루 세사발, 헌장은 존엄해도 개호주의 안경이다, 못난 짓 그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랜 세월 버둥겨 간 사람들이여, 까마귀는 내려와 선달이 가슴 위에 구데기를 쪼아서 주둥일 닦았고, 장군님의 존안위에 태연히 앉아서 눈깔을 빼 먹고선 갸웃거릴 것이다. 내 고향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일까? 봄,갈,여름, 내 생지에 펴나는 꽃은 무슨 꽃일까? 두견이, 패랭이, 들국? 거짓말이다. 그런 꽃은 내 고향 산천에 펴나지 않는다. 들길을 가루질러 달구지가 지나갔다. 낯 익은 얼굴들이 호박처럼 매달려 메마른 돌맡 위에 부숴져 가고 있었다. 벗이여, 눈보라 쌓이는 밤 이리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면, 다수운, 다순 피가 돌고 있을 것인가? 벗이여, 광막한 원시림 인간된 거죽 홀홀히 찢어 던지고 어두운 골짝 산짐승 마을에 산돼지가 되어 두더쥐처럼 살아갈 순 없단 말인가 아름다운 바람 하늘 높이 흘러가고 억만년 햇빛 머리 위에 퍼붓는다. 어디를 흘러가는 싸움떼이기에 그 많은 다툼에도 시비가 남았느뇨. 어디를 흘려가는 목숨들이기에 양뿔이 빠지고도 꼬리마저 잘려 있느뇨. 하면 오늘밤은 어떻게 할 테란가 「전애」로운 폭약이여, 「정의」스런 침략이여. 메마른 공분모가 화려한 문명시에 유세스런 장막이고, 이도령은 당신네 호랑이굴 아구리에 네다리로 막고 서서 꽂혀오는 화살을 등가죽으로나 헤이고? 산과 산 산과 산 모과나무가지엔 무엇이 걸레처럼 발기발기 찢어져 걸려 있었고, 돌 베개, 바위 그늘. 땀으로 세수하고, 이슬에 목추기며, 동으로, 서으로, 남으로, 북으로. 오늘에 미친 사람 내일로 바람자게, 내일로 죽힌 사람 모레에 환생하게 하여 원수로 죽은사람 원수로 더불어 복수케 하며, 독엔 독으로, 창엔 창으로, 바퀴엔 바퀴로. 태양 밑에 있고 싶은 자 있게 하고, 없고 싶은 자 없게 하라. 싸우고 싶은 자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독존하고 싶은 자 철장 속에 독존케 하라. 영웅이 되고파 서두르는 자, 로켓트에 매달아 대기 밖으로 내던져 버려라. 무엇이 남겨졌고 무엇이 돌아갔는가? 빛나는 여름, 구슬 뿌리며 산맥을 넘어 간 소녀들의 흰 발이여. 지금은 바람 잔 언덕 위 패랑이 민들레 들, 노래처럼 사라져 간 그리운 이름 이름이여. <제사화> 어두운 대지에 한 가닥 양기 있어, 무릎모두 우고 일어앉는 그림자-형클진 앞가슴 아무려 여미며 비녀는 입에, 두손은 머릴 간조롱이고 동트는 대지 계곡과 한 올기 맨발벗은 육혼은 살어. 태백 줄기 고을 고을마다 강남제비 돌아와 흙물어 나르면, 산이랑 들이랑 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산천인데..... 맛동 마을 농사집에 태어나 말썽없는 꾀벽동이로 딩글벙글 자라서, 씨뿌릴 때 씨 뿌리고 거둬들일 때 거둬들이며, 이웃마을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짤랑 꽃가마도 타 보고, 환갑 잔치에 아들손주 큰 절이나 받으면서, 한평생 살다가 묻혀가도록 내버려나두었던들..... 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영원회귀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어 땅 위에 눕고 사람과 사람과의 중복됨이 없이 흙에서 솟아 흙에로 흩어져 돌아갔을 인간 기생을 모를 사람들, 산정의 제왕.....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나의 발아래 저렇게 많이 산의 경사를 좇아 무진한 돌들이 천꼴 만색으로 붙어 있지 아니한가. 대지에는 지세도 영천도 솟는다. 하데마는, 짐이 디디고 있는 이 산은 인육으로 구축된 말하자면 기생탑일세. 해서 그들의 등가죽엔 강물이 흐르지 않는단 말이야. 헌데 건 그렇고, 우스운 이야기는 때에 붙어사는 그 버섯들의 살림살이 말일세. 그들이야말로 저희끼리 눈 감고 야웅하는 격, 왕궁과 통치권엔 아랑곳 없으니까. 이차대전 저물어가기 얼마전의 이야길세 두만강변 어느 촌락이 지나던 길 한 할아버지로부터 이런 이야길 들은 일이 있네 우리하고 글쎄 무슨 상관이 있단 말요. 왜 자꾸만 귀찮게 찝쩍이느냐 말이요. 내 멀쩡한 사지로 땅을 잃고서 강냉이, 고구마, 조를 추수하고 옆 마을 해삼장 점북과 바꿔 오구, 시집 보내구, 장가 보내구, 장 사는데, 글쎄 뭘 어떻거겠단 말이랑요? 그러나 그들의 마을에도, 등가죽에도, 방방 곡곡 벋어 온 낙지의 발은 악착스레 착근하여 수렁이 되었나니. <제5화>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국경이며 탑이며 어용학의 울타리며 죽 가래로 밀어 바다로 몰아 넣으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가지와 만노래를 한가지로 흐르게 하라. 보다 큰 집단은 보다 큰 체계를 건축하고, 보다 큰 체계는 보다 큰 악을 양조한다. 조직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위조품을 모집한다. 하여, 전통은 궁궐 한의 상전이 되고 조작된 권위는 주위를 침식한다. 국경이며 탑이며 일만년 울타리며 죽 가래로 밀어 바다로 몰아 넣으라. <제육화> 없으려나봐요, 사람다운 사낸.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이 숱 많은 흰가슴, 텃집 좋은 아랫녁, 꽃닢 문 입술 - 보드라운 대지에 누워 허송 세월하긴, 어머니, 차마 아까와 못견디겠네요. 황원 말굽 달리던 황하기 사내 자꾸 그립어요. 어데요? 그게 어디 사람이예요? 기술자지. 어데? 그건 뭐 또 사람이예요? 제이급치차라고 명패까지 붙어있지 않아요? 어머니두. 저건 꼭두각시구, 저건 주먹이구, 저건 머리구. 별수 없어요, 어머니 저 눈면 기능자들을 한 십만개 긁어 모아 여물솥에 쓸어옇구 푹신 쪼려 봐 주세요. 혹 하나쯤 온전한 사내 우어날지도 모르니까요. 해두 안되거든, 어머니, 생각이 있어요. 힘은 좀 들겠지만 지상에 있는 모든 숫들의 씨 모주리 섞어 받아 보겠어요. 그 반편들 걸. 욕하지 마세요. 받아넣고 정성껏 조리해 보겠어요. 문제없어요, 튼튼하니까! 하나쯤 만들어질 수 있을것 같아요. 온전한 아기하나 낳아보겠어요. 제기랄, 빈집 뿐일세 그려. 주인은 없는데 하인과 객들이 얼싸붙고 닭 잡아라, 절 받아라, 난장이니 쌰ㅇ. 비로소, 말미아마, 바야흐로다? 거북등에 가 집짓고 늘어 붙는 소라. 잠자는 코끼리 등에 올라 국경들을 그어 놓고 다퉈쌌는 개미 떼. 깊은 지옥의 아구리에 백지 한장 깔고 누운 곰의 행복한 눈. 쇠기둥과 가시줄로 천당을 지어놓고 문 지키는 수고. 귀부인 발톱에 메니큐어를 칠해 주고 밥 얻어먹는 전문가. 해 저문 바닷가의 구두 수선가씨, 단애 위의 이발사선생, 산록의 수렵가박사, 그만 돌아들 오시지, 삼문 초옥 등비친 창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매미는 언제까지 뜻모를 소리만 울어 예는가? 온실 속에서 울어예는 매미는 무엇을 먹고 살아쌌는가? 노동은 머리 위에 나비꽃이나 한마리 매미를 달기 위해, 열두 해 긴 세월 밭가는 돼지? 돼지는 노래하라, 밭을 갈면서 씨를 뿌리라. 한알 한톨 피맺힌 말씀으로. 돼지는 말씀하라, 밭을 갈면서 예보하라 날씨도. 실업케 하라 왕도. 한알 한톨 피 맺힌 말씀으로. 후 화 숱한 봄 여름, 가을, 잊어진 세월 양지 바른 분지 잡초의 떼는 무성케도 이루어 쓰러져갔다. 무너진 살림살이 해마다 쌓여 마흔 아홉두께의 비옥한 층을 입었을 때, 그곳에선 육신 같은 미끈한 줄기가 아름다운 향기를 사지에 뿌리며 하늘거리는 요화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한 그루 불전을 꽃 피우기 위하야 선사 오천년은 묻히어 갔고, 한 그루 피어난 성서의 지층에는 구십구억 창세인민의 몸부림 든 사상이 썩어 있었다. 우리들이 돌아가는 자리에선 무삼 꽃이 내일 날 피어날 것인가? 잡초의 무성을 나래 밑에 거느리며 칠천년 늙어온 몇 그루 고목- 당신네 말쌈도, 지혜의 법열도, 문명의 행복도, 그대네 작업도, 늘어붙어 지층 이룰 갑충의 무덤. 정신을 장식한 백화 만상여, 몇 만년 풀밭 이룬 인종의 가을이여, 허물어지게 쏟아져 썪는 자리에서 무삼 꽃이 내일 날엔 피어날 것인가? 우주밖 창을 여는 맑은 신명은 태양빛 거느리며 피어날 것인가? 태양빛 거느리는 맑은 서사의 강은 우주 밖 창을 열고 춤춰 흘러갈 것인가? -막- 문<김재원> 누가 밖에서 부르고 있다. 모두 멀리하고 나혼자 돌아 앉은 방속에 저건 누구의 음성인가. 나는 지금 아무데고 갈수 없다. 사실은 벌써 딴곳에 가 있었다. 귀를 막고 엎드린 방속에선 문밖에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알수가 없지만 그것도 다른 곳에서 내가 저지르는 일들이다. 나는 어느 로오타리 에서처럼 길을 잘못 들어 이 방에 오게된 한마리 짐승. 녹이슨 방안에 가구들을 하나도 버릴수가 없다. 길에 떨어진 무슨 물체들을 나는 또 열심히 줍고 있다. 부르는 소리에 대답도 없이 엎드려서 문밖에 나를 마주 부르는데 소유가 두개로 갈라선 나에게ㄴ 이대로 그냐ㅇ 문이 열려도 낯선 마을에 들어선 객을 향하여 개만 커ㅇ커ㅇ 짖고 나는 마침내 병들 것이다. 채협은 색만 같은 하늘과 바다. 문 하나를 사이하고 두개의 나는 서로 손잡을 길이 없다. ◈한국일보 꽃과 의미<주문돈> (1) 두꺼비가 꽃비 속에 엎드려서 참회를 한다. 거침없이 꽃잎은 흘러내려 지옥의 살벌한 이절에서 따스운 것을 소생시킨다. 그 칠흑의 하늘에서는 정지했던 해 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찬란한 빛을 투사한다. 언제나 종말같은 진실한 빛깔로 살아나가는 꽃이어서 죽은 그 시체도 타는 것이구나. (2) 꽃밭은 어느 큰 흐름의 단면. 하늘의 뭇 욕태를 진술하고 있는 꽃들은 수런거리며 속삭이며 제각금 탑의 정부를 이루어가고-. 휘어 휘어 뻗어간 꽃가지는 어느 바다에 적시우고 있는가. 아지랑이와도 같이 어른대고 무지개 빛으로 황홀해 보이는 맑은 것들이 뭉어리로 뭉어리로 엉키어 있는 꽃밭을 보노라니. 아 신라. 신라. 그 마음 위에 감돌던 꽃구름은 어디에 가 다시 구현될 날을 모색하며 있는가. 꽃은 조심스럽게 벼랑을 맞받으며 쉬임 없이 피고 영토를 확장하며 있다. 내년이면 나올 다른 꽃가지가 뻗어 적실 바다는 지금에도 기약으로 출렁이고 있다. 너울너울 화창히 떨어져 내린 꽃잎은 꽃보다 붉은 생명의 비인 부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 ====1960년==== ◈동아일보 ++++전표지역<박열아>| 오랜 수난의 일정을 거두어 돌아간 피인한 손들이 면 지심에 하얀 전표로 서면 이름없이 죽어간 어느 병사의 무덤 앞에 하얗게 분장한 묘비는 이슬저 승화한 가슴을 마주하여 먼날의 눈을 들고. 상처난 수목의 등어리엔 적*한 비가 내리고 있다. 충충한 숲을 돌아가던 가슴의 긴 포복이 끝나는 곳에 파문져 오는 바람의 여운 ........ 잔광에 씻기운 하얀 촉루위에 어둠은 내리고. 아물어 가는 우리들 손의 상흔언저리에 잠들어 있는 전쟁. 어두워 가는 폐원의 뒤안길에서 목 짤린 해바라기는 기아의 골짜구니로 줄지어 밀리고. 끊어진 다리(교) 아래 아직도 목쉰 노래소리는 남아 저리도 긴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마지막 계단을 향하여 숨죽여 오르던 의지의 절정에서 가슴을 앓는 비둘기. 갈갈이 찢기운 기폭에 바랜 얼굴을 부비며 사탑의 그늘 밑으로 떨어져 가면 목숨의 밑바닥으로만 흘러가는 강 기슭에도 이름없는 묘비는 서고. 무덤으로 가는 커다란 군화 발자죽마다 슬프게 싱싱한 가슴 들이 잠들어있다. 지금 창을 등지고 돌아 앉은 무덤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어린병사의 푸르고 순수한 눈에 적*한 비는 내리고. 분산된 사상의 내부에서 가슴을 상한 전쟁은 마지막 방위의 선을 긋고있다. 냉각된 기류속을 오가는 싸늘한 시선들 -. 마지막 얼키는 시선의 매듭에서 스스로의 자세를 가누는 오늘. 한 색으로 물들어 가는 우리들 손의 상흔에 음칠월의 싱그런 포도는 익어가지만 깨어진 형상을 흔들며 울며 오는 종소리. 종소리........ *색된 분신을 떨어뜨리며 돌아간 시간의 어깨 너머 태양은 무너진 성벽밑으로 하강하고. 밀려간 발상의 긴 대열 끝에 뒤척이는 묘지. 낯서른 철조망가에 죽어간 젊은 혼들의 마지막 음성에 젖어 다시 나뭇잎은 피어도 낭적한 파편의 무덤가에서 지금도 우리는 수피의 상흔하나 무심히 보아넘길 수는 없다 초연에 그슬린 악보에 상채기진 얼굴을 묻고 이름없는 묘비에 등을 기대면 가슴을 빛나 병들지 않았으나 성낸 포도은 끝날줄을 모른다. 기도와 같이 가느란 목을 빼어 느리어 비정한 음악을 흔들자. 응혈진 눈을 닦으면 녹스른 탄피에 묻혀간 어린날의 기억 위에도 적*한 비는 내리고. 우후의 죽순처럼 무*하게 돋아난 묘비위에 비는 내리고. 깨어진 도시의 창에도 지붕위에도, 우리들 모두의 가슴에도 적*한 비는 내리고....... ++++ ◈서울신문 ++++야로<박응석>| 1 우리는 넓이를 알 수 없는 강의 양안에 자리한 수목. 나는 꽃을 피우고, 너는 지우고, 그러나 층층이 무너진 하늘 아래선 꼭 같은 형상의 노래들. 모두 굳어진 표정인데도 웃는 이유를 설명해 다오. 너는 나와 같이 있는데....... 동행은 아니라 한다. 2 여보세요. 어디쯤, 당신의 그 기막힌 이정표는 서서 있는가. 서로를 상이한 동작으로 헤어지며 뿌리는 미소. 꽃은 움직일 수 없는 스스로의 의미를 간직한채 희뿌연한 달의 심장으로 들어가고 원한을 찢으며 생성의 줄달음길 위로 아쉽게 죽어간 세포들... 따스히 매만저 오던 지맥의 뼈아픈 단절로 하여 인고의 기폭은 나부꼈는가. 나부꼈는가. 지구의 마지막 절벽을 황황히 기어 오르며 흘러온 길을 잃고 분주히 역행하는 태양. 바람은 태초의 그 싱싱히 부풀은 자세로 모래알을 날리었고 모래알 깊숙히서 맥맥히 흐르고 있을 어쩔수 없는 정의 강들이여. 3 나는 알 수 없었다. 한방의 총성도 울림이 없이 상흔이 깊어진 가슴이여 가슴 마다에 못 박히어 펄럭이던 십자가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4 모두들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까맣게 식은 장막속- 표적 없이 심장에서 심장으로 피로 통하는 성군. 가뭇이 고개를 젖히며 낙후한 기점위에 너의 노래는, 또 한번 우주를 뒤덮는 흔들림, 나는 불변의 지축. 되돌아 설 수 없는 360도만의 성한 우유빛 공간. 곤두선 시간의 층계를 밟으며 지금, 우리는 모두 굳어진 표정으로 스스로의 궤도를 상실한 무너진 길위를 미친듯이 질주하는 것이다. ++++ ◈조선일보 ++++효종대왕릉망두석<최 원>| 너의 고운 숨결은 흐르고 있구나. 그렇게도 크낙한 사랑으로 뫼시던 너의 임이 마지막 이울어 지는 노여움으로 역사를 잃더니만, 그날부터 이곳에 정주의 설 븐 눈을 밝히었구나, 넌. 눈에 선 북국의 어느 지역에서 남녘을 흘기며 방울 방울 맺힌 서름은 먼 나중에 하나의 분노로 벅차올라 그쪽을 항시 눈여겨 오던 임의 마음이 참말로 좋아 충성했지, 넌. 바람에도 날리지않는 옷자락에 파아랗게 묻어오는 외롬이랑, 꽃숭어리들의 싯벌겋게 진한 대화랑, 나목들의 은근한 밀어랑, 상월의 애꿎은 눈짓들도 임을 괴오는 한길로 몇백년을 숨죽여 왔더란다, 넌. 안으로 아슴한 설은 눈짓을 하고 저만치서 눈여겨보는 비의 애잔한 눈망울도 잊은채 여직 북국의 어느 지역을 못잊어 슬피는 님의 마음이 더욱 측은스러 이자리를 못내 떠나지 못하는구나, 넌. 시방이래두 임이 일어나 거치장스런 앙갚음의 발길을 북국향 해 옮긴다면 넌 울음울며 줄레 줄레 뒤따르겠지 -. 십여년 궁궐을 울리던 외로운 임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녘을 사르르 말려 번질 때 차라리 한 오큼의 눈물이라도 쏟아낼수 있다면, 넌. 너의 고운 숨결은 흐르고 있구나. ++++ ◈한국일보 ++++밤의 편역<박상철>| 명령은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면서 있었다. 죽음은 어디선가, 나를 유혹하면서 있었다. 그렇다. 램프의 등피가 저렇게 떨고, 밤이 붕괴하는 네 울음의 층계 위에서 밤은 오히려 우리를 멀리한다. 전쟁과, 한 마리의 나비와, 애인의 회화를 실은 꽃잎들이 떨어져가듯, 이분전 0시의 거리에는 비가 싸늘한 가슴들을 적시며 흘러내리는데, 정감의 따뜻한 손을, 손을 흔들며 네가 기다리는 그 눈부신 대낮의 풍경마저 허물어지고, 지금은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이 흔들리는 부교위에서 램프의 등피가 저렇게 떨고, 호 속에 말없이 잠들어 있는 사자들의 얼굴이여. 아무리 의식의 눈을 새롭게 떠도, 그렇다. 명령은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면서 있다. 죽음은 어디선가, 나를 유혹하면서 있다. ++++ ====1961년==== ◈경향신문 ++++TUNDRA<유성규>| - 일구육십년을 위한 송가 - 태양이 떨어진다. 그 무구한 피빛 손을 대지에 드리운 채 우리들의 머리위에 연륜을 새겨놓고 아무런 기약도 없이 떨어져가고 있다. 지금, 어둠이 밀리는 십이월의 하늘, 세계는 싸늘한 바람에 흔들리고 어디든 정착없는 유랑자와 짐승떼, 그리고 전율할 바다, 춤추는 시간이 가까워 오는 풍경들 앞에 십자가를 우러러 기도하는 수인들이여. 잠시도 눈을 돌리지 말라. 생명을 먹고 사는 어두운 이 심연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우리들의 눈동자, 언제쯤 별들은 이 눈물의 잉여지에 푸른 손수건을 펼칠 것인가. - 잠잠하라. 소요하는 짐승떼, 우리들과 신은 ........ 다시금 출렁이는 멍든 상체기, 상쟁의 마지막 골목에 흩어진 잔해위에 조용히 접근하여 한낱의 씨라도 뿌리며 노래를 하자. 나의 친구여 태양이 떨어진다. 조종처럼, 사상의 열매들이 한아름씩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순수한 의미의 가슴들이 자꾸만 북을치며 유현한 골짜기로 넘어가고 있다. - 그것은 마지막 음악일까? 넘쳐 흐르는 피는, 피의 강물은 땅을 적시며, 태양이 객혈한 검은 하늘위로 창백한 줄기를 뻗어 내리고, 이 살벌한 대지위에 나무는 자란다. ......그리고 일구육0 연은 종말의 다리 위에서, 내일에 빛나야 할 순백의 태양을 창조하면서 오색의 꽃나무를 손질하고 있다. ++++ ◈서울신문 ++++항아리<박 현>| 1 그는 늘 한 자리에 목을 웅크린 학의 자세로 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의 목마름으로 눈 멀고 귀 멀어 간 천애의 울음 울음으로 내뿜던 분노와 설움도 핏줄을 뛰놀던 순환의 피도 지금은 자개물린 빛과 무늬 ....... 배는 불러 있어도 잉태는 할 수 없는, 입은 열려 있어도 울음은 울 수 없는 - 퇴화한 한 마리의 설어운 학이 황홀한 비상이 날개를 잃고 목짤린 형자로 웅크리고 있었다. 2 청자빛 하늘아래 뜨락으로 모란꽃이 지는 어느 날 - 구름이 화문이룬 하늘을 배(잉)고 사뭇 불룩해 있는 그의 배를 쓰다듬 고 있노라니, 이건 참 희한히도 자개 물린 빛. 무늬에 피가 돌 아오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또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퇴화 된 학의 날개에 새 살이 쭉지하여 돋아나던 것을 .....순간, 그는 외줄기 울음을 길게 뿜더니 트인 하늘에 찬란한 날개를 펴는 것이었다. 그날의 학이 날아가면서 껍질로 벗어두고 간 것일까. 지금 내 앞에 놓인 질항아리는, 뵈는 것보다 더 많은 슬픔을 안으로 깨물고, 채울 수 없는 내부를 비어둔 채로 늘 그렇게만 앉아있는 것이다. ++++ ◈조선일보 ++++대이석원주를<박태문>| 대리석 원주를 돌아 걸어오라. 이십보 쯤, 삼십보 쯤만 조금 더 걸어오라. 지금은 십일월 저녁, 남은 건 다만 가지들 뿐 그것들이 우리를 명령할 수 없다. 그것들이 우리를 우리를 ※명령할 수 없다. 어떤 층계위에서는 태양이 쓰러져서 기진하고 어떤 층계 위에서는 태양이 자리를 걷고 돌아선다. 대리석 원주를 돌아오라. 조금 더 걸어오라. 이 정밀을 이 자유를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고 발광할 수 있다. 나무가지 위에 숨어서 졸던 까마귀가 날아간다. 우리의 기억들을 흩어놓고 지금 처 놈이 달아난다. 혹은 먼 데서 들짐승들의 울부짖음 소리가 들리어도 허나 무서울 건 없다. 우리를 명령할 우리를 지배할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십일월저녁 대리석 원주를 돌아오라. 조금 더 걸어오라. ++++ ◈한국일보 ++++제이의 광장<장순지>| 한 걸음만 더 내어 디딜 땅을 마련해 다오. 아니면 차라리 흉내낼 수 있는 마비를 다오. 이 질식의 갑충속에서는 몸부림마저 아쉽구나. 가장된 선악에 손뼉을 보내는 우리는 모두가 겸허한 도화사. 이 가련한 도화사에게는 정주할 좌표가 없다. 강요없는 외침을 갈구하면서 잠시 어둠을 견디는 얼굴에 핏발이 어린다. 이 지극한 정성이 승화하는 날 기도는 마침내 분노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눈을 뜬다. 항시 유랑의 곁길에 서 있을 듯한 조상의 마음에 다시 추수가 놓인다. 새로운 산화이 불을 뿜을 때, 우리는 모두 부나비가 된다. 미열을 식히는 바람이 불어와 모두의 비원의 비가 내리면 혼돈을 교살하여 장대에 꽃고 어둠을 몰아내는 기수가 된다. 그러나 침전하는 나날이 엮이어 풍요는 아직도 멀리 있구나. 교만한 태양에게 수의를 입혀 놓고 압사한 해바라기의 시체 위에는 이제 막 교미를 끝낸 암사마귀가 수컷을 움키어 배를 불리고 있다. 이 주름진 지*을 무엇으로 다듬어 예지의 밤을 불리랴. 차라리 흉내낼 수 있는 마비를 다오. ++++ ++++영 역<노익성>| 꽃이 필 무렵 아직은 아침. 살육할 수 없는 운명이 나를 이끌고 간다. 나는 그의 뺨을 치고 돌아서서 웃는다. 뒷걸음을 치는 것일까? 혼돈한 소용돌이 속으로 내가 빨리며 있는 것일까? 운명은 나에게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황량한 광야엔 볕살이 흐르고 볕살의 열도가 나의 의욕을 소각한다. 아 - 그것은 시원치 못한 자세다. 뛰어 들어라! 뛰어 들어! 나는 지도 속으로 뛰어 들어 광야를 찢어가지고 나온다. 숨이차다! .......찢어진 영토위에서 머뭇거리고 서본다. 아직은 사면을 살펴볼까? 꽃과 시체가 가지런히 넘어져 있는 자리에서 머얼리 아니 가까웁게 피묻은 깃발처럼 찬란한 무지개가 서있다. ++++ ====1962년==== ◈경향신문 ++++아직도 거기서<이삼헌>| 나는 보고 있었다. 포성이 나르는 고지 사이 너의 청순한 눈동자 봄의 연색 푸르름이 잠긴 눈동자를. 세기의 종언과 함께 지구의 일각이 부서지는 어느지점인가에서 쫓기는 산협 대피호에서 숨소리 숨소리, 아지랑이 피어 오르는 네 숨소리를. 타오르고 있었다. 너의 눈동자 우리를 잠깨우는 바람과 같이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네 눈동자 층계와 교량을 건축하는 네 눈동자 네 고향은 수양이 우거지는 대동강변 외딴 오막집 네 가슴엔 영원의 고향 고향의 늘 켜진 램푸, 램푸곁을 나르는 님푸, 태백산과 소양강을 오르내리며, 너의 가냘픈 나래는 날고 있었다, 무덤속을 태양이 들지 않는 참호속을 램푸를 키어들고, 전쟁은 아직도 우리들 눈을 살피고 있건만 네 청순한 눈동자 타오르고 있었다. 나리는 빗속 흔들리는 나무가지 사이 들려 오는 네 귓속말. 탄피를 줍다 지친 나의 어깨에 잦아지는 네 속삭임. 총구를 풍화시키는 네손은 부드러웁다. 봄과 같이 우리 더불어 네 교량을 건널때 해빙하는 세기의 해협, 구름이 와 계절을 엮는 아름다운 나의 소양강, 그리고 노들강. 장미원은, 뻗어 가고 있었다, 눈동자와 전쟁과 숨결과 밤을 따라서 너는 세계를 향하여 눈뜨고 있다. 타오르고 있다. 타오르고 있다. 네 눈동자. ++++ ◈동아일보 ++++과수원<김원호>| 1 [빈센트 반 고호]의 [과수원]을 아시는지요. 도깨비도 무서워할 고목뿐인 올리브 숲이었지요. 불타다 남은 자리보다 더 쓸쓸한 곳이었어요. 어쩌면 내가 이런 숲을 생각하는지 나 자신 올리브숲의 도깨비가 되고 싶은 모양입니다. 2 벌레먹은 가지를 하나씩 따 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인것을 잊어버리고 물익은 과일이 달린 과수원의 나무가되고. 나도 가지에 벌레먹은 과수원의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니, 고목뿐인 이 숲이 도깨비보다 덜 무서워지는군요. 3 똑, 똑, 가지꺽는 소리뿐 이 과수원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혹시 이런 곳에서 몸에 배인 병이나 씻어버리며 도깨비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산골보다 더 조용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4 잔잔하고 푸른 먼 [이오니아] 바다처럼 쓸쓸한 여름날 같은 하늘도 보입니다. 조용한 원색속에서 생활을 하며 향기 푸른 과일밭에서 일을 하시면 어느새 병도 깨끗이 나으실 것입니다. 5 푸른 달밤에 과일이 익을 때 과수원 옆에 초막을 짓고 지내시면 단물 고인 과일나무가 되겠읍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고 싶으실 땐 언제라도 돌아 가시지요. 그래도 우리 이 과수원에서 도깨비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 ◈조선일보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신세훈>| 형성기 은 데 지적 갈라진 퍼런 불허리 돌바람에 숨끊어질 무렵. 구렁으로 분출된 용암 식어 바다 속을 뻗은 지맥으로 불기둥 치받혀 의론 섬으로 솟아날 땅. 땅 위에 어떤 중량의 의미와 생명감으로 마침 목을 뽑아 울리며 신록 풍성한 한여름 너 앞에 내가 섰을때. 후둑 후둑 성긴 소나기가 왔다야. 그 시절 항시 물줄기만 눈앞을 담담히 흐르고 바람은 침묵한 깊은 계곡이며 어느 신허릴 불어가 영높은 한 화산의 혈맥과 뜨거운 그늘 모롱일 돌아 놀속 목숨으로 피어난 구름꽃의 입김에 내 영혼에 엉겨붙어 황금빛 하늘 아래 해바라기 웃음으로 형상된 생성의 울타릴 돌아 오는 바람대로 출발했다야. 해바라기. 징처럼 안으로 출렁이어 소리 내 오는가 알 수 없는 누런 놋색 꽃잎 둘레는 원광의 미소같이 무지개 달무리로 원만한 물맴을 지으며 꿈을 꾸는 물매화를 건드리다 강 건넌 습한 바람결에 서그럭 흔들리는 몸짓을 가누고 고향 떠난 너의 하늘색 옷자락을 적셔 조금은 마음색이 섧은 나의 입상이다야. 전쟁을 치른 너의 입술 위에 피멍든 아픔만 서리지 않았더라면 짙은 비극의 흔적 없이 딴 꽃대롱 물줄기로 가난한 이야길망정 피릴 불어 공중에 띄워보겠다야. 지금은 바람파편에 튀어버린 물방울같이 씨를 다 흩어버린 빈 빈 가슴팎을 가서 가을이 꽉 안긴다. 서러운 눈의 내가 나에게 가서 꽉 안긴다. 이제 빙빙 이빠진 얼굴을 이고 스스로를 가늠하던 고개를 저으며 사방 시월의 춤노래 속에서 메마르게 눈물나는 광활한 광장에 내가 나를 안고 서서 울가보다야. 어쩌면 내부를 흐르는 바람의 갈갈한 울음으로 꽉 차있을 나와 너는 밤의 계절을 뛰어 나와 아침을 맞아야한다. 몸을 씻어야 한다. 허지만 갈길마다 갈란 엇길에 여러마리 꽃실배암 따비틀고 지싸우는 마른 풀두렁을 지나 낮닭도 울었던 마을에 하나둘 등잔불 꺼져 가면 내사 원을 쳐다 보거나 겨울잠 안자던 배암을 생각한다. 물먹은 바람은 조용히 달무릴 돌아 가고 해바라기 이빠진 가슴 강물처럼 그리 길게 울것다야. 끝간데 없는 수류 따라 밤무지갤 그려 좇아 전설의 식물 여름 동안 물 오른 목줄기가 제 씨앗을 사랑할 추수기에 씨통을 공간에다 흔들어 버린 얼마후. 싸늘한 까치놀로 뻗은 가을가지들 겨우내 바람을 찢어야 물줄기 외로운 우리 영토 휘감아 휘휘 달음치고 다시 봄맞이얼음꽃이 녹을즈음 나무피부속으로 봄여름나무같이 꽃물 오르겠지만 고운 언어로 기별 약속만 전갈한 뒤로 영영 겨우낸가 이야기가 없다야. ++++ ◈한국일보 ++++황제와 나<박이도>| 1 우리 황제의 눈은 원시안 무한한 식민지의 노동을 모아 제국을 세웠다. 스스로 돌아갈 웅대한 왕묘를 준비하며 그는 만족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황제의 눈은 멀었다. 아직 거느리지 못한 대륙을 위하여 병정을 보내고 또 보냈다. 살아있는 한 저 멀고 먼 지평을 넘고, 수평을 넘어 끝없는 정복을 위해 살아 있는 한 그는 잠시도 왕관을 벗을 수가 없었다. 조용한 오수의 비밀을 끝내 모르고 피로한 얼굴에 주름살이 잡혀갔다. 황제의 눈은 원시안 그의 눈은 멀었다. 그의 눈은 멀었다. 2 성밖으로 성밖으로 병정만 내어보내고 그는 잠시도 나설수가 없구나. 가난한 농부의 미소를, 그리고 해마다 자라는 아이들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구나. 무성해가는 수목의 의지를 노을빛 더불어 영글어가는 과실의 풍경을 그는 볼 수가 없구 나. 아 황제여 울고 싶어라 울고싶어라. 우리 황제는 모른다. 성밖의 그 황토와 이슬과 구름과 햇빛으로 생성되는 찬란한 또하나의 영토를 그는 모른다. 파아란 하늘, 그 주변에 팽창하며 푸른 이파리를 거느리고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잡아먹고 확장해가는 고요한 영토를 그는 진정 모른다. 그것은 하나의 우주 제삼의 왕령이다. 원시의 숲그대로 이글대는 태양과 서천에빗든 원색의 그 성밖에 무지개를 잇대고 공중에 떠있는 제삼의 왕령. 3 정복이 끝난 어느 대지의 원경은 꿈. 무수한 병정의 목숨은 떠나고 피가 흐르는 꽃물같은 석양의 강위에 떠내려가는 노동이여. 별들이여. 그 전장에서 육신과 헤어진 영혼들이 바람에 밀리고 밀려서 성밖에 왔다. 불어오는 바람속에 숨어오는 넋이여 죽은 병정들이여. 당신들을 하나씩 잡아먹고 팽창해가는 이 크낙한 우주를 황제는 모르는가. 황국과 식민지 그 사이에 하늘과 대지 그 사이에 영원한 제삼의 왕령을 그는 정말 모르는구나. 푸른 잎사귀로 설레이며 지열에 붉히는 얼굴 얼굴들. 많은 생명들이 굽어보는 언덕에서 조용히 생각 하여라. 지금은 없는 그들의 육신은, 핏물은 어디쯤 흘러 갈것인가를. 아 그 성밖의 왕령은 말없이 익혀가는 내부의 밀도를 밖으로 밖으로 쏟으며 구름 사이로 배를 저어갔다. 4 나는 그안에 살고싶다. 풋풋한 향기에 콧등을 세우고 컹 컹 헛기침하며 그 과수목밑에 앉아 이슬을 마시고 싶다. 오색 무지개도 띄우고 싶다. 텡텡 비어서 출렁대는 내 빗가죽 우리 황제는 모르는가. 황제와 내가 침입할수 없는 지금, 나는 죽어 나는 죽어 다시 그안에 살고 싶구나. 성밖의 제 삼 왕령 그밑에 쓰러져 텡텡 비어 출렁대는 배가죽으로 맹꽁이 울음하는 나를 보아라. 우리 황제는 원시림 눈이 멀었다, 눈이 멀었다. ++++ ====1963년==== ◈동아일보 ++++나의 슬픈 친구 [이봔 드트리빗치]에게<신명석>| 이봔이여 나는 피로하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기 전에 불신의 언덕에 내가 다시 서면 꽃강물은 흘러 가기만 하는데 이봔이여 또 사랑했던 사람들이여 정말로 나는 피로하다. 전장에서는 누구보담 대열의 앞장에 서서 기빨을 잡던 그 손에 때로는 꽃잎이 떨어지는 한잔의 화주 를 마시고 청춘을 불태우던 이봔이여 아무렇게나 던저진 서러운 지역 어디쯤에 애띤 가시네가 지나가고 꽃상여가 언덕을 구비구비 올라 갈 때 찢겨진 기빨 파편조각이 가슴깊이 녹쓰는 시간을 딛고 딸기밭이 탄다. 구름이며 별빛 하늘이며 그 무엇이든지 마음 내키는 그런 정지된 시간에 내가슴은 꽃강물이 차라리 흘러가지 말아야 한다. 10월, 1957연,김요일은 흐렸던가. 어두움이 짙게 깔리느 이 골목에서 꽃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였다. 좌표 105호. 낙원동 골목. 누가병원. 배신과 사랑이 뒤엉킨 거미줄 나무 성좌와 가지끝에 깨어지는 조낙은 죽음이다. 허허한 골목의 텅빈 광장에 사생아의 잉태와 유산의 흥분에서 주름진 얼굴에 짙은 그대 로타리 근교에서 여인은 아직도 유서를 장만치 않았다는 오만스런 표정을 짓는다. 청춘이 넘쳤던 잃어버린 시간의 이쪽 울타리 아래 공전하는 충혈된 무질서의 기억. 어디서 오는 것 도. 가는 것 도. 아닌 미미한 이 차질 아는가. 내심의 풍만한 기대와 그것과도 다른 무분별의 희열. 움직이지 않는 강열한 목숨이 찬물처럼 넘쳤던 낙원동의 둘째번 골목. 이제는 무구한 어둠만 찼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차거운 예감. 이봔이여 내가 이 지점에 서 있다고 해서 그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헝크러진 혈기가 짙은 본능의 밑바닥을 자부할 때 어떤 것은 생명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순수한 육체와 탄식과 회오에 싸여 살창앞에 머문 이봔이여 몇 발자욱 앞 어디에 뭔가 잘못된 이정. 우리는 그저 고독한 것 뿐인데 아름다움은 벌써 우리의 것이 아닌 그것 장돌뱅이 같은 비둘기의 눈언저리 같은 이젠 자랑이 될 수 없는 것 뿐인데 어떻게 더욱 멋있게 인생을 절망할 수 있는 것인가. 이봔이여 이야기 해다오. 가슴에 막혔던 일체의 이야기를 해다오. 아지 건늘목 이쪽편에서 너의 음성 을 듣고 있다. 가슴에 느꼈던 것이 멈춰 서 있다. 이봔이여 정말로 인제나는 피로하다. 일어버린 어제의 질서안에서 휴식이 찾아오면 다시 강건너 그 넘어의 길은 볼 수가 없어도 불가해의 꽃강물은 찬물처럼 넘쳐서 내 가슴으로 가슴으로 흘러 가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 강열한 생명으로 차야 한다. 나의 슬픈 친구 이봔 드트리빗치여 이봔이여 ++++ ◈서울신문 ++++겨울 동양화<목 훈>| 화롯불 놓고 천 년이 조용히 흘러간다. 구려산 붓에서 옥같이 구슬려 나오는 사군자의 정에 겨울 밤이 화안히 핀다. 월전 선생께서 이르기를 (책을 만편 읽어라) 평생에 가슴 속에 싣고 화 육법에 앞서 마음이 정해야지 심과 신이 갈앉고 눈시울을 서서히 들어 유연히 벽을 대하니 다 정통하다 접시를 모으다 보니 별난 감이 다 든다 가루를 물에 정하게 풀어 큰 접시, 조그만 접시에 나눠 놓고 임리(*)히 번져 가는 소리 귀에 솨악 듣는다 밖엔 눈이 그쳤는지 봉당개 짖는 소리 멀고 보름을 먹은 달은 고연스레 내 외로움을 더하게 하니 에라, 오늘은 붓도 먹도 집어치고 따끈한 정종이나 한잔 할까 안주로는 엊그제 끝낸 수꿩을 보지 언듯 멀리 잉경소리 들리는 듯 싶어 혼자, 실소하다 전설을 고발하는 자 조금은 마시고 싶은 별난 벼랑 위 소나무 쇠잔히 기울어 오백년은 지난 후 궁구르는 돌에 새겨진 새의 눈, 날개 부스러기 뒤엔 거북의 잔등인가 싶은 것 고고학자가 점쳐 예언 했단다야 석기 이후 구리로 접시를 만들고 곡식을 썩혀 술을 빚는다구 샤마니즘이라던가 고인돌과 선돌 무더기 있는 데 어지선가 아주 낯선 땅에서 온 듯싶은 화가가 부신 눈초리로 여기 저기 응켜 쥐고 영감(영감)이라도 얻은 듯 꽤는 감격 했단다야 도기, 항아리, 옹기, 꽃병, 술병,연적, 술잔 얇은 것, 큰 대접, 국화 잎과 파란 살무사 살저며 낸 것을 기름에 튀겨내 담은 접시 속에 묻혀 평생을 살아 봤으면 별난 그릇들에 손수 담근 술을 가뜩 담아 마셔 봤으면 취한 체 옛을 살피고 칼 끝으로 새기길 (균열)은 전한다더라 훗 적에 산에 깊이 오르다가 깨어진 조가리를 보고 박물관에 모셨을 것은 실은 어린애 오줌 바다 내는 요강쪽 동글게 새겨진 학은 실은 안주 없이 취한 김에 그린 꿩 고기구 돌, 돌, 잘 지내 갑시다 천 년을 살갔수 만 년을 살갔수 ++++ ++++고별<이수익>| 그때,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그사람 오늘도 나는 등어리에 솜을 실은 나귀의 지혜가 되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종로로 간다 무엇일까, 잃어버린 그것은 구슬같은 사랑일까, 기억일까 독을 뿌린 벌의 죽음일까 눈 앞에서 아찔, 정말 잘 죽었지 그때 젊은 친구 (나사렛) 피와 모래를 노래하는 나는 골수를 다친 채 종로의 어느 장미빛 상점 앞에서 비를 맞는데 웬일일까, 자꾸 웃음이 터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어머니도 아니다 누이도 아니다 그 때, 참 잘 죽었지 젊은 (나사렛) 자네 얼굴이 타도록 술을 마시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솜을 진 채 긴 벽을 돌아 선 종로에 종로에, 가려운 피부에 돋는 부스럼 정말 그때, 잘 죽었지 지금도 한이 된다. 편지 찾아온 손님의 다김한 눈빛으로 방을 훈훈히 하는 한 장의 편지 그것이 이룬 단정 하늘에서 살짝 은밀히 내린듯 빈 책상 위에 이미, 뜻 있는 이 밝음은 써 보낸 사람의 마음의 그것 초롱을 벗어난 새의 자유가 되어. 나를 부르러 온 아아, 나의 지우여 피봉의 글씨 귀를 기울이며 이 밝음의 가상이를 곱게 편지를 뜯는다. ++++ ◈조선일보 ++++미개지의 꽃<박응석>| 끝내 인종의 줄은 끊어져 투명한 의식이 불붙는 미련을 더불어 외출한 다음, 회색 에프런을 무릎에 깔고 정오에, 나는 아침을 먹었다. 오원짜리 지폐로 꺼져 가는 생명을 수리했다. 그 밍밍한 국수 맛을 너는 아느냐? 가난이 목발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한달에도 몇번은 거들먹거리며 자본이 큰 상를 받듯 정오에 나는 아침을 먹었다. 미각이 소스라쳐 일어나 멀뚱 멀뚱 눈을 뜨고 찢어진 그의 기폭을 흔들었다. 동시, 허기는 내 손바닥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의 빈 깡통을 던지며 전쟁의 뒤 뜨락으로 철수했다. 잇달아 해제된 비상계엄 영하의 조용한 완충지대 음산 정적 속을 그러나 그녀는 온다. 방울을 달랑거리며 램프에 불을 당긴다. 천사의 미소를 몸에 두르고 그녀는 와서 툭툭 내 어깨를 친다. 아, 이 황홀한 유혹 앞에서 나는 헤어나지 못한다. 일체의 관복을 나는 벗는다. 자연히 지휘권을 그녀가 대신한다. 하여 그녀는 개간의 삽을 든다. 그리고 오열을 놓아 사랑을 방목한다. 나도 따라 사랑을 방목한다. 천의 팔을 늘이어 천의 일을 하는 그녀는 또한 천의 분신을 가지고 신 보다 많은 일을 한다. 꽃씨를 한아름 안고 와서 가슴이 터져나라 심는다. 아마 나의 수확은 퍼그나 훌륭할 것이다. 천의 지혜로운 속삭임을 천의 영롱한 눈알로 말하는 그녀르 맞기 위하여 그때는 당당한 지주인 나ㅢ 오후에, 식탁은 기름을 마구 튀기며 나의 기쁨을 저 산악만큼 확실하게 할 것이다. ++++ ◈한국일보 ++++궤변초<민경철>| 1 삐까소의 원근법과 채색법을 아세요. 하늘색같은 초록 나뭇잎은 까맣고 태양은 노랑. 그리고 꽃보다는 별이 더 가깝지요. 과학시간에 들어본 신화보다 더 이상해요. 어쩌면 오늘 이런 화폭을 생각하는지 나자신 그의 눈동자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 2 테블 위에 놓인 신문지는 철판처럼 딱딱하고, 화병과 책과 모자가 동일색. 바람과 수증기와 깨스가 상이색. 오늘은 참 이상하네요. 내 눈동자의 어느 부분이 열리어 신비로운 이런 풍경이 굽이치나요. 3 화구보다는 모델이 더 가깝구요. 모가지가 아래로 떨어지고, 낯익은 표정이 두개가 되네요. 그러면 나는 나자신을 잊고 모델이 되고. 당신도 이런 소묘를 하고 싶지 않아요. 빙그레 돌아가는 저 황홀한 세계를 느낄 수 있어요. 4 여인의 예쁜 얼굴보다도 꿈틀거리는 욕정부터 먼저 그릴 수 있어요. 나비 날개보다는 먼저 그의 해골을. 오후의 잔광 속에서 색연필을 잡고 자욱히 녹들을 죽죽 그어 나가면 베토벤 제 5악장이 더욱 장엄하게 울려 올 것만 같네요. 5 한장의 그림이 핵과처럼 익을 때, 나는 끝내 삐까소가 되어버리겠지요. 그의 눈동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의심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이런 신기한 솜씨를 가지고 싶지 않아요. 하여 오늘은 참말 이상하네요. ◈경성일보 아침 선박<조태일> Ⅰ 아침 바다는 예지에 번뜩이는 눈을 뜨고 끈기의 서쪽을 달리면서 시대에 지치지 않고, 처절했던 동반의 때에 쓰러진 시간들을 하나씩 깨워 일으키고 저 넘쳐나는 지평의 햇살을 보면 청명한 날에 잠깨는 출항. 세수를 일찍 끝낸 여인들은 탄생을 되풀이한 오랜 진통에 땀배인 내의를 벗어 바다에 던지고 파이프에 남자들은, 두고 온 시대를 열심히 피워 문다. Ⅱ 철저한 자유를 부르면서 흐느끼는 심연, 그 움직이는 고요, 가파른 정오의 한 때를. 이해만이 남고, 오직 진행이 있을 때 당황하던 파도를, 식욕을 거느린 별들이 주워 들고 멀리 떠났다. 험한 해협엔, 그러나 의지를 철썩이는 잔잔한 파도의 무료. 밤세워 해변을 지키던 새의 *녹은 남고. 순수의 깊이에서 일어서는 서적들의 눈부신 항변. ―아직 침실에 누워 있는 자들도 한번은 떠날 것이다. 휴식의 때가 오면 패배의 옷자락을 가다듬을 꼭 가다듬을 늙지않는 아우성, 동족을 꺼려하는 쓸쓸한 시선들도 한 번은 떠날 것이다. Ⅲ 우리에게 주어진 한개의 원인은, 서성이는 곳에 쓰러지지 않는 거만한 거부. 타협이 없는 거리를 글세, 걸어갈 수 있을까? 신앙은 놓이고 길을 가는 의문의 날에 찾아 온 제삼의 치맛자락에 매달린 식탁. 어지러워라 어지러워라 천둥이 울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의 식탁은 없을까? 쟁취의 이빨을 내놓기 전 낮에도 눈이 감긴 암초의 눈을 뜨게 할 순 없을까? 겨울을 빠져나온 꽃들이 찾아가 피어날 꽃나무는 없을까. 계절이 없어 과일들은 익질 못한다. Ⅳ 획득의 눈이 내리고 있다. 학동들의 꿈길에서 얻어진, 멀고 먼 나라의 가까운 은혜가 흩날리고 있다. 아침 인사를 받으면서 물러 않은 산. 아침 인사를 받으면서, 오후가 되더라도 피로하지 않을 하이얗게 움직이는 선박이 있다. 우리 젊은, 우울한 선장에겐 무엇을 바칠까? 우리의 모국어를,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을, 우리의 눈에 맞는 색깔의, 저 지평을 향해 펄럭일 기를 바쳐야 한다. ++++ ====1964년==== ◈동아일보 ++++바람불다<이 탄>| 지표 위의 시간이 인다. 도미의 피리소리와 사원입구의 목탁소리 그리고 저 산언덕의 포성 내가 오늘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꽃잎같이 지표 위에 쌓여 있다. 지난밤, 어머니의 신음소리도 어느 나무등걸 밑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신라 마지막 임금의 애화도 깊은 갈잎 속에 묻혀 있을 테지」 어느해 가을 코스모스 핀 묘지에서 나는 이상한 꽃을 보았다. 소녀, 소년, 노인과 아주머니의 얼굴을 한 꽃송이들 생명의 빛깔들. 세계의 공기가 엷은 목에서 흘러내리고 가냘픈 손을 흔들면 손 사이로 흐르는 애정의 감도와 세월의 매듭, 지구의 한모퉁이에서 접히는 생명의 나래 십여년전 낯선 고장의 피난살이와 풍물은 지나간 것일까. 절망이 천장보다 낮아 목을 주리며 일천오○년 이후의 거리와 실내에서 항시 난무하던 헝클린 머리칼 당시 이백간통의 아이들과 그녀석들의 철없는 시간은 비듬처럼 떨어져 지표를 덮었다. 휘트먼의 달구지는 지나갔는지 모른다. 에머슨의 「죽은 인간」과 헤밍웨이의 「노인」은 죽음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피가 흐르는 지표가 있다. 여기서 부는 생명의 바람이여 나의 목숨을 돌아가는 바람에 나는 인정을 안다. 바람부는 지표 위의 시간은 지나갈 수 없는 피의 샘, 여기서 탄피의 자적을 설명하라. 여기서 르노아르의 여인을 사랑하라. 여기서 나의 학문은 무엇인가 물어보라. 지표 위의 시간이 인다. 피의 샘, 훈훈한 아지랭이 같은 저 뿌리 밑의 시간이 인다. ++++ ◈서울신문 ++++인상<박의상>|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네. 우리는 처음부터 감금당했고 그때 우리는 울었네. 정말 좁은 터널 속에선 코크스 가루마다 눈이 매웠고 목구멍엔 벌써부터 핏덩이의 질식이 차 있었네. 우리가 시작했을 때 어둠은 부모들의 시간을 차지하고 나머진 모든 것이 <다음에> <다음에>하고 미뤄졌었네. 정말 아주 다음 다음에 우리는 터널을 기어나왔고 그때 기침 끝에 보았네, 하나의 꽃잎도 우리의 키 위에서 흔들리고 다시 하얗게 떨어져 전등과 함께 한번씩 빛나는 것을. 그대 늑대나 목동이여, 우리는 그렇게 양떼 속에서 혹은 먼 봄날의 치마폭에 누워 듣는 페이블로 시작하지 않았네. 벌써 신문지 첫 페이지엔 저녁 식탁 메뉴가 고딕으로 나와 있고 그것을 우리는 길 건너 야시장 아세치렌 불빛으로 읽고 있네. 그때 사람들은 부모가 되어있는 이마 넓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보이잖는 눈 뒤에 돌아서서 또 다른 터널을 뚫고 똑같이 우리들의 동생들에게 그 어둠을, 그 <다음에> <다음에>의 질식의 힘을 물려 주네. ++++ ◈조선일보 ++++빈약한 올페의 회상<최하림>| 나무들이 일전의 폭풍처럼 흔들리고 있다. 먼 의식을 횡단하여 나의 장소는 부재의 손을 버리고 쌓여진 날이 비애처럼 젖어드는 쓰디쓴 이해의 속, 퇴각하는 계단의 광선이 거울을 통과하며, 시간을 부르며, 바다의 각선 아래로 빠져나가는, 오늘도 외로운 발단인 우리…… 아아, 무슨 근거로 물결을 출렁이며, 아주 끝나거나 싸늘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을까? 나아가고자 했을까? 기계가 의식의 잠 속을 우는 허다한, 허다한 항구여. 내부로 쌓인 눈들이 수없이 작별하며 흘러가는 나여. * 이 운무 속, 찢겨진 시신들이 걸린 침목 아래서 나뭇잎처럼 토해 놓은 우리들은 오랜 붕괴의 부두를 내려가고, 저 시간들, 배신들, 식수와 같이 심은 별― 우리들의 소유인 이와 같은 것들이 육체의 격렬한 통로를 지나서 불명의 아래 아래 퍼져 버리고 * 울부짖음처럼 회색의 눈 속을 나누어 간 때없는 날의 종교가 정처없이 분별의 장소를 향하여 달려지고. * 차가운 결정을 한 가지새에서. 헤매임의 이휘에 걸려, 나나히 그 무거운 팔을 흔들고. * 나의 가을을 잠재우라. 흔적의 호수여, 지금은 물 속의 봄, 잠적한 고향의 말라들어가는 응시에서 핀 보라빛 꽃을 본다. 나무가 장난처럼 커오르고. 푸르디 푸른 벽에 감금한 꽃잎은 져 내려 바다의 분홍빛 몸을 얼싸고 직모물의 무늬같이 부동으로 흐르는 기나긴 철주를 빠져나와, 우리들은 모두 떠오른다. 여인숙처럼 낯설게 임종한 그 다음에 물이 흐르는 육체여. 아득히 다가와 주고 받으며 멀어져가는 비극의 시간은 서산에 희고 긴 비단을 입고, 오고 있다. 오고 있다. 아주 장대하고 단순한 물결 위에서…. 아아, 유리디체여! (유리디체여. 달빛이 죽어버린 철판 위 인간의 땀이 어룽져 있는 건물 밖에는 달이 떠 있고, 달빛이 기어 들어와 파도 소리를 내는 철판 위, 빛낡은 감탄사를 손에 들고 어두운 얼굴의 목이 달을 돌아보면서 서 있다.) 푸르디 푸른 현을 율법의 칼날 위에 세우라. 소리들이 떨어지며 빠져나가며 매혹하는 음절로 칠지라도, 너는 멀리 고향을 떠나서 긴 팔굽만을 슬퍼하라. 들어가라. 들어가라, 계량하지 못하는 조직 속 밑푸른 심연 끝에 사건은 매달리고 붉은 황혼이 다가오면 우리들의 결구도 내려지리라. 아무런 이유도 놓여 있지 않은 공허 속으로 어느날 아이들이 쌓아버린 언어. 휘엉휘엉한 철교에서는 달빛이 상처를 만들며 쏟아지고 때없이 걸려진 거기 나는 내 정체의 지혜를 흔든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체를 나붓기며. 해안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으로. 막막한 강안을 흘러와 쌓인 사아의 장소. 몇겁의 죽엄. 장마철마다 떠내려 온, 노래를 잃어버린 신들의 항구를 지나서. 유리를 통과한 투명한 표류물 앞에서 교미기의 어류들이 듣는 파도 소리. 익사한 아이들의 꿈. 기계가 창으로 모든 노래를 유괴해 간 지금은 무엇이 남아 눈을 뜰까? …하체를 나붓기며 해안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다속에서. ++++ ◈한국일보 ++++북위선<이근배>| 1 서투른 병정은 가늠하고 있다. 목탄으로 그린 태양의 검은 크레파스의 꽃밭의 지도의 눈이 내리는 저녁 어귀에서 병정은 싸늘한 시간 위에 서 있다. 지금은 몇 도 선상인가. 그리고 무수히 탄우가 내리던 그 달빛의 고지는 몇 도 부근이던가. 가슴에는 뜨거운 포도주, 한줄기 눈물로 새김하는 자유의 피비린 향수에 찢긴 모자. 이슬이 맺히는 풀잎마다의 이유와 마냥 어둠의 표적을 노리는 병정의 가슴에 흐르는 빙하. 그것은 얼어붙은 눈동자와 시방 날개를 잃는 벽이었던가. 꽃이었던가. 2 한마리 후조가 울고간 외로운 분계선 산딸기의 입술이 타던 그 그늘에 녹슨 탄피가 잠들어있다. 서로 맞댄 산과 산끼리 강과 강끼리 역한 어둠에 돌아누운 실재여. 빈 바람이 고요를 흔들어 가는 상잔의 동구 밖에 눈이 내리고 어린 사슴의 목쉰 울음이 메아리쳐 돌아간 꽃빛 노을 앞에서 반쯤 얼굴을 돌린 생명이여. 사랑보다 더한 목마름으로 바라보아도 저기 하늘찢긴 철조망. 한모금 포도주의 혈즙으로 문질러도 보는 이 의미의 땅에서 병정이여. 조국은 어디쯤 먼가. 눈먼 신화의 골짜기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소스라쳐 뒹굴던 뿌연 전쟁의 허리춤에서 성냥불처럼 꺼져간 외로운 자유. 그 이지러진 풍경 속에 오늘도 적멸의 눈이 내린다. 3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황토흙에 묻힌 군화 한짝. 언어도 없는 비석의 돌아선 땅에서 누가 마지막 입맞춤 마지막 포옹을 묻어 두고 간 것일까. 국적도 모르고 군번도 없는 채, 버리운 전쟁의 잠꼬대여 멀리 흐느끼는 야영의 불빛은 검은 고양이의 걸음으로 벽을 오르고, 후미진 밤의 분계선근처에 병정의 음악은 차게 흐른다. 허나 돌과 나무 어느 하나도 손금처럼 따습게 매만질 수 없는 빙점의 북위선. 작고 파닥이는 소조의 가슴처럼 피가 사위는 대안이여. 세계가 귀대이는 초소에서 오늘도 전단의 눈발을 맞는 간구. 그 목마른 안존 위에 떨리는 자유여. 강하여. 서투른 병정이 가늠한 두개의 판도. 검은 크레파스의 태양의, 꽃밭의, 싸늘한 시간 위에서 병정이여. 여기는 북위선 몇 도의 어둠 속인가. 눈이 내리는 찬 지경의 북위선 몇 도의 사랑 밖인가. ++++ ====1965년==== ◈경향신문 ++++내란<김종해>| 낙엽이내린다. 우산을들고 제왕은운다헤맨다. 검은비각에어리이는 제왕의깊은밤에낙엽은내리고 어리석은민중들의햇불은밤새도록바깥에서 궐문을두드린다. 깊은돌층계를타고내려가듯 한밤중에촉대에불을켜들고 궐안에내린낙엽을투석을 맨발로밟고내려가라내려가라 내려가라깊고먼지경에 침잠하여 제왕은행방불명이된다. 제왕은 화구의불구멍이라자기혼자뿐인거울속에서 여러개의탁자위에내린 낙엽이되고투석이되고 독재자인나는맨발로난간에앉아 벽기둥에꽂힌살이되고 깊은밤이된다. 제왕은군중속에떠있는 외로운섬인가, 낡은법정의흔들리는벽돌을헐어 이한밤짐에게비문을써다오 화염인채무너지는대리석처럼깊은밤인경은 시녀같이누각에서운다누각에서떠난다 아, 한장의풀잎인가미궁속에서 내전에세워둔내동상은흔들리고 나는거기가서꽃힌비수가되고 한밤동안석단을내리는물든가랑잎에 붉은용상은젖어 우산을들고제왕은운다헤맨다. ++++ ◈동아일보 ++++강설기<김광협>| 눈은 숲의 어린가지에 흰 깁을 내린다. 프로스트씨도 이제는 말을 몰고 돌아가버리었다. 밤은 숲의 어린 가지에 내리는 흰 깁을 빨아먹는다. 흰 깁은 밤의 머리를 싸맨다. 설레이던 바람도 잠을 청하는 시간 나는 엿듣는다. 눈이 숲의 어린 손목을 잡아흔드는 것을 숲의 깡마른 볼에 입맞추는 것을 저 잔잔하게 흐르는 애정의 일월을 캄캄한 오밤의 푸른 박명을 내 아가의 무량의 목숨을 엿듣는다. 뭇 *아들이 등을 키어 들고 바자니는 소리를 씩씩거리며 어디엔가 매달려 젖빠는 소리를 나는 엿듣는다. 숲가에서 나는 너의 두개의 유치를 기억한다. 너의 영혼이 지상에 잠시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너의 다스운 입김의 아침의 이슬로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생명의 빛이 너의 눈동자에 깃들여 있었음을 기억한다. 너의 손을 내저어 대기를 흔들었음을 기억한다. 비록 부둥켜 안아 너의 보행을 연습시키었다 할지라도 너의 발을 디뎌 지구를 느끼었음을 기억한다. 너의 언어는 무에 가까왔을지라도 체득의 언어였으며 너의 사색은 허에 이웃했을지라도 혈육을 감지하는 높은 혜지였음을 기억한다. 잃어버린 모든 기억들을 나는 상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상기 단 한가지의 죄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숲가에서 나는 너의 두개의 유치를 기억한다. 눈은 숲의 어린 가지에 흰 깁을 내린다. 내리어라, 내리어라, 내리어라 밤이 눈의 흰 깁을 빨아먹더라도 그의 이마에서 발끝까지 와서 덮이어라. 온유의 성품으로 사풋사풋 내려오는 숲의 모성이여 숲은 내 아기의 변모 곁에 서면 세월이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 역사가 장신구를 푸는 소리들 시름에 젖은 음절로 되어 꽃잎처럼 흩어져 기어다닌다. 괴괴한 이 밤의 얼어붙은 지류에서 서성이는 나의 *읍, 나의 기쁨 내가 내 자신과 내 아가와 인류에게 가까이 돌아가는 청징하고 힘있는 내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상기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상기 단 한가지 죄의 의미를 모른다. 내 숲이여, 내 아가야, 내 자신이여, 내 인류여 나는 참으로 단 한가지 죄의 의미를 모른다. ++++ ◈서울신문 ++++산에 가서<강희근>| 나이 스물을 넘어 내 오른 산길은 내 키에 몇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어느해 여름이던가, 소고삐 쥔 손의 땀만큼 씹어낸 망개 열매 신물이 이 길가 산풀에 취한 내 어린 미소의 보조개 에 괴어서, 해 기운 오후에 이미 하늘 구름에 가 영 안오는 맘의 한 술잔에 가득 가득히 넘친 때 있었나니. 내려다 보아, 매가 도는 허공의 길 멀리에 때 알아, 배먹은 새댁의 앞치마 두르듯 연기가 산빛 응달 가장자리에 초가를 덮을 때 또 내려가곤 했던 그 산길은 내 키에 몇자는 넉넉히도 더 자란 솔숲에 나 있었다. ++++ ++++육성<김화영>| 죽음과 이웃하는 미로의 굽이마다 고단한 등심지에 불을 혀듯이 소스라쳐 깨어나는 머나먼 나의 내실 창 밖으로 향기처럼 스치는 운행의 꼬리 소리 그늘에 쓸려오는 것은. 가혹한 연대의 지층을 흔들며 소리도 빛도 부서져 허무는 내 육신의 검은 벽에, 보석은 새도록 숨찬 날개를 치고 있다. (아아 잠이 오듯 모래톱에 스며 오는 것. 울타리마다 태양이 무성하게 피어난 내 야생의 농지 에서 불어오는 바람결) 불지짐같이 절여오는 입술에는 푸른 잇자욱 잇자욱 마다 무게를 멋고 웃는 꽃잎의 음악이 시방 저 오랜 의미의 잿더미에서 인연과 신앙의 사슬을 끊고 황량한 새벽을 차고 오른다. 제단의 불을 가꾸시듯 어머니, 당신이 가꾸신 악사에는 모음의 가지마다 많은 것이열려 남풍이 구릉을 넘어와 사철 별빛으로 입맞춤하고 무봉의 날빛 서슬마자 요령으로 울리는 신선한 겨울 과일. 어머니 이 중력을 벗어보린 순수공간의 슬기로운 문법은 당신이 옮겨심은 요술 봄모종. 찰나가 찰랑 찰랑 기슭에 닿는 다리 아래 수부여 너는 보았는가. 날개 소리가 묻어나는 시간의 피부를. 이슬같이 깨어지며 마주치고 헤어지는 우랄 알타이 신명의 이온을. 시민권과 형용사와 고독과 신문지가, 입맞춤이 역사책과 진달래 꽃은 음계를 퉁겨 날아 오른다 어깨를 부빈다. 손을 흔든다. 기억의 밤이여. 아는가. 그것은 낙원의 혼돈인 것을. 그것은 아름다운 부재인 것을. 어쩌면 그것은 너와 내가 넘어든 무한의 기슭 시인의 무덤 위의 환한 꽃가지를 들고 있는 한그루 나무일 것을. ++++ ◈한국일보 ++++아내의 눈은<이해녕>| 아내의 눈은 주판알이 오르내리는 만큼이나 많은 세상사를 알아서 태산같이 젖어있는가. 우리 사는 일은 고운 물살 따위에도 밀리는 이파리같이 부침이 잦아서 어찌보면 샛바람 같기도 하고 시든 꽃대 위로 기어다니는 커다란 착각 같기도 하고. 안개 서리듯, 안개 서리듯 고추처럼 매운 세상이 아내의 눈에만 와닿아서 그렇게 젖어 있는가. 젖어 있는가. ++++ ====1966년==== ◈경향신문 ++++횃불의 노래<노익성>| 1 바람이 분다. 목탄으로 그린 고호의 보리밭, 베리케이트가 녹슬어가는 회색판화의 한복판을 푸른 강줄기가 흐르고 있다. 물살에 비친 까마귀의 검은 그림자……. 부리에서 듣는 핏방울이 낭자하게 벼랑을 적시고 임리하던 낡은 전설의 비탈길, 얼음 풀리는 아까시아 언덕에 등을 켜둔 유랑의 배는 시방 목적지도 없는 돛을 달고 새벽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2 그날, 우리는 밤이 이슥토록 「카페」에 앉아 있었지. 푸른 카멜레온이 기어다니는 창가에서 연거푸 담배연기를 뿜으며. 젊은 아폴론과 더불어 마주드는 술잔에는 붉은 포도주가 넘쳤네. 나는 그것을 사양치 않고 받아마셨지. 취하더군. 시간의 탓인지? 자부름에 지친 탓인지? 피로한 눈들은 하나둘씩 감기며 고향의 머언 바람기에 젖은 꽃잎 속으로 떨어져 갔네. 3 그러나 이제는 나도 돌아가야지. 남은 술기운으로 키를 잡고 노를 저어 토로야의 언덕으로 돌아가야지. 밤이 막 새려는 조국의 강물 위에 달빛은 무더기로 쏟아지누나. 이 목메인 노래의 뒷골목에서 횃불을 얼마나 뜨겁게 타고 있을까? 초병이 잠든 무너진 다릿간에 피흘리며 돌아온 후조의 날개. 그 부서진 깃털로 하늘을 가리우고 피닉스는 탄피 속에서 울음을 키우고 있다. ++++ ◈동아일보 ++++빙하기<이가림>| ―쟝․바띠스트․클라망스에게 그 헐벗은 비행장옆 낡은 예레미야병원 가까이 스물아살의 강한 그대가 죽어 있었지. 쟝․바띠스트․클라망스 스토브조차 꺼진 다락방 안 추운 빙벽 밑에서 검은 목탄으로 뎃상한 그대 어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키리만자로의 눈속에 묻혀 있는 표범이다. 빛나는 대리석 트르소의 흰 손이 떠오르지. 지금 낡은 예레미야병원 가까이의 지붕에도 눈은 내리고 겨울이 빈 나무허리를 쓸며 있는 때, 캄캄한 안개 속 침몰하여 가는 내 선박은 이제 고달픈 닻을 내리어 정박하고서 축축히 꿈의 이슬에 잠자는 영원인 것을, 짙은 밤부둣가 한 모퉁이로 내 아무렇게나 혼자서 떠나보네. 갈색 머리 흑인녀자의 서러운 이빨같이 서걱이는 먼 겨울밤바다 살갗은 유리의 달에 부딪쳐 바스러지고 죽음보다 고적한 외투 속의 내 사랑은 두주일이나 그냥 있는 젖빛 엽서 나목 끝에 마지막 한창 가랑잎새로 지는 것을 쓸쓸히 웃으며 있네. 지난 쌩․마르뗑의 여름 밤주막에서 빨갛게 등불을 켜 달고 여린 별빛들이 우리 잔등에 떨어져 와 닿는, 들끓는 소주를 독하게 마시며 울었지. 쟝․바띠스트․클라망스 그대 건강한 의사가 되겠다고 여름내 엄청난 야망은 살아 자기 안의 한무더기 폭약에 방화도 했지만 참혹하게 파손되어 간 내실이었음을, 어느 저녁 식탁에선가, 눈물 글썽이게 하는 그대 슬픈 소식을 건네 들었지. 지금은 옷고름처럼 나부끼는 달빛에 젖어 마른 갯벌 바닥으로 배회하다 무릎까지 빠지는 맨발의, 괴로운 밤게(해)가 되어서 돌아오는 조금씩 미쳐가며 나는 무서운 취안인 채 황폐한 자갈밭을 건너 흐린 가스등 그늘이 우울한 시장가에서 눈은 내리고 하얀 수의입은 천사처럼 잠시 죽어봤으면 생각하다가 포효의 거대한 불꽃으로나 멸망하기를 소망하다가, 아아 자꾸만 목이 매이고 싶어지는 내 고단한 목관의 노래는 떨려 번뇌의 회리바람에 은빛 음계들이 머리칼마다 흩날리며 있네. 그 드빗시 찻집 유리 속의 금발이 출렁이는 인형은 젖은 눈에 성애 낀 창밖을 보고 수런대는 목소리들 잔둘레로 넘쳐나 비듬처럼 쌓여 가는데 잊히인 의자 아래 이랑져오는 음악의 꽃빛 눈부시는 바람결 소리여, 이 침전하는 장송의 파도가에 앉아서 단 한번 고운 색깔이 아롱진 어안의 나는 뜨거운 두 손으로 피곤한 이마를 묻어 보네. ++++ ◈서울신문 ++++바람 앞에서<문효치>| 해 어스름, 구름 뜨는 언덕에 너를 기다려 서겠노라. 잎 트는 산가, 옹달샘 퍼내가는 바람아. 알록 알록 색실 내어 앞산 바위나 친친 감고 댓가지 풀잎에 피리 부는 바람아. 꿈꾸는 잎파리의 아우성을 하늘에 대어 불어놓고 보일듯 말듯 그림그리어 강물에 풀어가는 색바람아. 감기어라 바람아, 끝의 한오라기까지와 기다리며 굳은 모가지에 휘감겨 네 부는 가락에 핏자죽을 쏟아놓아라. 허물리는 살빛을 색바람아 감고 돌아 네 빛 중 진한 빛의 뜨는 달의 눈물을 그려봐라. 너를 기다려 어두움에 서겠노라. 어디선가 맴도는 색바람의 울음아. ++++ ◈조선일보 ++++빗 속에 연기 속에<권오운>| 1 빗 속에 연기 속에 피곤한 아이들이 목마를 달리며 잃어버린 시간의 목발을 던진 위험하던 그 순간의 바람을 타고 아이들은 나부끼고 있다. 노란 피부 위를 달리던 언젠가 검은 전운의 냄새와 지층을 스며온 온갖 향기의 시새움. 아이들의 시력이 닳은 남행열차의 연기 속에서 자꾸만 석탄가루를 핥아 넘기던 하얀 이빨. 밤이면 커다란 도둑괭이가 걸어 다니는 시장 골목이나 은행의 돌담 밑에서 또 그렇게 아이들은 변모하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가랑잎의 그 으스러진 초록바다 까실한 입술을 걷어 올리며 어머니는 불을 지핀다. 그때의 내 살이 고여있는 어머니의 손은 핏발 선 나의 눈을 비벼준다. 뼈 속을 훑어내는 어머니의 손은 아침 이슬밭가 빛나게 닦아 놓은 나의 초롱꽃. 백양나무 침착한 그늘에서 크는 꽃의 붉은 심장이여. 2 비가 내린다. 문득 잠깨어 있는 국경선에 비는 내린다. 4시를 항고 속에서 끓고 있는 휴전을 달래며 비는 질척인다. 온갖 인종의 불을 넣어 먼 산의 펄펄한 바람 속을 달리는 차량의 불 타는 꽁무니에 연기는 살아 오른다. 빗 속에 살아 오른다. 내 의지의 금빛 열매를 매단 능금가지 끝에 외곣으로 헤매는 카오스의 나비떼 나의 손은 나비를 따라간다. 연기의 그림자 속을 허우적거린다. 나의 손은 살아 오르는 연기, 살아오르는 나비. 내 피부에 내려와 비를 적신다. 내 가슴에 들어와 비를 마신다. 3 한여름내 서슬이 문드러진 모래알의 기억이여. 진홍의 땀방울 속에서 인정을 뽑아내던 골병든 육신이여. 세상의 커다란 어느 화살을 받았는가. 낙수에 머릴 푼 춤추는 저녁답 입맛 다시 듯 울고 있는 단풍나무로 하여 가을은 멍든 산악이 되었다. 피곤한 아이들이 나부끼듯 산악을 치받치는 빗 속의 가을 연기. 바람 몰아 입술을 식히는 아이들과 무심한 모래알의 통화는 얼마나 헤어날 수 없는 사랑빛인가. 저만치 물러서는 방종의 뜰에서 지금 무한한 나의 겨냥점에 불을 일구고 날으는 저 푸르른 바람이여. 가을잎 함께 멀어져간 나의 머리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4 빗 속에 푸른 연기 속에 피곤한 아이들이 목마를 달리며 위험한 순간의 바람을 타고 아이들은 교실에서 가꾼 여력의 체중을 나부끼고 있다. 속 타는 가을 강 언저리에 밤을 내리고 하늘은 어디만큼서 또 출렁이고 있는가. 모든 밤은 가장 어두운 혓바닥을 내어 비를 적신다. 이 연기의 깊이를 가눈다. 차츰 싸늘한 언덕에서 돌아가는 모가지 손발이 짧아 비척이는 이 가을에 비개어오면 하늘이여, 집중의 모든 바람이여. 속 깊이 나를 알라. 나는 찢어지는 모국어를 부둥켜안고 황금의 화살이 질러가는 저 언덕의 젖은 공기 속에 나의 가장 아름다운 출발을 둔다. ++++ ◈중앙일보 ++++밀림의 이야기<조상기>| 어두운 강변에서 피묻은 손을 씻고 돌아와 내 가난한 조국의 꿈을 밝힐 때, 밤은 고요의 대안에 서서 돌아누운 산하를 이야기한다. 밀물에 쓸려온 궂은 날의 전설도 눈을 감는 지금은, 귀먹은 땅의 잠든 산하여, 꽃으로 문지르는 아픔을 알리라. 잊어버린 노래가 남아 메아리로 살아서 돌아오는 골짜기 날으는 비둘기떼 나래를 치고, 다시 개어오르는 하늘 밖 차고 슬픈 비정의 거리에 달빛만큼 시린 사랑을 알게 한다. 목숨 있는 나무 밑에서 기찬 사랑을 이야기해도 어쩌면 하나일 수 없는 우리들, 벽으로 마주서는 자유의 깃발아래 무어라 미소로 접은 약속을 놓고 밤이면 쭉지 부러진 비둘기같이 우는 것일까. 때때로 화약냄새 휘두르는 전화의 밤은 길고 소망으로 바래운 내 10월의 기다리다 돌아선 캄캄한 둘러리 그리운 이야기는 눈을 감는다. 어느 날인가, 흐르는 강물의 유역에 서서 꽃잎으로 띄워 보낸 나의 연가여. 너는 알리라. 씨 뿌리던 긴 이랑의 사이 왕래하던 향수를, 그리고 그때, 내 한 뜻 이름 있는 조상의 피로 새겨 놓은 비석의 의미를 너는 알리라. 어제와 오늘을 사려 깊은 수풀이 이야기해도 지축 휘어나간 동극의 밤은 어디쯤 밝아오는 세계의 찬란한 새 아침을 기다리는가. 바람부는 내안에 서서 마지막 벗의 유언을 기억하면 눈시울에 어리는 고향의 어머니. 새 수풀과 꽃과 전설의 출렁거리는 슬픈 자유가 살아 있는 이유를 알게 한다. 피부가 검은 이국병사는 그리운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밤은 그들끼리만의 사랑으로 열린 외따른 길이었다. 목숨은 가늠자와 방아쇠울에 걸어도 밤은 그들끼리만의 꿈으로 열린 외따른 길이었다. 머언 산정의 바람기에 얼어서 온종일 찌들은 나의 영혼은 유혈로 번지는 노을밭에 엎드려 시방, 안개와 어둠의 벌판을 지나 돌아오는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저기, 피안의 밖으로 회한의 눈물과 소망의 세월이 피묻은 전설을 이야기하고 차라리 피울음으로도 달래지 못할 죽음보다도 오히려 영원한 나의 조국. 아직도 귀먹은 땅의 잠든 산하여. 태양도 외면한 사지에 얼마만한 공리가 사선을 지나 꽃으로 서는 걸까. 어두운 강변에서 피묻은 손을 씻고 돌아와 내 가난한 조국의 꿈을 밝힐 때, 밤은 고요의 대안에 서서 돌아누운 산하를 이야기한다. ++++ ◈한국일보 ++++바람속에 서서<채규판>| 나는 숱한 지느러미로 꽉 찬 내부에 섰다. 그 중에서도 길이 잘 든, 불티가 쌓이는 광장이다. 힘이라던가, 아름다움이라던가, 하는 사랑의 의지들을 나는 가끔 손에 담는데 그것들은 곧, 무수한 출범의 까닭을 만든다. 또한, 톱니가 많이 난 가슴을 갖고 있어서 그 가슴은 피로할 줄을 모르며 산란하는 철이 아니래도 항시 별이 든다. 그러므로, 바다의 난간을 좁히며 열리는 문, 트이는 빛을 아, 가장 가까운 둘레에서 시작하는 소중한 작업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 수런대는 낙과의 틈을 비집고, 비로소 오는 풀씨의 새벽이여. 찰나를 잇는 징명한 음악이 기려울 때, 네 귀 반듯한 티켓을 주고, 행복을 살수는 없을까고 조바로울 때눈물알의 표피에 접히는 참 건강한 안식이여. 순히, 꽃잎새와 꽃그늘의 반조같은 것이 안으로 물살져 흐르는데 조리개를 통해 빛나는 환희의 원시림, 밀밭이 넘치는 행길을 건너서 아니면, 부서져 나간 첨탑 모서리로부터 바람은 나린다. 마침내, 칭칭 감아 조이는 비옥함 속에 서서 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친구여, 일찌기 창을 열고 조금 잡아 넣었던 신의 오인은 무슨 색조의 바람일까, 고. 그 바람의 손짓은 불모이기를 거부하는 나의 온 몸의 털끝에 숨 쉰다. 그리하여, 나는 노래하고 미소한다. 숱한 지느러미와, 길이 잘 든 불티의 결집에 갇혀서 조금씩 알아져 가는 생명의 시원을. ++++ ++++산색<문효치>| 당신의 입김이 이렇게 흐르는 산허리는 산빛이 있어서 좋다. 당신의 유방 언저리로는 간밤 꿈을 해몽하는 조용한 아우성의 마을과 솔이랑 학이랑 무늬그려 도자기 구워내다 새벽 이슬 내리는 소리. 오월을 보듬은 당신의 살결은 노을, 안개. 지금 당신은 산빛 마음이다. 언제 내가 엄마를 잃고 파혼당한 마음을 산빛에 묻으면. 청자 밑에 고여있는 가야금 소리. 산 빛은 하늘에 떠 돌고 돌다가 산꽃에 스며 잠을 이룬다. ++++ ====1967년==== ◈경향신문 ++++빙하의 새<윤주형>| 빙하의 끝에서 나의 한마리 작은새는 불씨의 이삭을 물고 온다. 겨울에 눈멀어가는 착한인류 그 마지막 몇 사람의 일초를 바람모리에서 되살려, 외로운 길이 가을 빗속을 달려가듯이 빠져가버린 나의 치열을 나의 안개 껴 젖은 전생애를 또한번 물고 온다. 방금 열린 탑의 중심에서 내 천년의 구름송이는 불과 얼음의 삶을 다시 이 땅위에 던지고 저녁 연기를 나눠 마시며 당신과 내가 잠들었음을, 고요히 머리카락을 헝클었음을 빙하의 끝에서 작은 겨울 새는 당신의 건강한 체취와 더불어 따습게 달아온다. 겨울의 중압에 눌려 납작해진 인류여. 불과 얼음을 나란히 끊임없이 되풀이 하듯이 늘 귀로에 만져보는 사랑과 번민의 여윈 촉루 불의 소용돌이에선 소기의 극약을 뼛 속에 갈아넣고 바람의 연한 호송을 바라지 않았나, 내 목발을 삐걱대면서도 유랑의 물결에 떠 있었고 그 때 슬기로왔으나 피치 못한 방종 지금 또 내 겨울 새는 야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빙하끝 에서 생명의 불씨를 물고 온다. 부리에 가득히 물고 온다. 꺼져가던 여리고 여린 목숨을 되살려 당신과 함께 내 그림자를 띄워보낸 가을 강 위의 목마른 높은 바람을 불러세우며 발갛게 빙하끝에서 내 인류와 치열을 당신의 젖은 눈매 와 내 천년의 불씨를, 당신과 나의 새 원천을 부리 가득히 물고 날아온다. ++++ ◈대한일보 ++++신병<권오학>| 1 떠나던 역전마당에 그 코스모스같은 아기손을 보았지. 고무신이 벗겨진 그 아기발을 보았지. 뜨거운 여름밤 내내 팥죽빛 고단한 숨결을 다 주던 아내의 선잡 깬 눈구석을 보았지. 우리는 다같이 노래도록 자빠진 고목나무의 종교를 배우며 채전의 풋나물 한 줌도 우리 살림 전부의 에피소드. 자꾸 퍼낸다, 아내는 그이의 가슴보다 무겁ㄱ도 더 깊은 곳에서 조석의 살얼음으로 씻어내는 보리쌀같은 쌀비듬. 생각하면 역전마당에 해바라기 푸픈 꽃대궁같던 아내 아내 등에 피어있던 아기손을 보았지. 2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다 헤집어 놓은 불침의 새벽 무슨 예감으로 와 닿은 까마귀 까마귀는 혼자서 우짖지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 소리없이 타는것 뿐이다. 하얀 백금반지의 눈동자 속으로 행렬은 포복으로 흘러가고 또 철야한다. 안겨서 아늑한 너의 품이나 지루하지 않은 네 무변의 음성 속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건너갔다. 찌금 얼마 남지않은 나의 나팔소리도 뒤늦은 출발로 건너간다. 허지만 단 십분간의 각양의 사랑이 피는 연병장 구석에서 까마귀야 떨어져다오. 킬리만자로의 깊은 골짜기로 수염 긴 노인처럼 쓰러져다오. 평화를 지키든지 음악을 지키든지 아리랑이 은은히 퍼지는 내 고향의 겨울 속으로 빠져다오. 3 그때 가장 소중한 것이 내리는 역전마당에 아기신처럼 뒹구는 헌군화 한 짝을 보았지. 먼 지층으로부터 소리없이 와 닿은 마른 빵 속의 물, 물소리 아내의 미묘한 눈구석에서 맴도는 그 물소리를 들었지. 야산의 풀꽃 옆에서도 만날 수 없는 꿈속 뜨거운 나의 외박. 오늘은 저 산정에 수없이 반복되는 착각의 꽃이여. 매일을 나의 욕망중에서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무엇인가. 확실한 선언도 없이 연록색 이파리가 피어나는 아내의 육신처럼 나를 조용하게 하는 것은 없지. 항상 나는 생각하지. 언젠가는 돌아와 줄 코스모스 아기손이 나부끼는 나의 열차를― ++++ ◈동아일보 ++++우리들의 양식<한수현>| 모두 시들고, 침략처럼 활발한 저녁 내손은 외구산 베니어를 만지면서, 귀가하는 길목의 허름한 자유와 뿌리 깊은 거리와 식사와 거기 모인 구리 빛 건강의 힘을 점지 한다. 톱날에 잘려지는 베니어의 섬세. 쾌락의 깊이보다 더 깊게 파고 들어가는 노을녁의 기교들. 잘한다 잘한다고 누가 말했어. 한 손에 석간을 몰아쥐고 빛나는 구두의 위대를 남기면서 늠름히 돌아보느 젊은 아저씨. 역사적인 집이야, 조심히 일하도록. 흥, 나는 도무지 엉터리 손발이고.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 함마소리, 자갈을 나르는 아낙네가 십여명, 몇사람의 남자는 철근을 정돈한다. 순박하고 땀에 물든 사람들, 힘을 사랑하고 배운일을 경멸하는 사람들, 저녁상과 젊은 아내가 당신들을 기다린다. 일찍 돌아간다고 당신들은 뱉어내며 그러나 어딘가 거쳐서 헤어지는 그 허술한 공복, 어쩌면 번쩍이고 누우런 연애. 거기엔, 입, 입들이 살아있고 천재가 살아있다. 아직은 숙달되지 못한, 나의 음주, 나도 또한 제왕처럼 돌아갈 것이다. 늦도록 잠을 잃고 기다리던 내 아내 문밖에 나와 서 있는 그 사람, 비틀거리며 내방에 이르면 구석 어딘가에 저녁이 죽어있다. 아아 내 톱날에 잘려지는 외국산 나무들, 외롭게 잘려서, 얼굴릉 내놓은 김치, 깍두기. 차고 미끄러운 된장국 시간. 베니어는 잘려 나가고 무거운 내머리, 어제 잃은 페이지가 잘려나간다. 허리 부러진 흙의 이야기. 활자들도 하나씩 기어서 달아나는 딩구는 낱말, 그 밥알들을 나는 먹겠지. 상을 물리고 건방진 책을 읽기 위하여 나는 잠시 아내를 멀리하면 바람이 차네요 그만 주무셔요. 퍽 언짢은 자색 이불속에 누워 아내는 몇차례 몸을 뒤채지만 젊은 아내여, 내가 들고오는 도시락의 무게를 구멍난 내 바지가랭이의 시대를 그러나 나는 읽고 있다. 모두 서둘고, 침략처럼 활밠한 저녁. 철근공, 십여명 아낙네, 스스로의 해방으로 사라진뒤, 빈 공사장에 녹슨 서풍이 불어 올 때 나도 일어서서 가야 한다면 계절은 몰래 와서 잠자고, 미움의 짙은 때가 쌓이고 돌아볼 아무런 역사 마저 사라진다. 목ㅇ데 흰 수건을 두른 저 거리의 일꾼들 담배를 피웜 물고 뿔뿔히 헤어지는 저 떨리는 민주의 일부, 시민의 일부. 우리들은 모두 저렇게 어디론가 떨어져간다. ++++ ◈서울신문 ++++찬 가<박상배>| 잘난 아이들과 더불어 신선한 노래를 부르다가 우린 창을 열고, 잠시 사회의 웃음을 나눈다. 물려 받은 언어 안에 아침 바람을 불어 넣거나 더러 햇빛 같은 걸 털어 넣기도 하다가 우린 가만히 성실의 무게를 천칭에 얹어 본다. 이슬에 젖은 사물 사이로 이제막 날아드는 본연의 새들처럼 혹은, 꽃으로 빚은 개념의 그 핏물처럼 우린 저마다 얼마씩은 어깨를 뒤채기며, 행복을 읽다가 그리고, 은총의 맑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가 우린 끝내 사유의 빗장을 풀고, 집을 나선다. 우린 앞서거니 뒤서거니 챗빛을 추격하다가 우린 또 어느 구멍에선 이따금씩 잠복하거나 하다가 우린 우린 느닷없이 수목이 되어 두 팔을 연다 기름묻은 질문을 여직 믿음의 뒤켠에 꽂은 탓일까 아니면, 미지의 그 후른 약속 탓일까 우린 손과 발을 부비며 난해이 흙과 바람을 더욱 애무한다. 가령, 털이 난 정령들이 모호한 눈알을 굴리면서 복된 제단에서 걸어나와 두개의 자연을 떨어뜨릴 때 우린 워낙 하나이면서 불현듯 둘이 되는 것이다. 우린 우린 맛있는 자유를 실컷 들이키는 것이다. 저 열려 있는 돌과 장미의 입들을 보라 지혜를 끓이는 큰 넓이 속에서 저것들은 서로 수런대고 있다. 저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부추켜 더러 우리를 경악케 하다가 저것들이 일제히 어두운 저녁 저녁 속에 들앉아, 우리를 거부할 때 우린 본질의 집을 향해 돌아선다. 보이지 않는 웃음에 흔들리며…… 우린 다시금 평등한 불의 힘을 찾는다. 그리고 출렁이는 가능을 통치의 수작을 배운다. 우리의 어깨 속을 빠져나온 따스운 파도들이 모여 거기서 하나의 아이가 또 돋아나올 때까지…… ++++ ◈조선일보 ++++대운동회의 만세소리<강인한>| Ⅰ 여기서는 세기의 어둠을 톱질하는 소리가 잘 들린다. 아주 잘들린다. Ⅱ 폭풍더미의 사이렌이 병사들의 가슴을 후벼팔 때 땅굴 속 그는 수정 같은 설편을 보았다. 겨울이 없는 땅에서, 그의 고향은 얼펄 솟아오르고 있었다. 콘크리트의 균열진 음색으로 노래하라. 화약을 먹고 피는 꽃이여 귀기 서린 진홍의 꽃이여. 그때 그가 마지막 본 음울한 하늘에서는 문명한 새들이 날고 있었다. 새들은 비명보다 진한 폐허를 교미하고 있었다. 그것은 암벽을 녹이는 뜨겁고도 뜨거운 정염이었다. Ⅲ 유년 시절의 대동회는 즐거웠다. 비취로 물든 건간항 하늘 아래에서 모자를 제껴 쓰고 말을 달렸다. 북소리 북소리, 땅 젖은 환호성을 펄럭이며 둥둥 두둥둥 울리는 북소리, 쇠북소리, 달리는 말굽 소리 아편꽃이 흥건한 대지에 드넓은 만주의 호밀밭에 울려퍼지는 고구려의 고동소리. Ⅳ 흥정을 마친 상선은 돌아오지 않고 남지나해 더운 몸부림이 잠을 쫓는다. 해안을 껌벅이는 새들의 붉은 눈빛이 머루알처럼 익어만 가고 아름드리 기둥을 향하여 벌떼처럼 아이들은 모여들었다. 유년시절의 대운동회는 즐거웠다. 사탕엿보다 달고 맛난 고함에 묻혀 그는 눈부신 태양을 이마에 댄 채 팔을 벌렸다. 그 가늘고 세찬 팔뚝에 엉겨붙은 평화를 힘껏 포옹했다. 몸재만한 기둥은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조국은 조금씩 그렇게 균열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년시절의 대운동회는 즐거웠다. 고원을 치달리는 우람한 승전고, 뽀얗게 날리는 햇빛가룬를 몸에 칠하고 삼림처럼 무성한 고구려의 사내들……. Ⅴ 삼림처럼 무성한 우계가 그의 우러를 눈망울에 어리우고 휴전고지의 캐터필러 자욱마다 쑥꽃이 피었다 지고 엄청난 사연으로 초병은 울고 있었다. 짐승처럼 울고 있었다. 유성이 가만가만 어꺠에 내려앉는 겨울 하이얀 눈구렁 속에서 조국은 떨고 있었다. 겨냥해야 할 진정한 적이 없는 지도 위에 엎드려 초병은 비운을 울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Ⅵ 무감각한 함성과 파도와 잘못 말려 들어간 꿈속에서처럼 그는 비운의 상처를 끄을고 포복해 갔다. 이글대는 태양을 이마에 느끼고, 그가 드디어 곤두서 있는 기둥나무를 끌어안았을 때 내뻗은 두 손은 갑자기 가지를쳤고, 그리하여 수많은 촉수를 지닌 벌레가 되어 그는 태양을 침몰시키고 있었다. 서서히 그 아름드리 기둥나무는 그의 치미는 힘에 의하여 굴복하였다. 둥둥 울려퍼지는 함성은, 북소리는 이내 그의 뜨거운 맥박이 되어 기운차게 뛰놀았고, 유년시절의 대운동회는 즐거웠다. 그때 그는 보았던 것이다. 어두운 남지나의 적의에 찬 땅굴 속에서 꿈틀거리는 고향의,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하이얀 설편을 보았던 것이다. 유년시절의 대운동회, 쏟아지는 복소리보다 흰 고향의 눈을. Ⅶ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따. 끊임없이 해안선을 날며 불꽃같은 새들은 교미를 하고 끊임없이 세기를 절단하는 톱질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콘크리트의 균열진 음색으로 노래하라. 화약을 먹고 피는 꽃이여 귀기 서린 진홍의 꽃이여. 그 힘찬 고구려 사내의 포옹은 끈끈히 굳어버리고 비린내를 풍기며 그는 한 마리의 갑충이 되어 자빠지고 말았다. 톱질소리는 더 크게, 더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폭풍더미의 사이렌을 항상 불어대는 조국의 새햐얗게 눈 덮인 군사분계선의 어느 초소에 유성이 가만가만 내려앉을 것이다. 잃어버린 기억의 고원에 도 아름다운 겨울이 반짝일 것이다. 어디선가 병사는 조국을 어깨에 매고 비운을 겨냥할 것이다. 짐승처럼 몸부림 칠 것이다. Ⅷ 먼데서도, 선택된 전쟁이 끝나가고있는 아주 먼데서도 세기의 어둠을 톱질하는 소리는 잘 들린다. 아주 잘 들린다. 대운동회도 저물고, 즐거웠던 유년시절의 대운동회도 이미 저물고 아이들의 만세소리만 스산하게 스산하게 파도에 씻기운다. ++++ ◈중앙일보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오탁번>| 눈을 밝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무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동안 땅에 붙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캄캄한 시간 바깥에 숨어있다가 발굴되어 건강한 탄부의 손으로 화차에 던져지는, 원시림 아아 원시림 그 아득한 세계의 운반소리. 이층방 스토브 안에서 꽃불일구며 타던 딴딴하고 강경한 석탄의 발언. 연통을 빠져나간 뜨거운 기운은 겨울 저녁의 무변한 세계끝으로 불리어 가 은빛 날개의 작은 새, 작디 작은 새가 되어 나무가지 위에 내려앉아 해뜰 무렵에 눈을 뜬다. 눈을 뜬다. 순백의 알에서 나온 새가 그 첫번째 눈을 뜨듯. 구두끈을 매는 시간 만큼 잠시 멈추어 선다. 행인들의 귀는 점점 맑아지고 지난 밤에 들리던 소리에 생각이 미쳐 앞자리에 앉은 계장이름도 버스 스톱도 급행번호도 잊어버릴 떼, 잊어버릴 때, 분배된 해를 순금의 씨앗처럼 주둥이 주둥이에 물고 일제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개짓. 지난 밤에 들리던 석탄의 변성소리와 아침의 숲의 관련속에 비로소 눈을 뜬 새들이 날아오르는 조용한 동작가운데 행인들은 저마다 불씨를 분다. 불씨, 불씨를 분다. 행인들의 순수는 눈내린 숲속으로 빨려가고 숲의 순수는 행인에게로 오는 이전의 순간, 다 잊어버릴 때, 다만 기다려질 때. 아득한 세계가 운반 되는 불씨, 불씨를 분다. 은빛 새들의 무수한 비상가운데 겨울 아침으로 밝아가는 불씨를 분다. ++++ ◈한국일보 ++++목선들의 뱃머리가<이건>| 가장 밝은 귀로 듣는다. 목선들의 뱃머리가 미지의 물살을 가르며 전진해 가는 소리. 언덕 많고 자갈많은 준험한 비탈길에서 부서진 나의 구두가 어둠 속에 절망한 내 손이 아무런 언질도 없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항상 밖에서만 울고 섰다가 피어 오는 무한으로 풀려져 가는 소리. 가장 고음의 종을 울려라 지푸른 유월의 초원으로 흩날리며 쏱아지던 행운의 빛발 속에서 맥빠진 채 쉬고 있던 청춘의 잔잔한 시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억압 속에 어둠 속에 오랫동안 준비해 온 수천 마리 벌나비가 일제히 퍼져 나가는 아 현란한 무지개의 시작애서 지나간 역사의 어둠이 거쳐 가는 동쪽 산마루에서 우리가「황무지」를 얘기할 때도 살바돌 달리의 「무너진 시간」을 예기할 때도 그 나비들과 영롱한 무지개는 목선들을 돛을 밀어갈 것이다. 절망의 흘과 바람에 빛나는 수확에 능금들을 키우기 위하여 그 능금들의 가장 환한 지속을 위하여 낮과 밤의 접점에서 잉여의 어둠이 압축된 보석들로 치장된 이 아름다운 역사의 문턱에서 가장 밝은 귀로 듣는다. 목선들의 뱃머리가 미지의 물살을 가르며 전진해 가는 소리. 밝게 트인 하늘, 살과, 피와, 행위의 풍요한 들판으로 새 손을 마련한 사람들이 떠난다. 푸른 깃발이 나부끼는 아득한 숲, 역사여 그들을 비호하라, 안착케 하라. 바람 속에 환호 속에 비굴한 역사를 떨치고 떠나고 있다, 떠나고 있다. ++++ ====1968년==== ◈경향신문 ++++귀 가<마종하>| 나부끼고 있었다. 고단한 사나이의 머리칼은 일어서고 저렇게 많이 흔들리는 것들, 내가 빈 시간 속의 복도를 울리며 돌아왔을 때 넘쳐있는 휴지통과 중중 떠다니는 기호, 깃발로 변한 커튼을 보았다. 하나의 핀에 꽃혀 파닥거리는 바람은 유리를 할퀴며 노래 부르고 저 바위의 이끼인듯 시간은 어느새 말라붙어 있다. 잃어버린 활기와 죽은 감탄시를 거느리고 나는 잠든다. 잠 속에서도 날개 달린 파도는 밀려닥쳐 우리들의 빈곤, 우리들의 허욕, 그리고 굳어진 기억의 기슭을 무너뜨린다. 맑게 씻긴 낮잠의 눈은 살아있다. 후원 가득히 햇살은 내리고 내려서 까물까물 기어다닌다. 그대는 아시는가. 오래 드러나는 저 돌들의 웃음소리와 옛 기둥에 미끌어지는 광선. 우리는 시시로 일그러지는 고전의 물결을, 시든 사랑을 보았다. 어쩔까, 어쩔까, 트렁크 속에서 때묻은 견문록들은 아직도 모른다! 아직도 모른다! 소리치고 있다. 나는 고요히 누워 있다. 어둠 속에 주린 띠를 풀며 냇물은 흘러가고 울음 속에서 내 젊음의 치켜 솟는 언덕, 그러나 내갠 즐거운 소문이 아직 곧이 들리지 않는다. 오래 잊었던 속도가 나를 경쾌하게 흔들 뿐, 웃음 속에 몸을 숨기는 일과 눈꼬리를 누르고 자기중심에 빠지느 자들. 나는 고요히 누워 있다. 빛의 촉수를 꾸부려서 접어둔 시간을 펴 보이듯 한알의 보약돌은 속에 쌓인 광선을 보여주고, 보여주고…. 침상만큼 낮게 까마귀는 날은다. 매어달린 잠든은 눈썹 끝에서 짧게짧게 쌓인다. 풀끝에서 싹 트는 폭풍, 폭풍은 내 깊은 절망의 돌을 흔들고. 드디어 밤하늘은 회복한다. 다시 돌아오는 냇물과 다시 살아오는 수단, 아, 다시 시작되는 방법을. 까마귀는 깜깜한 날개를 벌럭이며 사라져 가고 무적속에서, 아름다운 변화처럼 해는 떠 올랐다. ++++ ◈대한일보 ++++천정을 보며<정양>| 우리네 사는 일 따뜻하여 잠 아니 올 때 내 기억 밖에서 흘러가던 바람소리 어쩌다 되돌아와서 내 영혼의 우수의 석경을 닦는다. 추적추적 궂은비가 내리는 새벽에 비로소 잠이 들던 친구의 피곤한 꿈자리를 지나서 높고 가난하고 또 쓸쓸한 우리 스승의 숙명의 한많은 걸음걸이나 시늉하며 따라가다가 문득 오랫만에 참으로 오랫만에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엄청난 차부일지 어쩔지 좀처럼 요약되지 않는 우리네 사랑이여 예감이여 뉘우침이 모두 그늘이 되어 바람이 되어 쓸쓸한 휴식이 되어 아무려면 괜히 목숨이 탈까 목숨이 탈까 사랑이여! 더러는 죽고, 더러는 살아서 소식 없는 울리 곁에서 수없이 떠나간 사람들의 남긴 시간을 보자. 우리의 살다 남는 시간을 보자. 피곤한 음계를 오르내리며 한세상 가고 우리의 생활은 바람의 절망의 저 건너편에서 시작되어도 우러네 초라한 희노래락 모두 맘에 들어라. 내 기억 밖에서 흘러가던 바람소리 다시 기억 밖으로 흘러가고 모든 자랑의 사랑의 절망의 뉘우침의 저 바람소리엔 주석이 필요치 않다. ++++ ◈동아일보 ++++겨울 행진<마종하>| 어디를 가나 얼어붙은 의식의 빛나는 혼들은 있다. 눈이 와서 흰 것 뿐인 날, 까마귀의 긴긴 울음은 천길 눈구렁에 빠져 있고 우리들은, 침구와 몇 낱의 스푼 뿐으로 겨울의 낯선 도시를 진군하였다. 욕망의 군단을 이끌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유의 전리품, 그 차고 빛나는 사상은 무엇인가. 찬손을 비비고, 어깨를 펴고, 얼어붙은 목울대를 치며, 우리는 한 때, 찻집 <역마차>에서 우유빛 살들로 눈을 불었다. 벽에는 칸타빌레 흰 뼈의 눈이 내리고 우리는, 말려드는 의식의 끈을 풀었다. 불꽃 너울 거리는 스토브의 연탄은 저마다 분노를, 저맏 살해를, 활달한 웃음을 피워 올리지만 우리밖으론, 짐마차에 몸을 실은 채찍 든 아저씨가 덜그럭 덜그럭 맑은 공간을 후려치며 지나간다. 아, 따가운 충동, 우리는 일어선다. 밀폐된 유리의 문을 밀치고 우리는 빤질거리는 경험의 빙판의 길을 나선다. 지나간 말들의 울음 뒤에 진정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저 무한천공의 까마득한 하늘에서 죽은 감탄사의 눈송이는 내린다. 찢기우며, 어우적 거리며 달려온 협곡의 바람은 시시로 울며 울며 하늘로 피어오르고 우리드은 최후, 목숨의 끝간데를 밟고 지나가는 발자욱들, 그 숱한 시대의 뇌까림을 당신은 아시는가. 무분별의 종점에서 우리는 횡단하였다. 눈속의 식품사정, 그리고 지폐의 죽은 단위를 시간은 무거운 짐을 풀고 금빛 빛나는 속도를 지닌다. 갈참나무 울울한 숲길에서 기진한 우리들의 잠, 꿈 속에서도 우리는 타오르는 시대의 여기를 보았다. 밤새워 불타는 그 많은 수공들의 종이 탑. 그러나 울며 고뇌하던 옛 소년시절, 그 살아나는 운문의 맑은 가락들을 당신은 아시는가. 나는, 소리없이 와닿는 아름다운 변화, 저 획득의 기막힌 끈을 잡는다. 잊은 장신구의 슬픔이듯 무의식의 매듭을 푸는 일은 즐겁고 손거울에, 새까만 두 눈알을 띄워 본다. 푸른 공간과 새로 돋는 시간의 살 속에 갈참나무 울울한 숲길을 벗어나 우리는, 남모르는 고뇌의 반짝이는 사랑으로 우울한 도시의 거울을 윕쓴다. 머리칼 하나에도 눈꽃은 빛나 찬손을 비비고, 어깨를 펴고, 얼어붙은 목울대를 치며 ㅇ우리는 몇번이고 출발한다. 새벽에 사라진 말들의 뒤를 쫓아 마치 아침에 죽은, 저 참혹한 시대의 사나이처럼. ++++ ◈서울신문 ++++겨울 속의 봄이야기<박정만>| Ⅰ 귓울안에 눈이 온다. 죽은 그림자 머언 기억 밖에서 무수한 어둠을 쓸어 내리는 구원한 하늘의 설화. 나는 지금 어둠이 잘려나가는 순간의 분분한 낙하속에서 눈뜨는 하나의 나무 눈을 뜨는 풀꽃들의 건강한 죽음의 소생을 듣는다. 무수히 작은 아이들의 손뼉소리가 사무쳐있는 암흑의 깊은 땅속에서 몸살난 회충들은 얼마나 앓고 있는가. 사방에 사유의 충치를 거느리고 밋밋한 수해를 건너 오는 찬란한 아침 광선. 수태한 여자의 방문앞에서 나는, 청솔과 반짝이는 동전 몇잎을 흔들며 자꾸만 서성대고 있다. Ⅱ 아침 한 때 순금의 부리로 빨갛게 새들은 남은 잔설을 쪼아대고 그때 무어라 귓속말로 읽고 가는 바람의 전언. 수런거리며 은빛 비늘이 돋아 나는 수피의 깊은 안쪽에서부터 몇개 새순이 자라나고 있는가. 사람의 품사들로 점점이 물들어 가는 나의 눈과 목소리처럼 예지의 광채가 가지끝에 앵기어 비쭉비쭉 푸른 혈관이 일어서면, 저 유난히 커오르는 숨소리를 내 아내의 어린 살빛은 듣고 있다. 자꾸만 바람 뜨거운 나뭇가지 끝에서 까치들은 한 소절의 노랠 부르며 있고. Ⅲ 홀연 도련님 눈 섶위에 내려 앉는 청아한 뻐꾸기 울음소리. 봄의 젖줄을 잡아당기는 따스한 모정의 촉감을 한줄기씩 내리어 꽃대의 등심을 밝히고 섰는 어머니의 축복을 누가 알까. 가가호호 문전마다 신춘대길이라 방을 붙이고 이산에서 저산으로 옮겨 앉는 메아리. 시간은 상처난 손을 떨어뜨리며 지나가고 겨울 냉기는 땅강아지 발목앞에서 바쁘게 무너지고 있었다. ++++ ◈조선일보 ++++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저녁까지<신대철>| 하루는, 늘 흙속에서 흘속으로 출렁이는 약한 가교. 눈 가상이에 숨쉬는 세계의 놓은 혈압을 탄탄한 의욕 펴 가벼이 납득하고서 불티마저 꺼진 관능의 온돌방을 빠져나올 때 우리의 안팎으로 섬교하게 이어지는 뜨겁기만한 잎사귀와 뿌리털. 오랜만의 초조한 외출길에도 메마른 폭설은 허기처럼 산발하여 내리고, 해일위에 뜬 지구의 제 중심을 향해 우리는 가장 부지런한 자갈길을 걷는다. 안개 피어오르는 현대와 과거의 조금씩 부드러워진 여울목을 내려오르다가, 불현듯 우리는 흩어지고 겨울나무들이 최종의 잎새를 떨듯이 수심깊은 뿌리털속에서 나는 첨예한 눈을 뜬다. 허약자들이 죽어 쌓인 먼지와 모래알 껴 답답한 나목의 사회. 어딜까, 햇볕이 아직은 고여있을 토양에 정착하고자 바람의 캄캄한 틈바귀마다 내 슬기로운 탐색을 비벼 넣는다. 가벼운 압력조차 잘 느끼는 촉각을 뻗친다. 잎사귀와 뿌리털의 신비로운 기능을 번갈아 나눠하며 그후, 평범한 생활인이었던가를 귀 열어 가다듬은 이웃을위해 내 의미대로의 대답을 준다. 시간의 옆에 물러앉아 흙속으로 전화 거는 눈먼 노인이여, 우리는 똑같이 아름답고픈 현화식물 추운 모랄의 하늘밑에서는 항상 눈물 글썽여 이주하며 살아야했지. 양(*)의 밝히는 발자국의 길이를 더 좁혀 물결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군중의 황폐한 눈구석, 죽음의 골짜기를 간신히 건너 뛰면 아아 어느새 실종의 오후. 밤새의 천리성이 외로운 그림자에 축축히 젖어 허물리는 것을 또, 알고 있지. 움직일 수 없는 것 중의 화려한 것이 마침내 쓰러진 귀가길에서 자기안에 불 일궈 연소시켜도 소용없을 것을, 그러나 나는 끝까지 결빙의 내 밑바닥을 뚫어나간다. 신선한 근목이 보이잖게 찰찰 녹아있을 수원지여, 그 지하수에 이르는 난항의 뱃길은 선조가 단 하나 던져준 은근한 끈기의 반접시 썰렁한 시간 잔뼈에 떠있는 공복의 빙산을 위험하게 비켜나갈까, 나는 몇 억을 살아야 도달할 수 있을까. 하루는, 늘 흙속에서 흙속으로 훌렁이는 약한 가교. 기둥밑은 피로한 이론의 흙탕물이 괴어 있어서 머리칼에 센 힘을 추켜 세워 잔뜩 부틍켜안은 당신과 나의 허리를 나란히, 부러뜨린다. 내 중심을 떠받드는 신의 열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자른다. 잘려나간다. 생명의 돛이 재가끔 꺼져가는 동안 방종은 되살아 유리창 찬 살에 부딪는 별빛 나의 늦은 보행을 적시고, 비틀거리는 순간에 끼어드는 사상 우리의 아까이 총량은 조금씩 낮아진다. 주위는, 가까이로부터 허리는 시간의 높이와 발자국 지표위의 온갖 동작의 해체소리. 우리들의 허전한 내부와 외부 앙상한 오솔길을 물갈퀴로 내왕하던 것들은 전부, 쌀겨처럼 흩날린다. 흙속에서 씻겨나가 흩날릴 것이다. 이, 숨이 찰듯한 나의 발언을 수송하라. 수심 깊은속의 내력을 샅샅이 읽어왔을 바람이여, 오늘의 벼랑끝에서 미아가 된 나는 스물 세살의 오늘의 질문을 네 힘태로 트척한다. 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저녁까지 귀먹어가고 있을 세상의 밖에 살아있는 슬픈 내 연인에게…. ++++ ◈중앙일보 ++++선로여 우리들의 평화는<정재우>| 모두가 비비적이며 피부의 관습을 털어 내고 <…당께.>를 털어내고 <…씸터.>를 털어내고 잠깐, 완행열차의 속도를, <…씨유우.>를 털어내고 기관차의 육중하고, 우렁찬 오만은 도시를 벗어나 평행을 이으며 달려온다. 바퀴가 지나면서 기적속에 확, 열리는 거대한 문, 문이 열리며 검고 거대한 문속으로 빨려든 출렁이며, 왁자하던 우리들의 이야기며, 여인의 젖무덤에 매달린 유아의 입술, 빨갛게 꽃피던 유년의 식욕. 모두가 고독한 체 전혀 초면인 이웃과, 옆자리와 담배를 권하고, 휴식을 권하는 모두가 비비적이며 간지럽게 행동하는 사회. 지나쳐간 모든 우리들의 플랫폼의 잔모래에 떨구던 이별, 손수건은 하얀 박꽃이었지. 무성한 원시림으로 사냥나간 사내는 압록의 물을 마시며 하얀 박꽃이었지. 늘 어두운 우리들의 시야와 불안을, 그리고 기대를, 차단된 시간과 공간을 운항하는 선로여. 분주하게 스쳐간 기관차의 육중하고, 우렁찬 오만속에 확, 문이 열리면서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 우리는 선로위에 쓰러져 누운 한마리 어린 산짐승의 불운대신에 아 그 빛나는 순수대신에 어쩌다 위력앞에 흔들리는 자유. 차라리 그것은 가난하고 고독한 우리들의 지혜. 모두가 비비적이며 피부의 관습을 털어내고 선로의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서 내릴 뿐이다. 언제나 중간에서 오를 뿐이다. 가냘픈 우리들의 흉중과 손수건과 빛나며 슬픈 평화를 흔들면서. ++++ ◈한국일보 ++++재 봉<김종철>|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쉬고있다. 마른가지의 난동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내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 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 받은 아이들의 전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셀레이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양(*)잉의 고요안에 아직 풀지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의 옷을 입고 축복 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려는 직조의 방에 누워 내 동상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일을 엿듣고 있다. ++++ ====1969년==== ◈대한일보 ++++부 활<김철>| 별이 쏟아진다. 부끄러운 나의 심장 위로, 날마다 뜨거운 별이 쏟아진다.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잎마른 풀뿌리를 씹으며 나는 죽은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 마음의 혓바닥이 마르고 슬픈 용기마저 꺾이어 버릴 때까지 바람은 계속하여 불어올 것이다. 눈을 감은 나의 비탈, 무서운 폐허가 놓여 있다. 무서운 종이 돈의 마른 나뭇잎마다 눈 뜬 폐허의 폐허가 놓여 있다. 깨어진 나의 창문과 부끄러운 나의 터러운 심장 앞에 바다가 출렁인다. 거울 속의 바다. 비참한 진리. 싸움에 진 달밤이 밤의 금밭에 뒹굴고 있다. 뒹굴 수 밖에 없는 달밤의 어버이들이여. 왜 불을 퍼붓든가, 불을 뿜지 않는가. 이미 죽은 시인들의 시를 읽기 위하여 학자들의 새빨간 거짓말을 소리 내어 읽기 위하여 새벽은 새벽마다 눈을 뜨지만 부끄러운 심장은 나의 심장이다. 고독한 십장은 나의 심장이다. 이웃집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주변에서 사약을 마시는 부스럼 같은 시인들. 꽃은 더 이상 피지 않을 것인가. 씨는 더 이상 거둘 수 없을 것인가. 누가 금밭을 갈고 어여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가. 썩어 자빠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 푸르지 못한 재화의 구덩이에서 어깨춤 추는 딱정벌레들. 사람이 사람의 이마에 못을 박는다. 하늘이 슬픈 땅을 그지없이 경멸하고 있다. 하늘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린다. 비틀거린다. 가난한 달밤의 어버이들처럼 심하게 비틀거리지만 그러나 하늘은 붕괴하지 않는다. 별이 쏟아진다. 부끄러운 나의 심장 위로 날마다 어제 죽은 별이 쏟아진다. ++++ ◈동아일보 ++++후반기의 노래<송기원>| 그 하수구에서, 우리들의 하루는 오물에 묻혀 가라앉고, 물결마다 무사고의 쓰러지던 해. 반복의, 어김없는 우리는 돌아와, 단색판화속에 갇혀 뒤척이고 덜그럭이는 시간의 사슬에 몸을 묶인다. 곳곳의 빙판에는 차게, 박혀 있는 분노의 말<언어>들. 시대의 저 무력한 사내는, 골목마다 꽃잎처럼 취기를 떨군 다음 석간의 좁은 활자 속으로 숨고 거리에는 오직 하룻동안의 안일, 하룻 동안의 무사고가 뒹굴며 있을 때, 우리는 허약한 어둠을 할퀴며 타고 있는 아세치린 불꽃을 보았다. 불꽃속에서 우리들 죽어 있던 대낮의 힘은 살아 거대한 폭력의 흰 손이 되고, 번쩍이는 고가도로를, 빌딩의 안테나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우리들 모든 힘을 모아 솟구치는 저 분수를 당신은 아시는가. 퉁겨 오르는 낱낱의 물방울마다 분배된 우리들 젊음의 수천의 핀세트는 번득인다. 깝깝한 오늘의 도시의, 비로소 알 것이다. 석간속으로 숨어버린 자와 함께 그대들의 깊은 잠을 파헤치며 종전차의 경적이 울릴 때, 경적의 끝에 매달린 우리들의 출발을, 그대들은 알 것이다. 젖고 황폐한 북풍 다음, 우리들 온 몸을 달려 붙는 습기의 우울한 안개 다음, 보라. 어둠속에 묻혀 두었던 빛은 움튼다. 거리에는, 아직도 뒹굴며 있는 하룻 동안의 안일을, 무사고를. 차가운 분노의 말들을. 우리는 낱낱이 한 개의 물방울, 한 개의 빛이 되어 저 모든 것들을 파고 든다. ++++ ◈서울신문 ++++겨울외출<이활용>| Ⅰ 바람은 빈 뜰에 수선거리고 어두운 방 안에서 사랑의 불씨는 소실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서서히 숨을 거두고, 이미 유년의 여자는 깊이 잠잔다. 오래도록 설레이는 창 가에는 투명한 은백색의 성에로 착한 친구들의 얼굴을 가리우고, 방마다 우리는 촛불을 켜고, 장미의 색실 끝을 찾고, 창 밖에 남아 있는 미진한 약속. 밤 새워 눈 내린 뒤 일부러 우회하는 길목에 부딪치는 바람, 꿈같은 언약과 포옹 머리끝까지 닿아 있는 허전한 음성, 아, 어디선가 선한 임종을 소리. 모색의 손끝에 쥐여 오는 차고 단단한 이름씨들 하나의 우유잔에 넘치는 과거를, 뜨락에 묻어 두고 우리는 외출한다. Ⅱ 얼어 붙은 추억의 층계마다 칭얼대는 육성 잠 재우고 떠난다. 차고 정갈한 새벽 안개의 깊은 그늘 그 까닭없이 고적한 둘레에서 몇 개의 눈송이 덧없이 응결한다. 깊은 잠 속에 두고 온 유년의 요람과 돌아 가지 못하는 어깨위로 쌓이는 안개 속의 겨울과 나머지 상심, 멀고 가까운 이웃들의 소멸. 아, 들린다 들린다 눈뜨고 꽃피는 봄날에 탄주(탄주)의 질고운 가락으로 은빛 마디 마디 빛나던 한 곡조의 사랑, 이제는 기척없이 땅에 묻힌다. 착한 무관계여. 변증의 잠자리에 오래 오래 서고 앉다, 잔 기침하며 외출한다. Ⅲ 웃으며 결별할 것을 두고 두고 결심했다. 이마까지 젖어 오는 화해의 눈 인사. 일순의 따뜻한 여유. 언 손으로 비비는 과거와 어둡고 칙칙한 귀에 부챗살 펴듯 체온의 골마다 문을 열면 어두워라 나풀거리는 아이들이 잠자는 강물에 이십년의 일몰과 사랑 미련없이 수장하고 날마다 헛도는 선 꿈의 어지러운 잠자리. 아직 남아 있는 미숙한 이름들의 생애와 주소, 이십년의 일기와 사랑 왁자한 웃음속에 남아 있는 착한 눈물. 황량한 갯벌에 바람은 자고 기름이 말라버린 램프 불의 머리카락 날리는 방황, 한 것없이 우리는 외출한다. ++++ ◈조선일보 ++++자연법<박정남>| 하늘에 무수한 기가 내린다. 식어가는 땅위의 빛이 내리고 어디론가 저렇게 부서지는 노래들, 마지막 사라져간 긴 모래의 도시를 저녁 연기를 거두며, 사람들은 종이처럼 쉽게 쉽게 구겨지고 조금씩 삭고 있는 고통의 집을 향해 늘 나는 바쁘게 돌아선다. 돌아와 문을 닫으면 모든 길이 깊이 매몰되었다. 드디어 내 관절의 복도에서 일어나는 신경의 전쟁, 몇겹씩 판자가 둘러친 밤의 낮게 낮게 무너지는 초침을 넘어 아직 공상에 나부끼는 머리칼을 빗었을 때 소리없이 빠지는 죽음과 흰 비듬의 영원한 낙하 피사체를 찾는 빈 거울이 있을 뿐, 스토브가 들어있는 머리와 너울마저 벗은 심장을 열고 사상의 끝, 뼈를 나는 편히 눕힌다. 뼈 속에서 싹트는 내 절망의 울음이 가난한 연애, 고단한 생애를 또한 굳게 닫힌 사회의 빗장을 흔들어 본다. 저 맑게 씻긴 의식의 수평면에 오래 뜨지 않는 당신의 얼굴을 보라. 눈썹끝에 매달린 돌의 무게와 입술에 말라붙은 우수의 철자가 차례로 한 획씩 풀어지면 거울속에 비쳐지는 우리들의 뇌리, 우리들의 허위를 톱질하는 달빛의 그림자, 그림자가 쨍그랑 쨍그랑 반짝이는 나이프를 떨어뜨리며 가고 거울 뒤에서는 동시대의 낡은 의상들이 묵묵히 젖어있다. 기억하는가. 주머니마다 공허한 내용물과 기념비속에 죽어있는 과거, 밤새도록 나는 기진한 어깨 속에 닫힌 젊은 파도, 파도 소리를 온갖 표류물의 끈끈한 기침소리를 들었다. 늘 귀로에 부딪쳐오던 별빛과 헝크러진 발자국의 싸움은 계속되고 전속력으로 밤바람에 가 닿는 내 귀의 불편, 조용히 그 시간을 열면 우리들의 얼굴이 비치는 달 저 켠으로 수세기 바람이 이끄는 신발소리, 그 향기에 쓸려오는 것들의 소스라쳐 깨어나는 내 달빛 내실. 그러나 어둠에 묶인 어제의 문제를 비틀대는 혼의 짧은 안목으로 아직 나는 용납할 수가 없다. 밤마다 괴로운 의식의 충돌이 내 안에서 고조될 뿐 먼 밤쥐들의 송곳니 갉는 소리를 엿들으며 죽음보다 넓은 잠속으로 기어들듯 사람들은 가만히 자정에 매달려있고 아아 한장씩 밤의 판자가 짤려나간다. 긴 긴 여행의 첫번 눈을 뜨며 무너진 살결은 다시 자라고 자정에 내 육체는 밝게 해방된다. 구겨진 얼굴의 새로 돋는 거울을 닦으며 닦으며 침상끝에서 사람들은 펄럭펄럭 날아다닌다. 살속에 박혀있는 진정한 날개 날개는 장미속으로 가는 모든 길을 헤매고 다시 살아나는 도시의 도처에서 만나는 밝은 웃음소리, 물방울 몇개로 해의 전신을 펴는 가로수들, 아 경쾌히 회복되는 우리들의 생활양식을 지붕마다 가볍게 토하며 장신의 밤하늘이 퇴각한다. 마침내 우리들의 단단한 철문은 열리고 항상 새로운, 새로운 출발. 어디서 쌓였던 초침들이 서두르고 있다. 폐허에서 폐허에서는 참새들이 낮은 비행법을 연습하고 있고. ++++ ◈중앙일보 ++++점 화<석지현>| Ⅰ 잠 못이루는 밤입니다. 흔들리는 상선의 붑및, 긴 투영을 적시는 시간입니다. 손을 주십시오. 청자하늘 빚어낸 모타나수로 꺾이는 갈대를 붙안아 주십시오. 어둠으로 침전하는 영혼에게 굵고 따뜻한 밧줄을 내리십시오. 외로운 섬기슭, 하얀 포말이 일듯 당신 향한 그리움 다만 루비알로 영그는 보람이게 하소서 님앞에 서기 먼 이 밤 쇠붙이 소리에 지쳐 식은 땀을 흘리는 찬 대지의 허리를 딛고 서면 전생을 타고 오는 전율이 있읍니다. Ⅱ 하수구에 불빛 흘러가는 마음, 껍질을 벗겨내도 껍질이 돋아나는 마음, 이 어둠을 홀로 자리하시고 광야를 진동시키는 음성으로나를 불러줄 이 오늘을 버리고 가는 뒤안길에 회한이사 없거니 먼 날 잠든 수면에 달이 솟으면 떨리는 나뭇가지 가지마다에 엉키우는 달빛, 밀리는 하늘이며… 이런 것들로만 충만하옵길― 오늘을, 껍질을 벗겨내도 껍질이 돋아나는 오늘을, 낙엽이듯 묵묵히 밝고 가나니― 광야를 진동시키는 음성으로 날 부르며 부르며 지나갈 이 그리워― Ⅲ 찢긴 칼렌다 위에 아연판치는 소리를 내면서 굴러내리는 밤이여 눈보라속을 가듯, 눈보라속을 가듯, 눈망울에 어리는 따뜻한 체온같은 팡을 흔들며 낙과인양 떨어뎌 밤이 궁그는 그 속을 갑니다. 바람이 붑니다. 하얀 셀로판지위에 이 생을 접으시던 날 손을 쥐고 가늘게 떨으시던 숨소리같은 바람이 흐르고 있읍니다. 그 면사포위로 거미처럼 실을 뽑으며 기어오르는 밤이여 그러나 아직 떠날 때가 오지 않았읍니다. 지금쯤 지도에도 없는 산맥을 넘어 조그만 불빛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기에 유리조각같이 부서지는 햇살이 깔리는 길을 내가 갑니다. ++++ ◈한국일보 ++++원주민<이유식>| Ⅰ 지금 나는 원주민과 만나고 싶다. 시녘 바람결에 허물어진 성터, 단성했던 토착어의 슬픈 조각들은 넝무주이들이 줍고 있는데 데모처럼 무성한 잡초 속에서 나는 정신을 팔고 있었지. 그만 나는 가야 한다. 우리들의 망각 속에 버려진 넓은 들판으로. 까마귀의 날개에 가려진 청자의 하늘로. Ⅱ 입구마다 빗장이 걸린 도시의 복판, 순수의 몰락의 광장. 거리마다엔 전락의 전단이 흩날리고 고층병동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그속에 계보를 잃은 연대의 대열이여. 그들은 흔들리는 강한 외등의 불빛 아래서 피로한 눈을 비비다가 이방인으로 찬 숙소 근처에서 머뭇거리다가 석간의 빗발이 등줄기를 적실 때 그 순한 토담집 불빛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은한 원주민의 노래를. 그런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그 순한 음성 그 순한 눈매여. Ⅲ 엊저녁 나는 보았네, 하수구에서. 홍수가 휩쓸어 간 원주민의 가구를 매일 매일 청소부들이 도시 밖으로 실어나가고 있는. 그때 나의 내안엔 밀수선처럼 다가드는 차가운 예감. Ⅳ 바람이 몰고 온 사태에 피로한지, 도시는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눈을 감은 채로. 아아 눈을 감은 채로, 음영을 삼키는 사천길 깊은 심연. 그 아둑한 수면을 그 적막한 눈시울 속에 내리는 끝없는 눈발이여. Ⅴ 눈발이 내리는 연대의 계단에 내가 서면 도시의 모든 시간은 압핀은 눌려 있었고 거리마다 가슴을 막는 철책의 견고한 담. 모두들 담을 끼고 혼자 여기는 허전한 귀로 서로들 서로의 분명한 얼굴을 볼 수 없는 연대의 후미진 골목. 나는 때때로 선술집서 새어나오는 한 줌의 허름한 낭만에 얼굴을 밝혔지. Ⅵ 바람 속에서 성터에서 원주민의 서러운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야반, 불면의 나의 내면을 걷는 지친 행인들. 그들이 밟고 간 깊은 바닥엔 암울한 점자가 새겨져 있었네. 그 의미를 해득하는 아내의 얼굴에는 나의 산하에는 눈발이 내리는데, 아아 지금 나는 우리들의 망각 속에 버려진 들판에 모닥불을 환히 피우고 싶다. 토착어의 조각들로. ++++ ====1970년==== ++++세번째 겨울 <표성흠>| 보셔요. 아직도 벌목이 계속되고 있을 때 잡목들의 팔뚝은 추락한다, 사나이의 부러진 금니의 매몰이다. 톱날바람이 분다, 잠속 깊숙히 툴툴거리는 난로곁에서. 우리들이 호송되는 탄차는 어쩌면 그토록 덜컹거렸는지. 내 맑은 기억은 트인다. 첫번째 겨울은 대개 그러했지. 까마귀 피울음 뜯던 옥수수밭, 돌담 부근의 강 기슭 동상의 발로 디뎌 올리던 조국의 등허리에 포석을 놓던 한 금줄 금줄을. 필립이여, 중대본부의 그 너의 시집은 버렸다. 팔거리 의자로부터 네가 누웠던, 불타는 레이숀과 깡맥주의 두번째 거울은 도박장이다. 세기의 달러를 절거거거리는 시장, 차라리 우리는 몰랐어야 했다. 저 사자들의 흰 이빨의 번쩍이는 파도 파도 위에 누워 여자가 첫울음을 듣는다. 꽃가마가 떠나고 꽃강물이 흐르고 여자의 다리 밑에 전부를 모아 쌓은 섬이 떠있다. 섬은 물결이 나른다 내리어라, 내리어라, 내리어라, 눈내리는 꿈을 꾸며 “여보, 그래도 외제를 입었구려”. 여자는 창밖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내 작은 시민이여 퇴근의 설레임 속에 굴뚝을 빠져 달아나는 나의 이웃, 친구, 내 분신이여. 벌목의 팔뚝 어느 떨기 위에도 눈은 내린다, 눈은 내리어 쌓이는데 아침은 왜 아니 트이나, 젓가락 놀리듯 분주한 다리로 출발의 문을 밀치는 행렬. 세번째 겨울이여. ++++ ++++변 신<정희성> | 고전의 어느 숲을 지나온 강물 위에 지금은 무섭도록 헤진 얼굴이 일렁이는데 이것이 글쎄 누구의 얼굴인지 이 강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지면서 생각해 보았는지 몰라. 죽은 사람과 죽지않은 사람 담담한 얼굴을 하고 흘러서는 그렇게 쉽사리 돌아 오지는 않을 것 어느 후광을 따라 나섰을까 조용히 등에 칠성판을 깔고 별이나 헤고 있는지 내성의 깊이로 꺼져들어간 강 그 가늠할 수 없는 깊이에서 우리를 붙잡는 무슨 힘이라도 있는가 내가 왜 빠지고 싶은지 나도 몰라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워리가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노라 침착한 시간의 녹슨 고기를 낚아 빛나는 면경처럼 들여다 볼라치면 몰라 낯설어진 우리의 얼굴을 우리가 몰라 가르쳐 준 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부대낀 언덕 저 편에서 누군가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진주남강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보리알 같이 소박한 내 거문고 소리여 이 어지러운 강변의 오오 산 죽음 그대 여인이여, 잘리운 손목과 굳은 혀를 들어 지금은 돌아와 노래할 때라 이렇게 불러보는 나의 노래로 너를 파묻고 돌아선 밤 물결은 뒤채고 삶은 또 왜 이다지 잔혹하게 나를 휘어잡는 것이냐 광명은 다시 어듬 속에서 신지핀 누이마냥 난무하던 적과 이방인의 자취를 흡수해 가버렸지만 빛은 언제나 음영을 거느리고 찾아들 듯 기껏 우리가 찾은 적은 우리의 벗 어둠은 항상 새로운 형태로 인식되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속에서 죽었을까 신화와 현실의 어중간에서 우리는 실신한다. 빛이 외면한 땅속 깊이 욕먕의 불을 넣어 그 무던한 밤과 어둠을 지킨 우리가 미련한 짐승의 자식인 탓일까 마늘과 쑥 대신 풀뿌리 나무껍질을 씹으며 너무도 오랫동안 강인(강인)한 여력으로 우리는 우리속에서 우리들과 싸워왔다. 우리? 눈물이 나도록 슬픈 상징이여 한 번 싱싱하게 핀적이 없는 잎들의 내부엔 여름같은 이 겨울은 깨칠 수액이 진한채 온갖 시새움에 서슬이 시퍼런 신경의 가지끝 무고했던 내 백성의 머리, 피로에 겨운 스스로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저렇게 숱한 나뭇잎으로 잊고 싶은, 잊고싶은 기억드러이 나부낀다. 흡사 성 밑의 가등, 미열이 이는 기류속으로 몇마리의 나방이가 어듬을 털며 날아들 듯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무기력하게 먼들었는가 죄많은 왕의 거대한 무덤처럼 하늘 가상이로 들어난 능선 그 밑에 살아남은 주검들의 형상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또 향나무 제기를 닦고 있다. 망우리 주목나무 숲에서 슬픔이 살아 오른다. 시름 시름 시름이 살아 오른다. 그리고 사월이여, 내 자식은 거리에서 죽었다. 죽은 이방시인의 싯귀가 한국에서 더 절실해지는 사월에, 라일락나무숲 독한 향기속에. 뒤척이는 물결속에선 총탄이 박힌 머리가 조국이 무섭다고 중얼거리며 떠오르고 목선의 짐대가 바람결에 부딪치며 그 옛날 의로운 죽음을 말하고 있을 뿐 아무도 그것이 조국의 참된 얼글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족은 혼령들이 속돌에 스민 듯 시가에는 해마다 투석전이 벌어지고 최루타이 없더라도 사월이여, 스스로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을 아는데도 혁명, 오 너의 엇갈린 문맥. 금 빛 게으른 소가 알 수 없는 음절을 반추하고 사ᄉᆞ미 짐대예 올아서 해금(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데모가 나면 어머니 학교에 안 가도 된대요 눈이 아픈 걸요 다시 곰이나 될까봐 눈을 뺀다, 빌어라, 빌어라, 눈을 뺀다 어쩌면 종말같ㄷ고 어쩌면 시작같은 아침 오늘도 혁명, 얄리얄리 출근을 안해도 되는 날 오늘의 매뉴는 마늘과 쑥 또 한번 당신은 변신할 필요가 있읍니다 시창 창사 위 비둘기 집은 위태로운 아이러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안에서 목잘린 사슴의 이야기를 전설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밤새 우리는 숨을 족이고 기다렸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다만 그것을 모르는 채 일상의 구획된 거리를 빠져나가며 나날이 개편되는 우리들, 석간의, 늘 위태한 입구에서 집적의 우울한 낱말을 손에 쥔다. 신라의 한 조각 불투명한 기왓장으로 사가는 매양 역사를 들여다 보지만 곱게 미칠 수 없던 시대의 그 갈증나는 아이들은 지금 소리없는 전쟁의 기류를 타고 하연 껍데기처럼 흐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밤이 기슭에 닿도록 석굴 술집에서 마신 술을 퇴게로에서 토하고 나서 십자가에 허수아비 얼굴을 걸어놓은 사람들. 탄흔이 가신 피부 속으로 황달이 스민듯 잎진 나무들 새로 먼 해원을 바라보며 영혼의 죽은 나무 이파리를 들춘다. 이것이 주구의 얼굴인가. 누구의 얼굴이어야 하는가. 글쎄, 이것이 정말 거짓말인가 몰라 어항 속에서는 물고기가 익사했다는데 어느 날 우리가 우리속에서 돌연히 죽을지 우리들의 시대에 아이들이 그런다지 니힐 니힐리아 부르며 그런다지 가르쳐 준것도 귀담아 들은 것도 아닌데 노래는 즐겁다, 노래는 끝났다 그런다지 그대 오른 손이 다시금 수금을 쥐더라도 여인이여,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마디를 풀고 흐를 수 없는 우리, 웃기는 웃어도 웃으라면 내가 그렇게 웃기는 하여도 시시로 파고드는 시름의 주둥이를 종이 접듯 안으로 사릴 줄 아는 슬기로 슬픔을 접어 하늘에다 날릴 날이 다시 노래한 날이 있을까 몰라. ++++ ++++바다 변주곡<박낙청>| 해푸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바다로 떠난 사내들의 신앙을 기다리며 집집마다 바다 꿈을 꾸는 여인들의 눈썹은 더윽 짙어진다 이미 여러번 떠난 바다 사나이와 그들의 해신이 오래오래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시간은 바다로 뛰어들고 한나절 그물코를 깁던 손들의 꿈이 한장의 마후라를 두르고 겁많은 바다새의 얕은 잠을 돌아서 흰 눈발이 내린다 그날 사나이의 뒤척이는 이 물위로 검은 운명이 뛰어오르고 시린 밤바다는 흰뼈의 달빛을 한배 가득 싣고 잠든 여인의 흰 꿈위에 불쑥 떠올랐다 물에 빠진 오필리어의 관능 속으로 해묵은 육지인의 정결한 뼈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 보이는 것은 바다 뿐 아무도 물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서걱이는 척추의 겨울은 멀리 빠진 죽은 언어의 썰물 위에 돌아 눕고 벌거벗은 겨울 사나이의 바다에 부풀어 터진 흉터자국이 퍼렇게 떠돌고 파도가 일어서고 밤마다 죽은 혼들이 바다 깊숙히 떨어진 캄캄한 해를 하나씩 건져 올리고 오오, 죽음의 귀바퀴는 돌아가고 익사한 바다의 사나이들은 잠들지 못한다 그날 사나이의 가슴속에 간직된 온전한 바다 하나가 상어떼에 희게 뜯겨 있었다 바다새의 깃털을 뜯어놓은 바다 매일밤 부서진 바다의 폐허가 사나이의 사랑과 믿음의 전부를 움켜잡고 홀로 남은 집을 지키고 깊고 황량한 꿈들이 찍혀 넘어가고 퍼어렇게 찍혀 넘어간 절망의 바다에 처음과 끝의 믿음이 꺾어지고 메마른 겨울 밤 천둥이 두 파도 사이에 가라앉고 노년과 죽음을 다 잃으면서도 바다사나이는 또 다른 바다로 떠나가고 홀로 남은 여인들은 뱃속에 죽음을 품고 사내들의 미신이 되어 남는다 해풍의 머리카락을 적시며 뜨개질을 하고 바다 꿈을 꾸고 ... 오필리어의 맑은 꿈이 떠도는 날에 오오, 그 밤마다 나직한 해변 마을에 사나이들의 꿈은 잠들지 못한다. 단추를 달면서<김창근> 작업복에 단추를 달면서 아내는 잠시 엄마의 나라에 머무르곤 한다. 땀에 젖은 나의 추억이 떨어져나간 난간 위에 놓이고 어머니는 때때로 영혼의 질긴 올실로 나의 계절에 색감 고운 수를 놓으셨지. 생활이 그림책이었던 나날의 뒤에 나는 작업복에 업히어 그립자 없는 비인 거리 그 가로수밑을 배회했었다. 아내는 가끔씩 불안해하는 다 큰 아가를 위해 싱그런 동화를 짜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뒷맛이 야린 일상의 눈치를 감추려 했다. 가을은 저만치서 잠자리를 날리고 나는 그 울타리 안에 부재의 해바라기를 심고 있었지. 지금은 기억의 바늘도 녹이 슬고 꿰멜 없는 마음만 세월을 단다. 작업복에 단추를 달면서 아내도 나같이 꿰멜 수 없는 마음과 시간의 옷깃을 여미겠고-. ++++ ++++묵 시<배미순>| 해그름에 부서지는 산그늘 그 깊이속에서 나는 보았네. 오래 잠들고 있던 잔별들 손가락사이로 빠져 달아나고 바람이 몰고 온 겨울저녘을 갈대는 햐얀 머리를 날리며 떨고 있었지. 추수가 끝난 빈 들녘에 남아 있던 내 긴 꿈의 뼈아픈 목울음 아직도 살아서 소리치는가. 오오래 풀리지 않는 안개같은 하루를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는가. 눈처럼 차오르는 그대 영혼의 맑은 사랑 내 눈물끝 빛나는 목숨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드디어 나는 천상의 높이에까지 끌어올린다. 문득 우연한 때에 달빛에 금이 간 나의 회억은 죽음의 과즙과도 같은 회억 그 단단한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가 언어가 되고, 시가 되고 순금의 묵시가 되어 내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자맥질하고 있다. 아, 최초에 그것은 꿈이었던가. 한가닥 바람의 소리였던가. 연약한 속삭임이 그러하듯 두럽고 분명하던 그 음성 내 젊은 혼의 갈피마다에서 작은 불빛이 된다. 대지여 그리고 또 하늘이여, 이 아름다운 감격을 위해서는 그대 눈물도 그쳐다오. 겨울아침 낙엽을 견디는 나무되어 모든 것을 믿고 생각하여 내 생애의 길고 빛나는 그림자를 남기고 싶다. 사자의 영혼을 지키며 오랜 교회가 노을 속에 멀듯이. ++++ ++++하 늘<정중수> | 하늘을 닦네요 새벽마다 일찍 하늘을 닦내요 순이랑, 철이랑, 남이랑, 마을의 아이들이 훨훨 날아가 푸르게 푸르게 하늘을 닦네요 공장 연기에 그을린 하늘을 어른들이 모두 잠든 새 온 마을 아이들이 서로 서로 하늘을 닦네요 고운 손으로 푸른 맘으로 호호 입기 불어가며 닦는 하늘 하늘은 아이들의 꿈모양 티 하나 없이 마을 높이 높이 펄럭이네요 교실 창유리를 닦듯이 매일 매일 새벽에 닦는 하늘, 어른들이 알까요 아침마다 하늘이 푸르르는 까닭을 순이랑, 철이랑, 남이랑, 마을의 아이들이 하늘을 닦네요 ++++ ====1971년==== ++++술래의 잠<박석수> | 1 일곱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살 이후의 도시는 대패날이 되어 나를 문지르고 있었다. 귓속을 웅웅대는 우수의 빛깔을 끌어내 내가 완전한 자유를 깁고 있을 때 내 생애는 난이와 눈맞추고 무궁화꽃이 피었읍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읍니다 무궁화꽃이 ... 찾는다- 환각각의 다리 에 물구나무선 나의 일곱살 호주머니에서 쏟아지는 천진한 기침을 숨었던 이마들은 변명하고 나는 자꾸 목이 말랐다. 2 갈증을 뜯는 기억의 바다 더듬거리는 스무살을 소리치다가 치다가 찢어진 냄새여, 숨찬 야도여. 빌딩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계의 노오란 잠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밤바람을 만난다. 만나는 손바닥. 악수의 안에서 눈뜨는 가롯 유다의 야도소리. 스무살 진한 내 감성의 바다를 햇살처럽 헤엄쳐 가는 물고기의 혼이여, 시야에서 흔들리는 노래여, 3 눈물만한 거리에서 이슬 터지는 신비를 캐다가 아린 눈을 감으면 유년시절 연쌈에서 끊긴 하늘땅땅만한 꿈의 길이 보인다. 아픈 별처럼 기침 데불고 G선의 자락을 타고 오는 어둠, 우유빛 빈 호주머니를 흔드는 바람, 나의 계약자들이여! 심실에 불을 켜면 순수의 살점 흩어지는가 구겨진 그립자 무리 아아, 머리칼이 보인다 꼭꼭 숨어라. 4 나를 외면한 배경 속에서 누군가가 둥 둥 둥 끈적끈적한 울음을 친다. 고이는 소리를 -내 안에서 자꾸 꺼내도 잡히지 앉는 인식의 무게 신경의 가지 끝에서 묵은 잠의 껍질을 벗기면 피 흐르르는 나날. 졸음처럼 닫히는 내 오만의 귀. 빛을 가려 두른 암실에서 이제 나는 일기처럼 젖은 옷을 벗는다. 5 야도가 비상하는 울음 가운데서 뽑은 옥매듭진 스무살의 잠이여, 핏줄을 타고 흐르는 야도의 녹슨 바람소리여, 자기를 감금하는 누에의 작업이여, 일곱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살 이후의 도시는 대패날이 되어 나를 문지르고 있었다. ++++ ++++대숲 아래서 <나태주>|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아래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벌빛 어리듯 그슬린 등피에 네얼굴이 어리고 밤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소나기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제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가을 해지는 서녘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드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모두가 내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녘밥 일찌기 먹고 우물가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을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청진항<김성식> 배를 타다 실증 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 거야 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 아침 해류와 동지나에서 기어온 저녘 해류를 손 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 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 기름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 계류해 놓는 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 엄마 가슴에 한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 추운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익은 능금 한덩이 기폭에 던져 놓고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별들 기폭에 따라 넣고 햇살로 머리 비낀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 훠 샷클 인 워터 렛고우 스타보드 엥카. 방파제 넘어 닻을 떨어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 나는 굿 모닝! 캡틴 새벽별이 지워지기 전 유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해를 넘어온 항해사 태풍 속을 헤쳐온 세일러를 붙들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 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 또한 희안 하겠지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파일롯 되는거야 ++++ ++++목수의 노래<임영조> | 다시 톱질을 한다. 언젠가 잘려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일상의 고단한 동작에서도 이빨을 번뜩이며, 나의 톱은 정확해, 혀약한 시대의 급소를 찌르며 당당히 전진하고 살아오는 자. 햇살은 아직 구름깃에 갇혀 있고 차고 흰 소문처럼 눈이 오는 날 나는먼지낀 창가에 서서 원목의 마른 내역을 켜고 갖가지의 실책을 다듬고 있다. 자네는 아는가, 대낮에도 허물어진 목수들의 날림 탑. 그때 우리들 피부 위를 적시던 뜨거운 모정의 긴긴 탄식을 그러나 도처에 숨어 사는 기교는 날마다 허기진 대팻날에 깎여서 설익은 요령들만 빤질빤질 하거던. 밖에는 지금 집집이 제 무게로 꺼져가는 밤, 한밤내 눈은 내리고 드디어 찬 방석에 물러앉은 산. 내 꿈의 거대한 산이 흰 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죽은 목수의 기침소리 들리는 깊은 잠으 숲 속을 지나, 나는 몇개의 차디찬 예감, 새로 얻은 몸살로 새벽잠을 설치고, 문득 고쳐잡는 톱날에 동상의 하루는 잘려 나간다. 잘려나간 시간의 아픈 빛살이 집합하는 주소에 내 목이 뜬다. 온갖 바람의 멀미 속에서 나의 뼈는 견고한 백랍이고 머리카락 올올이 성에가 희다. 저마다 손발이 짧아 마누는 눈인사에 눈을 찔리며 바쁘게 드나드는 이 겨울, 또 어디에선가 목수들은 자르고 있다. 관절 마디 마디 서걱이는 겨울을 모삭의 손끝에 쥐어지는 가장 신선한 꿈의 골격을 나도 함께 자르고 있다. 언젠가 잘려 나간 손마디 그 아픈 순간의 기억을 잊고 나는 다시 톱질을 한다. ++++ ++++유년의 겨울 <박지열> | 1 물구나무서면 거울속처럼 돋보이는 하늘이 있었고 하늘속으로 자맥질하던 아이들의 손과 발 하나의 표적으로 날으던 선악의 화살. 아무도 그 끝간 데를 무르리라. 냇가에서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파닥이던 심장의 소리를 들었는가. 바람개비는 강바람에도 아리들의 머리카락은 날렸다. 여름의 잎이 지고 가지사이로 하나의 세계가 트였을 때 꿈을 꾸었지. 풀씨가 되어 훨훨 날다가 늪속의 깊은 잠 무변의 계곡에서 녹색 풀잎이 되어 너울 너울 바람에 흔들리는 강너머 마을같은 풍경을 모았지. 수천의 새들은 승천을 위해 위로만 날으고 하늘도 산도 강도 한겹씩 신비의 옷을 벗고 돌아앉앗다. 바깥으로만 흘러가던 강 세계를 가린 옷자락이 벗겨져 앙상한 가지에는 씨감 몇개 북국의 찬바람에 흔들리었다. 2 초갓집 그을은 처마밑 빈 제비집을 올려다보던 아이들의 맑은 샘은 아직도 빛깔 진한 바램이 있다. 비빔질하던 골짜기 시냇물 그 젖무덤 사이로 감행하던 어머니 씨알을 거두는 손길로 온 세계의 신열이 사라지고 유액에 젖어 있던 열개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흙냄으로 여물었다. 저녁 갯밭에서 미끄러지던 미꾸라지 미꾸라지처럼 유년의 겨울은 미끄름을 타고 베틀가를 부르는 어머니 눈물에 비치던 명주실 누에는 실을 뱉었다. 하늘 높이 연을 날려라 발돋움하면 나도 날아갈 것을. 끊임없이 휘젓는 어머니는 소망의 날개로 날으고 세계의 모든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연은 날으다 손짓하며 저쪽의 나라로 아름다운 결별을 선언할 것이다. 3 달롱개 곳곳에 핀 강둑에서 무한천공을 흔들며 울던 황소 굴레를 벗겨다오 굴레를 벗겨다오 들었는가, 네 할아범 꽃상여 곡소리. 호밀밭을 가로질러 날아간 물새 그러나 시린 겨울이 지나면 물새는 먼 남쪽에서 돌아올 것이다. 사금파리 그릇들은 흙속에 묻히고 밤이면 조잘대던 개구리 개구리의 함성이 떨고 있는 귓가에 얼어붙은 밤을 깨뜨리는 다듬이질 소리. 누구는 그 소리으 끝을 보았는가. 여름에 익사해간 아이그이 꽈리를 분다. 하늘에 점찍힌 아이들의 별 별은 아직 반짝이고 논두렁에는 겨울의 꽃 영하의 어둡을 녹이고 붉게 피어 타고 있는 옷자락 너울거리는 고전무 엷은 웃음 띠고 춤춘ㄷ, 강둑에서도. 빙판위에는 색팽이 지구가 돈다, 우주가 돈다. 눈이 오지 않는 것일까. 백설의 산하는 눈사람의 세계다. ++++ ====1972년==== ++++창<이선렬>| 창은 빛으로 휘장을 두른 늘 푸른 바다의 항구였네. 일월의 몇 겹 미색이 포개어서 그림자로 비쳐보이는 시간의 바다 속이었네. 사금의 켜튼을 걷어올리면 창 밖은 우리들의 모든 생성과 침몰이 발원하는 커다란, 커다란 바다이었네. 창은 천계이 향기론 빛들이 다가와 일렁이는 바다, 그 곳에서 보느니 우리네 조브장한 생활은 오장의 원색으로 들끓으며 자꾸 멀리 멀리 떠나가는 항오였네. 한칸 유리 항구, 차아다에 빛의 퇴적에 묻혀있는 유년의 참 깨끗한 고향, 창을 닦으면 순간마다 은밀히 고향이 보이고 그 곳으로 항구마다 불 밝히고 떠나야 할 스무 나이 이후의 생애들이 아주 잘 빗질되어 빛나고 있네. 마음 펄렁이며 밝은 날 이른 새벽 그대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생애의 빛나는 창을 닦자, 구러면 수천만의 빛살로 휘장 두른 푸른 항구의 저쪽에서 부수한 신의 지혜를 몰고 오는 바람, 바람들의 빈틈없는 전언으로 내실 가득히 차오르는 은혜의 바다속 그 빛나는 하늘을 익히어서 한 천년 창을 닦으며 살겠네. 창은 빛으로 휘장을 두른 늘 푸른 바다의 항구, 사금의 커튼을 걷어올리면 창 밖은 우리들의 모든 생성과 침몰이 발원하는 커다란 바다이러니 새벽마다 창을 닦으며 떠나야겠네 풀길없는 생의 전쟁은 끊긴 데 없고 내, 눈앞에 끝없이 내다뵈는 바람 앞의 항해, 거기 바다에서 빛나야 할 내 뜨거운 열망의 생애는 아주 멀다는 것을. ++++ ++++나의 친구 우철동씨<정대구>| 1. 복 면 우체국장 우철동씨는 모처럼 공휴일을 집에서 아이들과 즐기다가 가작스런 전화에 불려나왔다. 누구인가. 이렇게 나의 치누 우철동씨를 불러내게 하는 그는. 우리는 여름을 철거하고 이층의 삐걱이는 불안과 만난다. 어디서 돌발된 긴급사태가 우리이 낡은 지붕을 두리고 뜨거운 「코피」잔 속에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난다. 누구인가. 이렇게 급살로 우리의 풍경을 바꾸어 놓는 그는. 저기 저 비실 비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복면의 사내가 키득키득 웃는다. 여성적인 나의 친구 우철동씨는 그리고 오늘 그의 긴 침묵은 요즘, 주소도 없이 우표도 안붙이고 갑작스레 날아 들어온 편지를 받게 된다. 누구인가. 이렇게 발신인도 없이 무례한 편지를 띄어서 우체국장인 우철동씨를 떨게하는 그는. 나는 다방 이층에서 거리로 나온다. 여기 저기 번득이고 숨어있는 눈초리들 그리고 기슭으로 비켜서는 얼글들 『여보시오』『여보시오』 음, 그 사내는 아주 생면부지의 사내도 아닌 것 같다. 저 녀석 저 녀석은 나의 친구 우철동씨를 불러내어 낡은 생철 지붕을 두드리고 『코피』를 마시던 우리를 엿보던 녀석 발신인도 없는 엽서를 뛰워 보내고 내 친구로 하여금 수시 몰라보게한 녀석 네 녀석을 정면을 만났다. 너는 누구냐. 너는 내가 아끼는 그릇을 깨뜨리게 하고 너는 춘사를 빚게하고 너는 나의 뒤통수를 치고 이마에 돌을 부딪치게 하고 너는 나의 여인을 이층 게단에서 돌아서게 했다. 그리고 너는 장차 나의 딸을 죽음으로 몰고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시고 오늘 80회 생신을 기념했다. 그리고 여인은 나를 아주 떠난게 아니다. 나의 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다만 땅에는 사과가 떨어지고 뭇거리에서 나의 흰『와이셔츠』가 더러워질 뿐이다. 2. 미지의 아이들 제대 상병 김군은 나의 제자 월남에서 무사히 돌아와서 나를 알보고 저웅히 허리를 굽혔다. 보라, 우리를 이렇게 만나게 하고 내일 아침 8시 반에 사강 우체구강 집무실에서 어김없이 전화를 받고 알맹이가 봉해진 무수한 우펀물을 처리하는 나의 친구 우철동씨를 그리고 그의 미지의 아이들은 내가 나이 친구 우철동씨를 만나러 갔을 때 그의 헐어빠진 의자 옆에서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아이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고 있다. 과연 나는 우철동씨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를 앞세우기도 하고 우리들 앞을 지나가기도하는 무수한 ×의 빛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그의 눈짓에서 새로이 밀려드는 파도 사이에서 그 순간마다 복면의 사나이는 킬킬거거리고 우철동씨의 헐어빠진 의자만 때로는 우리를 기다릴 수도 있다. 3. 증언 우리들은 오늘에 있었다. 어디를 가나 현대의 구조와 조직과 우리드이 행렬이 지나가는 곳마다 1970년대의 선거와 「스포츠」와 바람과 빈 병이 소리를 지른다. 「텔리비」를 켜놓고 개탄하는 우철동씨는 이제 우철동씨 개인문제가 아니다. 왜, 왜, 왜라고 하며 축구왕 「펠레」가 거리를 휩쓸고 우리들의 흥분과 고하을 차 넣는다. 저마다 열심히 자기를 내세우고 말하고 주장하는 거리에 광고는 살아있고 치닫는 불줄기는 아무도 끄지 못한다. 아무도 진정한 자기를 만나지 못한다. 아, 누가 나의 이 괴로운 가면을 벗길 거인가. 우리들의 우철동씨는 왜, 왜, 왜라고 하며 아침마다 퍼붓는 햇살을 받으며 우리들의 거리에 뛰어오르는 의문의 허름한「넥타이」를 풀지 않는다. 우철동씨 일가의 밥숟갈은 무겁고 어디를 가나 바람은 쉴새없이 분다. 누가 우리들의 세대를 부인하고 나와 나의 친구 우철동씨를 부인하고 우리들이 하루하루를 부인하는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베드로」는 지금 여기에 없다. 누가 우리들을 맡고 있는가. 다만 우리들은 거덜난 「유다」의 주머니와 도시의 「스모그」와 바람과 「스캔들」을 지껄이며 우리들의 식사를 마치고 얼어붙은 거리를 지나야 한다. ++++ ++++겨울나무<이성애>| 젊은 숲에 바람이 인다. 그 울부짖음 더욱 크고 도끼날에 번득이는 한가닥 석양. 뜨거운 야망에 손을 떠는 그 힘줄 돋은 살의에 도전하는 목피의 질긴 침묵이 그의 잎새끝까지 파동친다. 그가 뿌리를 내린 땅은 화산지대처럼 뜨겁게 끓고, 때로 갈갈이 찢겨 얇은 엽맥은 피를 뿌린다. 숨김없는 열망으로 빽빽한 공간이 증기의 바다처럼 동요하는 시절 크나큰 어둠이 덮쳐와 번득이는 도끼날을 잠재우는 때 스스로의 정적에 반항하여 그때마다 그의 키는 하늘로 뻗는다. 기억의 창 이편에 서서 움직이는 숲을 보고 있는 노년이 불멸의 아름다움으로 그를 정의한 이유를 얼어붙은 하늘가에 머리끈이 닿는 어느 겨울 그는 본 것이다. 한 밤내 눈이 내린 이튿날 소리도 없이 솟아나는 태양, 키를 적시는 빛살의 파도 속에서 그는 단지 젖은 내부를 떨 수밖에 없다. 전신의 수액이 눈물로 솟구쳐도 몸 밖으로는 한 방울도 넘치지 않는다. 그러나 눈물보다 빛나는 것 헐벗는 가지 끝마다에서 돛을 휘날리는 자유, 메마른 겨울나무의 자유. 광야에서<임일진> 아직은 황원한 이곳에 머물러서 번번이 실패해 온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진작부터 찾아나선 빛깔이 영롱할 실체, 금은의 몇 마디 언어를 서투른 나의 발음으로 익힐 때까지는 유유히, 나는 떠나지 못한다. 끈질긴 신념이, 늦춰본 적 없는 응시의 나의 눈에는 견고한 타인의 성채를 정탐하는 일상의 낭자한 나의 유혈 속에서도 바람타는 갈대숲을, 몸부림치는 억새의 모가지를 잠시도 나는 떨어 버릴 수가 없었다.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언제나 나는 이곳에 와 있었으며 기실 여기에서 살고 있었다. 둥근 지평선의 무거운 침묵과 마주앉아서 가면을 풀고, 장신의 허약한 나의 몸무게를 저울질하며 심층의 갈피 속에 묻혀 있을 태초부터의 가장 단단한 목질을 탐내면서 두고두고 응결된 몇 개의 화석을 캐어내고 한줌의 흙으로 빚어진 열 개의 수척한 나의 손가락이 한겹씩 차례로 굳은 질량의 비어있는 껍질의 그 아픔을 벗길 때도 으로 덮인 나의 모태, 나를 키운 대지는 자비의 눈짓 하나 보내지 않았다. 오랜 체류의 고독한 지칠줄 모르는 나이 탐색이여, 죽음만을 잉태하고 펼쳐진 나의 광야에는 저 오만한 미소로 실달다가 정좌(정좌)하던 한그루 보제수의 그늘마저 없고 이미 쓰러진 육신을 달래어 또다른 하나의 광맥을 찾아 일어서고, 아아, 의지의 푸른 괭이날로 딱딱한 지층, 두껍게 퇴적한 우리의 허무를 다시 굴착(굴착)하며 빛깔이 영롱한 실체, 금은의 몇 마디 언어를, 찾아올 기적을 기다리며 몸부림치는 억새와 더불어 유유히 오늘도 나는 떠나지 못한다. ++++ ++++은유의 꽃<이진흥>| 1 너는 우주가 하나로 집중할 때 비로소 열리는 눈이다 보석처럼 견고한 고독의 사슬로 일체의 빛을 묶어 흔드는 손이다 은 생을 한가닥 활줄에 거러어 죽음을 겨냥하는 사수의 한 치의 흐트림도 거부하는 엄격한 포즈 중심을 깨뜨리는 모순의 얼굴이다 날카로운 난의 춤, 꽃이여 2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고 나면 잡힘 것은 애매한 그림자다 돌아서면 슬픈 몸짓으로 다가오다가 손을 주면 이내 사라지고 잡는 방법을 전혀 포기할 때 남 몰래 내 안에 깃을 치는 나는 한 오리 율동이다. 내 어린 시혼의 현을 퉁기는 3 한 밤 중 머언 하늘 끝에서 우주의 비밀처럼 빛나는 별이 떨어질 때 가장 신비한 모습으로 피어나서 아름다운 소멸을 배웅한다. 스스로의 무게로 가지를 떠난 열매가 한없는 어듬 속으로 떨어질 때 가슴을 도려내어 완성의 형식을 부여한다. 눈 부신 빛이 뒤에 숨어서 온갖 빛나는 것들을 드러내는 어둠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들 속에서 하강의 질서를 다스리는 것은 꽃이여 너의 눈짓이다. ++++ ++++기 공<국효문>| 빈 터에는 죽는 꿈만이 휴지처럼 쌓이고 탑 둘레를 돌며 춤추는 나비여 싼 임금, 나쁜 노동조건 속에 스스로의 손금을 털고 햇빛과 바람의 교직에 파묻힌다. 또 하나의 설계를 풀어낸다. 벽돌에 그려진 이슬 젖은 날개가 파닥인다. 바람에 빈껍질이 쓰러져있는 공사장의 빈터, 햇빛은 지푸라기를 밟고 뛰어 다니고 꽃불처럼 따가운 사랑에 눈 떠 치자빛 저고리를 받혀 입은 나비여. 일찌기 청사진에 담긴 타의의 설계라 하더라도 철근이 숲처럼 들어선 공장에 날아와 앉는 나비여, 흰 적삼인 채 시선을 떨며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발 아래에 깔린 가난과 풍요의 절대치를 굽어보면서 본능만이 잡초처럼 우거진 일상과 싸운다. 모래를 퍼 올리고, 자갈을 쏟아 넣고, 시멘트를 풀어 벽돌을 찍어낸다. 물을 뿌려서 햇빛에 내어 말린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하루의 생활도 찬 달빛 속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이 슬픈 전신이여. 그러나, 오늘 기공의 하늘 높이 펄럭이는 깃발. 은모래로 찍어내는 한장의 벽돌에 물을 뿌린다. 삽 끝에 파헤쳐진 피리조각과 선녀들의 옷자락이 너울거린다. 온종일 물을 긷던 샘에서 솟아오르는 칠보의 활이여, 봄 아지랑이를 잉태했던 신혼의 알 수 없는 소리의 톱날에 잘려 아프더라도 나락의 깊은 골짜기를 빠져나와 한장씩 가로질러 쌓아올려 벽돌의 어느 모서리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는, 불완전하나 지순하게 다가오는 탑 기와 올린 지붕들 날개를 펴고 햇빛 속에서 헤엄쳐 올 때. ++++ ++++낙동강<이달희>| 1 대한날 얼어 붙은 낙동강을 홀로 건너 가시던 할머니, 명주수건으로 두른 사천년의 그 인종의 시린 추위. 싸르륵 싸르륵 마른 갈밭을 헤치는 회리 바람을 지나 모랫 바람이 불꽃처럼 확확 타오르는 강변을 지나, 대한날 얼어 붙은 낙동강을 홀로 건너 가시던 할머니, 호호, 언손 불어 주시던 사천년의 그 면면한 사랑. 하얀 약첩을 펼치면 숙지황 육모초 인삼 누우렇게 한지에 배인 그 내음새, 자주 앓던 자손을 언제나 걱정하시던 사천년의 그빛 바래인 애탄. 2 섬돌 밑에 떨어진 낡은 고무신 한켤레 흐느끼고 있네. 장독 뒤에 숨은 이빠진 옹기밥그릇 하나 흐느끼고 있네. 돌담밑에 넘어진 손때 낀 박달절구 흐느끼고 있네. 니조장농 속에 주인 잃은 구리비녀 한개 흐느끼고 있네. ++++ ====1973년==== ++++그림 속의 물<김승희> | 사랑스런 프란다스의 소년과 함께 벨지움의 들판에서 나는 예술의 말(마)을 타고 알수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은 손을 들어 내가 그린 그림의 얼글을 찢고 또 찢고 울고 있었고. 나는 당황한 현대의 이마를 바로 잡으며 캔버스에 물빛물감을 칠하고, 칠하고, 나의 미학상식으로서는 그림은 아름답기만하면 되었다. 그림은 거칠어서도 안되고 또 주제 넘게 말을 해서도 안되었다. 소년은 앞머리를 날리며 귀엽게, 귀엽게 나무다리를 깎고 그의 귀는 바람에 날리는 은잎삭. 그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쳐다보며 하늘의 물감이 부족하다고, 화폭아래에는 반드시 강이 흘러야하고 또 꽃을 길러야한다고 노래했다. 그는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현대의 고장난 수신기와 목마름. 그것이 어찌 내 죄일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내 죄라고 소년은 조용히 칸나를 내밀며 말했다. 칸나위에 사과가 돋고 사과의 튼튼한 과육이 웬일인지 힘없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나에게 강ㅇ을 그러달라고 부탁하였다. 강은 깊이깊이 흘러가 떨어진 사과를 붙이고 싹트고 꽃피게 하였다. 그리고 그림엔 노래가 돋아나고 울려 퍼져 그것은 벨지움을 넘어 멀리멀리 아시아로까지 가는게 보였다. 소년은 강을 불러 내 그림에 다시 들어가라고 말했다. 화폭아래엔 강이 흐르고 금새금새 훤한 니마의 꽃들이 웃으며 일어났다. 피어난 몇송이 꽃대를 꺾어 나는 잃어버린 내친구에게로 간다. 그리고 강이 되어 스며들어 친구가 그리는 그림 그곳을 꽃피우는 물이 되려고 한다. 물이 되어 친구의 꽃을 꽃피우고 그리고 우리의 죽은 그림들을 꽃피우는 넓고 따스한 바다가 되려고 한다. ++++ ++++첨성대<정호승>|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 꺼내보던 손거을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애피리 밤새불던 그믐밤 첨성대 꺽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잔불이 되었다. 반마다 할머니도 첨성대되어 댕기 댕기 꽃댕기 붉은댕기 흔들며 벌 속으로 달아난 순네를 따라 동지날 흐린 눈물 북극성이 되었다. 싸락눈 같은 별들이 싸락싸락 내려와 첨성대 우물 속에 퐁당퐁당 빠지고 나는 홀로 빙 빙 첨성대를 돌면서 첨성대에 떨어지는 별을 주웠다. 별 하나 질 때마다 한방을 떨어지는 할머니 눈물 속 별들의 언덕위에 버려진 버선 한 짝 남몰래 흐느끼고 붉은 명주 옷고름도 밤새 울었다. 여우가 아기무덤 몰래 하나 파먹고 토함산 별을 따라 산을 내려와 첨성대에 던져논 할머니 은비녀에 밤이면 내려앉은 산여우 울음소리. 첨성대 창문턱을 날마다 넘나드는 동해바다 별 재우는 잔물결소리 첨성대 앞 푸른 봄길 보리밭 길을 빚장이 따라가던 송아지 울음소리. 빙 빙 첨성대를 따라 돌다가 보름달이 첨성대에 내려 앉는다. 할아버진 대지팡이 첨성대에 기대놓고 온 마을 석등마다 불을 밝힌다. 할아버지 첫날밤 켠 촛불을 켜고 첨성대 속으로만 산길가듯 걸어가서 나는 홀로 별을 보는 일관이 된다. 지게에 별을 지고 머슴은 떠나가고 할머닌 소반에 새벽별 가득 이고 인두로 고이 누빈 베동정같은 반월성 고갯길을 걸어오신다. 단오날 밤 그네 타고 계림숲을 떠오르면 흰 달빛 모시치마 홀로선 누님이여. 오늘밤 어머니도 첨성댈 낳고 나는 수놓은 할머니의 첨성대가 되엇다. 할머니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 ++++마왕의 잠<이동순>| 1 맨드라미의 하늘도 시들어 꽃피던 마을은 이제 처참하다. 깨어진 자유처럼 풀씨 흩날리고 토종개들의 눈빛은 죽어서도 먼 바다를 머금고 있다. 해안을 돌아온 아이들의 귀 재잘거리는 몇개의 말미잘 잔잔한 어둠이 바다의 허공을 일렁이고 피로한 수초의 잠아 너는 신의 발목을 안고 몸을 떤다. 네 손바닥으 봇자국을 뜯어내면 향나무 숲으로 파고드는 햇살소리가 들리고 만상의 잠을 보채는 무형의 바람이 보였다. 2 잠은 폭우를 동반하고 와서 채석장의 돌이 되어 부서져 내린다. 명절날 아침에 풍선부는 하나님 대피리 소리로 돌의 잠을 예보한다. 하늘의 창문을 열고 그대 눈썹밑에 푸르름이 다소 끼어 있다. 그리하여 암석의 비 내리고 꽃밭에 한련이 피면 잠은 의미롭게 들어 눕는다. 가죽장화를 벗어 놓고 국방색 담요를 둘러쓰고 오직 돌과 더불어 잠잔다. 3 쏟아지는 빗발의 잠을 검정우산 하나로는 걷잡을 수 없다. 그래도 박쥐 우산 하나 펴 들고 가등아래의 하루잠을 받는다. 깊은 등골 속으로 쳐박히는 잠을 향해 나는 오붐을 봄 누고 목덜미를 부르르 떤다. 바지 단추 여며닫고 돌아서는 빗발, 속으 신은 덧니 사이호 빠져 달아나려고 했다. 그래서 검은 치통을 앓고 있다. 4 벽상의 과도를 겨누고 몇개의 잠을 날려 보낸다. 잠을 날리는 호궁 앞으로 가만히 날아가는 해동청하나 잠은 그의 뒷덜미에 비치어 잘익은 참외의 신선한 빛깔을 지닌다. 들끓는 하품을 쓸어내고 잠은 벽상의녹슨 과도위에서 부러진다. 과꽃이 방안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부러진 동면의 가지위로 눈도 오지 않는다. 5 중리에서 온 부고가 가을비에 젖고 있다. 괴로운 잠은 한밤중까지 그대의 공중에서 뒤척인다. 타는 장작소리와 스러진 잠을 짓밟고 내리껒는 마왕의 말굽소리 우리 모두는 잠을 잃고 길가의 목화밭에 숨은 맨발이다. 추운 강물을 맨 발이 걸어가고, 이 나라의 왜가리 한마리가 발톱하나를 떨고 있다. 오 비는 부고속으 젖은 불면이다. 새벽의 잠은 중리의하늘로 쏟아진다. 6 비와 잠은 동질의 것이다. 비느 해바라기의한다발 젖은 꽃씨를 잠재우고 밤중에 숨죽이고 흐르는 강물은 불멸의 잠이다. 숲은 산맥 어디서나 잠깐 눈붙이고 허무의 비 맞으러 나간다. 모발을 적시고 내리는 비 너는 연적으로 떨어지는 하늘 소리를 듣고 있다. 나는 눈 감고 서서 물묻은 잠을 잔다. ++++ ++++개 화 <김창완>| 저것은 누구의 바다입니까. 지금 한참 밀물인 걸 가로 막을 제방조차 마련하지 못했읍니다. 나는 그냥 그대로 점령당하는 재펄이기도 하나 만조이면 하늘에 닿은 수평선일 수도 있읍니다. 보릿골 위으로 목선타고 온 오늘이 평일의 해돋이에다 닻을 내립니다. 하역작업하고 있는 인부들의 어깨 위에 고조선의 노을이 지워져 있읍니다. 원시림 찍어 토기굽던 불꽃이 노당자의 하루를 잘 익게 하고 소금기 많은 땀 흘리어 만드는 이슬을 하얀 여객선은 내가 사는 섬으로 실어나르고 있읍니다. 그것은 선덕씨가 주고 간 금팔찌와도 같고 그것은 보듬고 금환식하고 있는 나는 갈대꽃 이우는 한가윗날 강강수월래와 같읍니다. 하얗게 뒤집히는 뉫살이 당신의 동정을 항상 새것으로 있게 하는 천년을 부딪쳐도 지치지 않는 파도소리가 파도소리가 나날의 해안에 쌓이고 있읍니다. 나는 그 다도해를 거느리고 있지만 저것은 누구의 바다입니까. ++++ ++++연 가<윤상운>| 1 그대와 내가 마주보고 그대가 나의 누구인가를 묻고 있을때 그대는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네. 겨울의 눈덮인 들에 서건 별이 숨은 어두운 강에 서건 스스로 가득하며 따뜻했던 우리 무리가 거주할 정원의 나무 목련과 라일락 곁에서 덩오가 던디는 은빛 그물 안에서 서로의 모습을 정립하려고 햇으 때 우리는 흔드리기 시작했네 빛과 모습 시간을ㄹ 뛰어넘는 사랑을, 장식하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입맞춤속에 녹아있는 모든것은 무너지고 있었네. 2 잠길에도 잠의 끝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걷는 길은 끊어져 있었어. 바람이 뜨락을 채우는 자정 뜨락을 지티는 소롯한 나무 혼자서 키가 크는 나무위에 그대가 기르는 새는 날아오지 않았어. 잠길에도 그대 사는 숲의 하늘을 알 길 없고 그림자만 긴 나무 낮과 밤니 엇바뀌는 끄트머리쯤 외가닥 바람으로 떠돌아도 그리움의 아슬한 끝은 잡히지 않았어 풀잎에 맺히는 한방울 이슬 이슬에 비치는 그대 사는 숲의 쟁쟁한 새소리 다가서면, 무수한 빛의 입자로 허공으로 허공으로 날아올랐어. 바람이 홀로 깨어있는 뜨락 어둠에 싸여 나무는 그림자가 길었어. 그대와 나의 가슴을 뚫고 어둠의 알맹이가 종처럼 울린다. 바람이 흐르며 싸이는 곳곳에 그대의 목소리가 흩어지고 앞뒤에서 문이 닫힌다. 그대가 밟고 간 어두운 들의 한쪽 끝 광주리의 햇살을 내려놓으며 건네주던 환한 아침을 가슴에 품어온 거울에 금이 간다. 그대의 얼굴이 흩어져 날고 내가 밟는 어듬 무겁고 예리한 어둠이 살을 부신다. 그대와 나의 분별의 창에 피는 살의 파편 저울눈 위, 눈금을 부수는 그대 야윈 눈빛을 남겨놓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 하나 무너뜨린다. 어둠 속에 그대의 모습이 ㄹ호로 남아 어둠을 이고 일어나고 있다. ++++ ++++출항제<김명인>| 겨울의 부두에서 떠난다. 오랜 정박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응 출항제, 부두의 창고 어둑한 그늘에 묻혀 남몰래 우는 내 목숨같던 애인이여.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모는 시대여. 지난 봄 갈 할것없이 우리들은 성실했다. 어두운 바밀을 걸어 맨 몸으로 떠나는 날의 새벽, 눈 내리는 세계. 우리들의 항해일지 속 뜨거운 체험으로 끼워 넣으며 불손했고 쓰라렸던 사람을 덮는다. 감동도 없이 붙들어 지킬 신념도 없이 한 때 깊이 빠져가던 우리들의 탐닉, 일상의 식탁과 우울한 밤의 비비적거림이 한갖 구설의 불티처럼 꺼져가고 있다. 이제는 당당하게 떠나리라, 아, 실어 올린 전생애는 제 나이 만큼 선창속에서 보채고 흰 가슴에 사나운 물빛을 켜들고 먼 바다로 달려가는 무서운 시간들. 내 의식의 깊이를 횡단해가는 알 수 없는 설레임도 들리고 있다. 차가운 눈발의 동행속에서 하얗게서려오던 유년르 숲, 꺾어진 꽃대궁을 끌어안고 그 때 눈물로 다스리던 가슴이여. 북풍처럼 사납게 몰려와서 목숨의 한 끝을 쪼아대는 이웃의 이목속에서 피흘리고 문득 생사의 늪에 앙상한 채 버려지던 지난 날, 마지막 한 방울의 숨어 있던 야성의 피가 깡깡 굳은 풍토병을 적시고 한 세대의 사슬을 의롭게 풀어내던 것을, 질기고 칙칙한 동면을 몰아세우고 우리들은 깊이 잠든 식솔을 몰아세우고 불면으로 지새우며 밤새껏 항해도를 뒤적이며 아, 버려진 모든 목소리를 새롭게 걸러내며 내 울음이 시대의 물목을 지켜서고. 우리들은 마침내 물빛 푸른 어장을 찾아내었다. 풀려나는 긴장으로 또한번 감기는 눈꺼풀 속을 파고드는 새벽잠을 털어내고 성실한 두 팔로 기어오르는 불안을 뿌리칠 때, 우리들은 순수한 믿음의 항해 속 차고 맑은 파고처럼 떠도는 저 보이지 않는 역사의 새로운 부활을 감시한다. 끈끈한 적의를 안개처럼 피워올리며 난파의 갯벌을 휩쓸며 바람은 한 때 우리들이 열던 출항의 부두로 내리 몰지만 허나, 굳센 믿음의 밧줄을 이어 잡으며 목숨의 한 끝을 건져내는 강인한 힘, 우리들은 불의 힘에 온몸을 태운다. 아직도 몰아치는 눈보라 에 하염없이 쓰러지며 이마 위에 솟는 피만큼 검붉게 흉중을 휑궈내는 식솔이여, 이제는 내 돗폭의 그늘에 마저 숨어라. 신선한 믿음도 밑바닥이 보이잖게 금린 밝게 떠도는 물빛, 아침의 아아, 무한한 폐활량. 우리들은 태어나지 않은 역사의 새로운 잉태속으로 떠난다. 온 핏속에 또다시 떠도는 체험의 오오, 무수히 용서하라, 울면서 지켜보는 시대여. 비로소 우리는 오랜 정박의 닻을 올리고 순풍을 비는 출항제, 겨울의 부두에서 떠나고 있다. ++++ ++++회 생<하덕조>| 우주가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의 모래알 속에 있다. 동그라미 오래알 속에서 새로이 눈을 뜬다. 유년의 겨울 눈 밭에 아이들은 바람같이 나부끼고 있다. 햇발처럼 산등성이에 새끼노루 한마리 아이들은 불꽃이 되어 하나의 표적으로 쏠리고 화살처럼 날으는 환호성에 노루는 연못에 빠져 연못이 되고 있었다. 가라앉고 잇었다. 동심을 송두리째 안고 바람에 꽃잎 지듯이 가라앉고 있었다. 차라리 그 때 나는 한마리 노루이고 싶었던가. 이십년의 문을 열고 도시인이 되어 꿈 속에서도 깨어나 한 그루 미류나무가 되어 나는 종로 네거리에 서있었다. 그때 입술을 적실 이슬은 내리지 않고 갖가지 문명의 톱날바람이 가지를 잘라 갓다. 뿌리채 뽑아 달아았다. 그때 나는 청보리나 보듬고 사는 흙이고 싶었던 것을 이제 항시 잘 빗질된 햇살이 걸려 있는 교실에서 내가 백묵가루가 될 때마다 아이들은 별빛 눈을 뜨고 다시 그 별은 아이들의 핏줄에 은하로 흐른다. 사시사철 은하가 흐르는 아이들의 나라에는 저먀다 은하의 실을 풀어 밤마다 수를 놓고 있다. 아직 문을 닫고 있는 모래 속의 마을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아이들과 잃어버린 나를 수실로 뜨고 있다. 이슬같은 아이들의 등교길 그 아이들의 눈썹에 청보라가 피어 있네. 그 연못에 내가 담겨 오네. 천 개의 눈동자마다 천 개의 내가 담겨 오네. 우주가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의 모래알 속에 있다. 동그라미 모래알 속에서 새로이 눈을 뜬다. ++++ ====1974년==== ++++바다속의 램프<임석산>| 출렁일수록 바다는 완강한 팔뚝 안에갇혀 버린다.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익사할 수 없는 꿈을 부등켜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 있는 바다. 소주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 버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와진다.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다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먕은 돋아나고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어듬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와지는가. 우리는 모든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세계는 가장 황량한 바다. 지난 밤의 별자리로 우리는 떠오르고 바다속에서도 우리는 붉게 타오른다. 떠나는 자여 떠나는 자여 바라보는가, 온 바다로 우리의 피가 번져올 때 어딘가로 달려가는 파도의 시린 등허리를, 바다에 머리를 부딪고 죽어 가는 파도를, 이윽고 깨어진채 바다는 더 깊은 바다로 침몰하고. 밤내 우리의 두개골은 물살에 씻긴다. 그러나 바라보라 우리가 헤매는 곳마다 열리는 진정한 바다를 딛고 살아나는 파도의 푸른 발굽을. ++++ ++++회복기의 노래<안기원>| 1 무엇일까. 나의 육체를 헤집어, 바람이 그의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꺼내는 것들은. 육체 중의 어느 하나도 허용되지 않는 시간에 차라리 무섭고 죄스러운 육체를 바람 속에 내던졌을 때, 그때 바람이 나의 육체에서 꺼낸 것들은. 거미줄 같기도 하고 붉고 혹은 푸른 색실 같기도 한 저것들은 무엇일까. 바람을 따라 한 없이 풀려나며 버려진 땅, 시든 풀잎, 오, 거기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을 어루만지며 어디론가 날려가는 것들은. 저것들이 지나는 곳마다 시든 풀잎들이 연초록으로 물들고, 꽃무더기가 흐트러지고, 죽어잇던 소리들이 이슬처럼 깨쳐나 나팔꽃 같은 귓바퀴를 찾아서 비상하고... 누님. 저것들이 정말 저의 육체일까요? 저것들이 만나는 사물마다 제각기 내부를 열어 생명의 싱싱한 초산(초산) 냄새를 풍기고 겨드랑이 사이에 젖을 ㅅ흘려서, 저는 더 이상 쓰러질 필요가 없읍니다. 굶주려도 배고프지 않고, 병균들에게 빼앗긴 조직도 아프지 않습니다. 저의 캄캄한 내역마저 젖물에 녹고 초산냄새에 스며서, 누님, 저는 참으로 긴 시간 끝에 때묻은 시선을 맑게 씻고 모든 열려 잇는 것들을 봅니다. 모든 열려 있는 것들을 노래합니다. 격렬한 고통의 다음에는 선명한 빛깔들이 일어서서 나부끼듯이 오랜 주검위에서 더없는 생명과 빛은 넘쳐오로지. 열린 밤하늘과 수풀 있는 언덕에서 깊이 묻혀 깨끗한 이들의 희생을 캐어내고, 바람의 부드러운 촉루 하나에도 돌아온 사자들의 반짝이는 고전을 보았어. 저것 봐. 열린 페이지마다 춤추는 구절들을. 익사의 내 눈이 별로 박히어 빛을 퉁기는 것을. 모든 허물어진 관계위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질서를. 내가 품었던 암묵의 사상은 반딧불 하나로 불 밝히고 때묻은 활자들은 밤이슬에 씻어냈어. 수시로 자라는 번뇌는 은반의 달빛으로 뒤덮고 눈부신 구름의 옷으로 나는 떠오르지. 포도알들이 그들 가장 깊은 어둠마저 빨아들여 붉은 과액으로 융화하는 밤이면, 그들의 암거래 속에서 나도 한알의 포도가 되어 세계를 융화하고. 3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도는 은은한 광채는.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무서운 저 광채 때문에 깊은 밤의 어둠속에서도 나는 한마리 야광충이 되어 깨어 있어야 하지. 저 광채 때문에 내 모든 부끄러움의 한 오라기까지 낱낱이 드러나 보이고, 어디에도 감출 수 없던 뜨거운 목소리들은 이밤에 버려진 갈대밭에서 저이도 뚜렷한 명분으로 나부끼지. 두려워 깊이 잠재운 한덩이 뜨거운 피마저 이밤에는 안타까운 사랑이 되어 병든 나를 휩쓸지. 캄캄한 삶을 밝히며 가득히 차오르지. 무엇일까. 밤마다 나를 뚫고나와 나의 전체를 휘감아도는 은으난 광채는. 숨기려해도 어쩔 수 없이 스며나는 마치 보석과도 같은 광채는. ++++ ++++세개의 전쟁<강경화>| 1. 인체해부 나뭇잎 속에 세워진 일곱개 빛의 기둥 그런데 또 여기는 좁다. 눈밑에 몰려온 핏줄기 속에서 부화된 새들이 길이 되고 길을 가다 죽은 새의 주검에서 환생되는 새가 또 한 마리 무장된 해안을 떠난다. 싱싱한 거리, 밤의 혈관을 따라 확산되는 궁핍의 눈 하늘은 곳곳에 와 담겨 땅을 파고 수 없는 하늘이 수 없는 전쟁을 눕힌 참호밑에 얼굴을 다친 소녀의 침묵이 있다. 흔들 수 있는가 그것을 개들은 지상의 죽음을 하나식 다 먹어치우고 더욱 깊어진 죽음의 잿빛 식욕으로 빈 접시를 채우는데 대낮으로 펴져가는 신경의 오로망 위에서 김장이 끌고가는 황금의 들이여 보아라. 가지위에 모여든 겨울참새들 불구의 산실에 잠복한 꿈과 기도를 겨우 발을 디민 햇빛이 사격되는 저녁 종소리에 놀라 흩어진다. 고요, 그 풍요의 곳간을 뜯어먹는 생쥐의 날카로운 이빨아래 밤은 지나가고 거의 밤은 다칠 수 없이 지나간다. 다시 아침이 복구되지 않는 격전의 다리위에서 생식이 그친 얼굴의 꽃다운 우울속에서 시작된다. 그 무수한 시작의 발이 나뭇잎에 설득하는 혓바닥을 지난 밤 단식한 자의 시체위에서 모든 미각을 일깨우는 빛의 일곱개 기둥을... 그런데 또 이곳은 좁다. 2. 맹인의 나라 피묻은 손이 일하는 일의 우주속에서 얼굴은 아직 얼굴로 밝혀있지 않다. 얼굴속에 잠재한 얼굴의 폭력과 얼굴을 훔치는 없는자, 이념속에 귀기울여 눈먼자, 이렇게 셋이서 그림자가 하나인 다른 셋이서 간다. 셋이서 간다. 세개의 향기가, 비의 어둠에 섞여 파릇한 비의 , 두 손에 젖은 살육의, 천사의 정결한 정기가 전선이 저넌으로 이동하는 추방의 우주속에서 얼굴은 아직 얼굴속에 깃들여 있지 않다. 가을전장이 침뱉은 담장이넝쿨 매맞은 줄기와 발속의 덫과 덫속에 숨은 희망의 교미와 이렇게 셋이서 간다. 벗이 없는 셋이서 간다. 벗이 없는 셋이서, 부릅뜬 세 그림자가. 숨그친 공기 속에서 숨쉬며 숨막히는 맹인들의 우애가. 3. 겨울 풍경 겨울 뒷마당에서 아버지는 은밀히 개를 기른다. 눈이 멀고 털이 빠진 맹목적의 개를 이빨들의 개를 계산도 끝나고 걸음도 그친 노년의 수면위에서 황혼이 빠진 잔물결 위에서 젊은 군함들이 떠나간 턱밑에, 먼지처럼 물새들이 내려앉는 수평선 위에 돛대처럼 건장한 아이들은 전사한 채 웃으면서 나부끼고 겨울잠자리 아버지의 생각뒤에서 자꾸만 손이시려요 울부짖는 미지의 아이들이 빨갛게 벗겨있다. 아버지는 잠뒤에서 쉬지않고 물을 주고 푸르고 노란 누더기오 기운 한 뼘의 땅을 하늘이 막힌 전나무숲으로 기른다. 기르던 겨울이 떤나간 고요한 날 근육이 오른 아이들이 뛰어가 보면 하얀 수염속에 죽어있는 개의 은밀한 눈초리들 뒷마당에는 맑게 갠 봄날이 하늘속으로 확신에 찬 깃발을 날리고 있다. ++++ ++++기 구<안인창 >| 정원에서. 돌이질하던 바람들이 떠나간 그 정적 속에서 나의 하얀 손들이 흔들리고 있다. 무지와 퍼렇게 눈에 불을 켜들고 돌아가던 한 시절 이제 나는 외로와야 한다. 많이 외로와야 한다. 크고 훌륭할 강은 범람원을 이루고 검푸른 바다를 향하고 날마다 메마른 손바닥에 떨어지는 유리의 참담한 햇빛처럼 보잘 것 없는 가슴으로 나는 그를 향할 때, 구멍 뚫린 잠과 잠의 수렁에서 깨어난 지금 태양은 낯설은 각도에서 흘러간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리라>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기다린다. 외진 흙벽에 기대 이빠진 술잔에 저무는 마을을 보다가 잠들 때도 싱싱한 공기와 음향은 친밀한 것, 목숨 위에 이내 어두워지는 작은 이슬 이제 은으난 빛으로 녹아가는 니 음성, 보이지 않는 자정의 얼굴 할퀴어 살별 흐르는 상처도 만들어 주고. 늘 두러운 눈을 가진 아이가 발견하는 나의 사계여. 가진 자에게 비굴함이 없는 가난한 자가 되기 위하여, 건강과 용기를 딛고 올라서는 아침을 마시기 위하여 눈 먼 내 전신을 흘러내리는 꿈이 꿈을 갉아 먹는 흐트러진 머리를 다스리기 위하여 나는 나의손가락 사이로 흘러드는 포도즙을 본다. 돌이켜 다오. 그 징그럽던 여름 능구렁이 울음도 그치고, 아침이면 불편한 머릿속에 간 상징이여. 그 슬프도록 미쁘오신 마리아의 옷자락을 돌이켜 다오. 아득한 항로의 마지막 층계에 부딪쳐 울리는, 내전에 숨어 있는 내 나이 대로의 바다 잠시 나를 떠났다가 생전에 박아 두었던 곤한 하늘 뿌리를 뽑아들고 등촉 밝혀 찾아오는 길은 하염없이 멀지만, 그곳에는 달빛이 차갑고, 크고 엄숙함 그늘이 날개처럼 드리워 있다. 나의 소망은 그 바다에서 눈을 뜨는 작은 돌멩이 낱낱이 갈라지는 빛의한 부분이며 또한 조화된 생명이다. 나의 발이 지나간 어두운 증거가 곳곳에 한 무더기씩 불타는 불꽃의 결정으로 쌓이고, 그러나 아직도 당신은 저 너머 언덕 위에 있고, 부끄럼 잘 타는 나의 눈빛은 가물거리고, 가까이 있다 믿어지지 않는 새벽. 새벽에 젖빛이 도는 꽃병이며 자개며 소반들은 상쾌함에 감겨서 깊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 안의 헐어진 예배당에서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겁많은 손을 흔들때, 드디어는 끄덕이는 내 머리가 발 밑에 내려와, 빈 가지 깊숙이 남몰래 타는 꽃대의 등촉 그 구원한 빛의 찬란한 높이로 타오를 때, 쓰러지는 집들을 울리는 속삭임같이 그것은 평원에서 부서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를 여는 새로운 아픔 니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내가 갖는 나의 꿈이 몇장의 때묻은 지폐로 나부끼는 아침일지라도, 나무의 눈, 짐승의 눈 물의 영원한 흐름이 나의 책상 위에 넘치리. 나는 잠들었으면 하지만, 숙면 속에서 맑은 깨닭음이여. 이제 알았으리, 어둠 속에서 사람의 손톱은 낡고 집은 자주 가벼워지는 것을. 일어나라. 너의 입수러에 가까이 갈 힘을 회복하게 하라. 흰 달빛 까마귀 떼가 날으는 밤이 우리들의 등피를 잡목림 사이로 날려버린다. 내 금빛 언어들 하나씩 떨어져 팔랑거리는 낙과의 가을을 달리다가, 은미한 정적 속에 나의 차가운 손을 멈추게 하라. 두 손을 모으게 하라. 내 몸 있는데로 내어 맡기고 죽음이 웃음짓는 소리 들리는 캄캄한 시간, 저 밖의 녹슨 문고리를 벗기던, 무지와 퍼렇게 불 뿜던 눈을 가지고 비틀거리던, 한 많은 날들이여. -나는 아직도 많이 외로와야 하는 것이다. ++++ ++++단 식<김영석>| 죽음 곁에서 물을 마신다. 잠든 세상의끝 마름 땅 위에 전신의 어둠을 쓰러뜨리고 무구한 물을 마신다. 너희들의 빵을 들지 않고 너희들의 옷을 입지 않고 너희들의 허망한 불빛에 눈 뜨지 않고 줘춧돌만 남은 자리 다 버린 뼈로 지켜 서서 피와 살을 말리고 그러나 끝내 빈 손이 쥐는 뿌리의 약. 바람이 분다. 무구한 무러도 마르고 씨앗처럼 소금만 하얗게 남는다. ++++ ====1975년==== ++++일어서는 소리 <이정휘>| 1 어둠이 잎잎마다 녹아흐르고 달빛이 대지를 적시며 잠 재울 때 흔연히 일어서는 소리를 보아라. 우리들 가슴 가장 깊은 곳 숨죽이며 앉았던 조각들이 넘실대는 우리들을 일으킨다. 2 반쪽뿐인 우리들 얼굴이 스스로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패배하여 일어서 본 적도 없이 무릎에 상처만 만들다가 끝내 실신하였다. 무수히 긁힌 무릎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아직도 참지 못한 나머지 얼굴 흔들려 깨어지는 머리속으로 쏟아지는 달빛 가운데 나는 보았다 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소리들. 가슴 속에 부서져 앉았던 소리들이 일어나와 반짝이는 빛이다가 얼굴이 되는 것 나의 무릎엔 새살이 돋아나오고 ++++ ++++바느질<임홍재>| 1 한평생 닳고 닳은 눈물의 화강석 맑은 귀를 틔워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눈썹마다 푸른 신경이 돋아 아린 빛살에 찔리며 구멍뚫린 자루를 깁는다. 그슬린 등피 너머 물빛 연한 시간이 바늘귀에 뜨이고 죽은 은어떼가 물구나무서서 목숨의 한 끈을 말아올리는 밤. 어머니 십팔문 반 옥색 고무신으로 눈물에 익은 달빛을 퍼올리다 잠든 내 유년... 술래처럼 실을 물고 물구나무선 방, 가난한 식솔들의 목마름이 목화실에 뜨이고, 뜨이고... 2 청보이 목잘려간 황토 영마루 떠나간 할머니 상복깁던 바늘로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뼈마디마다 일어서는 몸살을 안고 채워도 채워도 채울길 없는 허기를 깁는다. 눈이 나리는에, 눈이 오는데 우리들의 마음속에 간직한 씨앗 하나. 인박힌 눈물에 익어 맑은 하늘아래 사랑으로 채우고 목화 다래가 될까 속곳까지 찢긴 바람이여. 귀먹은 바늘귀여. 3 불씨 다독여 인두를 묻고 반월성 성마루에 달이 오르듯 고운선 빚어내어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바람은 청솔바람 대숲소리 우수수 한지에 스미는 밤. 머리칼 올올마다 성에가 찬때 한평생 닳고 닳은 곧은 바늘로 바느질을 하신다. ++++ ++++봄 뜰<김문호>| 1 내 울안에 빛이 내린다. 멀리 사라져간 사계의 푸른 숨결 뒤로 연록색 하늘은 차 오르고 오랜 충돌 속에 그림자처럼 깔려오는 일몰 유년의 어린 기억을 더듬는 듯 잃은 사랑의 불빛이 뻐마디 마다 맑혀올 때 음울한 모럴의 동구 밖에 젊은 신체는 눅눅히 젖어 있다. 저 호수가에 서려있는 달빛, 그 아름다운 변화는 무엇인가. 고뇌의무수히 반짝이는 사랑을 거울 속에 묻으며 후미진 어둠의 찬 경계 밖에 오래도록 흐르는 잠 속을 울어가는 착한 꽃이여, 그 목숨이여. 2 스스로 알지 못하는 울속으로 쓰쓸히 묻어나고, 바람은 설레이는 시간의 살속마다 흐르는 빙하 검고 어두운 땅속에서도 언제쯤 새로운 눈을 뜨게 될까. 아직은 고여 있을 자양을 모든 뜰안으로 가벼이 펴고 캄캄한 잠속 단 하나 매어지 고리를 푼다. 메아리처럼 다가와 메아리처럼 멀어져 가는 시간은, 그러나 울며 고뇌하던 내 한 정점에서 머물고. 저 무한한 하늘의 끝간 데를 밟고 무수히 벌들은 내리고 시시로 우리의 안팎을 돌며 돌며 꽃송이는 내리고 있었던가. 3 시대의 저 드러난 자갈밭으로 아, 나는 떠난다. 나는 떠난다. 매몰된 우리들의 기진한 잠 속에서도 차게 빛나는 꿈의 꽃밭. 슬기로운 발길 위에 참된 발자국들. 붉게 타던 삶의 골짜기, 바람은 구르구 우리는 언어마저 상실된 세기의 우울한 거리를 끝없이 끝없이 방황하고 있다. 4 후미진 어둠의 찬 경계 밖에 녹슨 내 잠꼬대여. 무수히 범람하는 허기진 식욕은 저마다의 깊은 아픔을 풀고 설레이는 마른 가지의 흔들림을 당신은, 나는 얼마나 느끼고 있었을까. 두러운 가슴마다 온갖 음악은 차게 흐르고 저 찢기운 하늘의 철조망 신화의 눈먼 광장에서 오늘도나는 신비스런 경험을 한다. 목울대를 치며 샅샅이 스쳐와 먼 가늠의 그 속 한복판에 사랑이여! 어디쯤 내 땅은 마련될 것인가. 5 빈 공간을 후려치며 밤새워 고요를 흔들어가는 외로운 보행 이지러진 손마디에 떠있는 공복의 싸늘이 아픈 빙점. 무수히 눈발이 쌓이던 울속에 돋아난 빛의 뿌리 앙상한 최후, 겹겹이 주위를 지켜온 오늘의 꽃빛 말씀이여. 6 이제 그 누가 남아 있을 것인가. 밤새워 불타던 목숨의 높은 돛폭마다 우리들의 아까운 젊음은 조금씩 일어서고 있다. 귀대이면 숨찰듯 차오르는 밝은 저마다의 빛, 빛이여. 미지의 그 눈 부신 잎새를 터며, 살아나는 나의 허리춤에 어릴적 기억을 띄워본다. 잊은 추억의 매듭을 풀듯 신의 섭리처럼 다가오는 아, 그것은 이브의 눈빛이었다. 온갖 기쁨의 순수한 날개, 한마리 새의 마음이었던가. 7 아직은 빛이 흐르는 그 숲같은 아침. 넉넉한 슬기의 흔들림으로 이슬져 아롱지는 맑음같이 뛰어난 일과는 어느 종말 이후에 속살이 시린 피부를 채우고 있다. 오호! 한 겨울 올올 타오르는 동백의 꽃술에 매어 살던 어머니의 품같은 시대에 서서 어느 날 번득이며 둘러선 홑옷을 기어 입고 바다의살속에 뛰어든 빛을 맞으며 가장 알맞게 빠져나갈 하나의 죽음을 빛내고 있다. ++++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이인해>| 산에 오르면 알리라. 오르고 싶은 곳 산봉이 솟았고 쉬고 싶은 곳 나무그늘이 있음을. 그 그늘에 잠시 쉬고 있노라면 바위 아래로 돌돌돌 흐르는 물개울. 그때, 그대의 시선은 자유롭고 알리라. 오속길에 아무렇게 펴있는 풀잎들도 저마다 한 몫으로 살아있음을 그러나 나는 아직 아지 못한다. 오솔길에 풀 한포기 흔들리는 까닭을. 풀 한포기 되어보지 않고서는 풀 한포기 흔들고 지나는 바람을, 바람 한자락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풀 한포기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바람이 지나가면 풀 한포기 흔들리고 바람이 지나지 않아도 풀 한포기 흔들린다. 바위 아래로 돌돌돌 흐르는 물개울 흘러서 어디 가는가. 물 한방울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물개울의 흐름도 아지 못한다. 물개울로 흘러보지 않고서는 저 강의 물방울들 모임도, 바다를 떠돌아보지 않고서는 바다의 출렁거림도 아지 못한다. 내가 물 한방울이 되지 못하는데도 바다는 ㄹ밤늦도록 출렁거린다. 밖에는 바가 추적추적 내리고 나는 학자들의 책을 밤늦도록 읽는다. 밤 새워 읽은 뒤 내 방종의 뜰에 핀 꽃 몇송이 자기를 키운 가지를 떠나 옆으로 툭 불거졌다. 옆으로 툭 불거진 엉겅퀴는 바람이 웬만큼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는 것은 거짓의 풀임, 거짓의 바람, 나는 웃는다. 그때, 낙엽이 웃음처럼 지고 내 방종의 뜰에도 겨울이 왔다. 밤에 오는 눈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먼 곳에서 누가 눈을 눈이라고 하였는가. 아직도 비가 오지 않았는가. 밤새워 눈이 와도 녹아버리고 내가 찾은 한 마디의 말 아침에 아무런 흔적이 없다. 아직도, 바가 오지 않았는가. 겨울은 그러나 어김없이 왔고 이 겨울 나뭇가지를 떠나 방황하는 새 비로소 처음 추위를 느낀다. 새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내 한 때 방종의 뜰에는 겨울 짧은 해 빨리 지고 밤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속으로 제몸을 감추기 시작할 때 나는 무엇을 조금씩 알아가는가. 그러나 산에 오르면 알리라. 오르고 싶은 곳 산봉이 솟앗고 쉬고 싶은 곳 나무그늘이 있음을. ++++ ++++초 설<김은자>| 하릴없이 숫눈발 속에 다시 서노리 초경의 비린내 풋풋한 순 수함이여. 너의 심부에 언제나 깊고 어둔 발자취를 남겼으되, 이 눈길 위에 다시 새로운 나의 발자국. 오오 편편으로 흩어지 는 하늘의 전신이 흰 북소리 둥둥 울릴 때 과거가 어찌 남김없 이 용서받고 기억들이 어찌 어김없이 위무받느뇨. 모든 만남은 언제나 영원한 첫번째 만남이듯 흰 눈썹 부비며 낯선 미명의 거리를 가노라. 미진한 기억 속에 흰 북소리 낮게 질주하고 빈 나무등걸은 바람에 부풀면서 시간 바깥으로 무수 한 기억의 휴지부를 날려보내도다. 해마다 한차레 심령 속에 하늘이 갈갈이 찢어지나니 묵은 기 억의 모서리를 이지러뜨리며. 미지의 경험 속에 나를 미끄러 뜨린다. 새로운 시간의 숫눈길 속에 그날의 풋풋한 순수로 유 입하리라. ++++ ====1976년==== ++++사림기행<오승강>| 한 사나이가 일구어 놓은 땅 억센 풀들이 마른다. 어둠 속에서 깊이 뿌리내린 잎들의 아품 그 사내의 일대와 만나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 지껄이며 밭으로 걸어나갔다. 필경 흙 속에 배여 들 무모한 우리들의 헤맴 헤맴속 우리가 경멸하며 버렸던 수많은 발자울 그리고는 또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걷는다. 빗발처럼 수런대며 일어서는 단호한 저들의 음성 저혼자 부대끼며 돌아가는 풀잎과 동행하며 나는 언제나 허약한 사내 조그만 사실에도 크게 놀란다. 별빛이 총총히 들어서는 깊고도 적막한 어둠 속에서 만나는 빛인 한 사내의 음성 결국 내가 만난 저들의 아품은 [알 수 없음] 어둠의 가장자리에 끼여 지껄이고 잠시 만나서 듣는 끝없는 당부의 말씀 그 일부를 헤치면서 나는 만남에 늘 섭섭한 인사 쓸쓸한 내 모습을 보였다. 그대 앞섶이 단추마저 떨어져 열려진 가슴으로 돌아서며 단호하게 말했지 헤매리라. 닫힌 어둠을 열면서 어둠에 더욱 익숙해지기 위하여 어제는 내가 버린 수 많은 낱말들의 자위로 쓰여진 시 한 사내가 일구어 놓은 땅을 더듬어 걷는 이 부질없는 헤맴 그 속을 가로질러 소리없이 내리는 허약한 밤의 안개 짙은 안개속 비틀거리며 걸어간 밭으로 안개여 내가 젖은 무게 만큼의 지친 하루를 이끌며 몇개의 낱말에 취하여 버릇처름 알코올을 생각해 냈다. 몇 주일을 빈 방에서 뒹구는 여름날의 긴 그림자 내 얼굴의 부황으로 또 다시 살아나는 느닷없는 부활을 그대 이성의 힘으로는 알아낼 수 없다. 확신의 땅으로 헤매는 어둠 속 무엇때문에 바람은 불어 뿌리꺽인 풀잎을 시들게 하고 한 사내의 일대를 흔들어 놓는가 끝없이 헤매다 바라보는 한 시대의 전모 지나간 것들의 수많은 이름 위에 남은 쓸쓸한 한 사내의 모습 그대 단호한 음성이 어둠 속에서 잠드는 시간을 지키며 제 뼈 깍는 풀잎들의 아픔 그 속을 헤매는 한 사내와의 만남은 [알 수 없음] 한 사내가 가는 길을 억센 풀들이 마른다. ++++ ++++호루루기<서종택>| 우리집 은행나무 아래로 부는 바람의 어깨가 절반쯤 노랗게 물든 날이었읍니다. 그날은 학교가는 길에 휘파람을 불면서 골 목길에 가득한 햇살을 가볍게 밀어제치기도 하였읍니다. 애들은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뛰어다리고 햇살 드문 드문 섞인 웃음소리는 느릅나무 그늘에 깔렸읍니다. 선생 님의 긴 호루루기 소리가 우리들의 잘 차려 입은 옷자락을 스치 며 길을 떠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엷은 발꿈치는 즐거운 생각으 로 뒤덮여 어지러웠읍니다. 손에 손을 잡고 국민학교 1학년 때 부터 배운 노래들을 모두 불렀읍니다. 하마 목이 쉰 노래까지 섞어부르며 우리를 이어주는 여리대 여린 손가락에다 하늘이나 걸어놓고 먼먼 앞날같은 것을 약속했어요. 어떤 노래는 하늘 끝으로 날아가고 어떤 노래는 길가 플라타너스로 날아가 더러 는 그 큰 잎사귀 위에 잠시 앉아 쉬기도 하였읍니다. 도회지를 벗어나자 길은 한결 싱싱해지고 풀잎으로 파랗게 반짝이는 것이 여간 아름다운게 아니었읍니다. 우리들은 더욱 애들의 운동화를 걸어 넘어뜨리고 준비해 둔 몇가지의 웃음을 재빨리 넣어주곤 하였읍니다. 그러면 넘어진 애는 눈을 가늘게 흘기면서 살짝 토라지는 것이었지만 사과를 먹으면서 오던 다 른애가 보기좋게 나동그라졌을 땐 누구보다 더 커다랗고 굴곡 이 맑은 웃음을 그애의 운동화에 꽉 차게 넣어주는 것이 아니 겠읍니가. 아뭏든 그렇듯이 가는 길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비 록 실수라 할지라도 금방 예쁘게 포장이 되어 누구나 갖고 싶 어하는 참한 것이 되는 것이었읍니다. 이따금 머리를 들면 높 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우리들의 귀밑머리카락을 낱낱이 적서주었고 한 이십리쯤 내어다보이는 하늘에는 호루루기 소리 가 하나 둘 날아가는 것이 보였읍니다. ++++ ++++풀잎에 누워<임세한>| 햇살이여 연초록 잎새에 누운 내 벌거벗은 목숨을 오래 오래 눈여겨 보는가 맑고 찬 알몸 오히려 부셔 눈물나고 알몸 한오라기 가닥가닥 벗기면 풀빛 고운 하늘이 숨 쉬던 것을, 그 하늘의 갈피마다 일어서던 바람들 햇사로 살아서 통겨오르던 것을, 더러는 바람속에 불려가 신음하나 흘림이 없이 죽어가던 것을 그래도 꽃 그리매 한결 곱게 연지 곤지 찍어 가꾸던 것을 햇살이여, 지금도 눈여겨 보는가 연초록 잎새에 몸져 눕던 그 맑고 찬 알몸들을 퉁퉁 불은 바람들이 뚝딱뚝딱 가슴에 못을 치며 가는 걸 벗기면 벗길수록 더욱 무거운 내 알몸 비어가는 것은 더욱 차고 출렁거리고 이윽고 잎새마다 살아서 빛을 퉁기는 물방울로 아아, 탄생하는 것을 햇살이여, 아는가 연초록 잎새마다 몸져 눕던 알몸 가닥가닥 그 한오라기까지 지금 그대 눈 그리매에 살아있음을. ++++ ++++장미원<김 종>| 가슴 복판을 내리는 눈물 무섭고 험한 곳에서 눈물은 미덥지않다. 종말을 지키고 섰던 육체 하나로 바람은 죄다 막을 수 없다. 젖은 포기마다 흐북히 스며든 비의 그 기름진 분해 비만 와도 아득했던 소식들은 무감각한 장미다발로 피어나 바람과 더불어 잠갠 채 흔들린다. 더욱 싱싱하고 팔팔한 물고기 비늘을 달고 지나간 모든 일들은 새로와지는 법이다. 길고 부드러운 파도의 등허리를 간단히 웃어 넘는 장미의 입술. 나이프의 빛이 버져올 때 장미가 성장했던 평일의 체온은 벌써 확실한 꿀물로 흐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기계의 톱날마다 맞물린 강의 그 환한 진실. 기침소리 하나로도 삭아 있던 저택은 가볍게 흔들린다. 잎잎에 젖어 있던 당신의 언어가 물방울 가운데 완전히 떠 있다가 은은한 빛으로 발견되어야 한다. 아침을 마시고 자라기 위해 굴함이 없는 자의 근육이 잠들 때도 비는 내리고 그 속을 헐고 섰는 장미다발의 건강한 웃음. 저리도 밝은 시선을 뚫고 나와 새로운 거리로 몰려나간다. ++++ ++++산 조<김용해>| 1 내 못다 운 울음을 우느냐 가을뜨락은 그애 제일로 아픈 심장의 하가운데 울며 살아온 이의 한 열배쯤 그런 서러움으로 사는가 보아. 마음마저 텅텅 빈 외로움 일 때 차라리 그대 내 가스에 와 닿아라 죽은이의 살결을 쓰다듬듯 병 앓은 내 가슴팍 그대 위안으로 잠이 들리니. 2 마지막 이 가을은 닳을대로 닳은날을 다 떼내버리고 노오란 속날들만 간추려서 깔아놓고 서천에 어른대는 가랑잎소리 벗삼이 아주 영 떠나든가. 마지막 이 가을을 우리 마음 으슥한데 다 물들이고 돌아누운 뒷마당 맑디 맑은 바람만 간추려내고 하늘 받고 섰는 저 산등어리 벗삼아 아주 영 떠나든가. 3 살아온 전생이 마음도 부질없이 서러울 때는 피리구멍이나 되어 바람이 지날 때 마다 가슴 앓아라. 한결같은 우리 마음내 모두 모두어 필릴리 필릴리 피리소리로 울고나면 사랑이여 우리 빈 자리엔 가을날같은 그대만이 가득하거니. ++++ ====1977년==== ++++공중의 꽃<강영환>| 흔들리는 물위에서 춤춘다. 닫혀있는 마음을 위해 현란한 꽃밭위에서 한송이 공중의 꽃이 피어난다. 뻗어도 닿지않는 손끝에서 어지럽고 위태로운 그대들의 바벨탑이 일시에 무너지고 구설의 땅에 해일이 밀려 와 질기고 거센 호흡을 세운다. 죽은 자들의 안색이 흩어지며 아베의 열손가락으로도 모자랄 만큼의 방향으로 물속의 해가 비친다. 동쪽으로 간 사람이 데리고 있는 동쪽의 물속에 비친 해 서쪽으로 간 사람이 데리고 있는 서쪽의 물속에 비친 해 삼계에 있는 사람이 데리고 간 삼계의 물곳에 비친 해 들의 망령되이 흩어지는 천갈래의 마음으로 이루어 이웃은 쓰러져 만남이 없고 형제들의 말이 죽어 무수히 조각난 거울속에 쌓인다. 달디 단 맛의 기둥속에서 백사람의 물속에 비친 백개의 해들이 날궂은 날의 삭신처럼 아리더니 칠흑의 밤으로 떨어진다. 남몰래 떨어지고 있을 공중의 꽃이 어느 이웃의 안마당에 피어 내일의 아침을 맞아 들이며 죽은 자들의 안색을 달랠 것인가. 죽은 자들은 말한다. 어지럽다. 어지럽다. 어지럽다고들 하여 캄캄한 빛으로 도시들을 숨기고 감추어지지 않는 입들만 남겨 형제들의 말이 지쳐 쓰러질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 위태로운 물위에 홀로 서서 바람이 몰아 오는 물결들을 부수어 마지막 해를 붙들고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 춤추노니 빛이 닿지 않는 물속 깊이 남김없이 숨은 먼지를 털어 내고 지순한 음성으로 노래하여 어린 이웃의 잠을 깨워 형제들의 굳은 마음을 오게 하라. 그대들은. 무명의 꽃밭속에 하나의 해가 잠겨 들고 물결은 남김없이 자취를 감춘 때 드디어 닫혀있는 마음을 위해 해는 떠서 공중의 꽃이 된다. ++++ ++++월 식<김명수>| 달 그늘에 잠긴 비인 마을의 잠 사나이 하나가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발자국 성큼 성큼 남겨 놓은채 개는 다시 짖지 않았다. 목이 쉬어 짖어대던 외로운 개 그 뒤로 누님의 말이 없었다. 달이 커다랗게 불끈 솟은 달이 슬슬 마을을 가려 주던 저녁 세 우 저 난장이 병정들은 소리도 없이 보슬비를 타고 어디서 어디서 내려오는가 시방 곱게 잠이 든 내 누이 어릴 때 걸린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쓰는 내 누이를 꿈결과 함께 들것에 실어 소리도 없이 아주 아늑하게 마법의 성으로 실어가는가 무지개 아이가 걸어간다. 혼자서 어여쁜 꽃신도 함께 간다. 이 세상에서 때묻지 않은 죽음이여 너느 다시 무지개의 칠색으로 살아나는가 아이가 걸어간다. 아이가 한밤중 불같은 머리속 다 헹구고 비바람 폭풍우 다 데리고 오늘은 다소곳이 걸어간다. 눈물도 꽃송이도 다 데리고 걸어간다. 아가야 네가 남긴 환한 미소 네 가슴에 남겨둔 영롱한 기쁨 그런 것 모두 다 한데 모아 오늘은 비 개이고 맑은 언덕 아이가 걸어간다. 혼자서 하늘나라로 하늘나라로 무죄의 층계를 밟아 오른다. ++++ ++++벌판에서<권석창>| 부러져 넘어진 한아름 바람을 버리고 오렌지빛으로 불타는 구원받지 못하는 모든 허공을 버리고 슬픔의 무게로 뚝뚝 떨어지는 눈발속을 그대들은 어대로 가고 있는가 이 세상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눈은 내려서 세상은 비어지고 바다 속 깊숙히까지 슬픔이 배인 지금 저마다 또 다른 짐을 꾸려지고서 자꾸만 어지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쓸쓸한 길위에 표정 잃은 신호등을 나는 보았다. 어지에도 꽃은 보이지 않고 숨어서 우는 몇날밤의 어둠과 멍든 바다의 조각들이 끝없다 잎이 진 나무드이 눈쌓인 산길을 내려와 죽은 강물을 보고 울었다 아 이제 이루어짐의 모두는 그대 곁에 없다 천근 무게로 밀려오는 잠의 더미 더미 머리 풀고 몸져 누운 산하, 그침묵의 마지막 날가지 빛바랜 낮달은 벤치에서 졸고 있다 그재들이여 하고 소리쳐 불러도 나개 속에 피었다 질 뿐 허물 수 없는 벽 속에 갇혀서 허망한 몸짓만이 만났다 헤어진다 떠말 것 보두 저대로 떠나고 남은 것만이 허망하게 남아 몸부림해도 일어나지 않는 바람과 두들겨도 시리하지 않는 침묵만이 깊게 깊게 가라앉는다. ++++ ++++겨울 과수밭에서<김기종>| 겨울 과수밭에서 고요히 흐르느 해류가 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는 빈 나무가지는 해초같이 떠서 흐른다. 이제 비로소 모든 것을 버림으로해서 얻은 자유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가라앉은 바다의 허밍 코러스. 눈물겨운 가을햇빛속에 지탱해오던 풍만한 보람의 과일은 이 수심 모를 공허를 위한 예비 밤으론 쓸쓸한 혼들이 모여 산호수사이 인어들이 해류에 머리를 헹구듯, 이 고요하고 슬플것 하나 없는 허무에 머리를 감는다. 아직도 기다림이 남은 이여 봄 여름의 푸르던 이파리의 여운도 다 지워지고 일렁이는 바다의 울음도 다 삭아서 맑은 공허만이 남아 있는 이 태고같은 수심에 너의 마음을 누이렴. ++++ ++++아침<유수창>| 아침은 노를 저어오는 저 싱싱한 사내의 순금빛 얼굴에서 빛나고, 그러나 금새 파곤한 하루는 서산에서 저문다. 이윽고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편 밤은 와서 다시 향긋한 입김을 물고 잠든 아기의 포대기 속에 있다. 아기를 보듬고 잠이 든 아내의 속눈썹 밑에도 있다. 신의 광명도 끊인듯한 이 철, 고독한 이 시대의 밤에도 속절없는 구수을 꿈꾸는 아내여. 그럼, 다신은 꿈 속에서 달빛같이 불을 켜라. 나는 겸허한 지혜가 되어 차가운 한반내 신앙처럼 노래를 살려내고 어둠을 접어둘 아침까지는 결빙의 바람소리를 들을 것이다. 지금은 이불 속에 잠든 아기의 간간이 칭얼대던 노래도 그치고 언제는 안 그러랴마는 뉘에겐들 단 그러랴마는 죽어버린 혼보다 살아 있는 혼은 더 고달프고 우리들 불면으로도 못 다스린 사랑은 또다시 내일까지 남을 것이다. 저마다 버릴 수도, 잊고는 살 수 없는 우리들 유년의 발자국 파묻혀간 지평 너머 숨은 애인같던 고향이여 그러나 아직도 이 이승에서 아내보다 더 많이 나는 육신의 혼을 그리고 혼의 아픔을 불러낼 줄 알지만 그저 이 까만 밤을 앞으로 몇 장이나 더 헤어가야만 봄을 새긴 들판에 노래가 사는지 밤 새워가며 못내 어깨뼈 아픈 기약을 서둔다. 봄은 멀고 유리창은 끝까지 죽음에 따르는 저 완고한 고집을 배웅하듯이 이를 맞부딪쳐 떨며 울고, 이 한밤 살아있는 살점 안에 고인 눈물로 불씨같은 노래를 간직하고 나는 밤에 더 잘 저 어둠의 밖까지 환상의 빛고운 날개를 펼 수 있다. ++++ ++++작 도<성귀영>| 백지 위에 임의의 한 선을 그었을 때 그것은 때로 우리에게 닿을 수 없는 무수한 실체의 감춰진 세계를 꿈꾸게 한다. 아주 짧은 반응이기는 했지만 그 순간 백지 위에 임의의 한 선을 그었을 때 평면에 숨어 있던 빛은 조용히 포복하였다. 선이 동시에 매우 가는 철조망과도 같은 탄력으로 가늘게 흔들렸다. 빛이 추적하여야 할 것인가 나는 잠시 당황하였다. 선을 넘어서 무한한 광야를 지나고 위로 위로 끝없이 나는 포복하였다. 그 상태에서 나의 무릎은 깃털처럼 가볍고 사상은 유리알보다 더 투명했다. 파동치는 시간의 물살을 가르는 한가로운 선회 갑자기 나의 몸은 서서히 밑으로 미끄러졌다. 빛의 굴절 백지는 외로운 사막처럼 고적했다. 거기서 나의 꿈은 깨어지고 나는 그 외로운 사막 위에 양지 바른 남향의 집을 작도 하였다. ++++ ++++새벽 두시<신석진>| 새벽 두 시를 지나 세상을 바라 보면 세상은 언제나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시간은 방 안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내가 버린 언어들이 다시 살아나서 나의 정신을 배반하고 이 고요한 밤을 배반한다. 간혹 저 별빛이 다가와 내이름을 부르지만 나는 별빛의 이름을 부를 수 없고 아무런 산 하나도 만날 수 없다. 이제는 참으로 돌아서 자리에 누우려할 때 세상은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듯 보아라, 우리들이 나서 우리들이 죽는곳, 세상은 적막 저 쪽에서 강물로 흘러가고 우리는 별빛처럼 벌판에 남아 잠들지 못한다. 밤. 사물 밤이 되면 모든 사물은 소박한 어둠으로 돌아간다. 정지된 시간은 정지된 그대로 깨어 있는 칼끝은 깨어 있는 그대로 모든 사물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름없는 무명으로 하여 우리의 덧없는 사랑을 기다리지 않으며 우리의 자유보다 더 선명하게 한 개의 말하여지지 아니한 언어로 돌아갈 뿐, 이제 그대들 모두가 잠들면 모든 사물은 시간의 옷을 벗고 일어나 가장 자유로운 꽃의 형상이 되어, 스스로의 모든 아픔을 밝힐 때까지 명*의 새벽 벌판을 거닐고 있다. ++++ ++++화양리<김광만>| 1 늦은 빗물소리 하나 떨어져 내려, 벗은 산, 붉은 허리 함께 건너갈 때 다리 저는 서울의 모든 꿈의 불빛 화양리의 끝 벌판에 집을 짓는다. 어둠속에서도 쓰다 버린 물들이 눈에 익은 들꽃의 허리를 세우고 서울 밖으로 밀려난 새 울음 몇 마디 젖은 들을 건너간다. 오직 잡초들만이 모가지 우수수 떨구어 남은 캄캄한 세월을 준비할 뿐 질러오는 샛길이 흙탕물에 버려져 있다. 잠시 가만히 서 있던 산이 말을 삼키고 그대 화양리의 끝으로 겨울이 온다. 2 너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 푸른빛으로 담긴 것들을 마른 강아지풀의 미미한 털로 쓸어보고, 혹은 만나서 불덩이가 되는 산천을 헤매는 너는 무엇인가. 때로는 침묵으로 사라진 것을 이루고 나의 마음에 깊숙히 들어와 젖는 너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모아온 삶만큼 부질없고 적막한 것이 철조망의 녹슨 못대가리로 꽇혀 있고 너는 맹세처럼 힘차게 지나간다. 말하지 않고 빈 들판 끝에서 서너 개의 견고한 가슴을 준비한다. 3 누워있던 생애의 불꽃이 일어서고 무엇일까 기다림의 끝으로 흘러오며 눈부신 알라딘의 램프가 떠받치는 겨울 화양리의 확실한 목소리는 새로운 노래되어 스스로 다가오고, 밤의 수렁이 어둠만으로 침몰하지 않는다. 얼음 밑으로 더욱 강물이 세차게 두드리고 새 뿌리가 서로 비비며 뻗어난다. 내 발 밑에는 아직 귀뚜라미 울음이 피처럼 사위지 않고 휘감으며 남은 우리의 모든 눈물자국을 보내버린다. 날마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건너와 얼고있는 벽을 허무는것은 무엇일까. 밤이라도 넋 잃고 잠들지 못하게 하는 화양리의 끝 그 뚜렷한 목소리는 무엇일까 이렇게 분분히 돌아오며 뜨겁게 언 손을 감싸면서 화양리의 끝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은. ++++ ++++도천수관음가<박윤기>| 우리가 한 송이 꽃이었을 때 우리를 스쳐가는 모든 것은 바람이 이었네. 아직 꽃피우지 못한 마을의 아이들은 눈이 먼 채 부감의 하늘 속으로 잃어버린 점자를 찾고 있었지. 덫에 치인 꿈은 가위 눌린 채로 시위잠을 자고 젖줄 끊긴 살 속으로 뜨거운 오인의 소리는 파고 들었네. 어느 빈 뜨락에도 아침을 몰고오는 소망의 작은 새떼는 날아오지 않고 우리들의 간식은 쉬임없이 강물에 자맥질하는 회한이었네. 층층이 내려서는 의식의 깊은 벽에 채찍의 겨울은 또 다른 장막을 둘러치고 바람은 무거운 영어마다 어둠이 부딪쳐 흩어지는 창을 흔들며 있네. 은성했던 꿈의 부스러기가 부서져 내리는 길은 길마다 낮게 낮게 매몰되고 긴 회랑을 걸어서 우울의 계단을 빠져 나올 때 다시 어둠으로 차는 굴레. 모든 사념은 기실 풀었다가 다시 짜는 페넬로페의 직조였네. 돌아다 보면 그 곳엔 오랜 묵시의 강이 흐르고 하늘을 더듬는 아이들의 작은 손이 기폭처럼 바람에 찢겨나가고 있었지. 삼계에 가득히 천사들의 흰 은총은 내려앉고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청댓잎 푸른 가지를 비집고 피어 오르는 아침은. 해조음에 실려오는 비취 빛 청아한 아침 노래는. 노랜 동면의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외출을 서두르고 회색의 겨울은 부활의 눈을 뜬다. ※(주: <페넬로페> = [트로이] 전쟁에 출전한 남편을 기다리다 수절한 오딧세이의 아내). ++++ ++++전 야<이은실>| 전혀 다른 냄새로서 그러나 어딘가 닮은 우리 아픔의 가장 불편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두꺼운 겨울이 겨울답게 민첩한 말들을 장만했던 것이라면 동방의 새소리를 들으며 사랑가를 부르던 서정의 계절은 얼어붙은 오늘의 역학을 딛고 다시 일어나 불타는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지만 가슴속 깊은데서 출발을 서둘고 있는 이 기이한 숨결은 멀어져 가는 항구의 뱃고동 소리에도 날마다 새로와 가는 인터체인지의 향수 속에서도 사무치는 사연을 알리지 못했기에 때로 우리들 그림자의 옷깃을 스치는 슬픔과 기븜을 어느 미래의 여백이 알뜰히 담아줄 것인지 캄캄한 밤의 동굴에 내리는 무지개빛 환상넘어 팡세는 더 깊은 수평을 향하여 손짓하니 구름과 별과 그리고 상념의 바다에 기적을 고대하는 새 날에의 입김은 따스한 풍경을 손질하는 심장 가까이에 와서 어느새 서성거리고 있다. ++++ ====1979년==== ++++탑<원귀직>|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한꺼번에 무너진다. 무너질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 한꺼번에 무너진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다. 당연히 무너져야 할 것이 가장 안정된 자세로 비바람에 천년을 견딘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흐르다보면 이것만큼은 무너지지 않아야 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불안하다. 아 어쩔 수 없는 무너짐 앞에 뚜렷한 명분으로 탑을 세우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맨 처음 탑을 세웠던 사람이 잊혀지듯 탑에 새긴 시와 그림이 지워지고 언젠가 무너질 탑이 마침내 무너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디에 탑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탑을 바라보면 무언가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지 않아 불안하고 무너져선 안될 것이 무너질 것같아 불안하다. ++++ ++++겨울 강구에서<박강현>| 가을날의 빗방울 그 예지의 지팡이로도 더듬어 이르지 못한 그리움을 보듬고 모람모람 눈이 내린다. 바람에 되는 대로 날리며 와도 알맞게 길을 덮고 어둠을 뚫으며 끝없는 하늘길을 서성이며 서성이며 마른 전신주를 적셔 내리고, 손수레에 목숨을 달고 있는 솔봉이네의 드러난 허리께를 더듬어서 내리고..... 그러나 보아라 보이지 않는 아픔들이 거짓의 붕대에 감기듯 잘 갈무리되어 있는 아침이면, 철없는 아이들의 발목들이 한껏 뛰어놀고 있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잃어버린 것들이 망령처럼 떠돌아 내린다. 저 수많은 빈 손들의 다함없는 기구여 속절없는 원망들이여. 지푸라기 우는 바람꽃 속 밤도 깊은 강구에 허수아비의 팔벌림으로 서서 나는 지금 누구를 기다리며 있는가. ++++ ++++날아라, 시간의 포충강에 붙잡힌 우울한 몽상이여<장석주>| 1 신생의 아이들이 이마를 빛내며 동편서편 흩어지는 바람속을 질주한다 짧은 겨울해 덧없이 지고 너무 오래된 이 세상 다시 저문다 인가 근처로 내려오는 죽음 몇 뿌리 소리없이 밤눈만 내려 쌓이고 있다 2 희양목 아래서 칸나꽃 같은 여자들이 울고 있다. 증발하는 구름 같은 꿈의 모발, 어떤 손이 잡을 수 있나 3 밤이 오자 적막한 온천 마을 청과일 같은 달이 떴다. 바람은 낮은 처마의 불빛을 흔들고 우리가 적막한 헤매임 끝에 문득 빈 수숫대처럼 어둠속에 설 때 가을 산마다 골마다 만월의 달빛을 받고 하얗게 일어서는 야윈 물소리. 4 어둠 속을 쥐떼가 달리고 공포에 떨며 집들이 긴장한다. 하나의 성냥개비를 켤 때 또는 타버린 것을 버릴 때 더 깊고 단단하게 확인되는 밤 쥐떼의 탐욕의 이빨이 빛나고 피묻은 누군가의 꿈이 버려져 있다 5 하오 3시, 바다는 은반처럼 빛난다 흰 공기 속을 통과하는 햇빛의 정적 바람이 분다, 벌판에 흰 빨래처럼 처박힌 저 어두운 바다가 운다. 포악한 이빨을 드러내는 바다, 하오 4시 위험한 시간 속으로 웃으며 뛰어드는 아이들 6 전파는 다급하게 태풍 경보를 예보하고 탁자의 유리컵에는 바다가 갇혀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폐쇄된 전해안 새파랗게 질린 풀들이 울고 그 풀들 사이에 누군가의 거꾸로 처박힌 전생애가 펄럭거리고 있다 오, 병든 혼, 아이들은 폭풍속을 뚫고 하얗게 떠 있는 바다로 달리고, 내 붉은 피톨은 쿵쿵 혈관을 뛰어 다니며 울부짖고 있다 7 햇빛 그친 낡은 문짝에 쇠못들이 박혀 녹슬고 있다 잊혀진 누군가의 이름들 8 바람은 오늘의 풀을 흔들며 지나가지만 흙속의 풀의 휜뿌리는 다치지 못한다 9 통제구역 팻말이 꽃혀 있다 끝없이 거부하며 어둠으로 쓰러지고 풀뿌리 밑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잠들곤 했다 팻말뒤에서 펄럭이는 막막한 어둠 어두운 창너머 벌판에는 비가 뿌리고 잠자면서도 절벽을 보았다, 밤마다 시간, 오오, 가혹한 희망과 다정한 공포여 소멸의 이마를 스치는 푸른 번개 서치라이트의 섬광만 미친 짐승처럼 이빨을 번득이고 나는 꿈속에서도 필사적인 질주를 하며 땀을 흘리고 울었다 아, 1975년 여름 절벽에 부딪쳐 산산히 튀어 오르는 파도 조각처럼 부서지고 싶었다, 그때. ++++ ++++안 개<손종호>| 이것은 동찰의 거울에 번지는 피. 그대 등 뒤로 퉁겨 오르는 허망의 파도다. 녹슨 우리의 살을 뚫고 흔들리는 이것은, 새로 한 시쯤의 눈물이었다가, 데사로니카전서 5장 3절의 젖은 아픔이었다가, 새벽녘이면 뒷 울안 장미의 발등에 차가운 입술을 비빈다. 불가해의 꽃이여. 아득하므로 너의 얼굴은 잔혹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흐릿한 창에 이마를 대면 무엇일까, 지느러미를 흔들며 흔들며 흘연 목숨의 맨 안쪽을 깨무는 찬란한 향기. 손 저으면 마악 밑뿌리를 흔들며 가는 바람 한 자락이여, 빛을 닮은 커다란 손 하나가 또 다시 서녘 한 페이지를 넘길 때 말하라, 우리의 혼돈이 얼마나 건강한 눈물을 키워 왔는가를. 이것은 동찰의 거울에 번지는 피. 그대 등 뒤로 퉁겨 오르는 허망의 파도다. 영원의 기슭에서 밀려와 영원의 기슭으로 멀어지는 소리. ++++ ++++목재의 질량<조용현>| 푸른 숨결로 깎아 세운 솟을 대문이 열린다. 머언 소망의 달빛을 타고 밀물이 쳐들어 온다 잠시 고쳐 잡는 대팻날 아래 물에서 갓나온 여인의 속살처럼 싱싱하게 빛나는 나무의 표면 생장의 내력을 알 수 없는 동남아산 나왕의 안팎에 널린 담담한 죽음과 더불어 어기찬 혈맥이 뛰놀고 있다 톱, 마치, 대패 이런 소도구들 위에 머물며 한자 한치도 틀림없이 목재의 질량을 헤아리는 그의 보행 생활의 마디마디에 튼튼한 못을 치면서 활발하고 다부진 발길을 내어 딛는다 물오른 목숨이 윤기가 흐르는 공간을 설계하여 따스한 체온으로 녹인 아교를 발라 얽어짠 소망의 동산위에 속 깊은 바다의 음향을 간직한 채 광채를 발하는 자개를 인두질해 붙이면 순식간에 탐스런 모란이 벌고 금빛 목청의 봉황이 울고 꽃사슴이 뛰논다. 도타운 칠을 올려 곱게 사포질을 하면 거울처럼 영롱히 빛나는 장롱의 표면 어느 햇병아리 부부의 다정한 웃음살로 그 위에 비칠 아슬한 벼랑같은 가구를 짜며 바쁘게 돌아가는 목수의 일상위에 풋풋한 욕정처럼 번지는 노을이여 젊은 목수는 오늘도 아픈 손길로 무명의 기념비를 깎아 세운다. ++++ ====1980년==== ◈동아일보 ++++유년시절<하재봉>| **강마을** 외사촌형의 새총을 훔쳐 들고 젖어있는 새벽강의 머리맡을 돌아 갈대숲에 몸을 숨길 때, 떼서리로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 끝에서 물보라처럼 피어나는 그대 무지개를 보았나요? 일곱 개 빛의 미끄럼틀을 타고 새알 주으러 쏘다니던 강안에서 무수히 많은 눈물끼리 모여 흐르는 강물 위로 한 웅큼씩 어둠을 뜯어 내버리면, 저물녘에는 이윽고 빈 몸으로 남아 다시 갈대숲으로 쓰러지고요 둥지를 나와 흔들리는 바람을 타고 강의 하구까지 내려갔다가 그날 노을 거느리며 돌아오던 새떼들의 날개는 불타고 있었던가? 어느덧 온 강마을이 불타오르고 그 속을 나는 미친 듯이 새알을 찾아 뛰어다녔지요 **쥐불놀이** 맨발로 오래된 바람의 건반을 밟으며 아이들의 긴 그림자가 사라진다 노을속으로, 목 쉰 풍금소리 꽃잎처럼 지는 들녘에 어둠은 웬 소년 하나를 세워두고 지나간다. 간다. 노을밭 지나며 훔친 불씨 속살속에 감춘 아이들 한 짐 어둠을 메도 달집 가까이 떠나고, 알몸의 또 한 무리는 노을의 뿌리밑 그 잠으로 엉킨 언덕으로 내려간다. 풀어놓는 짐으로 깊은 어둠의 집을 만든다, 달무리가 지고 지붕밑에 불씨 붙여 온 누리 가득차게 달빛 일으키는 정월 대보름의 아이들 빈 몸으로 어둠속에 숨어있던 소년은, 새벽녘 마른 가슴 부비어 불을 지피고 **병정놀이** 바람잦은 산지마을 야선 너머로 횃불이 올랐다. 무덤 뒤에 웅크린 고슴도치를 긴장한 머리카락 사이로 수채화처럼 번지는 어둠. 나뭇가지 허리에 찬 대장, 돌격명령을 내렸다. 서낭당 처마 들썩이며 바람이 풀어놓은 도깨비불, 동란때 치마 찢기고 목매단 물방앗간 누나 그 눈, 겁많은 소년 덤불 속으로 숨고 어두워지면 어김없이 끈적거리는 바람. 뒤집어진 계집애들은 백여우 꼬리 번뜩이며 백 번 둔갑을 한다. 발정한 바람에 실려 아이들은 홀린 듯이, 산 너머너머로 흘러다니고 찢어지는 신음소리, 누나는 온 숲 퍼렇게 불을 댕겨 어린 병정들을 태워버리니, ++++ ++++편도선<이정숙>| 고달픈 신열이었읍니다. 육신이 먼저 까부라지면 정신도 고개를 못추스르고 어찔어찔 스러지는 입원이었읍니다. 티끌처럼 작은 이 몸 하나, 쓰러져도 더하기 빼기엔 흔적도 없을 삼라만상. 온 몸 성하게 돌아갈 적엔 삼천 번을 넘게 외던 이야기도 첫구절부터 외국어였읍니다. 영혼이 날개를 달아도 헐벗은 몸 하나는 짐짝 같아서 도솔천 가는 길은 멀었읍니다. 육신의 아픔, 사지의 즐거움이 혼백까지 다스려 버려서 찍어바를 미안수도 없는 날이면 산천초목은 주근깨 투성이. 팥알만한 편도선 한 알이 부처님도 예수님도 못부르게 했읍니다. 몸살이 팔다리를 꺽어오는 밤이면 베드로처럼 세번 이상 도리도리 어려울 것 없는 파문. 나에겐 맡기지 마십시오. 춤추는 혼백의 날렵한 심지는 소관밖으로 밀려납니다. 고달픈 신열이었읍니다. 육신이 먼저 까부라지면 정신도 고개를 못추스르고 어찔어찔 쓰러지는 입원이었읍니다. ++++ ++++돌<손동연>| 1 인식의 마을 동구밖에 돌이 놓여있다. 눈이 내리면 더욱 그 자리가 뚜렷해진다. 돌은 기지개를 켜며 겨울을 인내한 집념을 추슬린다. 추슬리는 그의 그림자속으로 초가집들이 여위어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봄날을 꿈꾼다. 그들은 아무도 돌이 나비 의 어미임을 모른다. 2 그러나 돌은 형용사를 모른다. 반대로 사람들은 형용사 속 에서 갇혀 산다. 시간의 금속성속을 초침같이 지나간다. 확실 히 무서운 일이다. 3 돌이 바람에 깎여 내려가는 제 의지를 늘름하게 다시 받아먹 는 동산 사람들은 또 한번 쓰러져서 호랑이 껍질같은 이름을 남 기러 간다. 가는쪽 산그늘이 일어선다. 4 돌의 뿌리 쪽으로 바람이 돌아눕는다. 고드름 끝에서 불씨를 캐던 그의 허연 손뼈가 삭는다. 삭아서 사람들의 정신을 세우 나 한 채씩의 소금기만 허옇게 남는다. 5 그리고 또 싸락눈이 돌의 부동을 깨우려다가 물어뜯다가 흔 들다가..... 햇빛이 금간 그의 문을 열다가 빗장을 벗기다가..... 심심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마음을 돌 던져 물살을 일으키다 가 퍼뜨리다가...... 못이기고, 저무는 싸락눈의 이빨이 못이기고, 깨어진 햇빛의 어깨뼈가 못이기고, 허망한 사람들의 꿈이 6 돌 속을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 ++++풍경의 꿈<장 석>| 1 나는 한낮의 성숙한 하늘에 부조되는 장엄한 무늬를 보았다. 나의 것인 뜨거운 꿈 하나가 그 근처에 벌써 앉아 있었다. 구름의 흰 살에 일어나는 물결들. 나는 원했다. 삶의 한순간의 질인 강렬한 빛의 혼례를 설레이는 분만의 풍경을. 끝없이 겹쳐 오는 모든 이절들의 힘을. 더럽혀진 풀의 형상으로 대지의 낮은 중심에서 새들이 눈뜨고 있었다. 빛 한 가운데로 소리의 기사가 말 달리며 지나갔다. 바람이 불어 온다. 흩어져라. 단단한 풀씨들이여. 사랑의 열들이여. 날아 올라라. 한없이 힘센 세력이여. 흰 욕망들이여. 나는 부풀어갔다. 장엄한 문양과 내 꿈이 숨쉬는 따뜻한 열이 나를 상승시켰다. 풀이 일어 선다. 녹색의 무리들, 삶을 환히 밝혀 주는 불붙는 표피여. 나는 부끄러워 눈물 흘렸다. 내 꿈은 나에게 입맞추어 주었다. 2 삶을 준비하는 자가 새를 날려보냈다. 어둠 속으로 새는 젖혀진 밤의 골목으로 날아 갔다. 새는 무너진 너의 슬픔위로 떨어졌다. 그의 흰 깃이 남긴 무늬의 물결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어두운 숲의 한 가지에서 태어나는 불꽃처럼 밤은 빛나는 몇 개의 눈을 뜨고 우리는 숨의 증기인 눈물을 흘렸다. 두번 째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문법 바다의 가장 서늘한 심연에서 이마에 불을 단 우스꽝스러운 심해어인 사랑이 헤엄치고 있었다. 지상의 어두운 골목에서 새는 차갑게 불타고 있었다. 노아의 세 번째 비둘기는 황금빛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왔다.....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며, 그의 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 그의 입김인 바람은 흩어진다. 소리의 철책 사이에서. 새여, 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지는 푸른 입술이여...... 미성년의 강<박태일> 산과 산이 맞대어 가슴 비집고 애무하는 가쟁이 사이로 강이 흐른다. 온 세상의 하늬 쌓이듯 눕는 곤곤한 곤곤한 혼탁 멀어져 나가는 구름모양 한없는 나울을 깔면서 대안의 호야불을 찿아나서는 물길. 물 위로 물이 흐르듯 얼굴을 가리며 무엇이 우리의 슬픔을 데려왔다 데려가는가. 열목어 열목어는 온통 강물에 열을 풀고 무수히 잘게 말하는 모래의 등덜미로 우리의 사랑이란 운명이란 말할 수 없는 슬픔이란 그런 그런 심연을 이루어 인간의 아이들처럼 아름다운 깊이로 출렁이면서 강을 흐르는 사이의 강.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에 서면 귀밑머리 달도록 예쁜 지평선은 우리 버려진 나이를 위한 설정이다. 아, 하면 아, 하는 하늘 오, 하면 오, 하는 산 많이 추위와 살비비는 손과 손의 가장 곱게 펴진 그림자 위에 한 방울 눈물을 올려놓고 이승은 온통 꽃이파리 하나에 실려가고 다시는 그림자 하나 세상에 내리지 않는다. 하늘로 트이는가, 혈맥 태를 감는가, 산악 손벌려 앉아 우리는 끝내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강은 순예, 눈들면 사라지는 먼 먼 마을의 어두움도 따라나선다. 길 잘못든 한 아이의 발소리도 들리고, 산이 버린 산 사람이 버린 사람의 백골이 거품을 토해내는 것도 보인다. 죽음이란 온갖 낮은 죽음과 만나 저들을 갈대로 서있게 한다. 실한 발목에 구름도 이제 묵념처럼 하얗게 죽는다. 돌아다 보고 옆눈 주는 어두움 그 흔적 없다는 이름의 길을 따라 꽃의 배슬은 나의 기억은 여기에서 끝난다. 강이여. 산과 들이 한가지 모습으로 무덤을 이루어 있는 강안에 서면 우주의 능선에 달이 뜨고 까칠한 욕망의 투구를 흔들면서 나는 빛나는 스물의 갈대밭, 혹은. ++++ ++++생 활<안재찬>| 창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문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사방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생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창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일상의 책장들 양식은 굳은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일부분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자유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내려와 무구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문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창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 ====1981년==== ++++겨울의 첫걸음<채충석>| 남들은 4년이면 마치는 것을 나는 5학년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도 지방 사립 대학을 증서 없는 졸업식 날 학교 떠나는 친구들이 모아 주는 30만원으로 나머지 1학점의 등록을 마치니 노천 강당의 개나리 넝쿨은 올들어 두 번째 피어났다. 낯선 이름과 언어가 붐비는 수요일의 한 시간을 위해 두시간 거리의 직행 버스로 등교하면 지독하게 피곤하였다. 그 다음 날도 이렇게 한 주간이 쉬 지났다. 대학원에 다니냐는 후배들은 모란이 피자 모두 아스팔트 위로 파도처럼 밀려나고, 나만이 텅 빈 풀밭에 오르리고 앉아 흩어진 과우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도시의 변두리가 돼버린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였다. 동네 어른들이 입을 모아 흉년이 들었다고 하는 동안 코스모스 피는 가을은 슬쩍 찾아들고 5학년 1학기도 한달을 더 끌다 끝났다, 자, 가야지 내일은 경제학사 학위를 받으러 서이 최씨로 바뀐 무거운 앨범도 찾고 홀로 교문을 나서는 나를 만나러 서랍만 달린 겨울을 만나러 ++++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남진우>|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외투를 걸치고 몇닢 은전과 함 께 외출하였다. 목조의 찻집에서 코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쾌감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시를 태워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픈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 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하 강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십이사도의 눈꺼풀에 주기도문 문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대명사. 솟 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라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오른다. 흐느거적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 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음계를 밟 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잎 두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 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 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혼수로부터 꿈을 길어 오 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지중해 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자정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설해림.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선박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밤안개가 걷히겠지요. 바람부는 해안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자정의 해 안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유년의 마을 어디쯤 떠오 르는 북두칠성. 지상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 ++++오! 모국어<신찬식>| 1 아직도 남아 있을까? 주리고 주려서 뼈마디 앙상한 채 밀리고 떠밀려서 다다른 하늘가, 실향민의 달도 서럽게 기울어가는 북간도의 하늘가에 달무리처럼 서리던 한국어. 언제나 피빛 노을에 물들거나 눈물에 젖어있던 한국어, 오! 눈물의 모국어여. 한 많은 사연 간직한 채 그 모습 그대로 지녀 아직도 울고 있을까? 2 엎드렸다가 뜨거운 한낮 내내 엎드렸다가 어둔 밤을 뚫고 기어오는 전우, 베트남 수풀에서 쓰러졌던 전우가 새벽마다 꿈길따라 찾아오누나. 동녘 훤히 밝기 전에 서둘러 서둘러서 기어오는 전우여 끝내 그대 돌아오지 못하누나. 끝내 그대 더불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한국어, 오! 절룩거리며 신음하는 피의 모국어여. 축제의 불꽃처럼 산화한 젊음따라 그 수풀 어디쯤서 헤매고 있는가, 떨어져나간 팔다리 더듬어 헤매는가? 3 밤낮 쉬임없이 타오르는 유전의 불꽃둘레, 유전의 불꽃 보고 부나비처럼 떼지어 찾아드는 온 누리 말의 무리들. 부나비처럼 퍼득거리며 맴돌다가 하나 둘 지쳐 내려앉는 곳, 페르시아 만에서도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알몸 드러낸 채 땀 흘리며 뛰어가는 한국어, 때로는 비틀거리기도 하다가 더러는 쓰러져 눕기도 하다가 기어이 떨치고 일어서는 노동자 더불어서 모랫바람 헤치며 성을 쌓는가. 새로운 빛의 궁전, 영원한 내일의 성채를 쌓고 있는가! 오 ! 땀의 모국어여. ++++ ++++우리의 숲에 놓인 몇개의 덫에 대한 확인<이병천>| 1. 식구들의 잠 한밤이라도 잠드는 꿈은 없이 우리의 방안에 빈 껍질만 누워서 키를 재다가 공중으로 달아난 안식을 채운다. 어머니의 꿈은 50년 행상에 나가 발이 부르트더니 돌아일어설 때마다 헛발질 닳고 닳아 없어진 발목은 무거운 광주리에 어느 사이 얹히고 그해 여름내 그치지 않던 장마는 아버지를 적시더니 이 밤도 여물지 않는 아버지의 꿈 마른기침을 따라나와 들판의 허수아비로 서서 또다시 비에 젖고 있지만 누이의 가을 소풍도 비맞고 있을까 잠든 눈썹이 가난처럼 안스럽다 한밤이 되어서도 우리의 방에서는 결코 잠들지 않는 꿈 도시의 불빛에 옆구리를 찔린 내 꿈은 빈 손으로 돌아와 문지방을 갉아대며 미안한 내 잠을 끝내 거부한다. 2. 기다리는 날 우체부가 지나가는 고샅길 남새밭에 고추잠자리가 먼지처럼 일어났다 고쳐 앉고 부러진 억새풀이 땅에 머리를 쳐박은 채 항복한다. 기다리는날 수없이 보내며 분침은 저혼자 깊어진 계절의 주름살을 온몸으로 가리키고 있다 푯말하나 - 출구 없음 3. 사랑은 흔들리는 풀씨 이제 나를 풀어다오 홀로 눈감지 않는 사랑아 남 몰래 내뱉는 탄식에도 철렁한 가슴 절벽 미끄러지던 꿈속 쇠북 소리로 맞받아 울고 더 쓰러볼 가슴팍없이 여윈 들판의 갈대로 서서 이 기도 끝나면 열두 사도처럼 흩어져 갈 풀씨 잎자루 떨어져간 상처 아물즈음 파리한 사슬 자국을 본다 이제 풀어다오 바람에 수 만번 딩굴리며 멀리 갈수록 잔털 뜯기며 단단해지는 당신 노예, 풀씨의 사랑을 본다 4. 달, 달, 무슨 달 달 하나가 한잎 가득 웃음으로 떴다가 고개를 넘을 때는 울고 있다. 저희들의 유희에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희미한 울음만 밤하늘에서부터 내리고 새벽까지 그늘에 몸을 숨긴 새 새벽까지 나무에 몸을 부딪히는데 달은 눈을 멀어 산밑에 떨어진다 5임금님 귀는 무심한 말의 늪에 발목 잘린 말들이 빠져 헛돌고 부화되기 이전에 모두 깨어져 버리는 말의 무서운 부재가 뼈를 울린 비명의 휘파람소리로 새어나와 이 말 그대에게 줄 수 없을 때 무수한 벌떼처럼 달려와 꽃히는 화살이다가 잠자코 돌아서서 늪속에 다시 뛰어드누나 ++++ ++++사평역에서<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콥밥을 불빛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 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논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 톱밥의 불꽃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채 광 기<오정환>| 우리가 닿아야만 할 확신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화차는 달리고 있다. 아직도 분별되지 않는 형상들의 정수 떨어져 쌓이는 좌절을 실어나르며 혼미의 동굴, 숨죽여 누운 어둠의 깊은 강을 건너 나의 불면의 화차는 달리고 있다. 잠들어버린 세상의 곤혹도 먼지 묻은 온갖 생애마저도 뜨겁게 아프게 쏟아내면서, 나는 외줄기 불빛이 밝히는 마태복음 십삼 장 십삼 절 이사야의 예언의 하얀 소금이 되어 써늘하게 살아있다. 밤마다, 밤마다 동결된 언어의 흙더미를 찍어내는 나의 야망의 삽날 은밀한 집중 캄캄한 어둠, 우리들의 가난 속으로 홀연히 하늘을 밝아 올 것인가. 선혈처럼 뜨거운 금맥 끝없이 이어진 성스러운 새벽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녹슨 화차는 달리고 있다. ++++ ====1982년==== ◈동아일보 ++++榮山浦·1<나해철>| 배가 들어 멸치젓 향내에 읍내의 바람이 다디달 때 누님은 영산포를 떠나며 울었다. 가난은 강물 곁에 누워 늘 같이 흐르고 개나리꽃처럼 여윈 누님과 나는 청무우를 먹으며 강둑에 잡풀로 넘어지곤 했지. 빈손의 설움 속에 어머니는 묻히시고 열여섯 나이로 토종개처럼 열심이던 누님은 호남선을 오르며 울었다. 강물이 되는 숨죽인 슬픔 강으로 오는 눈물의 소금기는 쌓여 江深을 높이고 황시리젓배는 곧 들지 않앗다. 포구가 막히고부터 누님은 입술과 살을 팔았을까 천한 몸의 아픔, 그 부끄럽지 않은 죄가 그리운 고향, 꿈의 하행선을 막았을까 누님은 오지 않았다 잔칫날도 큰집의 제삿날도 누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들은 비워지고 강은 바람으로 들어찰 때 갈꽃이 쓰러진 젖은 창의 얼굴이었지 십년 세월에 살며시 아버님을 뵙고 오래도록 소리 죽일 때 누님은 그냥 강물로 흐르는 것 같았지. 버려진 선창을 바라보며 누님은 남자와 살다가 그만 멀어졌다고 말했지. 갈꽃이 쓰러진 얼굴로 영산강을 걷다가 누님은 어둠에 그냥 강물이 되었지, 강물이 되어 호남선을 오르며 파돛퍼럼 산불처럼 흐느끼며 울었지. ++++ ◈중앙일보 ++++불이 있는 몇개의 風景<양애경>| 1 立冬 지난 후 해는 산 너머로 급히 진다. 서리조각의 비늘에 덮인 거리 어둠의 粒子가 추위로 빛나는 길목에서 나는 한 개비의 성냥을 긋고 오그린 손 속에 꽃잎을 급히 피워 낸다. 불의 의상을 입으며 事物은 하나하나 살아나기 시작하지만 불은 가장 완벽하게 피었다 지는 꽃 화사한 절망. 절벽으로 떨어지듯 꺼진다. 2 기침을 한다. 탄불을 갈며. 달빛 밑에 웅크리면 아궁이 옆으로 흼미하게 흩어지는 그림자. 한밤중 여자들의 팔은 生活로 배추 속처럼 싱싱하게 차오르지만 좀처럼 불은 붙지 않는다. 食口들은 구들에 언 잔등을 붙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옛 집의 불씨는. 영원히 꽃피우는 전설의 나무와 같이 純金으로 제련된 불씨, 화로에 잘 갈무리되어 주인을 지켜주던. 3 이제 불은 때묻고 지쳤다. 누가 불을 去來하고 누가 불에게 명령하는가. 불길한 謀反의 충동에 몸을 떨며 콘크리트 보일러실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불의 꿈 밤 열시 工員들은 흩어지고 4 짧은 인사의 잔손목을 흔들다 말기. 부딛치다 와아 터지기. 안개 속에 서있는 불 문을 열고 길길이 솟구치는 불 산맥 속에 잠들어 있는 원시림의 불. 5 牧丹 마른 가지에서 올라오는 불의 빛깔은 사과나무 장작에 옮겨 붙으며 만발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불은 꽃핀다. 들끓으면서 平等한 불의 속 熱은 순수하여 평화롭다. 6 熱은 빛나지 않고 소리내지 않는다. 그러나 따갑게 퉁겨져나와 손바닥을 쏘는 열기 우리의 입다문 眞實 바람 부는 都市의 밑둥을 떠받치는 건강한 당신 일곱 시 반에 집을 나와 아홉 시 반에 퇴근하며 휘파람을 부는 당신, 당신의 불. 7 이 속에 잠자는 불이 있다. 작은 성냥골 안에, 성냥은 불을 꿈꾸고 불은 성냥을 태운다. 순간의 불꽃은 기다림을 地上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바꾼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시작한다. ++++ ◈경향신문 ++++겨울바다<김종목>| Ⅰ 모든 것이 죽어 있다. 하늘은 파랗게 질린 전율에 떨고 있다. 삭아 내리는 눈(雪)은 걸레처럼 떨어진 바다로 投身한다. 幻像의 새 한 마리, 겨울바다 水平을 몇 小節로 날아올라 바닷가 敎會堂 尖塔 위에 앉는다. 갈비뼈 앙상한 바다 한 모금 하얀 부리에서 흘러나와 소금빛 매운 바람으로 부서진다. Ⅱ 간간 醉한 바람이 비틀거리며 海岸으로 올라오고 그 때마다 놀라 잠을 깨는 뱃고동 소리, 떠나야 할 곳도 없는 죽은 바다를 겨냥하여 뱃사람들의 눈은 이글거리며 괄괄한 바다의 急所를 더듬는다. 그러나 아직은 죽어 있는 바다. 저 커다란 死身을 바꿀 순 없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그네들의 希望은 船倉에 船積된 채, 언제 出發할지도 모른다. 파아랗게 질린 겨울의 이마를 짚고 바람은 얼어붙은 希望의 바다를 찍어 내며 海岸으로 소금 몇 가마 부리고 있다. Ⅲ 희미한 등대불이 부풀어 오른다. 喘息을 앓는 木船은 밧줄에 묶이어 해안에 버려져 있고. 밤새 먼지처럼 내리는 白雪은 허기진 꿈들을 하얀 나비로 날아오르게 한다. 간 간 뼈 부딪는 幻聽이 들려오고 누군가의 시린 넋이 바다 깊이 浮沈할 때, 이윽고 海岸을 적시는 한 장의 겨울은 바다에서 주검으로 包裝되어 나간다. ++++ ◈서울신문 ++++겨울새<강태형>| 1 그 겨울의 바람 속에서 나는 깃발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한없이 나부졌다. 江물처럼 바람이 흐르고 하염없이 쏠려가는 사람들의 거리를 꿈 속을 오르내리듯 주머니 속의 몇 개의 지식을 셈하며 내 유년의 거리와 셈하며 數世紀를 지나온 빙하기의 바람 속을 날고 있었다. 발아래 교회의 종소리가 얼어 붙은 채 구르고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을 열고 내리는 눈송이들 세상은 하얗게 떠오르고 사람들이 길 모퉁이 모퉁이로 深淵의 물살처럼 사라져 갔다. 2 소리없는 거리에 내리는 찢어진 깃발, 종소리 흐린 街燈 위로 내리는 눈송이 몇 개 가장 빛나는 音階를 딛고 새의 울음은 어둠 속으로 치솟았다. 그 때, 서서히 일어서는 백마의 무리 하얀 갈기를 쓸며 꿈틀대는 도시를 보았다. 어둔 하늘에 뛰어올라 붉은 아침바다에 앞발굽을 딛고 선 세상을 보았다. 3 겨울 하늘에 차갑게 빛나던 내 하나의 별이 부서져 내려 온 세상에 흩어지고 地上의 곳곳에서 눈뜨며 반짝이는 빛, 반짝이는 江물. 목마른 자의 가슴 아래로 潛跡하듯 가장 낮은 땅으로 흐르는 별 무리들 이제 나는 願한다 가슴에 새겨진 별빛을 돌며돌며 내 속살을 적시며 떨구는 눈물도 낮은 땅으로 흐르기를 이름 잃은 풀잎의 한 점 이슬이기를 타오르는 아침바다에 投身하기를 일어서는 빛, 밤새 내린 눈발 위로 무수히 쏟아지는 하늘이여 ++++ ◈대구매일신문 ++++박기영<사수의 잠>| 그날, 어둠 쌓인 슬픔 속에서 내가 버린 화살들이 어떤 자세로 풀밭 위에 누워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는 기억해내고 싶다. 빗방울이 모래 위에 짓는 둥근 집 속으로 생각이 젖어 들어가면 말라빠진 몸보다 먼저 마음이 아파오고, 머리 풀고 나무 위에 잠이 든 새들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 별들의 그림자를 지우기도 전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둘 수 있는지. 추억의 손톱자국들 무성하게 자란 들판 너머로 노랗게 세월의 잎사귀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벽에 기대어서도 하늘 나는 새들의 숨쉬는 소리 들을 수 있고, 숲에 닿지 않아도 숨겨진 짐승의 발자욱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접혔던 전생의 달력을 펴고 이마에 자라난 유적의 잔가지를 헤치고 들어가면 태양계 밖으로 긴 고리를 끌고 달아나던 혜성이, 내가 땅 위에 꽂아 둔 화살의 깃털을 잡기도 전에 진로를 바꾸어 해보다도 더 큰 빛을 바하며 내 품안으로 되돌아 오는 것도 나는 이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땀 젖은 웃도리를 벗고 가만히 어둠과 함께 별자리에 떠 있으면 나는 또 그 모든 것을 등 뒤에다 새겨 둘 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의 곁에 누워서 자전의 바퀴를 굴리지 않더라도 어떻게 걱정에 쌓인 별이 저녁이면 다시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까닭을 역마살이 낀 내 잠의 둘레에 밤이면 어떤 별들이 궤도를 그리며 떠돌고 있을 것인지. ++++ ====1983년==== ◈동아일보 ++++밀물드는 가을 저녁 무렵<고운기>| 1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오고 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산마을로 들어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사립문 밖에 나와 산과 구름이 겹한 새 날아가는 쪽 하늘 바라보다 밀물 드는 모랫벌 우리가 열심히 쌓아 두었던 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들을 바라보면 낮의 햇볕 아래 대역사를 벌이던 조무래기들 다 즈이 집들 찾아들어가 매운 솔가지 불을 피우고 밥 짓고 국 나르고 밤이 오면 잠들어야 하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분주히 하루를 정리하고들 있었다 그러면 물은 먼 바다에서 출발하여 이 마을의 집 앞까지 밀려와 모래담과 집과 알 수 없는 나라 모양의 탑쪼가리 같은 것부터 잠재웠다 열심히 쌓던 모든 것을 놓아 두고 각자의 집으로 찾아들어간 조무래기들의 무심함이나 물은 사납거나 거세지 않게 천천히 고스란히 잠재우고 있었다 먼 바다 쪽에서 기러기가 날아와 산마을 어디로 사라지는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2 이 도시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어둠 먼 시가지가 보이는 언덕길 버스 종점에 내려 돌아올 버스 토큰 하나 남았던 허전함처럼 모두 쓰고 버리고 힘들여 쌓아놓고 오는 밤 불을 키우고 어둠을 밝혀 한낮의 분주함처럼 서성이지만 먼 옛마을에 찾아와 호롱불 몇 개로정체를 밝히던 어둠이여 오늘 인공의 빛을 피해 찾아오는 밀물이여 이미 어린아이 적처럼 만들었던 것들과 무심히 결별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깊은 잠을 주고 또 평평히 세상의 물상들 내려 앉히는 대지의 호흡이여 어느 땐가 밤이 깊어져 물은 떠나온 제 땅으로 돌아가고 백지처럼 정돈된 모래벌에 아침이 오면 이루엇으나 아무것 이룬 것 없는 흔적 위에 조무래기들 다시 모여들었더니 물이 들어왔다 나간 이 도시의 고요함을 딛고 내가 간다 살아왔던 일일랑 잊을 만하고 새 벌판은 끝이 없어 또 쌓아야 모습은 못날 뿐이지만 일이 끝나 날이 저물면 가슴에 벅차도록 몰려오는 밀물은 산이 되고 밭이 되고 집과 자동차와 친구가 되고 정승이 되고 나라가 되고 희망도 사랑도 되었을 것을. ++++ ◈중앙일보 ++++비망록<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아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ㅎ지 않는 거만한 술레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 네 살엔 좀더 행복해져도 괜찮앗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으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 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어였습니다.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경향신문 ++++龜浦장에서<박정숙>| 구포장이 서던 날 나는 무수히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었다. 방천 둑을 따라 온갖 개들이 나와서 컹컹 하늘을 물어뜩기도 하고 아예 짖는 것을 포기해 버린 놈들도 잇었다. 더러는 철망 안에서 수십 마리씩 비좁게 앉아 몸부림을 치는 놈들이 잇는가 하면 쇠줄에 묶여 어디론가 팔려갈 하늘을 향해 앞발을 떡 버티고 이를 드륵드륵 가는 놈들도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갈비뼈에 송곳니를 박거나, 아니면 언젠가 떠나야 할 우리의 靈魂까지 흔들어 놓는 무섭고 당찬 개소리를 들으며 바삐바삐 둑길을 돌아서 가면, 마치 삶의 終點에 온 듯한 現場이 무섭게 눈앞을 가로막는다. 개들은 수십마리씩 옷을 벗고 불 속으로 뛰어들었거나 가마솥에 뛰어든 용감한 모습으로 판자 위에 올려져 끝까지 이그러진 하늘을 물고 잇었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戰慄을 느끼며 그들의 목에서 딱딱하게 굳은 울부짖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본 하늘과 마지막으로 혜어진 主人의 얼굴이 눈동자에 굽혀 있음을 보았다. 생선뼈처럼 딱딱하게 굳었거나 잿불에 굽힌 그들의 눈동자를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얼굴 表情 하나 흐트리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자꾸만 추워지는 무서움을 느꼈다. 人間이 가장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ㅏ음의 어느 일부가 무너지며 뼈 소리로 가득 찬 正午의 시장을 돌아나오면, 손아귀엔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반쯤 짤려나간 구포 위에 뜬 하늘에서는 죽은 개의 悲鳴소리만이 붉고 딱딱하게 타고 있었다. ++++ ◈서울신문 ++++기상예보<김백겸>| 하늘 흐리고 안개 긴 숲에 우울이 내려와 있음 구름에 갇히 빛살들 허공에 날개 자국을 긋고 가는 멧새 모두 표정을 남기고 있지 아니함 길 잃은 고아처럼 서서 플라타너스는 적막을 날리고 풀씨로 흩어진 슬픔은 北北東에서 北北西로 방향을 바꿈 폐부로 흘러드는 저기압의 음모 백마일 밖 한랭전선은 풀잎들의 잠 뿌리뽑을 폭풍을 몰고 오는 중임 지금은 모든 사랑이 위험함 외투를 걸친 우리의 꿈 방독면을 쓴 채 큰길로만 다님 골목마다 비수를 품고 매복한 어둠 시간들의 휘파람이 대꼬챙이로 눈 찔러 오는 저녁 지금은 모든 생각이 위험함 문 닫고 굳게 빗장을 지른 거리의 불빛들 창 틈을 엿보는 소문과 함께 얼굴 까맣게 죽는 지금은 모든 그리움이 위험함 찬비가 내림 우산을 들고 사람들은 사람을 비껴감 낯선 총을 맨 겨울의 척후병이 요소요소 서 있고 바이칼 호수를 지나 시베리아 삼림을 막 빠져나온 러시아의 절망도 보임 공중엔 바람의 채찍 가득해 두려움에 야윈 裸木들의 어깨 더욱 가늘고 겨울잠에 젖어 봄날을 꿈꾸는 개나리 새 눈만이 소롯이 숨결에 싸여 있는 한 개피 성냥으로 남겨논 최후의 불꽃임 ++++ ====1984년==== ◈동아일보 ++++서울로 가는 全琫準<안도현>| 눈 내리는 萬頃들 건너 가네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 가네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우리 琫準이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그 누가 알기나 하리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그늘 깊은 당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잔뿌리였더니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 주지 못하고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 주지도 못하였네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지 못하였네 못다한 그 사랑 원망이라도 하듯 속절없이 눈발은 그치지 않고 한 자 세 치 눈 쌓이는 소리까지 들려오나니 그 누가 알기나 하리 겨울이라 꽁꽁 숨어 우는 우리 나라 풀뿌리들이 입춘 경칩 지나 수군거리며 불어제낄 것을 지금은 손발 묶인 저 얼음장 강줄기가 옥빛 대님을 홀연 풀어혜치고 서해로 출렁거리며 쳐들어 갈 것을 우리 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목숨 타오르겠네 琫準이 이 사람아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오늘 나는 알겠네 들꽃들아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흰 무명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 ◈중앙일보 ++++畵家 뭉크와 함께<이승하>|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 놈의 소리 저 우 울음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바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 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우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 ◈경향신문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기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너른 들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주이와 뛰어 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컬끝 하나 적시지 않을 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좇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 ====1985년==== ◈동아일보 ++++안 개<기형도>| 1 아침 저으로 샛江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2 이 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空中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江에서 한 발자국도 移動하지 않는다. 出勤길에 늦은 女工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送電塔이 히미한 胴體를 드럴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江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空氣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植物들, 工場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寄宿舍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三輪車는 그것이 쓸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不幸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正午 가까이 工場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辱說을 해대며 이 發水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邑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江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邑의 名物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株式을 가지고 있다. 女工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工場으로 간다. ++++ ◈중앙일보 ++++멸 치<전연옥>| 지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라고 내 몸에 달디단 기름을 발라 구우며 그대는 뜨겁게 속삭이지만 노늣하게 내 살점을 태우려 하지만 까닭없이 빈 갈비뼈가 안스러움은 결코, 이빠진 접시 위에 오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님을 비틀거리며 쏟아지는 한 종지의 왜간장에 몸을 담그고 목마른 침묵 속에 고단한 내 영혼들이 청빈하게 익어갈 때면 그 어느 것도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에 쓰라린 무릎을 끌어안고 여기는 에미 애비도 없는 서럽고 슬픈 저녁 나라이더냐 들풀 같은 내 새끼들 서툰 투망질에도 코를 꿰는 시간인데 독처럼 감미로운 양념 남비 속에 앉아 나는 또 무엇을 잊어버려야 하며 얼마만큼의 진실을 태워야 하는지 ++++ ◈매일신문 ++++어린왕자를 추억함<박진환>| 남들이 다들 중학교에 다니던 열 입곱의 나이, 내 생의 構文은 原絲工場 지잉징 달아 오르는 기계소리에 갖혀 밤샘하면서 유일한 친구 어린왕자의 ᅟᅧᆼ형한 눈빛을 꿈꾸었지. 이름 지을 수 없는 소혹성 밀밭 곁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더듬거리며 말을 걸기 시작한 어린왕자는 쓸쓸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활달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맞물려 감성의 한 때는 으깨어지고 내가 기르는 內省의 뜰에는 고분고분 길들지 못한 장미꽃들 상심의 가시를 달고 서 있었고 먼지 낀 기숙사 다다미방에 엎드려 책장마다 꿈틀거리는 글귀 위에 방점을 찍으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그해 겨울. 핏줄마다두근거리는 씨눈을 감춘 채 원사 몇 가닥으로 꼬여 나오는 말들 밤참을 먹으러 가는 식당길에는 푸푸 연신 푸념을 뿜어대면서 스팀 라인이 지나가고 보리떡 두 개와 물고기 다섯마리를 기다리던 손시린 겨울 새벽, 기름기 절은 작업복 위에는 단추 떨어진 시간도 꽂혀 있었고 살결이 드러난 여공들의 하품소리가 천원 미만의 눈발이 되어 붐비고 있었지. 뿌리 깊은 외로움으로 밤새운 원사공장 퍼렇게 살아오르는 산소용접기 불꽃 속에서도 열 입곱 내 목마름은 녹아나지 않은 채 핏줄마다 두근거리는 씨눈을 감추고 小惑星의 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1986년==== ◈동아일보 ++++아라비아의 영가·2<강미영>| -오아시스 낙타도 쉬어가는 사막이다 나무야, 넌 뜨겁지 않니. 네가 불타는 태양에 몸을 사르고 기어이 만들어 낸 서늘한 자리 흐르는 땀보다 먼저 내 영혼이 달려가 쉰다. 사라보다 향기롭고 사라보다 훈훈하고 사람보다 넉넉한 나무야, 너는 사랑이다. -사랑은 나를 버리는 아픔이리라- 밤마다 찾아와 타이르시고 돌아서 대문을 나서면 내 안에서 어김없이 버림받는 하느님. 한걸음 나가 걸을 때마다 발목에는 한 가지씩 더 죄목이 늘고 산다는 것이 오히려 날마다 한번씩 다시 죽는 내 가난한 목숨이여 오늘은 부끄러이 내가 네 서늘한 가지 끝에 걸려 울고 있다. ++++ ◈중앙일보 ++++겨울 手話<최승권>| 몇 몇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의 마지막 구절이 키 작은 여학생들을 일제히 흐느끼게 할 때 서울 어느 목공소 조수로 취직했다는 광오와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 상동이의 얼굴은 금간 유리창 너머 갈매기 두 마리로 날아오르고 교정 구석 단풍나무 한 그루로 선 나는 노을이 지는 바다를 훔쳐 보았다. 싸락눈 잘게 뿌리던 날 문뜰나루 건너온 그놈들이 조회시간에 불쑥 내민 김뭉치를 받았을 때 지방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정적인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나는 그놈들의 부르트고 째진 손등과 교실바닥에 나뒹굴던 해우무침 조각을 보고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유채꽃의 희망과 황토밭을 흐르는 고무마 줄기의 자유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일까. 해우 한 장보다도 얇은 졸업장을 추면서 바닷가 갯물냄새 투성이의 아이들과 마지막 뜨거운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빈 칠판에 갈매기 두 마리를 그리고 유리창 밑에 숨어 바다를 보며 울었다. 서울의 낯선 어둠을 깎는 대패질소리와 절망마다 강하게 내리박는 못질소리가 짧은 편지 가득 들려 오는데 앨범에 묻어두었던 흑백의 그리움이 문뜰나루 갈매기 울음소리에 섞여 옹암리 앞 푸른 바다로 출렁이는 것을 보았다. ++++ ◈한국일보 ++++연장論<최영철>| 우리가 잠시라도 두드리지 않으면 불안한 그대들의 모서리와 모서리는 삐걱거리며 어긋난다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 녹슬고 있을 때 분분한 의견으로 그대들은 갈라서고 벌어진 틈새로 굳은 만남은 빠져나간다 우리가 잠시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그 누가 일어나 두드릴 것인가 무시로 상심하는 그대들을 아프게 다짐해 줄 것인가 그러나 더불어 나아갈 수 없다면 어쩌랴 아지못할 근원으로 한쪽이 시들고 오늘의 완강한 지탱을 위하여 결별하여야 할 때 팽팽한 먹줄 당겨 가늠해 본다 톱날이 지나가는 연장선 위에 천진하게 엎드려 숨죽인 그대들 중 남아야 할 것과 잘려져 혼자 누울 것은 무슨 잣대로 겨누어 분별해야 하는가를 또 다시 헤어지고 만날 것을 빤히 알면서 단호한 못질로 쾅쾅 그리움을 결박할 수는 없다 언제라도 피곤한 몸 느슨히 풀어 다리 뻗을 수 있게 一字나 十字로 따로 떨어져 스스로 바라보는 내일이 있기를 수없이 죄었다가 또 헤쳐놓을 때 그때마다다 제각기로 앉아 있는 그대들을 바라보며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귿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턱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장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혜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세울 것인가 ++++ ◈경향신문 ++++꿈의 이동건축<박주택>| 1 목재를 실어 나르는 貨車를 타고 숲으로 가네 수맥을 짚어 한 모금의 물을 마시는 동안 구름이 어둡게 어둡게 몰려오지만 풀밭에 제비꽃 몇 장 숨기고 있겠지 훠어이 훠어이 부는 바람같이만 처음인 곳으로 가는 나중의 하늘 숲 속으로 들어서면 푸른 잎맥의 바다 물레를 잣는 어머니처럼 부드럽게 하늘이 내게로 내려와 물을 주시고 마을의 풀밭에 씨앗을 뿌리시고. 아하 바람은 한사코 내 머리 위에 머물러 있다. 끌로 땅 끝을 깎아 나무들 사이의 行蹟을 깎아 햇살을 모아 두면서, 바람의 옆모습을 지켜본다. 세계는 옆으로 열리고 열린 창문처럼 쑥뿌리가 내 겨드랑이털까지 휘감아 돈다. 2 뽑힌 노을은 東쪽 하늘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창포 꽃잎이 티눈처럼 손바닥에 퍼지고 귀에 잡힌 푸른 공기, 푸른 목숨이 서럽게 느낄 무렵 가슴 속 얽혀 있는 내 生涯를 점치리라. 별을 보며, 넓적다리에 진득거리는 절망을 떼어다오. 어제처럼 노을 위에 누울 때 까마귀떼 내 발밑으로 돌아와 눕고 무릎 사이로 말할 수 없이 많은 강물이 빠져나가 시방,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랑 앞에 서면 반딧불보다 더 빛나는 나뭇잎들. 산이 되는 바람에 의해 숲을 건너온 강물은 팽팽한 슬픔을 만드는데 나는, 흡반으로 길고 먼 바다를 빨아들인다. 한 마름의 비단으로 아버지가 가슴을 껴앉네. 이 손바닥에 비쳐지는 단 하나의 바다. 우수의 불꽃, 안개 표지판 없는 生涯의 채찍을 몰아 西녘 하늘 굽이굽이 돌아 모두 내 집으로 불러들이는 내 뒤를 밟던 새떼. 3 손수 나의 흉금을 털어 놓자 화살 모양의 안개는 지평선 밖으로 과녁을 찾아 떠나가고, 나는 집 구조와 가구들을 이동시킨다. 강물 때문에 어느새 현기증이 높낮이의 생애를 닮아가도 나는 다시는 태양을 찾지 않는다. 처음으로 약속받은 땅의 일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이것은 바꿔지지 않는 것이므로. 다만, 나무들이 지평 위에서 나를 지켜보기 위하여 날마다 까마귀알을 받아낼 뿐이므로. 그러면서도, 생명을 낳고 뜨거운 혈맥을 찾아 계곡을 건너온 물소리가 굽이굽이 천정을 울리고, 허물을 벗는 바람을 얼러 등 굽은 회양목 아래서 또 다시 깊은 잠을 자리라. 그때는 겹겹의 사랑이 땅끝에서, 살아 있는 나를 눈물겹게 껴안아 주리라. 내 입의 불, 어두운 저녁녘에 그려내는 내 눈의 太陽. 꿈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아름다운 약속. 지평을 밝히는 꿈으로 새는 날아가고 머리에 불꽃을 이고 아침. 나는 잠을 깬다. 일찌기 내가 貨車를 타고 이주해 온 숲의 아침에 맑은 햇살이 거미줄을 투명하게 비춰주고 보물과 곡식들이 가득찬 나라에서, 말하리라. 깊이를 숨긴 고독 속 새로 남아 내 굴레가 무었이며 어던 속박으로 죄어드는가를. 그때, 사과나무에서 꽃이 피고 양떼들의 풀밭에 양떼구름이 어떻게 순례하는가를. ++++ ◈서울신문 ++++수렵도<이진영>| 눈 내리는 그 겨울 산야에서 나는 고구려의 사내와 함께 사냥을 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사내는 나무창을 들고 범의 뒤를 날쌔게 쫓아가고 있었고 나는 엽총을 든 채 그의 뒤를 숨차게 따르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무창으로 범을 쫓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현대의 지식에 잘 숙달된 나에게는 총이 아니면 범은 잡을 수가 없는 짐승이었다. 또한 현대식 사냥은 짐승이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해 정확히 사격해야만 되는 것이었으며 사나운 짐승일수록 멀고 은밀한 곳에서 총을 겨누어야만 안전하고 노련한 사냥 방법이었다. 고구려의 사내는 더욱 힘차게 말(馬)을 달려 날쌔게 범의 뒤를 쫓아가 나무창을 던졌고, 그때 눈발 속에 나부끼는 그의 뒷모습은 건강하고 튼튼한 한반도의 참모습. 숨을 할딱거리며 뒤따라온 나를 향해 고구려의 사내는 날쌔고 용감해야 사나운 짐승을 잡을 수가 있다고 또한 힘과 땀과 온몸으로 사냥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사냥법이라고 웃으면서 조용히 일러주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현대의 지식에 깊숙이 물든 나의 머리뼈와 사냥 상식을. 눈발 멎은 하늘을 향해 마음의 백마가 큰 소리로 울었을 때 고구려의 사내는 범가죽과 함께 나무창을 내밀며 사슴을 쫓아가 보라고 말하였다. 몇 채의 산을 넘고 드,ㄹ판을 지나 나의 등줄기가 축축해졌을 때 아, 범가죽 위에는 어느새 사내의 이름이 풋풋하게 돋아나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던 것을. 나의 나무창에도 온몸에도 땀과 힘이 푸르게 솟아나 한반도의 먼 힘줄기를 서서히 닮아가고 있던 것을. 비로소 나는 엽총과 함께 힘없는 현대의 지식을 눈더미 속에 파묻으며 강물처럼 그에게 말하였다. 나도 이제는 고구려의 사내로 말(馬)달리겠디고, 용맹스런 고구려의 사내로 말(馬) 달리며 범가죽 같은 나의 나를 남기기 위해 넓은 들을, 넓은 세상을 온몸으로 투신하겠다고. 이윽고 고구려의 사내는 야생의 백마를 타고 웃으면서 지평선 너머로 아득히 멀어져가고, 눈 내리는 그 겨울 산야를 힘차게 달리면서 나는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을 설매화처럼 싱싱하게 나고 있었다. ++++ ◈매일신문 ++++신월동의 눈<김완준>|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있다 이곳은 강서의 긑, 몇 대의 버스 종점과 번지 수보다 더 많은 가구들이 사는 곳 날마다 불도우저 삽질 소리 요란하게 남부순환도로의 한 끝이 파헤쳐지고 확인할 수 없는 서울의 한 끝이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인가, 오랜 친구처럼 내 어깨 위에 쌓이는 이 눈은 또 어느 슬픈 죽음이 삐라처럼 휘날리고 있는가 언제부터인지 가난한 이웃들은 도시의 외고가으로만 밀려다니고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땅을 위하여 이곳의 아이들은 종이배를 접지만 그들이 가닿을 꿈의 항구는 눈발에 가려 아득하고 밤이면 저 먼 샛강 위로 휘황한 서울의 생애가 떠내려 간다 오늘 하루 눈이 내려 강남과 강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막히고 우리들 삶의 귀가길도 아득한데 지친 하루를 살고 돌아오는 젊은 가장이여 이제 당신들의 서울은 어디로 시린 발목을 뻗을 것인가 인간이 사는 마지막 동네를 찾아 떠나온 집배원 우편낭 속으로 눈발이 날려 기억할 수 없는 몇몇의 주소가 지워지고 매운 바람에 코를 씻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한쪽 어깨가 젖고 있다 ++++ ====1987년==== ◈동아일보 ++++돌 <손진은>| 노당리 뒷산 홍수 넘쳐 물살 거친 계곡 밑으로 쪼그만 돌들 물길에 휩쓸려 떠내려 간다 노당리의 산과 들 지난 수십년의 계절과 햇빛 바람 다져넣고도 동으로 혹은 서으로 머릴 누이고 낯익은 백양나무 강아지풀 개구리 울음 뒤로 한 채 이 마을 사람들 대처로 대처로 나가듯 물살의 힘 어쩌지 못하고 떠내려 간다. 떠내려 가서 형산강 하구나 안강쪽 너른 벌판 낯선 땅에서 발붙이며 지푸라기 다른 돌들과 섞여 부대끼거나 길이 막히면 구비진 어느 구석 외진 도랑에서 비를 긋거나 구름자락 끌어 덮으며 길들여지다가 비가 오면 또 떠밀려 갈 것이다. 만났다가 혜어지고 그냥 안주하기도 하는 돌들의 행려(行旅)여. 몇몇 친숙한 식구가 떠난 뒷산 계곡의 남은 돌들 더 깊은 시름에 잠기고 세찬 여름비의 며칠이 지나고 햇빛 쨍쨍한 날 가슴에 이끼날개 달고 밤 속으로 은빛공간 열며 별이 되는 꿈을 꾸는 조약돌 몇이 얼핏 보인다. ++++ ◈조선일보 ++++도계행<김세윤>| 강원도 산간의 생나무 구르는 소리를 아득히 푸른 강가로 띄워 보내리 정월 대보름 아이들이 올라가 하늘에다 횃불을 당겼을 때 이쪽 능선에서 저쪽 산허리끼지 조그맣게 빛나는 것들이 달려갈 때 스쳐가는 화차의 꼬리는 보이지 않고 네 맑은 눈이 강물 위로 떠올랐다 사라져 간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이 부셔 이름 없는 마을까지 황홀해진다 땅 전역으로 숨쉬는 고장 황비발 도게행 차창 밖에선 탄더미가 턱턱 숨을 막는다 달리는 철로 아래로 함성 내지르며 뛰어드는 눈 눈은 몸을 버리고 숨소리 하나로 검뎅이 묻은 사람들의 등을 어루만지다 강원도 산들을 온통 설경 속에묻는다 잠시 눈 그친 사이 아이들이 달려나와 들불 놓는다 멈칫멈칫 불은 꺼지고 어린날 목탄차를 타고 간던 저 들과 들을 지나 일어서는 땅 속의 검은 물줄기 연한 지각을 뚫고 지상으로 마구 솟아오르는 네가 바로 불꽃이구나, 봉홧불처럼 타올라 차창을 부딪혀 오는 네 뜨거운 폐활량이여 게딱지만한 탄광촌의 집들을 지나 눈 덮인 산을 돌아나와 이 산 저 산의 흰 말떼들이 아득히 푸른 강가로 굴러 떨어질 때 얼마나 숨차게 달려야 네게 닿을까 도계의 땅 밑에서 끓어오르는 마그마의 불 속으로 뛰어들며ㄴ, 네 작은 석탄 하나의 성채오아도 같은 막장으로 밝아오리 출렁이는 석탄차의 석탄들같이 따스한 이웃의 불로 다시 살아오르리 ++++ ◈중앙일보 ++++봉함엽서<이상희>|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간나한 눈물로 물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가게 해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발을 지켜봐다오. ++++ ◈한국일보 ++++관찰법<송용호>| 저탄장으로 귀가하는 화물열차의 기적소리로 수업은 시작되었다 밤새 바람은 나비처럼 석탄가루를 날라 마당 가득 꿈만큼이나 어지럽게 피어난 철쭉꽃잎 사이 사이에 뿌리고 나는 사분의 사박자 행진곡에 발맞춰야 할 내 춤의 한 귀퉁이를 비우기 위해 애써 거짓일기를 쓰곤 했다 아무리 해도 잘 풀리지 않던 우리나라의 산수과목 문제와 함께 자라는 것은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자주 나의 장래를 의심하곤 했다 잦은 어머니의 등교로 우수수 우수수 낙엽되어 쌓이던 나의 성적표 때때로 그곳에 산불이라도 나기를 바라며 무궁화꽃이 자꾸만 피고 져도 찾아내지 못하던 이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숙제를 미리 걱정하곤 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 이름표를 달듯 쉽게 바뀌곤 하던 내 희망의 간이역에서 종종 발견되곤 하던 절망의 상처에 어머니는 빨간약을 발라 주셨지만, 유년의 계획표는 가뭄처럼 갈라지고 국민학교 6학년을 마감하는 생활기록부에는 불안한 졸업이 버즘처럼 피어 있었다 ++++ ◈경향신문 ++++맨발로 걷기<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 ◈서울신문 ++++어머니의 겨울<유강희>| 할아버지 산소가 멀리 보이는 무너져내린 언덕에 어머니는 몇천 년 눈물로 헹구어 온 보리씨를 朝鮮의 한 뼘 가슴을 파고 그 기인 어둠 홀로 찍어 삼키며 박속 같은 얼굴로 뿌리시었다. 건너 들에 마른 이마 때리는 눈발이 내리기 전 우리들은 서둘러 우리들의 鳶을 만들어야 했다. 생전 할아버지의 숨결 푸른 마음으로 대쪽을 가르고 다시 잘라 다듬어서 山脈처럼 이어온 끈끈한 人情의 밥풀을 먹여 새 날개 같은 흰 옷의 韓紙에 붙이면 그대로 살아오신 우리들 어머니 모습 우리들은 언덕보다 커다란 연에 따순 핏줄 같은 연줄을 매달아 보리밭 위로 날리기 시작했다. 감나무 깨죽나무를 지나 시암골 너벙바위를 넘어 하늘 높이 마악 솟구쳐 올랐을 때 활처럼 보리밭에 서서 먼 산을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그 흰 모시 수건이 보였고, 여름 한낮 날빛 번개가 휘두르고 간 어머니의 그 갈라진 발바닥 틈으로 가을 하늘보다 맑은 江물이 흐르고 있음을 아니 그보다도 그 하늘보다도 겨울의 언덕을 넘어 어머니의 보리밭이 불길처럼 새파랗게 타고 있음을 마을로 마을로 더 큰 마을로 타들어가고 있음을. ++++ ====1988년==== ◈동아일보 ++++四季<김정희>| 겨울강 잠자거라. 발목 삔 강물아. 밀어내지 않아도 저 혼자 가는 밀물처럼 너를 쉬게 하는 저 얼음을 뛰어 오르지 마라. 바위가 때리고 돌이 넘어드릴 때 생긴 떨고 있는 생채기마다 얼음이 두꺼운 붕대로 감기고 있다. 봄의 손길에도 그 붕대 풀지 마라. 시간에게 긴 머리 잡혓던 강물아. 돌 냇물 속에 저 돌을 보아라. 제 살 제 뼈 모두 냇물에 주고 산에서 바다까지 집시가 되어 제 손 잡아 줄 물품 하나 제 몸 안아 줄 바위 하나 찾아서 밤이나 낮이나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뛰는 것 보아라. 갈대 여름이 다 갈 때까지 무겁게 누르던 흐린 하늘을 너는 창이 되어 찌르고 찔렀다. 벼도 보리도 비껴 간 논둑 밭둑에서 억세게 자랄 수 있는 검은 방죽에서 나뭇가지 꺽는 바람도 베고 베었다. 늦가을이 먼 길 떠나는 지금 어디선가 포복오는 바람에게도 너는 허연 머리로 서서. 나팔꽃 목련나무 그늘에 주저앉은 나팔꽃 소리 없는 소리로 나를 부르다 모가지가 비비꼬여 파랗게 운다. 자기 머리 자기 발로 밟고 끊어지도록 비틀고 비틀리며 손 벋어 절망 한 줌 잡으며 높이 기어 오른다. ++++ ◈조선일보 ++++兩水里에서<권대웅>| 江에서 사는 사람들은 江을 닮아간다 그물을 올리면서 그들은 자기 가슴에 남은 양식을 확인한다 인자한 아버지처럼 칭얼대는 물의 투정 위에 돛대를 풀어놓고 말없이 강바닥을 넓혀가는 그들 그물을 따라 자주 세월의 아픈 흔적도 따라 올라와 멀리 流轉하는 구름 한번 바라보며 고개 숙이면 사무친 물속 깊이 올라오는 물방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철없는 물고기떼 무심히 지나갈 때 홀연 슬픔이 많은 모습으로 저녁 햇살은 떨어지고 물살에 입술 부비는 노을 애태우지 않아도 알지 내 알어. 고개 끄덕이며 자기 가슴에 묻고 지금 살아있는 것들 무수히 파닥이는 것들 다스리며 돌아오는 그들 그윽한 깊이 감추며 後光에 비치는 붉은 얼굴 모두들 쳐다볼 때 허, 손 한번 흔들어 물속에 어우러지는 그들 햇빛에 탄 팔뚝은 푸드득 튕기는 한 마리 잉어처럼 그물을 펼쳐 생기찬 양식을 풀어 던질 때 물풀같이 미끄러운 女子들의 손가락 물의 깊이를 헤아려 가슴에 江이 흐르는 여자는 얼마나 따뜻할까 젖은 몸 푸릇한 내음 풍기며 낮게 낮게 가라앉는 풀잎 멀리 눈을 들어 젖은 머리카락 돌아서는 물푸레나무 그림자 길게 드러눕고 어슴푸레 짙어오는 어둠 속으로 일찍 돌아가는 그들 알고 있는 것일까 두 갈래의 물이 만나는 슬픔 어우러져 한데 흘러가야 할 세월 밤이 되자 물새알 같은 달이 부풀고 江의 아픈 늑골로부터 피어오르는 안개, 안개 물의 조상으로부터 받은 계시 그들의 法으로 잠든 밤 이 밤에 벌어질 반란을 절룩거리며 절룩거리며 수없이 밀려오는 강의 역사를 안개의 아픈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고요와 적막에 묻혀 물 뒤척이는 소리 깊은 밤 그래 알지 알어 꿈속에서도 물과 함께 어우러져 江에서 사는 사람들 江이 흘러가야할 세월을 다스린다. ++++ ◈중앙일보 ++++1987년 11월의 新川<안상학>| 신천교가 보이는 길목을 지켜선 가로수는 하나 둘 가을 흔적을 지우고 팽팽하게 바람을 안고 있는 선거 현수막은 가지를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강남약국 앞 버스정류소는 무인 판매대에서 문득 주워든 때 지난 조간신문 사람들이 표표히 떠도는 모습을 배경으로 현수막에 붙박힌 무표정한 이름들이 웃고 있다 순간 사회면에서 비상하는 철새들 왜가리 청둥오리 두루미 고니떼 무리 을숙도에 잠시 머물다 북상할 거라는 短信 저 썩어 흐르는 산천에도 철새는 날아올까 검은 물만 흐르는 신천 가득 철새는 날아올 수 있을까 날아와 저렇게 시린 발목을 담그고 있어낼까 신천을 가로지른 철교 아래 신천동 산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와 영세민 취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철새무리 장화를 신고 오물을 건지는 아저씨, 철새 수건 미리 쓰고 돌 나르는 아줌마, 철새 허접쓰레기소각하는 할머니 철새, 할아버지 철새, 매캐한 연기는 바람부는 방향으로 누워 흐르고 하천둑에 붙박힌 녹색 깃발은 제자리 펄럭임을 하고 있다 정오 한때 낮은 하늘에 걸린 전투기 한 대 여전히 철새는 날아오지 않고 사람들이 식어버린 밥을 먹고 모닥불 가에 모여든다 천변 봉제공장 여공들은 잠시 은행잎처럼 몇몇은 담장 밑에 옹송거리고 앉아 있고 더러는 노점 떡볶이를 먹으며 재잘대고 있다 늦가을 바람에 날리는 햇살 속에서 낙엽들만 철새처럼 와그르르 몰려 다니는 저 썩어 흐르는 신천은 무사해도 되는가 무사해도 되는가 ++++ ◈한국일보 ++++바둑론<성선경>| 우리가 스스럼없이 우리라고 부를 때 바둑을 두자, 아우여 돌싸움을 하자. 생나무 자라는 소리 쌩쌩한 남녘의 아랫도리 그 어디쯤에서 청동빛 말씀이 내리던 백두의 천지 그곳까지 날줄과 씨줄의 모눈을 메우며 우리들의 날들이 오로지 나아가야 할 길닦음을 해보자 때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과 산수문제처럼 부대껴야 할 어려운 숙제를 풀어가면서 내가 온 봄날의 잡꽃을 피우며 단발령, 추자령, 숨가쁘게 치올라갈 때 너는 또 대둔산, 멸악을 넘어 잘 익은 강르의 단풍잎 물들이기로 그렇게 내려오라 큰 강물이 양수리에서 만나듯 휘휘 휘둘러 강강수월래 같은 돌싸움을 붙여보자. 고싸움을 해보자. 세상의 비어 있는 자리를 서로 메우며 한상 가득 고봉밥을 마주할 수 있다면 꼬이고 꼬여서 만두속 같은 세상도 또 한 판 훌륭한 그림그리기 아니냐 흑이다 백이다 온 들에 모눈을 메우며 삼천리 화려강산 모자이크를 그려도 우리가 풀어야 할 숙취 같은 것 시원히 아침의 해장을 하지 않으면 언제 저 넉넉한 태평양 대서양 우리의 집 한번 만들어 보겠느냐 우리가 우리라고 스스럼없이 부를 때 스스로 셈하여 볼 내일도 있는 것 큰 강물이 양수리에서 만나듯 휘휘 휘둘러 강강수월래 같은 돌싸움을 붙여보자, 고싸움을 해보자. ++++ ◈경향신문 ++++에드바르트 뭉크의 꿈꾸는 겨울 스케치<조현석>| 1 한밤의 심한 갈증, 깨어나, 얼어붙은 빗장을 연다. 꿈꾸는 철길, 달빛 내리고, 이상하다 숨죽인 나는, 오랜 갈증을 느끼며, 소양교 난간 나트륨 등빛의 겨울을 뒤집어 쓴 화가, 만난다 바람이 지난 후 저절로 닫히는 덧문, 내 혀가 끼인다. 2 달빛 없는 밤. 서럽게 운다, 절반의 어둠이 가리운 문틈에 끼인 붉은 혀와 초저녁부터 바람에 술렁이던 마을을, 문밖 세상으로 돌아간 화가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애당초 말을 하고 싶었다 짧은 혀 끝으로 더듬거리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겨울은 언제 시작하였는지, 눈을 감자 잠의 바닥에 깔린 들판을 가로질러 밤새워 폭설이 덮이고, 이미 낮은 세상은 더 낮아지고, 길눈의 거리에서 오도가도 못하며 몇 겹의 죄를 이고 지금 나는 섰는가 3 입을 굳게 다물어도 나의 고백은 쏟아지고 얼어간다. 놀라운 폭설이 그친 하늘은 고요하다, 붐비던 개찰구를 빠져나간 나의 꿈은 검은 버들처럼 잎지는 텅빈 驛舍에서 겨울로 지고 있다. 4 불투명한 유리가 깔린 땅 속으로 녹아내리는 내 속울음이 뿌리 내리는 겨울숲 사이 얼지 않은 물소리가 조심스레 한 옥타브 낮게 늦은 오후를 가득 메우고 짓눌린 오후를 떠다니는 아, 그 그 화가의 떠나지 않는 겨울 숲, 낮게 내려온 하늘을 깡마른 손으로 더듬는 겨울숲, 찾아드는 밤새떼, 종일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나무, 또 눈이 내리고 숲에서 잃어버린 말이여, 나의 근시안에 각질의 어둠이 배고 순간, 온 마을이 일제히 켜드는 불빛 살아 있을 누군가의 지상에 덮인 눈이 부시다 눈이 부시다. ++++ ◈서울신문 ++++오이도<이효숙>| 1 섬의 뿌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멀미를 겨워하던 이웃들은 하나씩 짐을 구렸다. 비워낸 장궁처럼 더 이상 불빛이 보이지 않는 빈 집의 문들은 어둠 속에서 저 혼자 펄럭이고 허기진 별들은 버려진 그물더미를 갉아 먹으며 궁색한 밤을 비워내고 있었다. 아무와도 약속하지 않았던 새벽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새벽의 근처에서 싸늘한 바다를 물어뜯던 까마귀떼. 죽음 몇 뿌리 헹궈내던 그 바다에서 양식(糧食)처럼 자라나던 굴들의 여린 살과 해초의 푸른 머리칼로 밥상 위를 가늠하던 아, 아 지금은 울부짖다 목이 쉰 침묵의 섬. 바다 위로 우우 몰려가며 가래끓던 바람 소리도 아주 가버리거나 절벽 아래서 검붉게 피멍든 채로 누워 버렸는지 사방은 허물어진 소문과 플래스틱 문패 속에 버려진 이름들이 나뒹굴고 등지고 돌아누운 아버지의 잠 속에서 한때 은빛 조기떼의 달아오른 깃발이 드날리는데 이제 제발로 떠난 뱃길로 다시 나아가지 않으리라 2 문닫은 횟집 앞에서 나는 흔들리는 세상과 술을 마신다. 잔 속에서 흔들리는 낮달의 지느러미. 낡은 발동선이 햇볕에 바짝비짝 말라가는 풍경을 보며 별타는 목젖에 조개국을 흘려 넣으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석유 냄새에 역하게 진저리를 친다. 바라보면 바다는 한 장의 푸른 손바닥. 가끔은 오이도의 뺨을 치며 일깨우기도 했건만 도시의 불빛이 밀물 끝에 말려오던 때 그 불빛읋 등지고 떠난 어족의 날카로운 예감은 이웃들의 가벼워진 고향을 끌고 어디일까, 새 물살이 그리운 나라로 몰려가 버리고 위태롭게 수ᅟᅧᆼ선의 외줄을 타고 오던 봄도 기다림 속에 남아 있지 않은데 이제 떠내야 할 땅에서 마지막 남아 있는 정직한 절망은 녹슨 닻에 걸려 풀잎 몇 줄기 쏟아 놓는다. 3 들리는가. 깊은 잠의 언저리를 다가오며 흐느끼는 저 소리, 거센 폭풍이 바달ㄹ 휘감고 찌그러진 양은 대야가 낮은 지붕을 넘나들 때 나의 탯줄을 잘라주던 그 날의 섬이 말라붙은 젖줄을 더듬으며 우는 소리가 건넌방에서 귀없는 아버지가 짐을 챙겼다. 뒤척이는 선잠 속에서 묻어야 할 이웃들의 흰 뼈가 굴러다니고 베게 밑으로 밀려온 염전의 바닥을 긁어 나는 눈물만큼 한 움큼의 소금을 씹어 보았다. 파래속 같은 가슴을 지니고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과 새벽배에 오르면서 우린 내내 안개 속에 가물거리는 오이도를 바라보았다.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끼니를 걱정하면서, 드문드문 보이는 기억속의 겨울 이빨을 하나씩 뽑아내면서, 바다의 싱싱한 살점으로 퍼득이던 오이도여. 아버지의 젊은 날의 왕국이여. 아득히 멀어지면서 나는 ㅈ;도 속에 단단하게 굳어진 서해 바다의 눈물 한 점을 지우고 있었다. 언제고 먼저 찾아올 건강한 바닷새들의 나직한 둥우리를 위하여. ++++ ◈매일신문 ++++간이역에 내려<강남옥>| 더 이상 갈 수 없어 내렸습니다. 종점이 가까운데 정당 잡혀온 내일은 바닥났고 생각은 호주머니 속에서 잠 잡니다. 날 저물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적막강산에 맨몸으로 뛰어든 눈발만 한없이 반가워 지쳐 때묻은 뼈를 묻을까 잠시 비장한 궁리 합니다만, 끝없는 우리의 희망 같은 것일까요? 눈 덮인 山河 어둠의 한 끝을 녹이며 달려가는 붉은 눈시울의 차창은. 어디서 우리는 거짓없이 절망할 수 있을레는지. 며칠 이 곳에 묵으며 피차 이름 석자 건네지 않아도 낯익은 슬픔 어깨 기대어 나누어 떨 요량입니다. 남은 희망에서 춥고 흐린 날을 제한 따스한 백일몽을 셈하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에서 또 다시 처음인 듯 래후할 날을 재촉하겠습니다. 별빛일지, 아직은 확시리 않은 얼굴들 새벽 첫차 바람부는 플랫포옴에 떠 오르는군요. 저들에게 아름답게 손 흔들어 인사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서랍을 열어 주십시오. 소용 닿지 않을 유품과 길고 긴 유서에 부끄러움 전합니다. 삶과 죽음을 우롱한 죄값은 살아가면서 차차 갚아드리겠지만 다시 만날 땐 거짓 우울에 함구하겠습니다. 그 곳에도 해가 떴겠지요. 밤이 다하면 아침이 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낯선 곳에서 눈물로 수긍해야 하다니. 지나쳐온 눈물보다 겪어야 할 즐거움 더 많다고 속삭여대는 저 ㄴ누발에 새로운 은유를 찍으며, 아, 속는 셈치고 기꺼이 속아 넘어가겠습니다. 뒤늦은 깨달음에 기대 앞세우고 마중나와 주시길 바라면서 또 소식 드리지요. ++++ ====1989년==== ◈동아일보 ++++우리들의 고향<배진성>| 길이 있는 풍경 나는 밭 가운데 너뷔바위에 앉아 있었다 아침 시성은 고춧대 하나에 꽃혀 있었다 외토리처럼 뽕나무 가지 버팀목이 없었다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고춧대가 휘청거렸다 또 한 마리가 드디어 꼬꾸라졌다 새는 약속처럼 한꺼번에 떠났다 고추나무는 끝끝내 일어서지 못햇다 그러한 밭에서 걸어나온 길로 젖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은 반란이다 고향의 밤, 별들이 싸운다 밤 하늘은 반란이다 바람이 분다 쓰러졌다, 다시 넘어진다 별은, 쌈질하는 입이다 주점 젊은 여자의 열린 자궁 속이다 길들이 제 골목을 찾아 들어가도 동네는 앞으로도 시끄럽다 물소리도 밤하늘을 쥐어뜯으며 이어져 흐른다 그래도 사랑하는 고향, 우리집은 골목 끝으로 몰렸다 동네의 개들은 무리지어 일제히 짖어댔다 끝에 내달린 우리는 건너로 이어지는 길을 보았다 바람에 쓰러진 곡식들이 줄기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솟아올랐다 태풍의 눈이 다시 무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들의 다리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포식한 어둠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악을 썼다 뭉둥이질 낫을 들고 휘둘렀고 쇠스랑으로 후려 갈겼다 무덤 속에도 하늘이 있었다 떠가는 흰구름 변두리 걸린 폐곡선에 갈라진 고향의 고샅길들이 감기고 있었다 그 하늘 속에는 메마른 공동우물이 파헤쳐져 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꾸로 매달려, ++++ ◈ 조선일보 ++++풀(2)<노용희>| 너의 숨쉬는 자유의 머리칼은 가장 고독하게 남아 있는 시대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의 언어로 시작된 꿈. 그 바람 타고 원시의 멜로디로 이는 아픔이 구도(求道)의 노래로 불릴 때까지 선명한 아침의 깃털로 발목 묶인 사랑의 전통이 뿌리째 무너지던 지난날의 이불 속을 털자. 지극히 간단하나 결코 그치지 않는 가락으로 삶이 가난한 잎새로 호흡하며 떨고 있을 때에도 나는 변하고 싶었다. 향기 없는 꽃으로라도. 그러나 샘물이 흐르는 우주는 언제나 우리의 잠 속에서 껍질을 뚫는 청결한 잎, 피어나는 진동음의 까다로움을 기다리고 있었네. 지상의 아름다움을 모독한 내 불륜의 가슴 아릿한 기억까지도 부적처럼 몸에 감추고서 서리 낀 바람 위에 이렇게 쓴다. 불러다오, 아픔을 위한 노래. 내 헝클어진 영혼의 지독한 방황과 부서짐과 거듭남을 위하여. ++++ ◈중앙일보 ++++뿌리에게<나희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의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 ◈한국일보 ++++꼽추<김기택>| 지하도 그 낮게 구부러진 어둠에 눌려 그 노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매일 그 자리 그 사람이지만 만나는 건 늘 빈 손바닥 하나, 동전 몇 개뿐이었다. 가슴 등뼈 아래 숨어사는 작은 얼굴 하나 시멘트를 응고시키는 힘이 누르고 있는 흰 얼굴 하나 그것마저도 아예 안 보이는 날이 더 많았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곧 껍질을 깨고 무엇이 나올 것 같아 철근 같은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하면서 그것이 곧 일어날 것 같아 그 알이 유난히 크고 위태로워 보였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 ◈경향신문 ++++풍자시대에서-Video의 꿈<조기원>| 여기는 17inch의 꿈과 사랑 그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충족량의 서스펜스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음껏 즐기시기를······ 태양계 한쪽에선 유성들이 별빛을 털며 사라져가고······. 치지익 치익······ 우리들의 애인은 전자오락실에서 갤러그 십만점을 역사적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치지직 칙···.. 경찰은 결코 여러분과의 충돌을 원치 않읍니다 민족의 앞날을 지켜나갈 여러분,학생 여러분의 주장과 요구는 조국과 민족을 아끼는 여러분의 뜨거운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우리 경찰들은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과격한 시위는 여러분의 이같은 애국심을 의심받게 할 뿐이며 학생-시민-경찰 모두에게 피해만 주게됩니다. 경찰은 여러분들이 돌을 악······ 치이- ㄱ 사과탄 맞아 휭한 가슴 달콤한 아몬드로 고독을 달래십시요 루루 아몬드 초코렛······ 도시재개발사업이란 허울좋은 이름 아래 도시 빈민들의 생존권이 무참히 악 치지직 칙······사당······칙지직···.치지직···물자절약을 생활화합시다.공익광고협의회············ 휴먼테큰의 명성을 얻고 있는 주시회사 별하나는 노동자를 협박.회유.납치하는 데만 120억 악 칙······치 치지직······ 아 아 종종 공포는 좌절을 부르러 가고······ 치지직 칙······ 어머니 이젠 지쳤어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마 모든 재벌의 상속된 재산에 대한 정당성은 재산의 이익을 사회에 환언한다는 조건에서만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솔직한 심정입니다········· 치지- 치직 치- ㄱ·············· 노동자의 눈물과 피를 짜아내 만든 별하나 제품 절대로 쓰지 맙··· 억··· 아 여기는 관제된 아니 통조림의 세계 완제품만이 유통과정에서 우리를 만족합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오랜 공장생활이 여성근로자들의 「여성상」과 「모성」을 파괴시킨다는 칙······ 그때. 그의 나이 스물 둘 이었다. 눈물지며 교정밖에서 외치는 어머니의 울부짖음 아, 어머니 모포 네장을 덮어도 치가 떨리며 역력히 보이는 당신의 사랑 어머니 우리는 이렇게 떠나야만 했읍니다············ 애야 네가 아니더라도········· 애야 제발······ 치직 치-ㄱ······ 최종합니다 재벌들이 기부한 돈은 노동자의 식탁에서 콩나물 하나와 멸치 두마리 그리고 생선 몇 토막쯤 빼앗은 바로 그것이 아니냐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단 한번의 보도도 봇한 언론도 책임을 치직 억··· 치지직······ 그 해 눈이 내리고 인공위성은 치근거리며 지구를 맴돌고 몇 마리의 워키토키 같은 쥐들이 우리를 기웃거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서울신문 ++++비 갠 아침<김우태>| 비 갠 아침 어머니가 울타리에 빨래를 넌다 간 밤 논물 보고 온 아버지의 흙바지며 흰 고무신 천둥번개에도 꿈 잘 꾼 손자녀석 오줌바지 구멍난 양말들이 햇살에 가지런히 널려간다 쪼들리는 살림일수록 빨래감은 많아 젖어 나뒹굴던 낱낱의 잡동사니 가렵고 눅눅했던 이불 속 꿈들이 줄지어 널려가는 울타리에 오이순도 넌출넌출 감겨 오른다 빗물 빠진 마당가엔 풀새들이 눈을 뜨고 지붕 위 제비떼 날개 말리는 비 갠 아침 어머니가 빨래를 넌다 꺾인 팔은 바로 잡고 꼬인 다리는 풀어 주며 해진 목덜미 닳은 팔꿈치 아무리고 다독이면서 새옷보다 깨끗한 빨래를 넌다. ++++ ◈대구매일신문 ++++겨울판화<박윤배>| 헛배가 자꾸 불러온다 비닐포장 처마 위에 눈이 쌓이고 얼음꽃 차디찬 이마 뉘인 고등어들 비린내 상자에 잠겨서 지느러미를 꺾고 있다. 등줄기 시퍼런 파도가 살갗에 달라 붙는 소금알 몇 개를 닦아내고 있다 눈 치켜뜨고 살아가라고 사람들 얼마나 싱싱한가를 물어오고 가게주인은 몇 흡 소주에 취해 코 골며 망을 보는 한 폭 그림 속 어머니 심부름으로 달려온 아이 하나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서성이는 겨울 저물 무렵 살소름이 점점 선으로 돋아나고 있다 바다 앞에 멈춰선 벼랑처럼 내가 발라낸 잉크는 미끄러지지 않고 머뭇거리는 추위 몇이 얼핏 보인다 앙상한 활굽이 등뼈로 누워 칼도마 위에 얹혀질 순간을 다물지 못한 입으로 가다리고 있는가 스물스물 죽음 도려낼 칼날을 귓밥 얼얼하게 지켜보고 있는 나는 분명 새겨 넣고 싶은 것 있어 굳은 피 혈관 속으로 세모칼을 밀어넣는다 흰 등뼈로 누워서만 살 수만은 없음을, 그리하여 완성되는 겨울 판화여 찢어진 부레로 눈발은 가볍게 내리고 싱싱한 뼈도 일으켜 세워야지 허무와 슬픔 뭉쳐진 대가리는 어느 집 싱거운 개가 물어갈지라도 가물가물 흐려진 풍경 속에 찍혀질 몸뚜어리 너는 늘 푸른 원목이여 나이테 눈물 중심부에 과거도 그려 넣어야지 사람들 고픈 배로 바라보던 고등어 내장 꺼내 던진 서러웠던 날도 있어 온기 나누고 싶어지리라 죽어 있던 이십대의 숯불심장 위로도 세상의 죽어 있는 것들에게도 소금 같은 눈발 한 줌 뿌려지고 불기둥 세우고 달려나갈 펄떡펄떡한 지느러미를 아프게 새겨 넣는다 ++++ ====1990년==== ◈경향신문-김종해, 유근조 선 ++++이 달에는 주여<조성화>| 주여 이 달에는 제법 살만하게 하소서 하늘 쏘 다니는 저 갈가마귀의 입에서 떨어진 잎새 하나로 내 앞뜰의 쓸쓸함이 위로받게 하소서 비온 뒤라 선뜻 집나설 생각 없지만 집 밖의 비맞은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자신을 가지게 하소서 확실히 지친 사람들이 더 많은 비를 맞고 당신을 찾는데 위로의 대명사여 이 달에는 제법 살만할꺼라 속삭여 주소서 눈길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가난한 발걸음들 찬란한 골목에서 등 돌리고 편만하게 깔린 당신의 글미자에서도 빗나가 보는 삶이 삶의 전체가 아니라는 당신의 뜻이 왜 지극한 위로가 되는가 깨달을 듯 말듯하면서 외출화장을 한 기억이 가마득한 아내에게로 가는 저희들의 발걸음에 이 달에는 제법 살만하게 해 주겠다고 속삭여 주소서 이 달만큼은 틀림없이 살만할꺼라 소리쳐 주소서. ++++ ◈동아일보-신경림, 김주연 선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박라연>| 동지달에도 치자꽃이 피는 신방에서 신혼일기를 쓴다 없는 것이 많아 더욱 따뜻한 아랫목은 평강공주의 꽃밭 색색의 꽃씨를 모으던 흰 봉투 한 무더기 산동네의 맵찬 바람에 떨며 홑날리지만 봉할 수 없는 내용들이 밤이면 비에 젖어 울지만 니제 나는 산동네의 인정에 곱개 불든 한 그루 대추나무 밤나다 서로의 허물을 재진 사랑을 꿰맨다 ...가끔... 전기가 ...나가도... 좋았다...우리는... 새벽녘 우리 낮은 창문가엔 달빛이 언 채로 걸려 있거나 별 두서넛이 다투어 빛나고 있었다 전등의 촉수를 더 낮추어도 좋았을 우리의 사랑방에서 꽃씨 봉지랑 청색 도초랑 한 땀 한 땀 땀흘려 깁고 있지만 우리 사랑 살아서 앞마당 대추나무에 뜨겁게 열리지만 장안의 앉은뱅이 저울은 꿈쩍도 않는다 오직 혼수며 가문이며 비단 금침만 뒤우뚱거림 뿐 공주의 애틋한 사랑은 서울으 ㅣ산 일번지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 그대 사랑할 온달이 없으므로 더더욱. ++++ ◈서울신문-김종길, 정진규 선 ++++新月 기계화 團地<김유석>| 숨가쁜 아침이 薄明의 들판에 고함소리로 몰리고 있다. 논두렁마다 잠의 젖니에 물려 있는 풀꽃들은 따스한 체온 굴러떨어지는 이슬의 몸살이 아프다 수십년 세월을 갈아온 늙은 쟁기꾼의 이랑 같은 주름살 무심히 밟고 가는 바퀴 밑에 갈린 녹슬은 보습 하나 비켜선 황소 눈망울에 실므이 깊다 자그만 나사 하나만 풀려도 드센 고집을 부려 사람의 코뚜레를 뚫기도 하지만 한 필지쯤이야 해장거리 力拔山 힘을 뽑아 온몸을 갈묻이하는 39마력짜리 포드 아, 아니 대동 트랙터 저것들은 기억할 수 있을까 황소 목울음 띁에 배다라리는 농부가 한 소절을 앞세워 동아오던 풍경소리를 2 갈비뼈 부러진 정읍宅 지붕 위에 마늘쪽 같은 낮달이 결려 있다 오래된 문패처럼 마당귀에 대추나무 홀로 여위고 있다 들대에 서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어둡게 젖어 있는 고샅길 물집 터진 흰 고무신짝 하나 무심히 떠올 뿐 조금만 곁눈을 주어도 목이 메어 낯빛으로도 다 못 감추는 사ㅏ랑 허물엉ㅂㅅ이 국수사발로 말아 건네던 사람 기러기떼처럼 늘어서서 띠앗머리 조호게 모내던 그 모잡이들 다 어디로 가고 무춤 위로 문득문득 떠오르느 얼구을 감춰서 장승 같은 이외로움이 가려질까 무심한 기께도 멀찍이 받쳐두고 흙빛으로 얼굴을 내민는 외로움에 풋마늘을 찍어가며 혼자 찬밥을 먹는다. ++++ ◈세계일보 ++++만화경<김용길>| 아이와 색종이를 오리면서 도화지에 붙이며 그림을 만들면서 그림 뒤로 사라져버리는색종이의 뒷면을생까했다 울긋불긋 빛나는 이세상도 색종이의 뒷면 같은 무엇이 받치고 있는 것은 알닐까 그 뒷면이 사라지면 글미은 남을 수 있을까 거대한 이 도시는 뒷면에서 뼈를 세운 노동이 팔 뻗쳐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문에서 ㄹ종이가 없어지면 글자들은 어떻게 떠오르나 우리의 육신이 사라지면 영혼이 그런 색깔로 떠오르나 잘라서 남는 종이들은 왜 쓰레기로 버리면서 우리들의 삶의 어느 부분도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게 아닐까 버려지지 않고 뒤에서 떠받들지 않고 사는 세상은 없을까 문득 궁리하다가 색종이를 잘게 잘게 잘랐다. 아이가 동그란 눈으로 아빠 무어야 한다 유리를 몇 개 주워다 만화경을 만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안팎이 없고 버려지지 않는 세게가 이루어졌다 아이가 좋아서 깡충깡충거린다. ++++ ◈조선일보-박두진, 조병화 선 ++++나무를 꿈꾸며<전원책>| 1 땅 끝에 모여 사는 나무들은 밤이면 걸어다닌다. 설레이는 별들 물어린 눈을 뜨면 누가 먼길 떠나는 것일까, 때이르게 어리는 달무리 이웃들이 등 내달아 길 밝히고 나무들도 컴컴한 숲을 따라 걷는다. 아무도 잠깨어 슬퍼하지 않는 밤 반짝이는 햇빛 푸른 하늘 사람이 그리운 나무들은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은빛 빛나는 톱날 같은 바람이 우루루 여기저기 몰려다니다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며 나무들은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은빛 뱇나는 톱날 같은 바람이 우루루 여기저기 몰려다니다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며 나무 밑을 서성일 때 수액을 떨구는 은박의 그림자와 긴 팔을 가진 나무가 “뒤잇 나뭇꾼이다.”속삭이며 어린 잎을 잠재운다. 가만히 숲을 흘르는 나무들의 귀엣말 은밀하게 퍼져가는 전갈을 차고 슬픈 시간에 그룰터기에 쌓여가는 달빛이 듣고 있다. “곧 무서리가 내리겠어”대단한 걱정거릴르 두런대면서 2 바람마다 별들이 떨고 있다. 묵묵히 자라나는 내 이웃의 나무 밤이면 잎을 틔우는 나무여. 나도 수없는 푸은 잎을 매단다. 저물도록 땅을 파고 아득하게 흐르던 순한 강물을 당겨 머언 땅끝까지 깨어나고 나는 함부로 노래하고 운다. 알고 있을까, 나에게는 누울 곳이 없어 맑은 날엔 부끄럽게 달을 만나고 아직 깊을 빚 많은 내가 아무렇지 않게 밤마다 손질하는 것이 그저 바람이며, 제 살을 베어내 머얼리 날려보내는 것을 글쎄,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봉우리와 봉우리를 건너뛰는 마른 번개와 그 일순의 광채 뒤에 숨은 기인 고뇌의 울음이 최후의 漢辭처럼 천천히 정수리로 떨어져 내림을. 나에겐 듣는 귀가 없어 저 기막힌 인과를 짐작하고 운다 새벽에 꽃 한송이 가슴에 달고 밤새 자라있는 나무이기 위해. ++++ ◈중앙일보-오세영, 김종해 선 ++++갯바위섬 등대<임영봉>| 백년묵은문어가밤마다사람으로변신하여그고을단하나착한처녀를꼬셨드란다온갖날다도해떨어지는저녁마다진주를물어다주고진주를물어다주고장인장모몰래서방노릇석달열흘진주알이서말하고한되 처녀는달밤이좋아라달밤을기달리고그러던중무서워라냉수사발떨어뜨려깨어진먹구름이끼고과달지는어둠새끼손가락약속은무너지고사랑이보니지않는칠흑같은어둠속아주까리불심지는뱀처럼흔들거려타는구나 이승에서의신표가울은몸안에돋는가시만보이다갈라지고보든주문들의효력도별처럼흘러가고돌아오지않는사람을몸달아흘리는신음으로손에땀적시며문빗장풀어놓고동백기름먹인알몸둥이꼬며전신으로기다리는구나 이승에서신표거울은몸안에돋는가시만보이다갈라지고모든주문들의효력도별처럼흘러가고돌아옹지않는사람을몸달아흘리는신음으로손에땀적시며문빗장풀어놓고동백기름먹인알몸둥이꼬며전신으로기다리는구나 돌연문빗살에엄지손톱만한구멍이뚫리고새가슴으로놀라나는어머니한숨줄기눈물줄기앞서거니뒤서거니줄을잇고아이고폭폭해서나는못살겠네보름달대신배가불러오는이유끝끝내는쫓겨났드란다 그날이후로빛나는눈빛을생각하며바다를바라보며하루이틀사흘헤어보는손가락접고진주알진주알문고리휘어지는아히를낳았고아히가자라면서바라보이는바다는부활이다부활이다 깊고넓은바다어둠파도따라하얀치마말기적시며죽음속으로떤나어메의유언을만나면턱고이는아히는오늘도등댓불을밝히기위해섬을올라가는구나 「깊은바다홀로외눈뜨신이여어메 데불고길잘돌아오시라」불을밝힌다불을밝힌다. ++++ ◈한국일보-신경림, 정현종, 김주연 선. ++++청소부, 제비집<이윤학>| 모산도(신작) 뒤가 아름다운살마을 알았다. 돌아앉아 바다를 내다보는 푸르기만 한 산. 해풍에 머리카락을 날리면 두렵기도 하지만 마른 몸적시며 안면도 저쪽 술렁거린느 파도의 높이를 재어보는 아 너의 두눈엔 서슬만이 푸르구나 어디에서 무엇을 밝히고 오는지 군용 라이트의 불빛. 땅거미가 끝나면 갯벌을 건진다. 높이 없는 파도가 말을 걸는 날 이땅의 푸름보다 질긴 생명의 소리를 하리라. 협곡의 수심을 몇번이나 쓸고 가는 바닷물을 보며 성내지 않는다. 육지의 어느 귀퉁이가 떨어지면서 구르고 굴러 단단한 몸뚱이 이곳에 무디지 않은 모소리 박고 바다를 굽어보며 섬이된 산이여 분노하지 않는다. 천성이 착한 너는 능욕당한 갯벌을 묵묵히 느끼며 말할 수도 ??모불미칠 수도 없는 외로운 야산. 이젠 산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섬을 가리킨다. 낮시간에 해변이 채워지면 분노하듯 오히려 물길이 요동친다. 새들은 전쟁이 싫어 뭍으로 날아갔다. 썰렁한 바람이 낭떠러지를 돌아 바다로 간다. 물이 없는 섬에선 살 수 없다며 바람도 바다로 간다. 바람도 바다로 간다. ++++ ====1991년==== ◈대구매일신문 ++++안 개<강문숙>| 1 초겨울 아침 안개가 풀리면서 길도 풀린다. 날마다 하늘은 미세한 그물을 깁고 안개는 사람들의 무딘 코끝에서 이끼처럼 자란다. 보이지 않는 [말]들이 안개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길 윌에서의 사룸이 부쩍 늘었다. 제마다 얼굴을 가린 채 목소리만 버섯처럼 붉게 자란다. 서로 안개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들 탓에 안개가 낀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2 돌들이 하얗게 타오른다. 타면서 가늘게 휘파람소리를 내기도 한다. 빨간 가방을 멘 아이가 안개 속을 지나간다. 잠시 후, 낯익은 여자가 죽은 새를 안고 헤엄쳐 나온다. 수없이 분열하는 하얀 불꽃 사이를 벗은 나무와 얼굴 없는 사람들과 돌아앉은 집들이 떠다닌다. 때론 기운 하늘마저도 허우적거린다. 3 바람아 너의 여린 살갗이 터져 흐르는 피다. 피의 묘한 향기다. 내 가슴 맨 안쪽을 깨무는, 뜨거운 너의 혓바닥이다. 보이지 않는 사슬 허망한 늪 속에 깊이 잠겨있는 칼날 같은 빛이다. 곧 어둠이 닥치리라. 몸 속에 숨긴 수많은 가시 예리한 끝으로, 뚝 뚝 피 흘리며 일어서라. 안개여 일어서라. 4 어머니의 그 편안한 자궁 속, 끼워야 할 단추도 없는 알몸으로 내가 누워 있다. ++++ ◈중앙일보 ++++우리가 매다는 장식은<박 영>| 우리가 매다는 장식은 서로를 빛내주고, 빛나게 하는 보석이다 누구나 장식을 하며 살아가는 시대 장식이 없다며 떠드는 자들의 말, 그것 또한 장식이다. 장식을 매달기를 바라는 자들의 꿈, 그것 또한 장식이다. 장식천지의 세상에 우리의 공허는 깊어만 가고 여자들은 공허늬 무게만큼 옷을, 보석을 매단다 사내들은, 장식을 매단 자들을 장식이 아닌 듯 장식하고, 또 하나의 장식을 꿈군다. 웃음소리, 그 빛나는 장식음을 우리는 결국, 얼마간 서로를 장식하고 나면 하늘을 장식하는 별들이다. 누군가에 의해 보리시앗처럼 땅에 덩져진 우리는 서로를 장식하기 위해, 닦아야 한다. 우리의 웃음을 윤이 나도록 닦아 우리늬 하루에 금시계를 걸어 놓아야 한다. 비록 짧게 똑딱거리다 멈출지라도 우리의 장식이 가닿지 못하는, 우리의 공허를 가득 채우는 장식음, 빛나는 보석음을 장식해야 한다. ++++ ◈세계일보 ++++슬픈 바퀴<박윤규>| -브레히트를 생각함 한계령 정상, 이젠 내리막이다 기하급수루 따라붙는 가속도를 조절하느라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잡으면 단풍설악은 풍랑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산동네 식당 앞에 두 바퀴를 세웠을 땐 향로봉에 찔린 하늘 피가 번지고 몇 채 안 보이는 인가엔 저녁 짓는 연기가 환각제 같다 산골식당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어깨 큰 반백 노인네가 돌아앉아 잇다 등은 적당히 굽었고 목엔 역마살 깊이 주름진 강 쥐색 베레모를 푹 눌러 쓰고 느긋하게 산채비빔밥을 먹고 있는 노인의 코트는 지독하게 바랜 검은색이다 그의 왼쪽엔 보다 만 듯 접혀진 책 한 권 슬 살 픔 아 남 은 자 의 노란 표지에 회색 제목 외 더 작은 글씨가 줄을 서 있지만 그건 이미 눈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노인의 식탁 모서리를 잡고 허물어지는 나 두 줄기 뜨거운 강이 뺨을 탁 내려와 책표지에서 합류하여 제목 위로 범람하나 살아온 세월만큼 울었다고 느꼈을 때 노인을 숟가락을 놓고 내 어깨를 다독이다 연기처럼 식당을 빠져나간다 황급히 다라가니, 잠겨가는 노을 속으로 씁쓸한 웃음과 손짓을 남기고 마른 은행잎 부서지듯 점점이 사라진다 허우적거리며 부르지도 못하고 다시 들어와 책을 집으니 [브레톨트 브레히트 시선] 아직 젊은 베베가 메레모를 비껴쓰고 흑백 명함판 사진으로 나를 깊숙하게 바라본다 접혀진 부분을 펼치니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베베처럼 입술 굳게 다물고 창밖을 보면 비룡폭포에 싯은 설악산 별이 뜬다 댓잎같이 푸른 시절 불꽃으로 살아 스스로 먹장하늘길 걸어가 깨끗한 별로 박힌 먼저 태어났으마 나보다 어린 벗들의 영혼이 하나. 둘. 셋. 넷······ 낮달 같은 내 부끄럼을 헨다 미난해요 밥이 늦어서 깊은 산골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내가 장작난로 옆에 고개 떨군 모습이 안스러운 듯 산채비빔밥을 내려놓는 강원도 아줌마 눈길이 따스하다 오늘은 여기에 바퀴를 세우고 어느집 헛간에라도 등을 대야겠다. ++++ ◈한국일보 ++++家具의 힘<박형준>| 얼마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번 토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삭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 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家具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대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家具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家具가 고물이 된 금성하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法이다 家具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하고 졸부늬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혓을 때 어머니가 밥 먹고 자냐지 하는 음성이 좀 누구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다뜻한 이해로 받아 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家具論을 펼쳤다. ++++ ◈경향신문 ++++황야의 정거장<서규정>| -복지국가로 가는 차표를 어디서 팔고 있는지 모르십니까- 잔털 털 보숭보숭한 여공 하나 데리고 떠나고 싶어 앵두꽃 피는 시절 기쁨과 슬픔마저도 탕감하는 저 반달 달빛이 스며드는 기숙사에서 앞장 뜯어진 노종자 천국을 읽으며 뒷장르 다 넘긴 도 모르고 방받ㄱ을 집어 넘기는 손 떨리는 이 경련의 세월을 공녀야 어디만큼 어디만큼 가고 있었니 천국은 멀어 천국은 멀어 부자가 된 사람들은 이제 강가에 나와 천막을 치면 우리들은 바느질 같은 발자국을 듬성듬성 비켜 가야 하네 아직은 젖과 꿀이 흐르지 않는 강가에서 바람의 손이 닿지 않는 물속 깊이 씨앗처럼 숨어 있는 까만 눈동자를 찾기 전에 급한 물결은 어디로 가 땀방우ᅟᅳᆯ로 수출되는 강물아 일어서는 것도 함정이었네 보이지 않는 발자국부터 시작하는 우리가 저 담벼락에 그려진 지상낙원 뼈져린 어깨로 기대어 보는 보라빛 기둥 무지개가 꽃가루처럼 보스러지며 페인트로 밝혀져 있는 공장 담벼락 희망이 무지개처럼 솟고 상식이 모래알처럼 갈린 신작로를 따라 긴 긴 머리 검은 연기처럼 날리면서 가고 있을 공녀야 그대 눈썹은 웃고 있는가 울고 있는가 여기는 벌판과 환희가 스쳐간 페인트 공화국 가자 가자 약속의 땅 은행잎 닮은 손바닥이 시간의 차디찬 엉덩이를 대리듯 담벼락에 한 폭 낙관으로 찍힐지라도 맨처음 발자국은 버려야 하네 저 고개 넘어가는 잠의 산맥은 넘어야 하네 아침햇상이 쨍그렁 기숙사 유리창을 깨뜨리기 전에 가자 가자 달빛을 타고 미끄러지며 스르르. ++++ ◈조선일보 ++++오늘 서울에서 살아남은 사람은?<이재성>| 바늘을 한 웅큼 삼킨, 목가지 잠기는 시커먼 스모그의 급류 속으로 나는 떠내려간다. 허우적거리며, 산발한 물귀신의 머리카락에 발목을 잡힌 채, 납빛 가면을 쓴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다. 나는 세상을 사랑한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아니야, 물소리야. 저기 사람이 떠내려가는데? 아니야, 나무토막이댜. 그런가? 정말, 그런데! 닿는 곳 어디인가. 세상에서 그렇게 잊혀져 간 사람들. 강의 하구 부드러운 모래섬에서, 봄날 죽었던 가지에서 다시 피어나는 잎새처럼, 꽃잎처럼. 서해안 개펄같이 질퍽한 시장바닥을, 다리가 퇴화한 파춫류처럼 얄ㄹㄹㅂ은 뱃가죽을 문지르며 기고 잇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잃었을까? 이데올로기 전쟁의 피냄새를 맡은 상어의 이빨이 물어뜯었을까? 공사판에서 질통을 지고 오르다 아ㅉㄹ한 현기증에 실족을 했을까? 그러나, 그의 하체에는 생명만큼 질긴 고무타이어가 새살로 돋았다. 무좀 방지 구두깔창과 양말을 유모차에 가득 싣고, 온몸으로 밀고 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창으로 찔리듯, 매미의 호각소리에 맞추어 내려꽂히는 삼복더위의 뜨거운 햇살에 등을 마구 찍히며. 저 세상으로 가는 4호선 티하철역 입구, 비닐하우스에서 속성으로 재배된 꽃 옆에서 접자책 가사를 더듬으며 늙은 스피커통으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그의 목 위에는 쳘셔터문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위탤롭게 걸려 잇고, 사람들은 세상의 誤字 투성이의 점자책을 더듬으며, 시간의 단두대 밑을 오고간다. 오늘 아침 여기서 끔찍한 교통사고가 났었다. 신호등의 파란 불만 보고 건너던 임산부가 트럭의 바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름도 얻지 못하고 죽은 어린 영혼의 무덤은 어디인가. 마구 물어뜯을 사람들의 목덜미를 겨냥하며 술취한 미친 개떼들이 질주한다. 깨진 빗살무늬 토기같이 생긴 횡단보도를 목숨을 걸고 거넌다. 인신매매당한 어린 소녀들의 피를 빨아먹은, 유흥가의 네온사인의 혈관 속으로 붉은 피고름이 흐른다. 음란한 눈을 깜짝거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환락의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들어간 사람들은 “나”를 잊어버린다. 어두운 저편에서 사람들이 태어나고, 또, 저편으로 사라지는 회전문, 문이 돌고 돌아 환히 열린 세상은 언제인가. 언제 튕겨져 나와야 볼 수 잇는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는 원심분리기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가죽과 살이 해체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뻐근한 고개를 쉬지 않고 돌리며 감시하는 선풍기의 눈밑에서, 잠들지 안ㄴㅎ고 깨어 있다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면, 나는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 내일 아침 마당에서 가슴의 나무에 핀 사람의 숲을 볼 수 있으리. ++++ ◈부산일보 ++++洛東江<조동화>| 1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등에 업혀 저음으로 落東江을 보았다. 冬柏기름 냄새 향긋한 엄마의 어깨 너머 멀리 아득히 보이던 비취빛 깅물····· 그러나 미처 그긋이 강인 줄을 모르고, 하늘이 제 많은 자락중에 유독 짙푸른 한 자락을 내려, 山과 山 사이로 천천히 끌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2 江을 사이에 두고 숨가쁜 戰爭이 오가던 그 여름, 아버지는 먼길을 떠나셨지. 강을 건너서 마른 黃土, 먼지 이는 산굽이길을 뚜벅뚜벅 아버지는 멀어져 가셨지. 3 학교가 파하고 나면 나는 홀로 강둑에 앉아 終無消息인 아버지를 그리며 종이매를 접어 띄우곤 하였다. 물결을 따라물결 앞세우고 따라갈 수 없는 먼곳으로 남실남실 사라져 가던 하얀 종이배 ······ 아버지는 보셨는지 몰라, 그리움을 실어, 내 少年을 실어 날마다 띄워 보낸 그 많은 종이배를. 4 깊은 밤 어머니는 곧잘 江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셨던 것일까. 달빛에 젖어 빛나던 어머니의 눈물. 꼭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실 것만 같은 豫感에 몰래 어머니의 뒤를 밟아온 나는 또한 소리없이 울었다. 무성한 갈대숲에 몸을 숨긴 채. 5 오래 응석받이 손주의 든든한 울이셨던 할아버지, 당신께서는 生前에 즐겨 자주 蘭을 치셨지. 눈부신 畵宣紙 위에 늘 알맞게 휘어져 있던 墨蘭 이파리. 이제 나는 알겠네. 흰 달빛 아래 아득한 모랫벌이 한 장 畵宣紙로 깔리는 이 밤, 비로소 고개 끄덕이며 알아보겠네. 먼 산굽이 휘어져 돌아가는 墨蘭 이파리 하나. 한평생 휘어지고 또 휘어져서 마침내 아주 강물 위에 포개진 할아버지 그 墨蘭을. 6 아침나절, 나는 어린것의 손을 잡고 산 위에 올라 落東江을 보았다. 첩첩한 산기슭을 돌고 돌아서 아스라이 굽이치는 純銀빛 먼 강물. 흰 두루막 입은 할아버지의 뒤를 素服한 어머니도 따라가고 있었다. 오오. 얼마나 아프고 소중한 因緣의 모습이랴! 나는 문득 어린것을 무등태우고 오래오래 먼 강물 가리켜 보였다. ++++ ◈서울신문 ++++활엽수림<함명춘>| 1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한 세기를 줄이고 깎으며 살아온 잡목들 빽빽이 들어차고 간간이 바람이 긴 머릿자락을 휘날리면 ㅈ ㅊ ㅋ 격음화현상이 일어나는 활엽수림 저녁은 관습처럼 무섭게 산허리를 들이받으며 재 행동반경권 안으로 진입해 들어오고 바로 코앞에서 길 하나가 논두렁에 처박히고 한 떼의 곤충들이 증발한다 문득 어디선가 맵고 차고 단단하게 들려오는 어둠의 호각 소리 불규칙하게 연소해 들어가는 꿈속처럼 깊은 바다, 활엽수림이여 먼 순례의 길에 오르는가 퇴색한 나의 멜라닌 색소에 푸른 물을 들이고 싶다 2 잠들지 못하는 바다 그 어디에서 삭정가지처럼 걸린 수평선이 부러져 내릴 것만 같다 빛바랜 꽃잎 혹은 빈 술병으로 나뒹구는 어둠 속에서 꾸겨진 나를 발견한다 나를 조소하듯 어두운 곳에서 촉망받는 별들 얼마쯤 걸어왔을까 뒤돌아보면 급격하게 커지는 바람의 폐활량 숨이 가쁘다 가면 갈수록 뒤로 물러서는 활엽수림이며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등줄기가 몹시 가렵다 긁기 위하여 손을 갖다 대면 새까맣게 타들어오는 밤 12시 아직도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들이 돌아오지 않는 활엽수림으로 남아 희미한 고요의 불빛을 지키는 밤은 저울처럼 좀더 엄숙한 곳으로 기울어진다. ++++ ====1992년==== ◈조선일보 ++++남행시초·1<김수영>| -귀향 자, 빈 갯벌도 한잔 받지 집 떠난 지 칠년만이다 늙은 노동자의 잔등 같은 녹슨 배의 철골이나 산비알 붉은 고구마밭에서 굴러내리는 살집 좋은 바람 모두 한잔 들지 냉기처럼 다가서는 끝물의 바다 늘 돌아올 만큼씩은 비어서 망망대해에 있으면 그렁그렁하니 가슴팍을 비집는 마을의 불빛 눈알 뒤집으며 주먹다짐하기도 하면서 파도가 높음, 파도가 높음, 긴급구조 요망 긴급구조 깜박깜박 이 많은 골짜기를 감춘 세파에 자물쳐도 기다려다, 또 계속 가라 바람 없는 낮에 뜬구름만 쇠주병에 담아 뛰우기도 했어 때로는 잊혀지기도 해야 할 젊은 날처럼요 아버지에게도 바다는 길흉을 알 수 없는 심연이었을까 이미 예정된 깊이가 보이는 여정이었을까 하루 필요한 물과 기름을 받으면서 할망구짝난 바테리로 둘둘거리는 배가 언제 덜컹 무심한 돌섬에 묻힐지 모르는 일 나는 같이 늙어가는 박씨의 사투리가 좋다 살아갈 날이 아침 안개속 첩첩으로 걸리믄 달포씩 밭그늘에 묵었던 지게가 낙락장송으로 뵈이고 지겟다리에 걸쳐둔 호멩이도 학모가지로 보이능거 아버지의 그리움도 갈수록 바람의 주먹이 매운 물주름으로 되돌아 왔었을까 한순간 바라다보고 있던 황량한 벌이 손바닥을 펴서 보여준 풀씨들의 집만 무수히 뚫린 외길로 통한 끝없는 황혼 담배만 되새김질하던 염소새끼까지도 흙먼지에 섞여 놓여나기만 하면 같은 피붙이를 기막히게도 찾아가는 떠도는 것만이 제 몫인 뿌리들은 이제 모두 하나로 보입니다. ++++ ◈경향신문 ++++꿈의 체인점<김왕노>| 산다는 것이 따분하거나 눈물나면 신종사업을 원하거나 안전하고 탄탄한 사업을 원한다면 이곳으로 오라 봅이면 바람에 휘날리는 배꽃 아침이면 안개처럼 피어오는 새떼 흥건히 고여 냇물처럼 흘러가는 푸른 달빛 사이 몇백년 묵은 소나무솦 사이 꿈의 체인점이 있다 방안에 흑백 TV 한 대 나무 기러기 한 쌍 송사리떼가 헤엄치는 작은 어항 고만고만하게 모여 손때 묻고 길들어지며 먼지를 덮어스기도 하지만 걸레질할 때마다 당당해지는 그들 방문 왈칵 열고 들어오는 텃밭의 파꽃냄새 밤꽃냄새 미치도록 진동하는 조그만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사랑이 샘물처러 퐁퐁 솟는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신속히 수선되거나 갈아 끼워지는 당신의 꿈 새살이 돋아나는 당신의 꿈 꿈속 가득 들어찬 바람도 피고름도 말끔히 짜준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잿비둘기 패랭이꽃 언덕도 가꾸어 준다 이 근처에 오면 거친 꿈의 면을 손질하는 톱밥도 휘날린다 일이 밀리 목재소처럼 밤새 불이 켜져 있기도 한다 주문을 하면 숲속으로 드나드는 족제비처럼 신속히 배달도 나간다 휴전선을 국경선을 넘어 배달도 나간다 우리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번창해야 하니까 앞으로 전망이 좋으니까 비도 바람도 무릅쓰고 배달 나간다 당신이 이곳에 와 별을 원하면 당신의 녹슨 하늘을 닦아 지금도 생생한 오리온좌르 ㄹ큰곰자리를 견우와 직녀성을 보여줄 것이다 당신이 깨어진 술병처럼 날이 서 누군가의 발바닥을 찌르거나 헌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뒹굴 때 당신의 불변 속으로 질 좋은 석탄 같은 잠을 화석 같은 잠을 수십 삽 퍼넣어줄 것이다 화력 좋은 꿈에 불도 당겨줄 것이다 이제 이 꿈의 체인점으로 오라 정 바쁘시다면 당신의 집 가까이서 찾아보라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 당신의 집 근처에서 꿈의 체인점은 성업중일 것이다. ++++ ◈세계일보 ++++민들레 홀씨<김종욱>| 새학기가 시작되고 우리들 가슴마다 설레이는 5월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교실 창밖에서 떠돌던 홀씨 하나 살포시 날아들었네 어느 바람의 손길이 널 이리로 보냈니 오그린 손옹당이 안에서 파를르 몸을 떤다 가도 가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너의 가니길 고통의 여정을 생각하면 정직한 노동이 어느 한 곳 뿌리내리지 못하고 멸시와 착취와 탄압의 샌드백이 되는 명든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네 종족의 대이동을 가리키며 떠남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운동이라고 말씀하시네 봄날 푸른 하늘에 혁명군처럼 자욱히 떠올라 날아가는 저들을 보면 어찌 믿음을 갖지 않으랴 너의 선조들이 절정의 꽃으로 피어났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처럼 너희 또한 수많은 씨앗이 씨앗인 채로 남아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을 맨몸으로 뒹굴거나 시커면 차바퀴나 구두 뒷굽에 밟혀 이름도 없이 죽음을 맞더 라도 끝끝내 살아남은 동지들이 이 땅 곳곳에 질긴 뿌리를 뻗어내려 새봄에 환한 꽃망울을 터뜨리리라는 것을 호오! 하고 입김을 부니 홀씨는 보송한 솜털을 흔들며 주저없이 햇살 속으로 날아오 른다 가거라 힘찬 네 동지들의 대열로. ++++ ◈서울신문 ++++꽃피는 아버지<박종명>| 그날, 아버지가 앉았던 풀밭 주위에는 풀뿌리들이 하얗게 녹 이 슬었다 내디딜수록 풀 길이 없이 조여지는 어둠 속에서 지상은 비틀거 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지하 영세 전자부품공장 안, 혼몸에서 흘러내린 땀내와 함께 납이 타는 냄새로 통풍되지 않는 공장은 더이상 썩지 않는 쓰레기장 같았다 하루 종일, 납땝 인두만 만지고 계시는 아버지는 소화가 잘 안되신다며 빈 속만 자꾸 게워내셨고 가끔 머리카락이 힘없이 빠지곤 했다 식구들의 잦은 빈혈의 조각들처럼 구석에 쌓여 있는 전자부품들 뒤를 이빠진 선풍기가 심한 요동을 치며 어지러운 세상살이와 함께 돌아간다 끝내, 저녁이 되면 납땜 인두공 아버지 손은 오그라들고 펴지지를 않았다 가랑잎처럼 삭은 어머니의 손이 아무리 펴보려 해도 아버지의 굳은 손은 더욱 펴지지를 않았다 강물 쪽으로 외롭게 내린 뿌리들이 속살 찢어 서러움 빚어내고 우리 식구들은 별빛이 흐려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오그라든 손을 두고 밤새 울었다 납빛 십자가, 풀밭 속에 파묻혔다 어둠이 절뚝절뚝 사라진 풀밭 속에서 무언가 물을 수 없는 말을 던져 놓으며 꽃잎들이 피어났다. ++++ ◈한국일보 ++++세한도<박현수>|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 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클어진 삶을 쓸어올리며 나는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는 혈죽을 배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 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슨의 마디다디를 이렇듯 저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으로 쓸만한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러 야위어가는 것. ++++ ◈동아일보 ++++갈 수 없는 그곳<반칠환>| 그렇지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사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습니까. 새벽이 되기 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기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 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 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때리면 병든 부모 손수레에 싣고 길 떠나는 사람들, 오기도 많이 왔지만 아직 그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더러는 도복을 입은 도사들 그곳에 가까왔다는 소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 빠져가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그곳, 그러나 바늘귀도 오랜 세월 삭아 부러지고 굳이 더이상 통과할바늘귀도 없이 자가용을 가진 많은 사람들, 벌써 그곳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건너가야 할 육교나 지하도도 없는 곳, 도보자들이 몰려 있는 횡단보도엔 연이은 차량, 그들에게 그곳으로 가는 신호등은 언제나 빨간불입니다. 오랜 기간 지친 사람들, 무단 횡단을 하다가 즉심에 넘아가거나 허리를 치어 넘어지곤 합니다. 갈 수 없는 그곳, 그러나 모두 떠나면 누가 이곳에 남아 씨 뿌리고 곡식 거둡니까.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 둘 돌아옵니다. 모두 떠나고 나니 내가 살던 이곳이야말로 그리도 가고 싶어하던 그곳인 줄을 아아 당신도 아시나요. ++++ ◈경향신문 ++++와 디<소을석>| -우리 시대의 강 남김없이 흘러버린 강 바닥에 말라붙은 하늘을 낙타는 짜디짠 돌멩이가 되어 건는다. 수천년 전의 삼목의 수림은 ***로나 무성하고 사냥과 멀목에 기운찼던 장정들은 제 뼈 깎아내려 사막이 되었는지 인적 거둔 염천에 바람만이 모래 기둥을 쌓다 무너져 내린다. 탓한들 돌이킬 수 있으랴 제 발등 찍어 넘긴 도끼날 그 측은 한 함락을 외로이 지키는 낙타는 또 수천년을 두고두고 바라보아도 쨍쨍한 하늘이 무심도 하지 두눈 가득 쏟아져 내려도 물기 한 점 맺히지 않는 어지에 그런 모진 침묵이 있는지 이글거리는 분노, 완강한 외면을 서성이는 발자국은 심장 위에 꽃수처럼 갈증의 화석을 심고 단조로운 풍경은 오래도록 쉬고 있어 갈색 관목의 시든 씨앗을 씹는 낙타의 기울어진 혹이 말라간다. 무엇이 강을 쉬이 떠나게 했을까 불과 수십년, 숲은 우거졌어도 웬일인지 강은 검게 말라붙어 다시 목마르고 사람들은 하나 둘 강을 떠난다. 그래도 이 땅의 하늘은 무심치 않아 비는 족히 내리지, 내려도 폐수로 굳어진 강은 풀리지 않고 낙타는 여전히 불타는. 정작으로 두려운 것은 알면서도 제 살 썩히는 문명의 남용이라는 것을 집집마다 검은 강줄기를 하나씩 갖고서 맑은 날 하루 없이 오수를 흘리지 악취에 코를 막고 돌아서면서도 그것이 나를 등지는 나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지. 하여 숲에서 생명을 발원한 강은 도시를 만나자 곧 숨이 막히고 아이들은 멀찍이 물러서서 강은 검은 것이라고 말한다. 비가 내려도 목마른 강은 비 오지 않아 목타는 강보다 더 큰 절망으로 깊다 나날이 조금씩 발목을, 허리를 목을 차오르는 비오는 날에도 검게 마른 강 하지만 떠날 수 없지. 단 하나의 생명을 이 땅에 심었기에 떠날 수 없지 낙타는 몸을 야위며 사라진 강을 찾아 사막을 횡단한다. 자동차와 빌딩과 인간의 사막을 건너 생명의 향기가 풍기는 투명한 물내음 마음 속을 먼저 흐르는 푸르른 강을 찾아 ++++ ◈경향신문(가작) ++++달리의 그림 속에서 사라진 시간의 행방은? <홍일표>| 푸른 그리움의 하물을 짊어진 늙은 낙타와 함께 가고 있다. 흔 모래알들이 종알종알 잠결 사이로 흘러들고 길가의 풀잎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쓸쓸하게 무너지는 발굽 소리를 엿듣고 있다. 노을은 빨간 꽁지를 흔들며 날아가고 세상은 시간의 밑빠진 독으로 서둘러 몸을 감춘다. 후욱 불면 날아가 버릴 가건물로 우리의 시간은 위태위태 버티고 있고 석고상의 얼굴은 언제나 시간 밖에서 의연하다. 무념무상, 정지된 호흡의 기나긴 협곡 그러나, 바람은 불고 예고없이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시계바늘을 쫓아 뛰어가고 점선으로 이어지는 발걸음 사이 사이 기쁨. 슬픔 . 노여움. 쓸쓸함이 디딤돌로 놓인다. 달리의 그림 속에서 수증기로 날아간 시간의 흔 옷자락이 얼핏 보이고 망연자실 나는 여기 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조간과 석간 사이를 오가며 가끔은 북한산이나 수락산에 올라 사라진 시간의 행방을 쫓는다.관망의 핀셋트에 잡히는 가늘고 긴 분침 하나를 들여다보며 또다시, 시간은 어디 있는가? 달리의 긴 손가락 끝으로 환각의 시계바늘이 흘러가고 나는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흔적없이 날아가던 발자욱이 어느새 흰구름으로 떠올라 빙긋이 나를 내려다보고 기원전, 무시간의 숲으로 달리는 총총히 걸어간다. ++++ ◈부산일보 ++++반송 가는 길<정성욱>| 그대의 벽지 반송리로 가는 막차는 아직 남아 있다. 그대에게 가는 길의 오직 한길인 석대동 길목 잎진 겨울나무 아래 가문비 가문 그리움에 젖어 기다린다 아내는 아직 우산을 들고 서 있을까 이미 때를 놓친 많은 시간들이 조방창의 먼 불빛으로 반짝이고 시가 될 수 없는 일련의 생각들이 마음을 붙든다 외롭지 않다 내가 버린 팔할의 희망이 다시 솟아오르고 도로변을 달려가는 철마산의 무거운 산그림자도 발목을 붙든다 누가 알기나 하리 반송, 기장, 철마 아름다운 마을들의 이름들이 길과 길의 끝에 서 있고 단 한 번에 날려버릴 조방창의 폭약들이 다 터진다 해도 한발자욱도 벗어날 수 없는 그리움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나의 희망인 반송리로 가는 막차는 아직 남아 있고 고단한 퇴근길의 저녁은 늘 이곳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되었다. ++++ ◈중앙일보 ++++하 지<조재영>| 아이들이 돌아간 빈 놀이터에 누군가 그리다 만 집 한 채 누워 있습니다 막대기 하나 주워들고 금을 긋다 보면 그 집은 점점 커져 일어서고 덩그마한 집 한 채 저녁 불빛에 따스합니다 방문 앞 신발 두 켤레 입을 오무리고 기대 앉아 있습니다 어스름한 달무리 지붕을 덮으면 문틈으로 새어나오던 불빛도 꺼지고 가물가물 비가 내립니다 비어 젖은 신발 두 켤레 서럽게 정답습니다 밤이 너무 깁니다. ++++ ====1993년==== ◈중앙일보 ++++流配詩帖<고두현>| -남해 가는 길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宣川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 리 뱃길 시오 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花田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九雲夢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앵강: 西浦 金萬重이 유배 살던 남해 櫓島 앞바다 이름. ++++ ◈부산일보 ++++새<김정미>| 그 집에는 대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정원이 있다 정원과 맞붙는 베란다에는 한 뼘 간격의 가느다란 창살들이 쳐져 잇고 공기 숲 나무 하늘 바람의 유혹을 막아 줄 창문도 칸막이도 없다 창살 중앙위 고리에는 초록색을 칠한 작은 새장이 걸려 잇고 새장 안에는 갓 솟은 태양보다 맑은 순금빛의 노랑새가 자작나물로 만든 횟대에 올라앉아 여린 음성으로 지저귀며 눈망울을 반짝인다 숲에서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가을 참나무 고리보다 요란하다 여기에서의 정적은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와 바람이 투명한 몸짓으로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싱그런 풀잎을 반대편으로 쓸어 누일 때 견디다 못한 정원 귀퉁이 천리향이 바람을 좇아 뛰쳐나가 아찔한 향기를 숲으로 풀어놓는 순간 가볍게 스쳐가는 하늘의 옷자락과 그들의 귀에만 들려오는 아득한 우주 지구 회전하는 소리 꽃들이 봉오리 틈 사이 주름을 펴며 화관을 만드는 소리 아침이 가라앉을 시각 정오의 우유빛 마취가 그 작은 두뇌 속에 차오르는 졸음을 밀어 올려 가물거리는 눈망울이 가라앉을 때 달려가던 바람이 하얀 풀잎을 세우며 돌아오는 그때일 뿐이다. ++++ ◈서울신문 ++++한강 강매기<김현파>| 옅은 안개 깔린 강 표면에서 솟구치는 비둘기보다 큰 새를 보았다 차량행렬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흰 바탕에 회색 무늬 날개를 가진 새 혹, 서해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아닐까 시내버스 손잡이에 흔들리며 禪僧의 깨달음처럼 번쩍 스치는 예감 삼각지 로터리를 돌아 서울역 남재문을 지나면서 그 새는 빌딩숲 깊숙히 묻혀버렸다 화석 같은 짙은 흔적을 남기고 그날 이후 밤마다 꿈을 꾸었다 뱃고동소리 파도에 부서지는 항구 하얗게 빛나는 등애 위에서 나는 은빛 날개로 푸른 하늘을 날았다 무인도를 지나 황톳물 출렁이는 대륙 사막을 날았다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날개를 접기도 했고 먼 아프리카 조그만 어촌을 날았다 달빛 별빛 어우러지는 날 밤에는 어훌너훌 춤을 추기도 했다 대낮에도 꿈을 꾸며 청계천이나 남대문시장을 기우뚱대기도 하고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 엉성한 몸짓으로 부리 끝을 갈고 또 갈아 보았지만 어느덧 무서리로 덮어지는 이 땅 벌써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고 보도블럭 위 플라타너스 잎은 한 장 두 장 떨어지는데 헛일이었다 정말 헛일이었다 손목시계를 차고 넥타이를 매고 오늘도 신발끈을 졸라매 보지만 언제나 아스팔트길에서 프득대기만 한다 한 장의 낡은 양복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감추고 두고 온 해안 모래톱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그리우면 한강엘 간다 더 높은 하늘 더 넓은 바다가 그리우면 잡초 우거진 고수부지에서 끼룩끼룩 울어대기는 하고 콘크리트 강둑을 걷기도 한다 남 모르게 날갯짓도 해보고 낚싯줄을 제 목숨마냥 늘어놓은 늙은 갈매기 젊은 갈매기들 노을에 일렁이는 물살을 보며 소주잔에 두고 온 고향을 타 마신다 유람선 선착장을 맴돌다 한강 철교를 향하여 날아가는 갈매기를 망원경을 통하여 지금은 갈 수 없는 그곳을 생각하며 ++++ ◈문화일보 ++++그리운 약국<배정원>| 세번째 약국엔 새장이 있었다 햇살은 넉넉하였고 한 쌍의 카나리아는 하얀 진통제를 쪼고 있었다 구리반지보다 더 가느다란 손이 진열자을 열면 아스피린들, 눈처럼 쏟아져 아직 족지 않은 눈은 눈물겨웠다 병든 과일나무 분재의 웃음이 석유스토브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던, 겨울 아침 저물 무렵 시장골목이 끝나는 곳에 세번째 약국이 있었고 그곳엔 소복을 걸친 약사와, 정적과, 불치의 病이 있었다 캡술에 든 흰가루를 드링크제의 목을 비틀어 마셔도 해독되지 않는 날들은 식도의 어디쯤에서 분해되는가 유리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햇살은 또 그렇게 저희끼리 몰려다니며 깔깔대고 있었다. ++++ ◈한국일보 ++++소금에 관하여<서영효>| 부서진 은비늘이 모여 복귀할 수 없는 윈시의 水草를 모래밭에 그리는 하얀 눈물 자욱.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온 결합일 테지만, 미완의 입자들이 손 마주잡고 태양 아래서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結晶을 이룬 무리들이 맛을 낸다. 나의 몸이 싱거운 터라 한줌 집어 상처 위로 뿌리니 잊었던 꿈들이 일제히 강줄기 따라 횃불을 밝힌다. 그것은 하얀 불이었구나 피톨이 불을 당겨 곰팡이 홀씨 둥둥 떠다니며 간이나 뒤, 뼈 위로 꽃피우는 온몸으로 퍼지는 화염 靑靑한 몸이로구나. ++++ ◈세계일보 ++++이 사<원동우>|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 지하의 네 평 바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썩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목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는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않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가을 건넌다(닻을 올리기엔 조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발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잔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저 이제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면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 ◈매일신문 ++++삼월의 주남池<윤우>| 겨울 동안 내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던 새는 유년의 흑백사진 같은 빈 둥지만 남긴 채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버렸다. 나는 삼월의 주남저수지에서 빵으로 헛배를 채우며 몸의 빛에 쫓겨 엉덩이 밑으로 숨어들어온 갈대들의 깊은 겨울잠을 어쩔 수 없어 했다. 떠나야 할 때 떠날 수 있는 새는 얼마나 잔인한 짐승인가. 나는 휴일의 길지 않은 시간을 쉬이 낫지 않는 겨드랑이의 상처만 바라보다가 저녁 어스름 속을 걸었다. 떠날 수 없는 새, 맥박소리가 낯익게 들렸다. * 주남지 - 경남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 도래지. ++++ ◈동아일보 ++++穴居時代<이정록>| 1 어쩌다 집이 허물어지면 눈이 부신 듯 벌레들은 꿈틀 돌아 눕는다 똥오줌은 어디에다 버릴까 집안 가득 꼴이 아닐텐데 입구 쪽으로 꼭꼭 다져 넣으며 알맞게 방을 넓혀 간다 고추에는 고추벌레가 복숭아 여린 살 속에는 복숭아 벌레가 처음부터 자기집이었으므로 대물림의 필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 입으며 집 한 채씩 갖고 산다 벌레들의 방은 참 아늑하다 2 PVC 파이프 대리점 옥상엔 수많은 관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자유로운 입으로 휘파람 불고 동우리를 튼 새들 관악기를 분다 아귀에 걸린 지푸라기나 보온덮개 쪼가리가 빌딩 너머 먼 들녁을 향해 흔들린다 때론 도둑고양이가 올라와 피묻은 깃털만 남기고 가는 문명과 원시의 옥상으로 통이 큰 주인 아줌마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또 몇 개의 관이 땅 속이나 콘크리트 사이에서 우리들의 쓰레기나 소음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그리하여 관을 타고 온 것에는 새끼 잃은 어미새 소리가 있고 도둑고양이 이빨 가는 소리가 뛰쳐나온다 피묻은 둥우리, 숨통을 막는 보온덮개의 질긴 터럭이 우리들 가슴에 탯줄을 늘이고, PVC 파이프 그 어두운 총신들이 퀭한 눈으로 꼬나보고 있다 3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제 집안 양 덩치를 키워 온 수많은 벌레들 으쓱거린다 햇살 반대편으로 응큼 돌아눕는 그들과 우리는 낯면이 많다 코를 풀고 눈꼽을 떼내며 아침마다 우리는 벌레의 집을 청소한다 그들의 방으로 채널을 돌리고 보약을 넣고 벌레들의 집은 참 아늑하다 ++++ ◈조선일보 ++++상 처<전대효>| 1 버스가 급하게 모퉁이를 돌았다. 옆에 선 사내가 근육을 긴장시키며 손잡이를 움켜쥔다. 사내의 팔뚝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보인다. 둥글고 큼직하게 주위 살들을 잡아당기며 아문 흉터가 세 개 일렬로 박혀 있다. 언제였던가, 나도 그런 시도를 한적이 있었다. 술을 많이 먹고 친구들 앞에서 고토을 참으며 독하게 지졌었다. 상처는 많이 부풀어올랐다. 며칠 동안 팔 전체가 화끈거렸고, 화끈거렸지만 아무 흉터도 남지 않았다. 햇살 내리네 저 햇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따사로운 햇살 사내는 아마 물집이 생긴 자리를 세 번 이상 더 지졌을 것이다. 아무도 근접 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억을 훈장처럼 팔뚝에 새겨넣기 위하여 사내는 아까처럼 팔뚝의 근육을 긴장시키며······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젖은 숫돌처럼. 2 지나간 일들은 정말로 지나가 버린다. 그날에다 지금에나 햇살 저 햇살, 아래 집들은 웅크리고만 있다. 그런 식의 무례한 작별 인사는 그를 자꾸 뒤돌아보게 했다. 들꽃에게라도 말 걸고 싶은 발걸음. 얘 너도 집이니? 아니 나는 城이야.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다. 기억만 고대인류의 꼬리뼈처럼 전화의 문턱에서 흔들거릴 뿐. ++++ ====1994년==== ◈경향신문 ++++江에서<김민형>| 한짐 가득 모래를 퍼담고 강둑을 탈탈거리며 오르는 경운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갈대를 꺾다가 그대를 생각했습니다. 모래야 잠시 옮겨 놓을 수 있을 뿐 제자리를 찾아주지는 못하고 말라버린 갈숲의 기억 속으로 송장메뚜기도 펄쩍펄쩍 튀어 오릅니다. 갈재는 죽어서도 물을 움켜잡고 있을까요. 강심으로 오래도록 돌을 던졌습니다. 물 위로 뛰어오르던 피라미의 은비늘, 이름 지을 수 없는 세상을 꿈꾸다 들켜버린듯 급히 달아나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대를 믿지 않은 건 아닙니다. 돌멩이를 던지면 물은 둥글게 파문을 그려 뭍을 흔들고 나는 돌을 던진 힘보다 무겁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물고기의길도 나의 길도 흔들릴 때, 팔이 뻐근해질 쯤에서야 알았습니다. 던진 돌에도 잠시 출렁일 뿐 아파하지 않고 돌마저 흐르게 하는 강. 쌓이기만 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요. 마른 홍수라도 질 듯 강은 온통 푸르게 하늘에도 떠 있습니다. 새들이 강을 날아올라 내려앉는 동안 나는 그대의 이름 부르지 않으며 강가를 떠납니다. 더 깊이 흐를 수 있다면 이젠 가까이 가도 되겠지요. 처음부터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강과 강으로 갈꽃 무더기 떠내려 갑니다. ++++ ◈중앙일보 ++++폴리그래프·27<김민희>| --얼음 물고기 눈부신 팔월 아침 눈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물고기떼가 뚫는가 공중의 저 연한 구멍들 말할 구 없는 것들 가령 물고기에 대해 생각해서는 안된다 K는 침묵을 촬영하지 시작한다 하늘에는 새가 없다 네 눈 속에는 물고기가 없고 성큼성큼 다가온 팔월의 아침 추운 K가, 그리운 K는 얼굴을 눈 속에 파묻지도 못한다 느릿느릿한 창문 속으로 수많은 여름이 흘러간다 공포는 물고기처럼 조용하다 사진 찍은 현실은 아름답다 疲勞하기 때문이다 곧 삼십 세가 닥쳐오리라 이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그런 행복한 아침 떨리는 첫눈이 와 준다면 K가 그 뒤를 달려간다 설경 속으로 들어가는 K를 깨끗한 지평선을 K는 뒤에서 오래도록 바라본다 이 無는 현실적이다 공포는 더 아름답다 함박눈 내린다 가짜 물고기로 유리창이 두꺼워진다 이제 K는, 아침에 더 이상 일어 날 수가 없다 더 이상 그림자처럼 마른 물고기라고 말하지 않겠다 눈 덮인 숲에서 숲으로 새들은 점점 텅 비는 것을, K는 본다, 그처럼 수많은 여름이 지난 후 물고기떼가 떠내려갔으리 창문들은 빨리 늙는다 밤새도록 네가 들려 준 이야기마다 고요한 지느러미를 달아 주는 아침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적 논고]에서의 기본명제 7. ++++ ◈동아일보 ++++거듭나기<김지연>| 보일 듯 말 듯한 가슴 아래 손가락을 넣어 본다. 청동조각상이 수줍게 고개 든 순간 뭉클한, 어디선가 심장이 만져질 듯하다. 이상하다 조각상의 반질거리는 살갗에 눈감아 버린 나의 全身이 들여다보인다. 巡禮者처럼 망연히 나는 조각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좁고 남루한 갈비뼈 근처 따슨 꽃들이 무더기로 피고, 꽃들이 잔잔히 흔들리면 언뜻 비춰진 내가 가늘게 휘청거린다. 가만 바라보면, 세밀한 혈관이 발밑을 적시고····· 불현듯 내 몸을 밀어낸 것은 부슬부슬 내겨앉기 시작한 어둠이었을까 어둠이 내리고 창문을 두드리는 웅성거림이 들리지만 손잡을 수 없다, 나는 닫 혀 있 다. 문득 알 수 없는 손이 다가와 내 가슴을 찬찬히 더듬고 뜨거운 피 스며들어, 마침내 사지가 고요히 풀려 흐를 때 저만치서 조각상이 꽃씨를 던진다. 스멀스멀 자라나는 잔뿌리······ 오래 뿌리의 傳信에 귀기울이면 차츰 잘록해지는 허리께에서 실핏줄만한 햇살이 환하게 새어나오고 있다. ++++ ◈서울신문 ++++숲속의 섬<김 혁>| 바람도 풀꽃들도 다 철길을 따라 달리곤 했지 날벌레 같은 마음들 따뜻한 등불 찾듯 모여들어 함부로 내일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꽈리처럼 늘 쉽게 터져버리는 희망, 후욱 남몰래 씨앗들을 뱉아내기도 했지 빈 쌀통에서 왜 자꾸 쌀벌레가 생기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손가락으로 눌러 죽이는 아침 비좁은 방에 둘러앉아 배추 속 같은 얼굴들 바라보며 김치도 없는 라면을 먹곤 했지 부시시한 앞날들 손가락으로 쓰으윽 쓸어 넘기면 기적소리처럼 기다란 저녁이 오고 더러 한 대밖에 없었던 칼라TV 앞에서 다투기도 했던 흑백의 마음들아 지금은 어디? 절망의 집, 모델하우스가 들어서고 분주한 트럭들 쉽게 앙상한 집들과 풀벌레 소리마저 실어나가고 포클레인, 거대한, 세상을 뿌리째 흔들어 설익은 열매들 앞다투어 흙바람 속으로 고개를 처박았지 예수처럼 마을 여기저기 굵은 대못이 박혀들고 새들도 더 이상 날기를 멈추었지 피난보따리 같은 희망의 뿌리들을 툭, 툭 걷어차며 꿈 속에서도 떠나들 가는지 날이 새면 싸늘히 식은 빈 집만 늘어가고 누군가 쌍소리를 지르고 순식간에 사그라들던 초라한 추억이여 지름 모두들 사그리 지워버린 아스팔트를 뚫고 부활처럼 솟아오른 저 잡초, 의 얼굴들아 ++++ ◈매일신문 ++++유월의 살구나무<김현식>|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기억나는 일이 뭐, 아무것도 없는가? 유월의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발머리의 애인을 기다리며 상상해보던 피아노 소리 가늘고도 긴 현의 울림이 바람을 찌르는 햇살 같았지 건반처럼 가지런히 파르르 떨던 이파리 뭐 기억나는 일이 없는가? 양산을 거꾸로 걸어놓고 나무를 흔들면 웃음처럼 토드득 살구가 쏟아져 내렸지 아! 살구처럼 익어가던 날들이었다 생각하면 그리움이 가득 입안에 고인다 피아노 소리는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살구처럼, 양산의 가늘고도 긴 현을 두드리던 살구처럼, 하얀 천에 떨어져 뛰어다니던 살구처럼, 추억은 마룻바닥을 뛰어다니고 창밖엔 비가 내린다 추억의 건반 위에 잠드는 비, 오는, 밤 ++++ ◈세계일보 ++++세숫대야 論<김호균>| 세숫대야를 보면 징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수를 하고 비누거품으로 가득 찬 물을 버리면 무언가를 말하고 싶다는 투로 그려진 세선의 물결 무늬 물 속의 네 육신이 흔들리고 어푸어푸 물먹은 네 육신이 흔들리다 멈추어 섰을 때 지나온 내 꿈보따리를 뒤적이다 보면 나 또한 너처럼 사무친다 우리 모두는 울고 싶은 거다 혹은 말하고 싶은 거다 우리가 아는 여행에 대해 아무도 즐겁지 않았지만 대개는 자신의 억울함에 대해 눈시울 적시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거다 징, 하고 울린 적 없지만 너처럼 속으로 감춘 말줄임표가 한없이 가슴 속에 그려져 있는 거다 ++++ ◈부산일보 ++++돛배를 찾아서<문정임>| 돛배를 아십니까. 돛대에 넓은 천을 달고 서 2바람을 받아 가는 배. 내겐 휘고 오래된 배가 한 척 있습니다. 눈에 담아 두고 가끔 거풍하듯 꺼내어 보는 , 언젠가 풍석(風席)배라 이름하던 작은 배. 그래요 정작 선주는 제 아버지입니다. 명지 끝물 일웅도 모래톱까지 데려다 주곤 하던, 지금은 동력선이 된 그 배가 예전엔 돛단배였습니다. 일웅도 모래밭 그 하이얀 파꽃 너머 눈물로 얼룩진 물새알. 물새의 연한 발자국 돛폭 가득 풀어도 진정 못한 울렁임 실어주던 배. 잠자는 바람 탓 없이 조용한 노를 저어 돌아오려면바람 없인 어쩔 수 없는 무능을 무안해하던 돛대. 물살, 그 깊이는 몰라도 강물에 제 모습을 비춰보던 아버지의 돛대. 돛대의 무안을 그때 보았지요. 일웅도 물새떼 울음소리도 새의 연한 발자국도 밀려드는 강물자락에 지워지고 없습니다. 돛배를 보셨습니까. 돛배에 황포를 달고 바람을 받아 가던 배. 그러나 지금은 풍석에 누우신 제 아버지를 닮은 배. 내 넓은 무안을 달고서 흘러가는 작 은 배를 누가 보셨습니까. 내 선창에 닿지 않은 그 배, 오늘은 어디로 회항한답디까. ++++ ◈조선일보 ++++풍 경<심보선>| 1 비가 갠 거리, ××공업사의 간판 귀퉁이로 빗방울이 모였다가 떨어져 고이고 있다. 오후의 정적은 작업복 주머니 모양 깊고 허름하다. 이윽고 고인 물은 세상의 끝자락들을 용케 잡아당겨서 담가 놓는다. 그러다가 지나는 양복신사의 가죽구두 위로 옮겨간다. 머쉰油만 남기고 재빠르게 발붙는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엉긴 기름을 보고 무지개라며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일주일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지독한 무지개다·······것도 일종의 특허인지 모른다. 2 길 건너 약국에서 습진과 무좀이 통성명을 한다. 그들은 다쓴 연고를 쥐어짜내듯이 겨우 팔을 뻗어 악수를 만든다. 전 얼마전 요 앞으로 이사왔습죠. 예, 전 이 동네 20년 토박이입죠. 약국 밖으로 둘은 동시에 털처럼 삐져 나온다. 이렇게 가 까운 데 사는구만요. 가끔 엉켜보자구요, 흐흐흐. 인사를 받으면 반드시 웃음을 거슬러 주는 것이 이웃간의 情理이다. 밤이 오면, 거리는 번지르하게 윤나는 절지동물의 다리가 된다. 처방전만하게 불켜지는 창문들. 3 마주보고 잇는 불빛들은 어떤 악의도 서로 품지 않는다. 오히려 여인네들은 간혹 전화로 자기네들의 천진한 권태기를 확인한다. 가장들은 여태 귀가하지 않았다. 초점없는 눈동자마냥 그녀들은 불안하다. 기다림의 부피란 언제나 일정하다. 이쪽이 체념으로 눌리면 저쪽에선 그만큼 꿈으로 부푼다. 거리는 한쪽 발을 들어 자정으로 무겁게 옮아간다. 가장들이 서류철처럼 접혀 귀가하고 있다. ++++ ◈한국일보 ++++길을 향하여<조연호>| 비가 온다. 비는 길 위의 사람들을 허물며 처마 끝으로 몰려간다. 아무렇게나 구름은 둔덕을 건드리며 걸어가고 나를 닮은 가지 하나가 빗발을 꺾으며 물길에 떠내려 간다. 천둥이 얹힐 때마다 물먹은 지붕은 자꾸 무거워졌다. 들풀들은 몸을 엎디어 바람의 길을 가르쳐 주고 나는 농아모녀가 손가락으로 둥글게 말을 엮는 것을 보았다. 구름 뒤편에 머무는 맑은 소리들이 먹으로 번진 하늘로 옮겨온다. 여러 개의 물길만큼이나 어지럽게 사람들의 걸음은 흙탕물을 섞으며 걸어간다. ++++ ++++열매를 꿈꾸며<조연호>| 나는 筍을 밀어올리며 껍질 밖으로 나왔다. 땅 위에 하늘의 끝자리를 조금씩 올려놓으며 안개가 내려올 때 다발꽃을 손에 쥔 아이가 허전한 꿈가를 뛰놀고 있었다. 아무도 그곳에 와서 기웃거리지 않았으므로 그 아이의 울음, 한 줌의 사랑에도 묶이지 않았다. 안개는 강과 함께 흘러가고 들풀의 잠결로 깔깔한 삶이 두런거렸다. 그리움을 뒷전에 두고 나는 망울을 터뜨리며 봉오리 밖으로 나왔다. 몇 자의 꽃잎이 내 빈 손에 넓은 잎의 속죄를 쥐어주고 있었다. ++++ ====1995년==== ◈동아일보 ++++이런 세상 어떠세요<김지연>| 날이 찌뿌둥하군요. 할 구 없어요, 늘 같은 주말로 하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사람과 같은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겠어요. 외출은 삼가세요. 바깥 날씨쯤 잊어버려요. 당신의 영원한 TV가 다채로운 재방송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시청률에 항상 주의해주세요.) 채널과 채널 사이 잡음은 신경 쓰지 마세요. 다만 집 앞을 파대는 굴착기 소리에 심장 박동을 맞춰주세요. 곧 따끈한 아스팔트로 포장해 드릴게요. 잠깐, 채널을 바꾸지 마···세··· 질퍽하고 부드러운 진흙바닥 위에 화면 가득 입을 쩌억 벌린 짱뚱어 두 마리 먹고 사는 입이 크면 그뿐 주먹도 피도 눈물도 없이 고개 꺾고 물러나네 먹고 사랑하고 천국 같은 진흙에 뒹굴다 물이 들면 파아랗게 뛰어올라 하늘에 젖는 짱뚱어 세상. (아! 한 가지 아쉬운 건 그곳엔 TV가 안 나온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테나 잊지 마세요.) ++++ ◈부산일보 ++++꿈속의 타클라마칸<김혜령>| 사막, 능선을 타고 날마다 다린다 끝없는 사막 그 지평선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사풍에 휩쓸리는 모래산과 둘러다니는 언덕따라 끝에서 끝으로 넘어진다 넘어지며 운다 모랫바람에 눈을 씻고 일어나면 표지판 없는 사막 위로 햇빛만 굽이 꽂히고 그 빛 속을 춤추는 모래 아지랑이들,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다시 꿈의 관절을 열고 들어가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다 관절 구석 구석 끼여 있는 모래먼지 밤새 씻어내고 닦아내면 어디에선가 물기 젖은 뼈마디 하나쯤 발견할 수 있을까 네가 네 삶을 우울하게 견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 이 무서운 사막의 출구를 찾고 싶어 기막히게 나는 살아 있다 더운 모래 밥을 먹고 사풍에 실려오는 모래산이나 모래언덕을 피해 내달려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뜨거운 모래가 식어가는 언덕 그 어둠 속에 뼈를 식히며 내 관절의 푸른 물기로 생겨난 사막의 길, 보고 싶어, 더운 모래바람 너머 출렁이는 내 삶의 푸른 실핏줄을 몸 깊이 언덕을 덮을 때 달아나는 꿈속의 타클라마칸. ++++ ◈조선일보 ++++목재소에서<박미란>| 고향을 그리는 생목들의 짙은 향내 마당 가득 흩어지면 가슴 속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나이테 사방으로 나동그라진다 신새벽, 새떼들의 향그런 속살거림도 가지 끝 팔랑대던 잎새도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잠 덜 깬 나무들의 이마마다 대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톱날 심장을 물어뜯을 때 하얗게 일어서는 생목의 목쉰 울음 꿈 속 깊이 더듬어 보아도 정말 우린 너무 멀리 왔어 눈물처럼 말갛게 목숨 비워 몇 밤을 지새면 누군가 내 몸을 기억하라고 달아놓은 꼬리표 날마다 가벼워져도 먼 하늘 그대, 초록으로 발돋움하는 소리 들릴 때 둥근 목숨 천천히 밀어올리며 잘려지는 노을 어둠에도 눈이 부시다 ++++ ◈세계일보 ++++자전거에 대하여<윤을식>| 두 바퀴 위에 한 사내 수평으로 나란히 전진해야 하는 바퀴들 구른다, 그때마다 살 끝에서 잘리워지는 햇살들, 같이 아파할 겨를도 없이 회생한 그림자 속에 웃음들이 쏟아진다 추억이 현실을 앞서갈 수는 없어 뒷바퀴가 따르는 만큼의 일정한 거리로 앞서가는 또 하나의 둥근 얼굴이 있어 나는 늘 그 사이 수평의 불안감으로 페달을 밟는다 수많은 이름들의 햇살을 만들고 지우며 다시 만들고 바퀴들이 나아가는 만큼 어깨를 뒤로 젖혀 자리를 옮기는 돌멩이들 가끔 그들의 이탈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모퉁이에 다가선다 한번쯤 얄팍한 끈으로 브레이크를 잡지만 가는 몸 부대끼며 쇳소리 우는 불안을 감당할 수는 없어 아직 숙련된 멈춤을 배우지도 못했는데 두 바퀴 위에 한 사내 간혹 세 바퀴, 네 바퀴 위에 아이들 보인다 추억과 현실을 저울질하듯 위태로운 페달을 밟는다 ++++ ◈중앙일보 ++++배고픔은 그리움이거나 슬픔이다<윤지영>| 식구들이 잠들어 오히려 부산한 여름밤 방충망 사이 모기가 부산스럽다. 모기 날개 위에 달빛이 부산스럽다. 배가 고파 식탁에 앉아 노트북 파워를 넣는다. 냉장고를 열고 우유 식빵을 꺼낸다. 우유와 땅콩 버터를 꺼낸다. 키보드를 두드려 보다. 영균영호영수영식영철영민영석영광지수민수현수정수진수영종······. 깜빡이는 커서, 깜빡이는 그리움······. 우유식빵에 땅콩 버터를 바른다. 버터는 냉장고 속에서도 녹아 있었다. 우유는 냉장고 속에서도 상해 있었다. 노트북도 배가 고픈지 하얗게 화면이 지워진다. 영균영호영수영식영철영민영석영광지수민수현수정수진수영종······. 깜빡이는 커서가 사라지고, 깜빡이는 그리움이 사라진다. 녹아 버린 땅콩 버터 때문에 배가 고프다. 내가 배고픈지 땅콩 버터가 배가 고픈지 분간할 수 없는데, 식구들이 잠든 여름밤, 녹아버린 땅콩 버터를 바라보며 느끼는 허기는 슬픔이거나 그리움이다. ++++ ◈한국일보 ++++좋은 사람들<이병률>|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곳 위에서 가구가 될 줄 안다 궃은 날이 걷히면 은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 널고 햇빛이 뒤척이는 마당에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다 담장 밖으론 밤낮 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개미들의 행렬에 내 몇 평의 땅에 골짜기가 생기도록 상상한다 남의 이사에 관심을 가진 건 폐허를 돌보는 일처럼 고마운 희망일까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목메이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 낼 수 없듯이 기운 찬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따뜻한 숲에 갇혀 황홀하게 밤을 지새는 일 (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끼얹거나 식히면서 갈 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지내기를 희망한다) 먼 훗날, 기억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사물이 박혀 지내던 자리가 아니라 한때 그들과 마주잡았던 손자국 같은 것이라고 내가 물이고 싶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노을이 향기로운 기척을 데려오고 있다 땅이 세상 위로 내려앉듯 녹말기 짙은 바람이 불 것이다 ++++ ◈경향신문 ++++漁盛田의 봄<이은옥>| 적송과 잡목이 어울려, 몇 겹의 산봉우리가 되고 마루 끝에 서서 잘 보이는 앞산부터 산의 허리를 센다 겨울 내내 쌓여 있던 눈이 아래 마을부터 녹기 시작하여 산 밑에 있는 기와집 근처 웅달까지, 길어진 해 그림자 봄을, 마당까지 실어 나른다 서서 말라버린 국화밭에도 햇살이 옮겨 다니면서 겨울의 냄새를 말린다 겨울 내내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국화밭이 밭고랑을 드러내고 강이 덜 때부터 녹기 시작할 때까지 마을은 고요하다 나는 고요하다 고요거 고혹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봄, 강이 뚜껑을 열고 고기들이 알을 까고 돌 밑에 집을 만들 것이다 산을 끼고 도는 어성전의 강, 강물의 흐름이 좋고 조용하여 고기들이 많이 사는 강, 사람들은 이 마을을 漁盛田이라 한다 바다는 바다 사람들의 밭이라면 강은 고기들의 밭이다 아침 안개가 지나갈 때는 이곳 마을 사람들의 옷에서 강 냄새가 난다 가끔씩 마을은 안개에 푹 잠겨 있고 새벽, 닭이 한집 한집에서 울기 시작해 온 동네는 조그만 소리들로 하루가 시작된다 방문을 열면 안개가 먼저 들어온다 햇살이 온 마을에 퍼지면 나는 마음을 서두른다 봄, 햇살이 동반하는 이 나른한 계절은 앉아 있기도 불안하다 겨울 내내 쉬고 있던 농기구들이 하품을 하고 아버지는 먼 산에서 해온 물푸레나무 자루를 다듬어 건너마을에 쟁기를 벼르러 간다 아버지는 조율사처럼 호미 자루며 도끼 자루 괭이 자루를 다시 갈아 끼운다 농기구들은 아버지의 건반이 되어 사계가 시작된다 나는, 슬그머니 강으로 나가본다 강은 아직 고요하다 강은 누가 먼저 알을 낳았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 ◈매일신문 ++++계란말이<이혜자>| 도마와 칼 사이에 잘려지는 야채의 중간음 가벼운 가락에 파, 당근, 양파, 풋고추, 백설햄은 속성을 버리지 않아도 될 만큼 썰려 풀어둔 계란 속으로 푹 몸을 담그고 서로를 굴려본다 도무지 엉킬 것 같지 않던 야채들이 끈끈이주걱풀에 달라붙는 날벌레처럼 계란에 엉켜 허우적대다가 심심한 소금기를 입고는 마침내 계란말이가 되기 위하여 기름으로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쭈욱 배를 깔고 눕는다 안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듯이 앞쪽을 지지면 돌아눕는 속 보이는 여유 등짝과 뱃살에 도는 노르스름한 달관의 빛이 부럽다 계란말이가 필요한, 상기된 얼굴들이 들어온다 이불장 속에 개어둔 이불처럼 맞닿아 산다지만 충분히 아픔을 관찰하는 일 없이 서로의 곁방살이로 살고 콜록콜록 색다른 의성어를 뱉으며 앓아도 왔던 길로 나가기만을 오랜만에 온 감기에게 바랄 수 있을 뿐 이제 내 몸에 엉키는 것은 회충과 같은 몸 안 벌레들뿐이다 사랑하고픈 것들은 등 보일 것조차 남아 있지 않은 밤 계란말이는 입에 넣기조차 민망한 위대한 간식이다 ++++ ◈서울신문 ++++전망좋은 방<장경복>| 눈을 뜨는 일도 밖을 살피는 일이다 자전거가 내리막에서 급하게 길을 긋거나 아이들의 고무줄놀이가 이곳까지 합창을 날려도 하늘이 가까워 위를 본다, 머리 위엔 길거리만큼 복잡한 햇살의 골목이 있다 떨어진 나뭇잎이 새로 난 신작로를 알려준다 그 도로의 끝엔 임종을 앞두고 화장을 하는 늙은 계절이 있을 것이다 오시지 않는 손님을 마중하려 사람들이 몰려갔다 몇몇은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웠고 저들끼리 싸운 축도 있었다 연탄 실은 리어카가 그들을 가로질러 갔고 꼬마들이 검은 흔적을 찾아 비닐봉지처럼 날렸다 잘못 켜진 가로등이 창백한 낯빛을 숨겼다 보이는 것은 모두 숨으려 한다 언덕마다 노출한 숨결이 바람을 맞고 오는 동안 야위어갔다 저 혼자 흔들리는 빨래들 속에 피곤한 몸들이 채워질 것이다 겹겹이 채워도 커지지 않는 그림자들 엉킨 전선줄이 헛그물질을 한다 건져지는 것은 해마다 떠니라는 잡초 같은 소문이었다 발 밑에 별이 깔리기 전에 바빠져야 한다 복잡한 햇살의 골목 급한 참새 한 마리 뛰어나오다 바람에 치여 떨어졌다 ++++ ====1996년==== ◈동아일보 ++++오 월<고창환>| 바람이 지날 때마다 눈이 부시다 잎이 넓은 나무들 세상의 그늘을 가려주지 못하고 나지막이 엎드린 가난 위에서도 반짝거리는 나뭇잎 착한 이웃들의 웃음처럼 환한 잇몸을 드러내며 햇살이 쏟아진다 사람의 흔적이 자목련 향기처럼 아름답다 숲을 떠난 꽃씨들이 큰 길까지 날리고 나른한 항구에 풀린 마을을 내다본다 골목길을 따라 풍선마냥 가벼운 마음들이 들락거린다 자주 꺾이는 바람도 세상살이가 조금씩 눈에 보일 쯤이면 바로 펼 수 있을까 마주치는 세상의 모퉁이마다 큰 바퀴가 지나고 마른 돌가루가 날릴지라도 손바닥을 펴서 햇살을 받는다 사는 낡가진 기다릴 것이 남아 있는가 오랜 희망을 다시 짚어보듯 푸른 소리를 실어나르는 송전탑을 향해 귀를 세운다 ++++ ◈경향신문 ++++中世의 가을 4<노만수>| 신장이식수술을 끝낸 친구는 간호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죽으러 가는 잎새들로 바람은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며칠 전에 만난 까치에게 눈인사를 했다 개미처럼 달 려가고 싶다 어머니의 젖을 물러, 수양버들 이파리가 흙먼지처럼 흩날리는 것은 그리움이 미쳤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 결국 믿음이 없어 떠나왔던 것이다. 수레바퀴국화를 선물했던 누이의 탓이 아니다. 나의 생태계, 손금은 알리라 다시는 나의 손으로 포장할 수 업는 사람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았던 날의 나를. 사실은 우리 모두 遺族이고 싶었다. 토익TOIEC 점수로만 나를 계산할 수 있었던, 대학시절, 人間임을 기억하고 싶었으나 말을 할 수 없었고 편지쓰기를 좋아했다. 겨울철이 와도 거리엔 영정을 든 女人들이 秋葉처럼 아스팔트를 떠돌았다. 사진을 보면 千年을 썩지 않을 눈망울들, 누이가 사 준 볼펜을 잃어버려 더더욱 어쩔 줄 모르겠던 한해가 초상집 잉걸불 연기처럼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기에 살고 싶었다 형광등이 떨어질까봐 두려워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취방 벽에 이름 석 자를 적었다. ++++ ◈매일신문 ++++나르시스를 위하여<류외향>| 기억하고 싶었어요 하마 삐그덕거리는 시간에 얹혀 제 한 몸 돌보지 못하는 반편이 같았어요 그래서인가요? 하루종일 거울 속에 들어가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더군요. 오늘은 말이죠. 입 속을 보았더니 영영 캄캄해서 도무지 저 깊숙히 썩은 이빨, 아니다 아니다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닮았더랬죠. 벌린 입 언저리까지 찢어 탐욕에 뒤틀린 눈알 들이밀었더니 글쎄, 얼마나 어두운지 출구를 못 찾는 거 있죠. 뽑아내고 싶었어요. 거추장스런 허섭스레기쯤이야 버린대도 대뇌 신피질엔 손상이야 있겠어요 고르고 골라서 차곡차곡 챙겨넣은 보석 같은 추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안팎 구별도 없이, 썩어도 안 썩은 체하는 벌거숭이 임금님만 있는 거예요. 난 말이죠, 무서웠어요. 저 깊숙히 깨소금만큼 썩어 있던 이빨 도려내면 한 몸 되어 두리뭉실 엉켜온 다른 이들 죄다 끌려나와 종량제 봉투 속에 사려 깊게 버려질가 내낸 겁이 났어요. 그래서인가봐요. 거울 겉에 달라붙은 치욕을 뚫고 진흙탕에만 피어나는 연꽃처럼 기억하고 싶었어요 가녀란 삶 영영 거울 속에 묻혀버린 애증과 아무래도 내 것이 되어주지 못하는 썩은 이빨 하나 기억하고 싶었어요. ++++ ◈서울신문 ++++운천리 길<염창권>| 1 고향이 그리운 노인들 운천리에 모여산다 삶은 늘 깃이 짧아 겹겹으로 껴입은 속옷들 고스란히 드러내보이지만 가슴 속을 흐르는 고향 생각만은 꼭꼭 여미며 산다. 함석지붕에 나무들이 자꾸 손가락을 다치는 입동 무렵 군장을 꾸린 아침 행렬을 보며 노인들은 담벽에 붙어 모락모락 하얀 안개꽃을 피워 올리거나 떠나온 마을 이야기로 잠시 마음이 산란해지기도 한다 민통선을 건너온 바람의 기별에 길 이쪽과 저쪽에 늘어선 하얀 억새꽃이 무시로 흔들리며 휘어지는데 대체 마음 어느 깊은 곳을 강물이 흐르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조그만 안개를 피워올리는 것일까 강물 끝을 따라가 보는 것일까 싸늘한 아침 빛이 나무들의 억개를 돌아 행렬의 입입마다 하얗게 부서질 때 길은 강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으니 운천리를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들 문해리 자일리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며 길을 트고 있으니 보육원을 빠져나온 아이가 망연히 사병들의 행렬을 바라볼 때 소매깃을 빠져나온 내복이 시린 손등을 덮어줄 때 쇠붙이처럼 희고 단단한 운천의 하늘에 조그만 입김의 안개를 보탠다. 2 삼팔교 난간 밑으로 어둑히 풀리는 한탄강을 건너 여전히 사병 혼자 집총 차렷 자세인 검문소를 지나면 그곳에 운천리로 가는 길이 있다. 한떼의 눈발이 퍼붓다가 문득 고요해지면 그만큼 길은 더 쓸쓸히 깊어가고 들판은 희고 검게 덮인 잔설로 딱딱하게 굳어 오래도록 녹지 않는다 대공포 사격 소리에 놀라 흩뿌리듯 날아가는 텃새들 나무는 자꾸 손을 다치고 캐터필러 발자국이 움켜쥐고 있는 불임의 세월들 나무는 자꾸 발이 아프고 길을 따라 걷는 노인들 걷다가 잠깐 서 있다가 지치면 길 밖으로 나와 그들의 길을 벗어들고 살아온 나날만큼 막막히 나무에 기대어 쓰디쓴 한 모금의 안개를 피워 물 때 누군들 가슴 속 뜨거운 강물이 넘쳐 흐르지 않으랴 누군들 가슴 속 뜨거운 강물이 넘쳐 흐르지 않으랴 누군들 함께 섞여 어디론가 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지 않으랴 노인들 운천리에 모여 살고 운천리 가슴 속에 깊고 그윽한 강물 하나 가꾸며 산다 서로의 뿌리를 잇대고 산다. ++++ ◈한국일보 ++++안개의 도시<임동윤>| 전망 좋은 방이다, 은행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노랗게 물든 길을 새벽 안개가 지우고 간다 더러는 바람과 어우러져, 빌딩과 숲 사이 좁다란 골목까지 슬그머니 점령한다 가로등 불빛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지워버린다 밤새 떨어진 나뭇잎들이 바람의 길을 따라 우미진 골목에 아픔으로 쌓이고 몰래 버려진 쓰레기더미와 몸을 섞는다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국물들 외롭게 뛰쳐나와 와와 소리치는 술병들 안개는 그 위에도 군림한다, 이 도시의 가장 추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감싸고 돈다 안개 속에 좀처럼 잠 깨지 못하는 도시 도청지붕에서 아침햇살은 젖은 안개를 하나씩 꺼내 말린다 요선동의 허름한 집에서는 해장국이 펄펄 끓고 벌써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간밤의 숙취를 푸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어제보다 한결 든든해져가고 가을의 피가 마르는 것을 나는 느낀다 잎새들이 하루가 다르게 길바닥에 쌓이고 환경미화원들의 새벽이 더욱 바빠진다 청소차에 실려나가는 푸른 꿈의 잔해들 첫눈이 오면서 다시 도시는 얼어붙는 것이다 겨울 안개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삼면이 호수로 둘러싸인 도시, 안개는 이 도시의 전유물이다 한낮이 되도록 가시지 않는다 쿨룩쿨룩 누구나 겨울에 한번쯤 기관지를 앓는다 댐이 생기면서 깊어진 질환이다 나는 곤혹스럽다, 겨울에 더욱 살아서 꿈틀대는 것이 물이 얼면 가장 늦게 풀리는 도시 그래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얼음을 즐긴다 스케이트를 못 타는 사람은 여기 사람이 아니다 오늘도 안개는 자욱하고 한낮이 될 때까지 모든 사물을 몸에 가둔다 그래서 몸에서는 짙은 우유냄새가 난다 겨울 내내 도시는 안개 속에 취해 있고 자동차도 전조등을 켜고 다녀야 한다 더러는 빵빵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한낮이 되고 안개가 걷히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비로소 나도 바빠진다, 햇살이 벽을 타고 방바닥에 깊이 박힌 후에야 거리로 나선다 꽝꽝 얼어붙은 호수에서 사람들은 씽씽 바람을 가르며 얼음을 지치고 있다 민망하다 너무 초라하고 연약하여 나는 부끄럽다 재빨리 빙판을 벗어난다 에메랄드에서 뜨거운 한잔의 커피로 몸을 푼다 땅거미가 깃들면 전망 좋은 방으로 돌아온다 이제 스멀거리며 안개는 기어들 것이다 어둠과 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안개와 속삭이며 잠들 것이다, 잠들기 전 닭갈비와 막국수 몇 잔의 소주와도 친화할 것이다 쿨룩쿨룩 오랜 천식을 앓으며 나는 기다린다 창문도 최대한 크게 열어 놓는다 그러나 아직 안개는 침입하지 않았다 자정이 되면서 자동차의 소음도 낮아지고 도시는 조금씩 기울어지며 호수 속으로 빠져든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나는 마음을 서두른다 오늘은 새벽쯤에야 슬그머니 방문할 모양이다 ++++ ◈세계일보 ++++알고 말고, 네 얼굴<임찬일>| 옛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함께 다녔던 국민학교를 들추어내고 그때 가까이서 어울렸던 친구의 이름도 떠올리고 그제서야 자기가 아무개라며 나에게 묻는다 기억이 나느냐고 이것저것 지난 세월에 묻은 흔적을 증거삼아 비로소 서로를 확인하는 이 낯선 절차 그래, 물 같은 세월 흘렀으나 거기에 비추듯 남아 있는 우리들의 코 묻은 얼굴과 남루했던 시절 흑백사진처럼 다소 낡은 모습으로 떠오르는 그 무렵의 일을 이제는 옛날이라고 싸잡아 네 이름처럼 불러야 되는구나 친구야, 오랜만이다 애들이 몇이고? 그래, 나랑 똑같구나 딸 하나 아들 하나라니! 히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오기까지 삼십 년이나 걸려야만 했단 말이냐 서고 연락고 하고 언제 한번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지만 우리들의 기약은 다시 아득해지고 무슨 꿈결처럼 잊혀져서 나는 또 가물가물한 너의 얼굴을 영영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 남은 것이라곤 적어 놓은 너의 전화번호 연락처를 알았으니 가끔 전화라도 하마 만나자, 만나자, 하다보면 그 말이 씨가 되어 이 세상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서 끊어진 것들 가슴속 이야기를 이을 날이 있겠지 ++++ ◈부산일보 ++++찌그러진 모습으로도<조영석>| -깡통을 위하여 찌그러진 모습으로도 나는 살아 있다. 거리를 힘차게 굴러다니며 토해 놓는 만큼의 세상 공기를 마시고 살아간다. 줄어드는 뼛속으로 오염된 언어들이 넘나들지만, 결코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불문율. 내 목소리는 나팔소리보다 요란하고 아이의 싱싱한 울음보다 선명하다. 새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춥고 윙윙거리는 냉장고 속에 잘 진열된다. 만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때론 상한 냄새에 진저리치며 심한 두통을 앓기도 한다. 어느 한 순간, 문이 열리고 부드럽고 따뜻한 손바닥이 나를 감싸 쥔다. 나는 선택된 기쁨으로 고통을 기다린다. 그는 내 모자를 딱, 하고 천천히 벗긴 후 내 살을 자기의 살 속으로 들어 붓는다. 눈물 같은 거품을 게워내며 내 살은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어떤 힘에 의하여 신나게 공중을 날아간다. 나는 다시 찌그러지는 연습을 시도한다. ++++ ◈문화일보 ++++獨酌<최성윤>| 조용함을 더 조용하게 하는 것이 묵묵히 흐르는 물소리이듯 손금을 열고 들여다보면 외로움의 중심은 고요하여라 터진 솔기 속에 햇살같이 밝은 피톨들 먼 산을 담아 제 안에서 빛나게 하고 고개 끄덕이며 끄덕이며 주먹 쥐어 속살 여미면 따뜻하게 배어나와 뚜렷해지는 그림자 어두움을 더 어둠답게 하는 것이 흔들리는 양초 불빛이듯 빈 방 이 깊은 잔 속에도 흠없이 강림하는 이름 지키고 싶은 어둠 있어서 촛불 켜는 사람 ++++ ◈조선일보 ++++賻儀<최영규> | 봉투를 꺼내어 賻儀라고 그리듯 겨우 쓰고는 입김으로 후-불어 봉투의 주둥이를 열었다 봉투에선 느닷없이 한웅큼의 꽃씨가 쏟아져 책상 위에 흩어졌다 채송화 씨앗 씨앗들은 저마다 심호흡을 해대더니 금세 당당하고 반짝이는 모습들이 되었다 책상은 이른아침 뜨락처럼 분홍 노랑 보랏빛으로 싱싱해졌다 씨앗들은 자신보다 백배나 큰 꽃등을 여름내 계속 피워낸다 그리고 그 많은 꽃들은 다시 또다시 꽃피우고 씨앗으로 돌아오고 나는 씨앗 속의 꽃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알도 빠짐없이 주워 봉투에 넣었다 봉투는 숨쉬는 듯 건강해 보였다 할머님 마실 다니시라고 다듬어 드린 뒷길로 문상을 갔다 영정 앞엔 늘 갖고 계시던 호두알이 반짝이며 입다문 꽃씨마냥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봉투를 가만히 올려 놓았다. ++++ ◈중앙일보 ++++퓨즈가 나간 숲<한혜영>| 퓨즈가 나간 숲은 깜깜하다. 나무 꼭대기 새집조차 어둡다. 길이란 길은 모두 지워지고 온전한 것이 있다면 푸르던 기억에 항거하는 단단한 그리움이다. 한계절 사랑의 불 환하게 밝혔던 나무들, 열매들, 그리고 새들, 그 사랑의 흔적을 罪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냥 상처다. 이 겨울의 어둠 아니 한줄기 빛을 참고, 그래 빛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것들에게 상처가 되었나. 눈부신, 찬란한, 아름다운 따위의 형용사와 눈이 맞아 저지른 빛의 횡포, 가지마다 넘치는 축복인 양 위선의 잎새 덕지덕지 달아주며 오늘의 상처를 마련했었다. 누구라도 헛발 자주 내딛고 나뒹굴던시절, 쌈짓돈마냥 숨겨둔 사랑의 잎새 하나만 있어도 가슴은 이리 훗훗한 그리움이다. 어딘가에 한 뭉치 퓨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의 끈을 잇고 명치 끝을 꾸욱 누르면 혼곤한 잠의 머리 절레절레 흔들며 숲은 그날처럼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때문에 새들은 이 겨울 떠나지 않고 하늘 받들어 빈 숲을 지키고 있다. ++++ ====1997년==== ◈경향신문 ++++외 출<김창진>| 이른 봄, 나는 외출을 하였다 겨울에 익숙한 외투로 아직 한쪽은 겨울로 남은 몸을 감추고 봄길로 나서면 봄햇살에 콘크리트 벽들도 금세 싹을 틔울 것만 같다. 내 몸의 어디에서도 살갗을 뚫고 무엇인가 돋는 듯하다. 길가엔 동시상영 포스터와 선거 벽보들이 나란히 봄볕을 피해 긴 담을 따라 월장을 한참 준비중이다. 신축성이 없는 마분지 같은 얼굴들이 고민 끝에 모조하는 근엄한 미소들은 깨알 같은 자신의 약력 밑에 한 줄의 그것들을 더하기 위해 이 낯선 곳으로 애마부인 7과 외유를 나왔다. 난 그 앞에서 문맹이 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귀중하다는 나의 한 표 행사를 고민해야 할 걱정에 싸였다가 딴전 피듯 파란 하늘을 본다. 봄볕을 받고 개나리와 아지랑이가 출마를 하였으면 노랑나비가 빨리 봄을 노래하였으면 나도 아직 일부가 차가운 몸을 안고 봄으로 간다. 봄이 공천하는 많은 새생명이 돋는 곳으로 나는 외출을 한다. 봄날은 우리에게 공약한다 간나한 이들에게 따뜻한 햇살을. ++++ ◈동아일보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배용제>| TV에서 본 스타트랙이라는 영화, 몇 세기 후라던가? 물체나 사람이(혹은 그냥 생명체) 원반에 올라 스위치를 누르면 원자분해되어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목적된 곳에서 정확하게 재결합되어 나타났다. 지옥이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1 나는 자주 꿈을 꾼다 의식의 미세한 입자들이 신비로운 곳을 향해 날아간다 환상 속 연인과 동침을 하며 춤을 춘다 때때로 예언자처럼 먼 미래에 가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내 꿈의 성능은 엉망이어서 변질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더 많다 스핑크스 형상으로 사막의 모래바람에 우우거리거나 털없는 늑대가 되어 붉은 달을 물어뜯는다 암흑의 전당포에 들러 추억을 저당잡히고 새로운 길을 산다 흘러나간 그림자 모두 거친 발톱을 세운다 그러자 앙상한 뼈와 해골을 뒤집어쓴 내가 뒤척인다 그곳에서 여러 모양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단세포 같은, 벌레 같은, 바람 같은, 짐승 같은, 로보트 같은, 석탑 같은, 공룡같은, 괴물 같은······ 검은 석실에 갇혀 바둥거린다, 나는 겁에 질려 영혼을 꺼내 짓이기면서 사나운 울음소리를 낸다 출구없는 꿈을 벗어나려고 의식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어댄다 오, 꿈은 이토록 견고한 공포를 향해 나를 보냈던가 어쩌려고 내 생은 한동안 꿈의 의식을 건설했던가 잠자리에 누워 채 걷히지 않은 비명의 메아리를 토한다 나는 절망의 입자로 재결합된다 몸 밖으로 증발되는 무수한 물기, 꿈의 증거를 말리고 있다 2 내 몸 안에서 무언가 끝없이 전송된다 호흡이, 시선이, 소리가, 체온이, 청춘이, 눈물이, 생각이, 생각속 상상이 전송되고, 지친 희망들이 전송되고, 엄청난 양의 기억들이 날마다 미래를 향하여 전송되고, 내가 가진 자그마한 종교가 두려움 또는 가벼운 신앙으로 전송된다. 그리고, 흑백의 내 생이 천천히 두꺼운 무덤을 향해 전송되고 있다. ++++ ◈동아일보 가작 입선작 ++++부드러운 감옥<이경임>| 아침, 너울거리는 햇살들을 끌어당겨 감옥을 짓는다, 아니 둥지라고 할까 아무래도 좋다 냄새도 뼈도 없는, 눈물도 창문도 매달려 있지 않은 부드러운 감옥을 나는 뜨개질한다 나는 높은 나무에 매달리는 정신의 모험이나 푸른 잎사귀를 찾아 먼 곳으로 몸이 허물도록 기어다니는 고행을 하지 않는다 때로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ㅜ들을 바라본다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잎새들의 춤이 바람이 불 때면 햇살 속에서 눈부시다 잎새들은 우우 일어서며 하늘 속으로 팔을 뻗는다 내가 밟아 보지 못한 땅의 모서리나 계곡의 풍경이 나를 밟고 걸어간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걸어나가고 싶다 거리에 가로등이 켜진다 가로등은 따뜻한 새알 같다 건물 속에서 사람들이 새어나온다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가로등 쪽으로 걸어간다 지상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가로등을 지나쳐 지하도 입구 속으로 사라진다 옆구리를 더듬어 본다 하루 종일 허공에 매달려 있던 거미가 기어 나온다 거미의 그물을 뒤져본다 낡은 점자책이 들어 있다 어둠 속에서 나의 뻣뻣한 손가락이 닳아진 종이 위의 요철 무늬들을 더듬는다 몇 번을 솟아오르다 또 그만큼 곤두박질친 다음에야 희망이란 활자를 읽어낸다 문장들이 자꾸만 끊어진다 길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 ◈매일신문 ++++의자·계단·창문<김현옥>| 낡고 삐걱거리는 나무의자에 앉아 그녀는 창 밖을 건너다보며 태양의 느린 걸음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지켜워, 라는 중얼거림이 하루종일 구름 몇송이로 떠다녔다 암수 붙어 해롱대며 날아가는 잠자리들이 엑스트라처럼 그녀의 창문을 지나갔다 은빛 날개 번쩍이며 하늘의 전령사라도 되는 듯 비행기 한 대가 바쁘게 비명 내지르며 달려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들은 그녀가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의 떠나가는 뒷모습처럼 하늘 깊숙히 점점이 침몰해갔다 모든 것들, 그렇게 아무 일 아닌 듯 그녀의 창문을 다녀갔지만 그녀의 창문 같은 수많은 창문들을 지나 발랄하게 제 갈 길 떠나겠지만 죽을 때까지 떠나지 못할 키 큰 나무 한 그루, 사랑이란······ 그 끔찍하게 지겨운 기다림? 지겹고도 지겹게 그녀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마치 못박혀 있는 듯, 정물처럼 어쩔 수 없이! 키 큰 나무, 어느 날 그녀에게 사랑을 가르쳐줄 때까지 <내 몸 속의 무수한 계단들, 하늘이 날 부르면 난 매일 휘파람 불며 그 계단들 오르며 내 얼굴을 버리지 내 몸의 창문들, 그 수만 개의 이파리들 활짝 열면 바람과 햇빛들 놀러와 나를 투명하게 반짝여 대지> ++++ ◈문화일보 ++++지하역<이기와>| 지하 30미터, 한때는 만개한 꽃처럼 구김 없는 선명한 모양의 화석들이 이곳 어디엔가 오랜 비밀로 박혀 있었음직도 한, 수천 수만년 동안 지하 어둠의 사슬에 묶여 미동도 없던 영혼들이 길이 뚫리고 빛이 스며들면서 하나 둘 마법에서 풀려나 지금은 내가 서 있는 언저리를 휙휙 날아다닐 것도 같은, 지하역, 아직 콘크리트로 덮이지 않은 시간이 벽과 천장의 구석진 곳에 은밀히 흐르고 있다.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안으로 한 걸음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육체 없이 영혼만 타고 내리는 열차도 있을까? 요즘 들어 내 영혼보다 비대해진 몸뚱아리가 거추장스럽다 공복의 허전함으로 비롯된 심약한 생각의 끈을 자르고 안전선 안으로 한 걸음 물러선다 충족되지 못한 뱃속의 허기처럼 보호구역 안에서도 늘 불안함을 느끼는, 206개의 뼈마디로는 지탱하기 힘든 지상의 무게가 선로 위에 앉은 빛 한줌까지 파르르 떨게 한다 희끗희긋 색이 바랜 벽화의 인물처럼 창백한 얼굴들이 승차구에 모여 있다 어쩌다 땅속까지 추방당한 아침 거추장스러운 그림자를 하나씩 끌고, 언젠가 화석으로 남을 시간들을 등에 지고, 깜깜한 터널 속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저 눈동자들 어둠의 틈새로 열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는 순간 닫혀 있던 마음의 瞳孔이 환히 열린다 언젠가는 출구 없는 지하역에서 영원히 맴돌지라도 아직은 살아 지상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 ◈부산일보 ++++먼집<손순미>| 문 밖엔 늦은 저녁이 서 있다 폐타이어가 엮어진 지붕 위 설익은 꿈이 자주 바람에 들춰져도 마음들은 꼭꼭 여미고 산다 가파른 골목을 밀고 온 지친 눈들 불빛을 당기고 부엌으로 들어간 식욕은 세간살이를 달그락거린다 시렁 위엔 칸칸이 달빛이 포개져 있고 간고들어 한 마리 온 식구들을 구워낸다 오순도순 둘러앉은 눈빛들 한 그릇씩 비워내는 얘기에 아랫목 온기가 올라온다 식구들 한 이불의 별빛을 덮고 자면 어둠이 풀풀 새어나오는 집집이 몇 채의 꿈을 꾼다 신발들 저희끼리 내일을 쓰윽 신어본다 ++++ ◈서울신문 ++++폐차장 근처<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엇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 감을 수 없었던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풍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없음의 풀들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이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 ++++ ◈세계일보 ++++정동진 驛<김영남>|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 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 놓고 잔을 주고 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분, 7번 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조선일보 ++++220번지 첫번째 길가 7호<박균수>| 안에서는 도무지 날씨를 짐작할 수 없었다 창틀에는 평행한 세로줄 위에 하트 모양이 붙어 있는 쇠창살이 있었고 먼지들 안쪽에 난시의 창문이 자기 눈알의 크기만큼 위로 오르는 철계단을 사선으로 잘라 보여주었다 그것들 사이로 그을 수 있는 몇 개의 직선 위에 시신경을 올려놓고 우산이 지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언제나 한 개의 형광등과 두 개의 백열등과 또 한 개의 할로겐 등을 같은 채널의 라디오와 함께 켜 놓았고 그것들은 밤새 흰색 벽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가내수고업으로 거미줄을 짰지만 감각은 입자들과 파동들 사이에 있었다 아랫쪽에서 발목을 울리는 소리가 났고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바닥이 조금씩 높아졌다 천정에서 당황한 발자국이 자정의 정수리를 가로질러 갔다 한 달에 한 번쯤 등이 구부정한 사내가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문을 두드렸다 살충제라고 흰 마스크가 말했다 분무기를 짊어진 사내는 구둣발로 걸어들어와 후미진 곳곳에 살색의 약을 뿌렸다 생각날 때마다 벤자민 화분에 반 컵의 수돗물을 주었다 그것은 천천히 어린 잎들부터 말라죽어가고 있었고 물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화분이 놓인 창틀은 내내 축축했고 그곳으로 잠깐 늦은 오후의 햇빛이 예리한 각도로 쓰러졌다 멀리 갔다온 날이면 썩는 냄새에 빨리 잠들었다 인기척에 깨어 나가보면 낯익은 벌레의 알들이 문가에 버려져 있었다 ++++ ◈중앙일보(가작·1) ※당선작 없음. ++++안개바다<이성일>| 1 바다 근처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이 마을의 집들이 유리창을 번뜩이며 바다를 보고 있다 서로 다르게 비어 있는 窓 속에서 조그씩 바다가 증발하고 있다 불빛만이 가려진 커튼 사이로 안개를 흘릴뿐 2 韓紙를 두드리며 누군가의 生을 拓本하는 밤이면 그대가 너무 깊게 박차고 간 내 가슴속 못 하나가 숨표처럼, 그대의 죽음 밖으로 삐져나와 바다로 간다. 아직, 行間을 건너가 보지 못한 생각들이 몇 척 배로 찍혀 정박해 있는 바다. 안개 속이다 고동으로 고동으로 生을 탁본하듯 울리는 뱃고동 소리만 바다를 떠다닌다. 난파선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바다를 끌고 와 고동, 그 빈 먹통 속으로 확, 죽음을 펼쳐 보이는 안개. 멀리서 안개경보 울린다. 안개 속에서 안개로 풀어진 者들의 신음, ++++ ◈중앙일보(가작·2) ++++가족일기<이용규>| 발가락이 가려웠다. 노을 밑으로 낙엽들이 서둘러 떨어질 때, 국문학자가 되겟다던 나의 꿈들이 허리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밟아 보았다. 길은 덜 자란 마늘밭 하나 건너지 못하고 내려갔고, 그날밤 법성포로 떠난 아버지의 굵은 손끝에 매달린 굴비 한 두름 짜게 절여두겠지. 밥그릇 속에 들어가 있는 쉰 밥풀 같은 하루, 밑으로 가볍게 뿌리를 내리고 여기저기 유채꽃같이 찾아오는 봄. 풀어지겠지, 개울에 갇힌 은어 몇 마리쯤. 언덕부터 고추꽃들이 매운 바람으로 불고, 아직 덜 꺼낸 유품 같은 우물을 팠다. 그날 돌아가신 할머니 팔까지 올라오던 물결, 씻고 헹구는 나의 발자국 멀리 흘러갔다. 자취방은 어머니 근심이 기어나오던 그날 같은 배고픔. 신문배달을 했다. 셔터 밑으로 자꾸만 쑤셔넣던 체첸 반군들. 군에 입대한 형으로부터 엽서가 오고 가지런히 기댄 등교길이 즐거웠다. 일몰은 눈앞에서부터 시작도;ㅣ었다. 애들은 하나씩의 풍경들을 들고 들어가 꿈을 만들고, 껌 씹는 낙엽을 밟으며 술집 누이가 들어왔다. 그날 밤, 기도의 형식으로 버려진 수난들이 일기장 속에 접혀 들어갔고, 이유를 몰랐다. 신발을 신지 않은 개들이 고향을 향해 떳떳하게 짖어대고 기쁜 꽃들로 나가 계절을 바꿀 수 있는 이유를. 세월은 넘지 못하는 것일까. 누이의 이마 하나, 바라보며 잠이 들었다. ++++ ◈한국일보 ++++야경(夜警)<이대의>| 자정이 넘은 밤길. 눈발은 그치고 마실꾼들 이야기를 밝히는 불빛은 차가운 바람을 달랜다. 불꺼진 방에, 사람은 잠들었을까 조용하다 개짖는 소리도 잠 못드는 이 밤 우리들은, 마실방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남겨두고 야경을 돈다. 북을 두드리며 마을을 돈다. ++++ ====1998년==== ◈중앙일보 ++++3월 <조은길>| 벚나무 검은 껍질을 뚫고 갓 태어난 젖빛 꽃망울들 따뜻하다 햇살에 안겨 배냇잠 자는 모습 보면 나는 문득 대중 목욕탕이 그리워진다 뽀오얀 수증기 속에 스스럼없이 발가벗은 여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서로서로 등도 밀어 요구르트도 나누어 마시며 볼록하거나 이미 홀쭉해진 젖가슴이거나 엉덩이거나 검은 음모에 덮여 있는 그 위대한 생산의 집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마을 시장 구석자리에서 날마다 생선을 파는 생선 비린내보다 니코틴 내가 더 지독한 늙은 여자의 물간 생선을 떨이해 주고 싶다 나무껍질 같은 손으로 툭툭 좌판을 털면 울컥 일어나는 젖비린내 아~ 어머니 어두운 마루에 허겁지겁 행상 보따리를 내려놓고 퉁퉁 불어 푸릇푸릇 핏줄이 불거진 젖을 물리시던 어머니 3월 구석구석마다 젖내가·····어머니 그립다.++++ ◈서울신문 ++++望海寺 <이병욱>| 대나무 잎새 몸부비는 소리 등에 업고 바다를 바라보는 망해사, 파도가 읊어대는 경전 소리에 처마끝 종소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절간을 지나는 동자스님의 발걸음이 바람에 떠밀리는 마른잎 같다 파도소리, 묵묵한 바위의 등을 내리칠 때마다 허공을 떠다니는 낮은 소리들 단청 없는 대웅전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발걸음도 대웅전 앞으로 밀려간다 낮은 숨소리 웅웅대는 절터를 비추며 조용히 내려앉는 서녘 해, 노을빛 단청을 그린다 내 얼굴에도 단청이 그려졌을까 바다로 발을 옮겨 얼굴을 비추며 이내 얼굴을 삼키는 허연 물거품 귓가에 파도의 일렁거림만 맴돌고 바다의 들숨에 석양마저 빨려 들어간다 법구경 읊는 소리도 바다 밑으로 묻혀진 걸까 쉴새없이 어둠을 내뿜는 잔주름 깊은 바다, 잔불 소리도 없이 내 속을 비워내고 바닷바람 소리없이 범종을 흔드는 망해사, 아무 말없이 바다 위로 단청을 털어내고 있다 ++++